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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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이라고 쓰고 '독'이라 부른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에는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다. 남녀간의 사랑, 친구간의 사랑, 부모님과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등 누군가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오롯한 마음을 함께 나누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에는 마주보기 사랑도 있지만 짝사랑도 있고 외사랑도 있다. 마주보기 사랑이 빠알간 하트를 온전히 그려넣는 것이라면 짝사랑과 외사랑은 그는(혹은 그녀는) 모르지만 나 혼자 사랑하는 것이고 혹은 상대방은 알고 있지만 나에게 전혀 마음이 없음에도 나 혼자 열과 성을 다해 그 사람을 내 마음 속에 들여놓는 일이다.

이렇게 사랑의 다채롭고 다양한 종류의 사랑 중에서 애거사 크리스티가 그린 사랑은 가족간의, 형제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사랑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절로 베어 나오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랑'의 정의와 의미가 다채롭게 해석이 되듯 사랑의 색깔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색깔로 표현되곤 하지만 때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마음이 뒤틀려 본연의 색깔을 희석시켜 버린다. 나에게는 그것이 사랑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조여드는 압박이고, 부담이며, 짐이 된다.


"둘째아이의 문제는 실망스러운 결말이기 쉽다는 거야." 존은 훈계하는 투로 말했다. " 첫아이는 모험이지. 첫 출산은 두렵고 고통스러워. 여자는 출산하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남편 역시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출산이 끝나면 시끄럽게 울어대며 꼼지락거리는 작은 핏덩이가 있어. 두 사람에게 온갖 지옥을 맛보게 한 장본인이! 부모는 아이를 당연히 아기를 귀하게 여기지! 갓난아기, 우리의 자식. 근사하기 이를 데 없는 거야!  그런데 대개는 갑자기 잇달아 둘째가 생겨. 앞선 과정이 모두 반복되지만 이번엔 별로 두렵지 않고 대신 훨씬 지루하지. 그래서 태어난 아기는 두 사람의 아이기는 하나 새로운 경험으로서의 의미가 없어. 부모에게 큰 위험 부담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근사하지도 않고." -p.21

 

애거사 크리스티는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을 묶어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모아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으로 묶어 포레에서 출간했는데 <사랑을 배운다>는 이 컬렉션의 마지막 책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오빠 찰스가 병으로 죽고 둘째인 로라가 오빠의 자리를 대신하여 오롯한 자식으로 아서와 앨절라의 사랑을 받길 바라지만, 두 사람의 마음에는 딸 로라가 얌전하고 착한 아이라고 생각할 뿐 아이 특유의 매력을 느끼지 못한 밋밋함으로 보여진다. 아빠 아서와 엄마 앨절라의 시선은 그저 착한 딸아이지만 유명한 학자인 존 밸독은 로라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그는 로라의 부모에게 로라가 사랑을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 강아지를 키우게 하라고 에둘러 말하지만 로라의 부모는 그의 말을 귓등으로 넘겨 버린다.


조용하고 참한 아이 그러나 로라는 오빠 찰스와 동생 셜리를 저주한다. 둘째아이인 그녀는 부모님의 온전한 관심과 사랑을 바라지만 오빠와 동생 때문에 자신이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며 형제의 죽음을 기도하지만 뜻밖의 사건으로 로라는 저주가 아닌 자신의 사랑을 셜리에게 꽁꽁 묶어 버린다. 사건의 발단은 늘 슬며시 비춰지지는 미세한 틈 사이로 비져 나온다. 애거사 크리스티는 시종일관 로라의 조용한 행보를 따라가면서도 마음 속으로 보여지는 어두운 마음을 세밀하게 뜯어보며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아이의 불안한 심리와 불온함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로라의 유년시절의 심리는 집에 불이나면서 부터 동생에 대한 저주를 사랑으로 스위치를 바꾸며 그녀의 몸과 마음을 동생 셜리에게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그것이었다. 압박····· 분명히 느껴지는 지속적인 압박. 전제 도보여행을 할 때 맸던 배낭의 무게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가 점점 의식하게 되고, 그다음부터는 어깨를 파고들며 몸을 내리누르는 짐 덩어리····· -p.78


