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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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과 비극 사이를 오가는 세사람의 질주.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시작으로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와 <킬러 안데르스와 그의 친구 둘>까지 모두 만났다. 그의 작품 모두가 그렇듯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처럼 빠르게 지나치는 듯 보이지만 그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상황과 인물이 엮어드는 이야기는 짭조름한 맛이 날 정도로 간이 간간하게 베여있다. 하나하나 상황을 직시하고, 인물들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엮어 나가기 보다는 사이사이로 빠져드는 상황적 이야기가 기가막히다 보니 요나스 요나손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기가 막혀 웃기도 하고, 어딘가 모르게 나사 몇 개쯤 풀린 주인공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모를 정도로 희극과 비극 사이를 오가는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다.


한 없이 가볍거나, 종교에 관련 책이라면 둘도 셋도 보지 않고 그저 덮어버리기 일쑤 였는데 요나스 요나손의 책은 그런 경계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선을 넘어간다. 그의 전작 역시 100세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셈을 할 줄 모르는 까막눈의 여자가 기막힌 방법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풀어냈듯 킬러인 요한 안데스르와 '땅끝 하숙텔' 리셉셔니스트 페르 페르손과 떠돌이 목사인 요한나 셸란데르의 이야기다. 세사람 모두 저마다의 사연으로 삶의 끝자락에 섰다고 할 정도로 기막힌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내가 소싯적에 우리 엄마가 가르쳐 줬던 어떤 기도가 생각나. 전에 얘기했잖아. 그 이빨 빠진 늙은 멍청이 말이야. 술독에 빠지기 전에는 그렇게 형편없진 않았어. 그 기도가 뭐였더라? 그래,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여기 엎드려 있는 저를 굽어살피소서······.」

「그래서요?」

「<그래서요>라니! 전에 당신 입으로 말했잖아!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신다고. 그런데 우리 모두가 어린 아이들이란 말이야! 이건 내가 바로 어제 변기에 앉아서 읽은 건데······.」​ - p.111 


땅끝 하숙텔에 묵으면서 진짜 감옥에 들락날락한 킬러 안데르스의 이야기도 그렇고, 많은 부를 축적했음에도 할아버지의 기구한 사연으로 땡전 한 잎도 받지 못한 페르 페르손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집안에서 대대로 물려받은 목사라는 직함을 아들이 없어 물려 주지 못할 뿐더러 딸에게는 더 없이 냉정했던 아버지와 반목함으로서 교회에서 내처진 요한나의 삶까지 저마다 말못한 사연을 끌어안고 사는 세 사람이 모였다. 세 사람이 모여 킬러인 안데르스를 진짜 악당으로 언론에 선전 할 만큼 내세우지만 실상 그의 모습은 헐렁한 킬러였고, 진짜 악당은 페르 페르손과 요한나 셸란데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을 잡는 안데르스는 목사인 요한나 셸란데르에게 성경에 관해 물어보게 되고 생각과 달리 그는 점점 좋은 쪽으로 변하게 된다.


의뢰인이 의뢰하여 받아든 돈을 두 사람이 접수하고, 해결사로서 손을 쓰는 킬러 안데르스는 이내 도망다니면서 주변을 도와 주게되고, 그들이 유년시절에 가졌던 억압을 서서히 풀어낸다. 보여지는 모습의 악당이 아닌 진짜 악당은 백작과 백작부인등 여러 사람들이 사회의 가면을 쓴 자들이었고 그들은 황당무계한 사업계획을 세우며 세 번째 비지니스 전략을 세우지만 피비린내 나는, 보이지 않는 뒷돈의 어두운 그림자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작업이기도 했기에 세 사람의 사업 이야기가 재밌게 읽혔다.


