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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
데이비드 밴 지음, 조연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아쿠아리움 속에서 살아가는 소녀의 아름답고도 슬픈 성장기.
데이비드 밴의 전작인 <고트 마운틴>이 인간의 근원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신작 <아쿠아리움>은 훨씬 더 아릿하고 슬픈 아쿠아리움을 좋아하는 소녀의 성장기가 담겨 있는 소설이다. 열두 살 소녀 케이클린이 엄마와 함께 단 둘이 살고 있으며, 학교가 끝난 뒤에는 항상 아쿠아리움에 들려 수조 속에 있는 물고기를 구경한다. 엄마가 데리러 오기까지 항상 발길이 닿기에 열두 살 소녀는 물고기의 움직이나 행동, 생김새, 이름까지도 척척 알아 맞춘다. 여느날처럼 아쿠아리움에서 물고기를 구경하다가 한 할아버지를 알게되고, 친구처럼 일상적인것들을 나누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외로운 두 모녀의 곁에 다가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린 소녀에게 때로는 친근하게도, 때로는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좋아. 아저씨는 한때 여름마다 알래스카에서 어선을 탔단다. 그땐 큰넙치를 제일 좋아했지.
저도 큰 넙치 좋아해요.
꽤 쿨한 녀석들이지.
큰넙치가 왜 좋아요?
엄마가 식탁 밑으로 내 발을 꾹 누르면서 나를 흘려 보았다. 따개비를 생각해.
어서 말해줘요, 아저씨.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좋아. 왜냐하면, 녀석들은 머리 한쪽에 두 눈이 모두 달려 있거든. 두 개 다 위쪽에 달려 있어. 얼굴의 반대쪽은 눈이 없는 장님인데, 항상 모래나 진흙에 파묻혀 있지. 아무것도 없는 아래를 향해 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못 보는 그쪽 얼굴이 좋아. 그런 이미지가. 우리에게 뭔가 말해주는 게 있는 것 같거든. - p.49
마치 수조 속에 갇혀있는 물고기처럼 엄마와 자신을 헤치는 거대한 포식자처럼 다가올까봐 아이는 항상 무섭다. 엄마의 친구로, 애인으로 받아들이는 스티브 아저씨와의 관계 또한 가깝지만 아이는 엄마의 상황을 인식하고 가까이 다가갈 때와 멀리 있어야 할 때를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챈다. 그것이 애처롭기도 하고 때로는 소녀의 생존방식으로 느껴져 어둡고도 안전한 따개비같은 생활의 소녀의 모습을 눈에서 놓을 수가 없다.
사무실은 꼭 위쪽에서 조명이 내리비치는 수조 같았다. 하지만 아쿠아리움에서는 어떤 물고기들을 함께 풀어둘지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빌 같은 물고기는 절대 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어떤 포식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바닷속에 더 가까울 것이다. - p.67
소녀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인 아쿠아리움은 그야말로 가장 안전한 공간이지만 소녀의 엄마는 소녀가 상상하는 대로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녀에게 있어 세상은 아쿠아리움 속에서 조용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이의 아빠 없이 홀로 딸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여자의 강인함, 외로움, 자신이 딸 아이의 나이였을 때 병든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의 미움과 상처는 그녀에게 그 어떤 세상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열두 살 때, 그 물살에 떠밀리고 또 그 해일이 어서 물러가길 기다리며, 나는 막연히 언젠가는 그 모든 것들에서 해방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날들은 더욱 길어졌다. 내가 직접 끝내기는 아직 불가능했다. 그것은 더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즉각적인 생각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진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해나가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지난 시간들을 지우고, 지난 마음들을 지워간다. 우리는 더이상 같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 p.82~83
아쿠아리움에서 만났던 할아버지가 자신의 외할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 케이틀린은 기뻤지만 엄마는 자신의 아버지가 나타남으로서 격한 분노를 일으킨다. 딸과 아버지, 엄마와 딸, 손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 책 속의 이야기가 마치 바닷가에 부유하는 해초처럼 착착감기듯 처음부터 몰입이 될 만큼 재밌게 잘 읽힌다. 무엇보다 아쿠아리움 속의 물고기가 떠도는 상상과 책 사이사이에 삽입된 물고기의 삽화 때문인지 더 생생하게 아쿠아리움 속을 떠올리게 된다.
사실, 바다 깊은 곳을 유영해 저 아래 깊숙한 곳의 세상은 어떨까 궁금한 적은 많았지만 거대한 수족관에서의 모습은 상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쿠아리움을 가서 많은 종류의 물고기를 구경했지만 실제 바다를 보는 것만큼 황홀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열두 살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쿠아리움 속의 이야기가 훨씬 더 좋았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데이비드 밴의 글 속에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고찰이 들어가지만 인간이 갖는 결핍, 상황, 관계들을 집어넣어 인간의 가장 태초의 모습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전의 작품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쿠아리움>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오랜만에 좋은 작품을 만나 사랑과 용서, 가족의 또다른 얼굴을 깊게 바라볼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