로라의 태생적인 사랑의 근원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한 저주의 시작이자 불안함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었기에 셜리에 대한 사랑이 결국 독이 될 수 없었다. 형제간의 사랑조차도 사랑은 마주보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로라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사랑이었고 모든 것을 주는 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이 내가 준 사랑이 '짐'이라고 여긴다면 그 화살은 잘 못 쏘아진 화살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펴자마자 무언가 마음을 조여주는 것처럼 불안감이 서서히 스며들었다. 사랑의 뒤틀림은 결국 두 사람 혹은 제 삼자의 관계를 망쳐 버린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강렬하게 느꼈다. 무엇보다 사건을 서술 하는 것 보다 소설 속에 보여지는 인물의 심리를 현미경을 내려다 보는 것처럼 날카롭게 그리고 있어 읽는 독자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등장하는 인물 중 로라에게 많은 조언을 하고 어두운 마음을 날렵하게 캐치한 존 밸독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휘몰아치는 폭풍우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비구름을 몰고오는 비바람처럼 서서히 그 음울함과 사랑의 무게를 녹진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중략) 넌 그냥 관심이 없는거야! 넌 사랑을 주고만 싶지 받고 싶지는 않은 거란 말이다. 거기에 중요한 이유가 있지. 사랑받는다는 건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거니까"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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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록흔.재련 1 - 개정증보판
한수영 지음 / 마루&마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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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 없는 소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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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1 - 태조에서 세종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1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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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적 그날의 하루를 역사 토크쇼로 만나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 쓴 <징비록>을 읽고 나서 KBS에서 대하드라마로 한다는 소식에 읽었던 책의 내용도 상시시킬겸 드라마를 보았다. 드라마를 막 마치고 바로 '역사저널 그날'이라는 프로가 시작되었고 드라마의 영향 때문인지징비록의 내용을 자세히 다뤘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배우 김상중씨가 영상으로 나와 징비록과 그가 연기한 서애 류성룡 선생에 대한 질문들을 했고 최원정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며 신병주 역사학자와 류근 시인등 다른 패널들이 나와 그때 이야기를 '토론'하며 '임진왜란'에 대해 류성룡 선생과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심층적으로 다뤘다.

무엇보다 전문적인 패널들의 토론과 역사 사료 뿐 아니라 지도나 영상을 통해 역사의 프레임을 다채롭게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다큐멘터리나 그 때 당시의 복원을 통해 역사학자 한명이 설명해주는 것이 아닌 패널들의 입담과 사료를 통해 적혀진 사실을 사실을 전문가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도 그날의 역사에 대해 더 깊이있는 시선과 통찰을 전하고 있다.

역사 토크쇼의 매력에 푹 빠질 즈음 <역사저널 그날>이 두 권으로 나왔다. 1권은 태조에서 세종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2권은 문종에서 연산군까지의 중요한 역사적인 그날을 조명하고 있다. 1,2 권에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시대 순으로 나온다고 하니 선조를 다루는 부분에서 서애 류성룡 선생이 쓴 징비록이 다뤄질 것 같다. 조선시대를 좋아하고 조선왕조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책과 드라마를 많이 접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밀도 깊은 질문과 답변이 쓰여져 있어 지루할 틈 없이 조선의 역사에서 중요했던 그날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사료 뿐만 아니라 현대식으로 각 인물의 프로필을 통해 그들의 공과 과를 적절히 다루고 있고, 각 패널들의 시각을 통해 이야기를 밀도높에 전개하고 있어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보통 방송을 보다보면 책 보다는 시각적인 것이 유효한 프로에 손을 들어주기 마련인데 <역사저널 그날>은 방송에서 소개된 것들을 책이라는 프레임에 잘 맞춰 편집되어 있는 것 뿐만 아니라 큼지막한 사진과 인물화는 물론 지도까지 수록되어 있어 우리가 익숙하게 알았던 왕의 어진 뿐만 아니라 사육신으로 유명한 성삼문과 세조를 도와 천수를 누렸던 신숙주의 인물화를 볼 수 있어 여러모로 보는 재미가 컸던 역사 책이었다. 이 책을 보고 있을 때 전에 <공주의 남자>를 다시 봤던 터라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이야기가 무척 궁금했다.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그가 세조가 왕권을 잡고 나서 그는 자신의 공신들을 어떻게 다루며 나라의 기틀을 잡아갔을까 하는 궁금증이 이 책을 통해 해소되었을 만큼 중요한 역사적인 하루를 통해 그 시대의 앞날에 대한 시초를 알 수 있었다.

1권에서는 세종대왕의 이야기 중에서 황희 정승에 관한 일화가 재밌었고, 2권에서는 남이 장군의 이야기와 인수대비의 이야기에 눈길이 갔다. 내가 알고 있던 '청렴함'과 달리 황희 정승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이미지 메이킹 한 것과 달리 많은 이야기 거리를 양산해 놓았을 만큼 부패한 정치인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인수대비를 주인공으로 한 대하 드라마도 있었지만 인수대비의 인생역전은 결국 손자인 연산군에 이르러 끝을 맺었고 화병으로 생을 마감했다니 그녀가 공을 들였던 많은 것들이 연산군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안타까웠다.