요즘은 보여지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무나 많은 악행이 벌어지고 있다보니 뉴스를 보고 기분 좋게 웃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사회에 억눌리고,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해 그 폐해를 고스란히 안고 사는 주인공들이 세상을 향해 활짝 피는 순간의 모습이 카타르시스처럼 느껴졌고, 그런 면면이 우리가 일명 ;유리천장'이라고 일컫는 곳에 한발짝 더 손을 내미는 소설 같았다. 하지 말아야 하고, 돈도, 능력도 없는 세상에서 그들은 유쾌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니 어쩌면 많은 갭이 있는 사회에서 인간이 꿈꾸는 세상은 그 위를 올라가는 것 이상으로 서로 평등하게 나누어가지면서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일고 있는 요즘 요나스 요나손의 책을 읽으면서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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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출판사 열린책들 알라딘 서재지기입니다.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실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제 목 : 월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

지은이 : 브라이언 스티븐슨

옮긴이 : 고기탁

분 야 : 사회과학

형 태 : 504면 / 연장정

가 격 : 17,000원









* 서평단 신청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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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위 네 가지 모두 지켜야 합니다.


* 모집 인원: 5명

* 모집 기간: 11월 1일~7일(7일 간)

* 당첨자 발표 및 도서 발송: 11월 8일 화요일 예정


* 서평단 활동 방법

도서를 받으신 후, 11월 17일까지

알라딘 서재와 개인 블로그(또는 타 SNS: 인스타/페이스북 등)에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남겨 주신 리뷰는 당첨자 발표 페이지 아래에 댓글로 주소를 남겨 주세요.

★ 도서 수령 후 리뷰를 올리지 않으신 분들은 이후 열린책들 이벤트 당첨이 제외됩니다.

이 책은.. 알라딘 서재에서 출간 전 연재도 진행했던..!
미국의 넬슨 만델라, 현실의 애티커스 핀치라 불리는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의 회고록입니다. 현재 뉴욕타임즈에서 연속 50주 베스트셀러를 기록 중입니다.
출간 전 연재 게시판에서 한번 미리 읽어 보세요. :)
'브라이언 스티븐슨'이 <우리는 불의에 관해 말해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2012년에 했던 연설은 TED 역사상 가장 긴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미국 사법 제도의 정의롭지 못한 현실과 주체성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습니다. 20여분 가량의 영상을 공유합니다.

* 영상 링크: http://bit.ly/2ehSf6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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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단처럼 검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서늘하면서도 날카로운 잔혹동화의 색다른 변주.


 ​지금은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파란색, 분홍색을 편견없이 사용하고 있지만, 몇 십년전만 해도 아이의 성별에 따라 많이 구분을 했던 것 같다.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로봇이나 딱지, 장난감총을 갖고 놀았다면 여자아이들은 종이인형이나 마루인형을 갖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동화책을 보더라도 수 많은 공주들을 다 소환 할 만큼 유년시절에 많은 공주들을 만나봤는데 하나같이 이야기의 말미에는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이난다. 아이였을 때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으나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은 정말 공주가 왕자와 행복하게 살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삶을 살다보면 어느 시점에 굴곡이 있고, 그 역경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삶이 탄탄해 진다고 하는데 더욱이 몇 십년간 다른 환경에 살았던 공주와 왕자가 진짜 이야기에서 말 한 것처럼 '행복'하게 살았을까? 사람과 사람의 만남 즉,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 한다는 것은 동화에서 이야기를 끝맺기 위해 쓰이는 마침표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결혼을 끝으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의 해피엔딩의 결말이 아니다. 어렸을 때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동화의 행복한 엔딩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환상적인 결말은 아니라고 핀란드 소설가이자 동화작가인 살라 시무카는 작품으로 그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이며, 때를 만나 무대 위에서 활개 치며 안달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잊히는 가련한 배우다. 백치들이 되뇌는 무의미한 광란의 소리일 뿐." 아무리 강하고 악랄하고 교활해도 천하무적이 될 수 없지. 그들은 곧 깨닫게 될 거야. 삶과 죽음의 법칙이란 사실 아주 잔인한 스승이지. - p.65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부작인 이 책은 <피처럼 붉다> <눈처럼 희다>에 이어 마지막 3부작의 대단원인 <흑단처럼 검다>로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었다. 드라마를 보더라도 처음은 생소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살짝 열어두고, 중간부터 그 재미를 붙여가는데 스토우화이트 트릴로지 3부작은 시리즈의 앞 권인 <피처럼 붉다> <눈처럼 희다>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나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시작되는 단초들을 단단하게 묶어내어 마지막 퍼즐을 세련되면서도 소녀 루미카의 시작과 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왜 루미카가 가장 가까운 가족임에도 역할극에 충실하고 있는 엄마 아빠에게 속내를 털어내지 못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눈처럼 희다>에서도 체코로 여행을 간 그녀가 자신의 이복 언니라고 말하며 그녀에게 검은 손길을 뻗치는 것 또한 가볍게 이겨내기 못하고 사건에 말려든 것 또한 의심스럽게 생각했으나 <흑단처럼 검다>를 읽고 나니 비로소 전작의 이야기들이 모두 이해가 된다. 


