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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밤 ㅣ 창비세계문학 39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단편소설의 대가,
꼬르따사르의 환상문학을 접하다.
중남미 문학의 대표 소설을 꼽으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떠올리지만 처음으로 맛본 중남미 문학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 봉사대>(문학동네, 2009)였다. 영미문학이나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문학과 다른 매력이 온 몸을 휘감았고 책을 덮고 나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쓴 다른 작품들을 찾아가며 읽었다.
그 후 남미 문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작가는 물론이고 대가의 작품임에도 소개되지 않았던 볼라뇨의 문학도 속속 번역되고 있다. 이처럼
장편, 단편 할 것없이 다양한 작품이 번역되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중남미 문학을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드러누운 밤>은 창비
세계문학 서른 아홉번째의 책으로, 훌리오 꼬르따사르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번역되는 작품이다. 온라인에서 보는 것 보다
실제 표지가 더 예쁘다. 진한 갈색이 빈티지하게 칠해져 있고, 까슬까슬한 표지가 촉감이 좋아 책이 쉬이 읽힐 것만 같다. 아무튼 처음으로 접한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책은 생각만큼 쉬이 접할 수 있는 단편이 아니다. 단편소설의 대가이지만 그의 글쓰기는 굉장히 불친절하다.
모호한 느낌과 어디서 이야기가 끝이 날지 모르는 불안감을 고조 시킨다. 15편의 단편 중 중편소설은 '추적자'가 유일하다. 유일한
이 중편 소설은 미국의 재즈 음악가 찰리 파커의 전기적 사실을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한다. 14편의 단편은 짧고도 묵직하며, 그가 무엇을
드러내는지 알 길이 없다.
현실적이면서도 때로는 무엇 때문에
주인공들이 집을 점거 당하며 사는지 그는 소설을 통해 말하지 않는다. 점점 좁아지는 공간 아래서 펼쳐지는 이야기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식
사이에서 보여지는 불안감과 합당한 의식을 통해 우리는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글에 모호함을 느끼며 그의 문학에 젖어 간다.
훌리오 꼬르따사르는 위에 언급된
마르케스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와 함께 아메리카 소설 붐을 주도한 대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많이 낯선 이유는 아직 그의 책들이 번역되지 않아
다른 이들과 달리 그의 명성을 알리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아르헨티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4살이 되던 해
아르헨티나로 돌아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정착하며 살았다.<현존>(1938)을 첫 시작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38살에 첫 환상문학
단편집인 <동물 우화집>을 펴내고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아 유네스코 번역사로 일하며 평생을 보냈다. 그 후 만년에는 쿠바 혁명을 지지하며 적극적인 정치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현재 그는 1984년에 사망하여 몽파르나스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단편 곳곳에는 아르헨티나의
정치적인 면면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의 중단편을 보고 뭐라고 평하기에는
그의 문학은 이전까지 볼 수 없는 비현실적인 문제와 현실적인 문제가 부각되지 않으며 서술 조차도 언급되는 면이 없다.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처음으로 소개된 것처럼 이제부터라도 그의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차츰 이해하면 될 것이다. 우선, 14편의 단편과
1편의 중편 그리고 40페이지가 넘는 작품 해설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꼬르따사르의 문학을 접하면 될 것이다.
단편소설을 많이 접하지 않았지만
헤밍웨이의 단편집을 보면 단편은 장편을 쓰기 위한 하나의 밑그림으로도 보여지기도 하고, 장편에서 쓸 수 없는 실험적인 글들을 과감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장편이 긴 호흡의 문장이라면, 단편은 짤막하면서 작가의 생각을 과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환상문학의 밑그림을 통해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그 짤막하고 생경한 모습을 다음 작품을 통해 더 깊이 알아보고 싶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