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시작 오늘의 젊은 작가 6
서유미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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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도 봄은 온다.

 

올해는 예년보다 날씨가 포근한 편이지만 매서운 바람이 불 때면 따듯한 봄이 무척이나 그립다. 다른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하는데 매년 계절을 느낄 마다 봄과 가을은 짧게 느껴지고 무더운 여름과 매서운 추위가 느껴지는 겨울만 느껴지곤 한다. 겨울이 시작되면,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내나 싶어도 시간이 지나면 겨울내내 꽁꽁 얼었던 나무에 새싹이 나고 땅이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 봄바람이 샘이 나듯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짜증이 나다가도 파릇파릇 솟아나는 새싹들을 보고나면 언제 마음 속에 울분이 사르르 사라진다.

이승우 소설가는 서유미 작가의 <끝의 시작>이 '베인 상처 위에 붙일 수 있는' 밴드 같은 소설이라고 평했다. 밴드 같은 소설이라는 추천사에 마음이 콕 박혀 읽었던 <끝의 시작>은 영무와 여진, 소정이 처한 상황에 마음이 서걱거렸으나, 이내 상대방과의 이별과 삶에 대한 공허함이 아픈듯 유지되다가 시간이 지나 서서히 상처가 아물고 다시 새살이 돋아나듯 또다른 삶으로 향해 나아간다. 내 마음 속에 겨울이 찾아들면 언제 끝이날까 싶을 정도로 깊은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던 사람들이 서서히 삶의 재생력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어저면 우리는 만남과 이별을 오고가며 스스로 개인의 상처를 뚫고 지나가야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럼에도 스스로 알을 깨고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내가 가장 사람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두렵고 홀로 세상에 발을 디디기가 무섭기 때문이다.

영무는 어머니와의 이별과 여진과의 헤어짐에 상실감을 느꼈고, 여진은 남편인 영무와의 이별과 석현과의 스침이 공허했으며, 소정은 진수와의 인연이 엇갈려 마음을 도려내야 했다. 저마다의 상처와 삶의 무게를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내 옆지기를 잃어버렸다. 책을 읽는 내내 영무에 대한 여진의 답답함이 이해가 되었고, 유리구두처럼 진수와 결혼하면 이전과는 훨씬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과 불안감을 느낀 소정의 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진이 선택한 삶의 공허함은 어쩐지 그녀 스스로 주체를 하지 못해 감당하지 못할 불길에 스스로 자신을 넣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결국 그 선택의 결과는 영무를 선택한 것 만큼이나 참혹했다.

나도 모르게 상처난 곳이 저절로 아무는 것처럼 삶에 있어서도 최악일 것 같은 상황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스스로의 삶의 재생력을 가지는 것 처럼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가려는 본능이 생겨난다. 세사람 중 소정의 다음 행보는 그녀의 봄날을 기대하게 만든다. 추운 겨울에도 봄이 오는 것처럼 영무와 여진에게도 좋은 날이 올 것이다. 부디 두사람에게 스치는 바람에 마음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삶의 시간들이 눈에 보인다. 중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무척이나 많아 보였지만 많다고 생각했던 나이를 먹다보니 그 시간 속에 살았던 언니, 오빠들의 모습과 어른들의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아빠가 지나갔던 시간이 머리속에 콕하고 박히는가 하면 비나 눈길이 미끄러워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기는 할머니의 등을 보면서 노년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문득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깨달음에 마음이 시려오기도 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삶과 체험을 통해 그 시간을 통과했고, 그 시간의 후회들을 젊은 청춘들은 다시 되풀이 하지 말라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마냥 잔소리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른들도 처음으로 그 나이를 겪는 것이기에 각각의 상황마다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주인공들의 삶을 통해 이야기 한다. 어렸을 때는 도저히 느낄 수 없었던 느낌이 이제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나이가 오다니. 이것 또한 삶이던가.


​***



이런 대형 병원은 시내 곳곳에 있고 아픔과 질병, 죽음은 꽤 가까운 곳에 진 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죽음을 잊고 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일지 몰라도 시선이 삶 쪽에 고정되어 있다는 건 축복일 것이다. - p.32


"힘들었지. 도망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지만······ 지나고 나니까 우리 부부나 가족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중략) "그때 그 사랑이 진짜인지 포즈인지 알 수 있는 것 같아. 여애 기가에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결혼 후가 될 수도 있겠지. 문제를 만났을 때 손을 꼭 잡고 지나갈 수 있어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 p.82~83


장난과 언쟁마저 사라진 삶에 불만이 없는 듯 보였다. 그는 잘 다려져 늘 같은 자리에 걸려 있는 셔츠 같았다. 가까워졌다 뜨거워졌다 변덕스럽게 몸의 거리와 마음의 온도를 바꾸는 건 여진 혼자뿐이었다. 겨우 몇 번 만난 띠동갑 연하의 남자애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드는 자신이 의아하고 그런 식의 연애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진은 자신을 내버려두었다. 이 역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흉내, 지금껏 반복해 온 설렘과 호감의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무미건조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 p.87


살아 있고 살아간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몸에 바른 색은 지워질 것이고 다시 냄새가 날 테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다른 색으로 칠하고 새로운 향수를 뿌린다. 그게 견디는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살아가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영무는 거울 앞에 앉아 있는 엄마를 이따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거대한 벽 앞에서 엄마는 어떻게 우회했을까. 궁금했지만 한 번도 묻지 못했다. - p.103


진수에게서는 밤이 깊도록 연락이 없었다. 어떤 사랑이 쉽게 변질되고 어떤 사랑은 쉽게 바닥을 드러내고 어떤 사랑은 흐지부지 막을 내린다. 그래도 그 모든 걸 사랑이라고 불어야겠지.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 소정은 자신에게서 떠나간 것이, 자신이 잃은 것이 사랑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 p.137


예전에는 자신의 느낌이나 직관에 맞는 표현을 찾기 위해 애썼다면 이제는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틀에 맞추고 통용되는 언어로 말하려 노력해야 된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노래를 잘 부르는 애, 키가 큰 애, 목소리가 좋고 말을 재미있게 하는 애라고 설명하지 않고, 어디에 살고 어느 회사에 다니며 연봉이 얼마고, 타고 다니는 차가 뭐고, 애인은 뭐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두들 그게 더 그 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대답하라고 요구한다. 소정은 이제 사진이 처한 상황이, 진수와의 관계가 그런 식으로 설명되리라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 p.138


사랑한다는 건 뜨겁게 살아 있고 싶다는 것, 상대를 향해 타오르고 싶다는 뜻이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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