"공포는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야." 헨리크 비르타 선생이 말을 이었다. "가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 들곤 해. 어쩌면 용기라는 건 세상에 없는 건지도 몰라. 오로지 공포만이 존재할 뿐." "어째서죠?" 팅카가 손도 들지 않은 채 물었다. "용기가 공포를 이긴다는 얘기들을 하잖아. 하지만 난 공포가 우리가 평소에 하지 않는 행동을 하게끔 이끌어낸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공포 그 자체가 용기일 수 밖에." - p.95


몇 년전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가 진짜 동화가 아니다, 하여 읽은 책이 '잔혹동화'였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추악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져 있었다. 두께가 제법 나가는 책을 접하긴 했지만 여전히 동화의 실상이 사실은 빛보다 어두운 그늘의 이야기를 많이 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이야기에 실망은 하지 않았다. 동화의 실사판 보다는 또다른 이야기로 읽혔고, 우리가 알고 익히 알고 있는 동화의 이야기가 여러갈래로 변주되어 살라 시무카의 서늘하면서도 날카로운 이야기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변주된 작품을 좋아한다. 재밌게 읽었던 작품은 시공간을 떠나 언제 읽어도 좋은 작품으로 기억되듯이 현재의 시점에서 잔혹동화처럼 그려지는 루미키의 일상과 사회의 잔악함이 결합되어 만들어내는 이야기 또한 재밌게 읽힌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다 보니 추운 나라에 대한 갈망은 없지만 북유럽 특유의 살풍경한 풍경이 눈앞에 그려질 듯 잘 그려지고 있다. 루미키의 불안과 루미키가 늘 인지하고 있는 그녀의 언니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블레이즈와 삼프사와의 관계 또한 마음을 어지럽혔지만 관계를 끊어냄으로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살라 시무카의 <흑단처럼 검다>는 최근에 다시 읽었던 <달빛 코끼리 끌어안기>(2016, 알에이치코리아)와는 작품과도 이야기의 핵심이 많이 닮아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의 전개 때문에 더 마음에 와 닿았던 3부작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흑단처럼 검다>는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하게 떨어져 그 어떤 시리즈의 책 보다 감정을 이입하며 읽었던 작품이다. 처음에는 스타일리쉬한 표지에 혹하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훨씬 더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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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희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2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북유럽 동화와 스릴러 소설의 조합.


 어렸을 때 지금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꾸준하게 읽고 좋아했던 책이 '동화'였다. 특히 서양의 동화보다 우리나라 고전동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지금도 몇몇 작품들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 보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애착을 갖고 읽고 또 읽고를 반복했나 보다. 지금도 좋아하는 책에 있어서는 읽고 또 읽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어릴 때 읽었던 몇몇 동화들을 새로운 판본으로 다시 읽을 때면 어린아이 마냥 그 순수한 세계를 흡입하는 것 만큼이나 그 세계에 푹 빠져 버린다. 어른이 되어서도 일정부분 자라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요즘 깨닫다 보니 왜 어린아이 마냥 동화를 좋아하고, 인형이 좋아질까?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유년시절에 읽었던 동화를 보는 시선은 아이가 보는 것 만큼이나 순수하게 바라보기도 하지만 몇 년전에 방송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현실에 비추어 그 동화를 해석하는 방법도 변주된다.