이렇듯 조선의 역사에서 중요한 하루, '그날'을 다시 조명하며 패널들의 수다와 토론을 통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적 진실을 아는 것은 물론 잘못된 오류를 바로잡는 일이 아닌가 싶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 책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날을 조명함으로서 우리가 조명하지 않았던 인물들과 사건에 대해 다시금 조명하면서 그 사람의 치적을 다시 돌아보고 과거의 시간 속에서 그이가 했던 행동들이 지금에서는 어떻게 비추어지는지 알아가는 것 또한 이 프로그램의, 이 책에서 다뤄야 하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 그 어떤 책보다 깊이 있는 시각과 다채로운 이야기 뿐 아니라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한 번식은 접했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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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시작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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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도 봄은 온다.

 

올해는 예년보다 날씨가 포근한 편이지만 매서운 바람이 불 때면 따듯한 봄이 무척이나 그립다. 다른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하는데 매년 계절을 느낄 마다 봄과 가을은 짧게 느껴지고 무더운 여름과 매서운 추위가 느껴지는 겨울만 느껴지곤 한다. 겨울이 시작되면,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나 싶어도 시간이 지나면 겨울내내 꽁꽁 얼었던 나무에 새싹이 나고 땅이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 봄바람이 샘이 나듯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짜증이 나다가도 파릇파릇 솟아나는 새싹들을 보고나면 언제 마음 속에 울분이 사르르 사라진다.

이승우 소설가는 서유미 작가의 <끝의 시작>이 '베인 상처 위에 붙일 수 있는' 밴드 같은 소설이라고 평했다. 밴드 같은 소설이라는 추천사에 마음이 콕 박혀 읽었던 <끝의 시작>은 영무와 여진, 소정이 처한 상황에 마음이 서걱거렸으나, 이내 상대방과의 이별과 삶에 대한 공허함이 아픈듯 유지되다가 시간이 지나 서서히 상처가 아물고 다시 새살이 돋아나듯 또다른 삶으로 향해 나아간다. 내 마음 속에 겨울이 찾아들면 언제 끝이날까 싶을 정도로 깊은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던 사람들이 서서히 삶의 재생력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어저면 우리는 만남과 이별을 오고가며 스스로 개인의 상처를 뚫고 지나가야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알을 깨고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내가 가장 사람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두렵고 홀로 세상에 발을 디디기가 무섭기 때문이다.

영무는 어머니와의 이별과 여진과의 헤어짐에 상실감을 느꼈고, 여진은 남편인 영무와의 이별과 석현과의 스침이 공허했으며, 소정은 진수와의 인연이 엇갈려 마음을 도려내야 했다. 저마다의 상처와 삶의 무게를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내 옆지기를 잃어버렸다. 책을 읽는 내내 영무에 대한 여진의 답답함이 이해가 되었고, 유리구두처럼 진수와 결혼하면 이전과는 훨씬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불안감을 느낀 소정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진이 선택한 삶의 공허함은 어쩐지 그녀 스스로 주체를 하지 못해 감당하지 못할 불길에 스스로 자신을 넣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결국 그 선택의 결과는 영무를 선택한 것 만큼이나 참혹했다.

나도 모르게 상처난 곳이 저절로 아무는 것처럼 삶에 있어서도 최악일 것 같은 상황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스스로의 삶의 재생력을 가지는 것 처럼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려는 본능이 생겨난다. 세사람 중 소정의 다음 행보는 그녀의 봄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추운 겨울에도 봄이 오는 것처럼 영무와 여진에게도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부디 두사람에게 스치는 바람에 마음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삶의 시간들이 눈에 보인다. 중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무척이나 많아 보였지만 많다고 생각했던 나이를 먹다보니 그 시간 속에 살았던 언니, 오빠들의 모습과 어른들의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아빠가 지나갔던 시간이 머리속에 콕하고 박히는가 하면 비나 눈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할머니의 등을 보면서 노년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문득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에 마음이 시려오기도 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삶과 체험을 통해 그 시간을 통과했고, 그 시간의 후회들을 젊은 청춘들은 다시 되풀이 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마냥 잔소리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른들도 처음으로 그 나이를 겪는 것이기에 각각의 상황마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이야기 한다. 어렸을 때는 도저히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이 이제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나이가 오다니. 이것 또한 삶이던가.