살라시무카의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부작 시리즈는 1권 <피처럼 붉다>(2015,비채)를 시작으로 올해 <눈처럼 희다>와 <흑단처럼 검다>가 출간되었다. 어릴 때 읽었던 해맑았던 동화와 달리 살라 시무카는 동화의 블랙 스완처럼 암흑동화를 스타일리쉬 하면서도 스릴러 소설의 속도감있게 그려 놓았다. 무엇보다 살라 시무카의 책을 처음 접할 때는 제목만큼이나 잘빠진 표지에 눈이 가고,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명한' 색감이다. 붉은색, 흰색, 검은색이 조합이 되어 눈안에 선명히 다가온다.

갈망은 그녀의 허락 따위는 받지 않았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도 않았다. 참으로 압도적이고 부담스럽고 탐욕스러우며 이기적인 감정이다. 생각을 흐려놓거나 너무 눈부시게, 때로는 너무 강렬하게 만들어 놓는 감정이다. 갈망은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했다. 루미키는 그것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워왔지만 번번이 패했다.  - p.67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를 동화가 녹아내린다. 깔끔하게 떨어져 내리는 이야기 속에서 체코로 여행온 루미카가 갑작스레 나타난 젤렌카가 사실은 자신이 의붓언니라며 등장하며 그녀의 마음에 파란을 일으킨다. 난데없이 의붓언니라니. 역할극을 하듯 엄마 아빠의 냉소적인 모습에 루미카는 엄청난 사실을 자신의 부모님에게 밝히지 못하고 젤렌카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가 이끄는 방향대로 조금씩 빠져 들어간다.


젤렌카는 루미키가 들려준 핀란드 이야기를 곱씹어보았다. 오로라와 백야. 얼어붙은 호수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즐기는 수영. 매혹적이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지난 5년간 젤렌카는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단 한번도 생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루미키와 함께 비행기에 올라 핀란드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사우나도 하고, 반짝이는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루미키가 황홀하게 묘사한 자작나무 향기도 맡아보고 싶었다. 젤렌카는 루미키 덕분에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모든 감각을 최대한 사용해보고 싶은 갈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 p.98~99


믿을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사실에 루미카는 의심을 거두지 않은채 젤렌카를 계속해서 만나게 되고, 젤렌카가 살고 있는 곳에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이질적인 가족의 모습과 화이트 패밀리라 칭하며 자신들이 예수의 핏줄이라고 주장하는 컬트 종교단체는 마치 사람을 홀리듯 오랫동안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화이트 패밀리의 인물 중 한명이 죽게 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어느 카페에서 마지막에 그 사람이 만났던 누군가를 기억하게 된 루미카는 젤렌카가 속한 컬트 종교 단체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자신을 뒤를 쫓는 남자의 손길을 헤치며 사건의 정점에 나아간다.


이야기는 점점 고조되고 젤렌카는 루미카에게 자신이 말한 것이 거짓이었다고 말하며 루미카에게 도망가라고 말하고 루미카는 자신을 속인 젤렌카에게 손을 떼려고 하지만 이내 젤렌카가 기거하는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젤렌카가 루미카에게 일방적인 접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접점이 없었을 두 소녀는 이내 서로를 도와주며 서로를 지켜낸다. 그 어떤 것도 같은 점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두 소녀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는 같은 '갈망'이 느껴진다. 나를 봐주고, 다른 보듬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마음들이 느껴져 두 소녀를 더 애달프게 하면서도 그릴 듯 그릴 수 없는 갈망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한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베라 소바코바는 음모론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충격적인 특종 기사와 인간적인 비극들이 터지는 타이밍이 특정 언론사들의 재정 위기와 놀라울 만큼 맞아떨어질 때가 있었다. - p.209


살라 시무카가 그려내는 어둠과 갈망은 결국 어른이 그려내는 그림에 의해 발현이 되고, 결국 그 그림의 모든 결말의 피해자는 마음을 어디에도 두지 못하고 서성이는 아이들이었다. 사이비 같은 종교 의식을 마치 진짜처럼 따르게 하고, 그것을 어기면 어김없이 그 댓가를 따르게 하는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그곳에 머물렀던 젤렌카를 데려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루미카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면서도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맹목적인 충성심을 내세우며 그곳에 그들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루미키와 몇 살 위의 어릴 적 친구. 그들은 '흰 눈'과 '붉은 장미'라는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재미있게 놀곤 했다. 그녀는 문득 그 시절 즐겼던 이야기와 게임을 떠올렸다. 이야기 속에서 마법에 걸려 곰으로 변한 왕자는 소녀들을 구해주었다. 비록 규칙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루미키는 게임을 좋아했다. 친구는 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흰 눈'과 '붉은 장미'는 늘 붙어 다녔고, 위험이 닥치면 서로를 구해주었다. 그림자극 속의 두 공주처럼. - p.217


외로운 두 소녀에게 거침없는 거짓의 손길이 다가오고 흰 눈과 붉은 장미처럼 서로를 구해주는 두 소녀의 이야기는 아릿하면서도 아찔하게 느껴진다. 루미카의 정확하고 빠른 판단에 의해 젤렌카의 목숨을 살렸던 것처럼 두 사람이 모르는 음모가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구현되고 실행하며 만들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루미카의 부모는 이 사실을 모르고 그저 아이가 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 분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컬트 종교 단체의 집단 자살이 결국 루미카와 이르지 덕분에 무마되었지만 그 엄청난 완력과 빠른 판단 덕분에 피해는 최소화 되었다. 


어린아이의 모습이지만 그 어떤 판단과 결단으로 사건을 풀어낸 루미카의 캐릭터는 굉장히 매력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중간중간 동화의 목소리는 누군가를 위한 목소리이고 그것이 왜 나오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적절한 조합이 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어렵게 느껴졌던 요소중 하나였다. 동화와 스릴러의 결합은 여러 색채를 동시에 결합하는 것이지만 더 잔혹하면서도 아찔한 스릴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로 변주된다는 것을 작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표지에 그려진 것처럼 차가운 금속성이 느껴지듯 차가우면서도 냉혹한 스릴러를 깔끔하게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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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 개정판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단절과 분절의 근원.


 아이였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고,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아가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아이였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지난날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른이 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빨리 어른이 되기를 소망하지만 한 아이가 소녀가 되고, 아가씨가 되고, 누군가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역할이 바뀌면서 생각하는 것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시간이 변해 역할에 따라 생각도, 시선도 변하지만 그 역할에 다다르지 못했다 할지라도 성장이 멈춘 시간을 살고 있는 '어른'들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또한 바람이 불어온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생각들이 시간을 거쳐가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사람답게 사는것에 대한 고민과, 한 아이의 부모로 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가깝게는 부모님을 바라보고, 친척들을 바라보고, 친구들을 바라보며 인간의 삶이란 결코 계획대로 평온하게 가는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양量의 부재를 '0'이라는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이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과학백과사전에서 읽은 얘기다, 어떤 사물이나 주체의 부재는 수로 표현하기보다는 '없다'(또 '이제는 없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게 더 낫다. 숫자는 추상에 불과하고 '없음'은 부재도 슬픔도 내비치지 않는다. - p.20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단단한 나무처럼 흔들림없이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금처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하게 나만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이을 먹고, 또 먹어보니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사는 시간이 없는 것 같다. 단단한 나무처럼 흔들림없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어려운 어른인지 새삼 몸소 느끼게 되다 보니 델핀 드 비강이 쓴 두 소녀 루와 노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엄마는 절대 나를 어루만지지 않는다. 엄마는 내 머리칼을 쓰다듬지 않고, 내 볼을 만지지도 않는다. 엄마는 절대 내 머리나 허리를 안아주지 않는다. 엄마는 절대 나를 꼭 안아주지 않는다.  - p.61


우리의 침묵에는 세상의 무력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의 침묵은 사물의 기원으로, 사물의 진실로 돌아간다. - p.68

 