​***



이런 대형 병원은 시내 곳곳에 있고 아픔과 질병, 죽음은 꽤 가까운 곳에 진 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죽음을 잊고 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일지 몰라도 시선이 삶 쪽에 고정되어 있다는 건 축복일 것이다. - p.32


"힘들었지. 도망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지만······ 지나고 나니까 우리 부부나 가족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중략) "그때 그 사랑이 진짜인지 포즈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아. 여애 기가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결혼 후가 될 수도 있겠지. 문제를 만났을 때 손을 꼭 잡고 지나갈 수 있어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 p.82~83


장난과 언쟁마저 사라진 삶에 불만이 없는 듯 보였다. 그는 잘 다려져 늘 같은 자리에 걸려 있는 셔츠 같았다. 가까워졌다 뜨거워졌다 변덕스럽게 몸의 거리와 마음의 온도를 바꾸는 건 여진 혼자뿐이었다. 겨우 몇 번 만난 띠동갑 연하의 남자애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자신이 의아하고 그런 식의 연애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진은 자신을 내버려두었다. 이 역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흉내, 지금껏 반복해 온 설렘과 호감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무미건조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 p.87


살아 있고 살아간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몸에 바른 색은 지워질 것이고 다시 냄새가 날 테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다른 색으로 칠하고 새로운 향수를 뿌린다. 그게 견디는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영무는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엄마를 이따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거대한 벽 앞에서 엄마는 어떻게 우회했을까. 궁금했지만 한 번도 묻지 못했다. - p.103


진수에게서는 밤이 깊도록 연락이 없었다. 어떤 사랑이 쉽게 변질되고 어떤 사랑은 쉽게 바닥을 드러내고 어떤 사랑은 흐지부지 막을 내린다. 그래도 그 모든 걸 사랑이라고 불어야겠지.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 소정은 자신에게서 떠나간 것이, 자신이 잃은 것이 사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 p.137


예전에는 자신의 느낌이나 직관에 맞는 표현을 찾기 위해 애썼다면 이제는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틀에 맞추고 통용되는 언어로 말하려 노력해야 된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노래를 잘 부르는 애, 키가 큰 애, 목소리가 좋고 말을 재미있게 하는 애라고 설명하지 않고, 어디에 살고 어느 회사에 다니며 연봉이 얼마고, 타고 다니는 차가 뭐고, 애인은 뭐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두들 그게 더 그 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대답하라고 요구한다. 소정은 이제 사진이 처한 상황이, 진수와의 관계가 그런 식으로 설명되리라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 p.138


사랑한다는 건 뜨겁게 살아 있고 싶다는 것, 상대를 향해 타오르고 싶다는 뜻이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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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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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책방과 함께 나눈 소설들.


​ 매주 수요일마다 업데이트 되는 시간을 기다리며, 그가 고른 책은 어떤 책인가 궁금해 한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매주 찾아 듣지는 않지만 관심있게 읽었던 책이나, 읽고 싶은 책이 리스트에 올라 있으면 이전에 올라온 회차를 반복하며 듣는다. 좋아하는 작가와의 만남이 반가워 듣기도 하고, 그들의 허무개그(혹은 하이개그)는 안 맞지만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는 그 어떤 팟캐스트보다 두 사람이 읽어주는 책의 깊이가 남다르다.

팟캐스트를 처음 시작했던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과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꾸준히 들을 수 있던 것도 소설을 접하는데 있어 그들의 박학다식한 면면과 소설을 접하는데 있어 다양한 시각과 미처 지나갔던 행간과 글귀 하나까지도 면밀하게 짚어주는 그들의 세심함 때문이었다. 전문성을 더한.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다룬 소설 중 그들이 사랑한 7편의 소설을 담아 글로 옮긴 책이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차례대로 소개하고 있으며 두 사람이 얼마나 다층적으로 책을 읽어나가는지 팟캐스트를 통해,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의 글 속에서 세밀하게 드러난다.


일곱편의 책 중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와 <호밀밭의 파수꾼>은 이미 예전에 읽었고 <속죄와 <그리스인 조르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읽으려고 대기 중인 작품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파이 이야기>는 아직 인연이 닿지 않은 작품이지만 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곧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사람이 설명하고 토론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절로 책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에서 나오는 다층적이고 점층적인 층위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긴 여운의 끝이 다달아 그 작품을 읽게 만든다.


좋았던 소설이 더 좋아지고, 읽지 않았던 소설을 읽게 만드는 마법이랄까. 그들과 함께 읽고 다시 또 재독할 수 있는 힘을 이동진 평론가, 김중혁 작가의 목소리를 다시 글을 통해 만날 수 있다니 지금껏 들었던 팟캐스트를 다시 정리하는 기분이다. 더 꼼꼼하게 읽고 다시 체크하며 하나도 놓치지 않고 대가의 작품을 읽는 재미는 그야말로 꿀맛같다. 책을 읽는 행위는 자신이 읽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담는 경우가 많은데 두 사람 덕분인지 나만의 책이 아닌 함께 나누며 같이 읽기 때문인지 더 내밀하게 작품을 감상하며 책장을 넘긴다.계속해서 두 사람의 캐미로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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