루는 지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다 보니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아닌 언니, 오빠들과 같이 공부를 배우며 여느 집과 같이 평온하게 살고 있었으나 엄마 아빠의 둘째 계획으로 태어난 동생 타이스가 몇 년을 살지 못하고 죽게 되자 그녀의 엄마는 그 충격으로 모든 것을 놓아 버린다. 한 남편의 아내, 루의 엄마로서 갖는 공백기가 너무나 길다 보니 루는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어버린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수업시간에 발표할 주제로 길 위의 아이들을 인터뷰 해서 발표한다는 주제를 내었고 선생님은 반색하며 그녀의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렇게 '노'라는 길위의 소녀를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노의 엄마는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다가 주변의 청년들에 의해 겁탈을 당하고 노를 낳게 되지만, 낳은 것 이외에는 노와 그녀의 엄마 사이에 온기라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냉랭한 사이로 전락하게 된다. 이후 조부모의 손에서 자랐다가 엄마의 재혼으로 멀리 떨어져 살다가 조부모의 죽음으로 다시 엄마 곁에서 살지만 그녀의 엄마는 '노'에게 그 어떤 애정도 주고 싶지 않은 듯 그녀를 멀리한다. 양아빠가 관심을 두는 것을 싫어했던 그녀의 엄마는 결국 이혼을 하게 되고 그녀는 결국 엄마와 살기 보다는 길 위의 삶을 택하며 이리저리 잠자리를 바꾸며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삶을 선택한다.


침대에 누워 신문 파는 아줌마를 떠올린다. 그 아줌마가 한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너하고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애야.' 난 말이다, 하나의 세상 안에 여러 개의 세상이 있고 각자가 자기 세상에 머물든지 말든지 상관 안 한다. 하지만 내가 속한 세상이 부분집합 A이고 그 A가 다른 부분집합 B,C,D 등과 전혀 교집합이 없는 건 싫다. 나의 세상이 완전히 단절된 다이어그램으로, 공집합으로 칠판에 그려지는 건 싫다. 난 말이다, 오히려 내가 다른 곳에 있으면 좋겠다. 쭉 뻗은 직선을 따라서 세상들이 서로 소통하고 서로 겹치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윤곽선들이 서로 투과되는 곳, 삶이 아무 단절 없이 쭉 이어지는 곳, 만사가 불현듯 이유없이 멈춰버리지 않는 곳, 중요한 순간들이 닥칠 때에는 사용설명서(위험수준, 전원이나 건전지에 열결하는 법, 연속동작 예상시간등이 적혀 있는)와 필수장치(에어백, GPS, 브레이크 보조 시스템)도 딸려서 나오는 곳으로.  - P.87


루와 노의 삶의 경계는 맞닿아 지는 지점은 없지만 두 소녀가 갖는 외로움의 근원은 같다. 부모님의 보살핌과 사랑을 충만하게 느껴야 하는 시기에 두 소녀의 부모는 자기만의 방으로 빠져 버렸고 두 소녀는 길 위에 놓아져 버렸다. 서로 다른 상황에 살고 있지만 마음이 닿아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두 소녀의 단절과 분절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 두 사람의 허한 마음이 가장 맞닿아 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루는 노의 그런 부랑자의 삶을 청산하고 자신이 있는 영역으로 옮겨와 안전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노는 루와 달리 누구의 보살핌도 안정적으로 받아보지 못했기에 그 누구의 영역조차 들어가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와 너. 타인의 삶에 있어서 잠시 한정적으로 몸을 기대고 있을 뿐 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고픈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루의 손길에도 그녀는 그 어떤 여운조차 남기지 않고 슬며시 사라진다.

언제나 사정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다. '사물은 존재하는 바로 그대로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렇다, 어른이 되려면 분명히 그런 걸 받아들여야 한다. - P.93

루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안전하고, 따듯하고, 괜찮은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노의 삶이 불안정하다고 하여 그녀가 살고 있는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그 소녀를 길 위에 올려 놓았는가? 물음은 그녀의 부모를 비롯하여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왜 그녀를 길 위에 올려둔 것인가를. 어른들의 삶의 희생양이었던 두 소녀의 모습은 서로 각자 다른 모습일지라도 루와 노가 서로 닮은 꼴처럼 보며 루가 처한 상황, 노가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그저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노라고 생각한다. 한 부모가 된다는 것, 한 아이를 보듬어야 할 상황임에도 그저 한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상처를 바라 볼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또 다른 외로움과 단절의 근원이 되어 길 위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아주 큰 슬픔은 물에도 녹지 않고 공기 중에 퍼지지도 않는다. 어떻게 해도 완강하게 변하지 않는 견고한 성분처럼.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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