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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희다 ㅣ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2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북유럽 동화와 스릴러 소설의 조합.
어렸을 때 지금만큼 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꾸준하게 읽고 좋아했던 책이 '동화'였다. 특히 서양의 동화보다 우리나라 고전동화를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지금도 몇몇 작품들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걸 보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애착을 갖고 읽고 또 읽고를 반복했나 보다. 지금도 좋아하는 책에 있어서는 읽고 또 읽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어릴 때 읽었던 몇몇 동화들을 새로운 판본으로 다시 읽을 때면 어린아이 마냥 그 순수한 세계를 흡입하는 것 만큼이나 그 세계에 푹 빠져 버린다. 어른이 되어서도 일정부분 자라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요즘 깨닫다 보니 왜 어린아이 마냥 동화를 좋아하고, 인형이 좋아질까?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유년시절에 읽었던 동화를 보는 시선은 아이가 보는 것 만큼이나 순수하게 바라보기도 하지만 몇 년전에 방송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현실에 비추어 그 동화를 해석하는 방법도 변주된다.
살라시무카의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부작 시리즈는 1권 <피처럼 붉다>(2015,비채)를 시작으로 올해 <눈처럼 희다>와 <흑단처럼 검다>가 출간되었다. 어릴 때 읽었던 해맑았던 동화와 달리 살라 시무카는 동화의 블랙 스완처럼 암흑동화를 스타일리쉬 하면서도 스릴러 소설의 속도감있게 그려 놓았다. 무엇보다 살라 시무카의 책을 처음 접할 때는 제목만큼이나 잘빠진 표지에 눈이 가고, 그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명한' 색감이다. 붉은색, 흰색, 검은색이 조합이 되어 눈안에 선명히 다가온다.
갈망은 그녀의 허락 따위는 받지 않았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도 않았다. 참으로 압도적이고 부담스럽고 탐욕스러우며 이기적인 감정이다. 생각을 흐려놓거나 너무 눈부시게, 때로는 너무 강렬하게 만들어 놓는 감정이다. 갈망은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했다. 루미키는 그것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워왔지만 번번이 패했다. - p.67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를 동화가 녹아내린다. 깔끔하게 떨어져 내리는 이야기 속에서 체코로 여행온 루미카가 갑작스레 나타난 젤렌카가 사실은 자신이 의붓언니라며 등장하며 그녀의 마음에 파란을 일으킨다. 난데없이 의붓언니라니. 역할극을 하듯 엄마 아빠의 냉소적인 모습에 루미카는 엄청난 사실을 자신의 부모님에게 밝히지 못하고 젤렌카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가 이끄는 방향대로 조금씩 빠져 들어간다.
젤렌카는 루미키가 들려준 핀란드 이야기를 곱씹어보았다. 오로라와 백야. 얼어붙은 호수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즐기는 수영. 매혹적이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지난 5년간 젤렌카는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단 한번도 생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루미키와 함께 비행기에 올라 핀란드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사우나도 하고, 반짝이는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루미키가 황홀하게 묘사한 자작나무 향기도 맡아보고 싶었다. 젤렌카는 루미키 덕분에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모든 감각을 최대한 사용해보고 싶은 갈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 p.98~99
믿을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사실에 루미카는 의심을 거두지 않은채 젤렌카를 계속해서 만나게 되고, 젤렌카가 살고 있는 곳에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이질적인 가족의 모습과 화이트 패밀리라 칭하며 자신들이 예수의 핏줄이라고 주장하는 컬트 종교단체는 마치 사람을 홀리듯 오랫동안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화이트 패밀리의 인물 중 한명이 죽게 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어느 카페에서 마지막에 그 사람이 만났던 누군가를 기억하게 된 루미카는 젤렌카가 속한 컬트 종교 단체의 비밀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자신을 뒤를 쫓는 남자의 손길을 헤치며 사건의 정점에 나아간다.
이야기는 점점 고조되고 젤렌카는 루미카에게 자신이 말한 것이 거짓이었다고 말하며 루미카에게 도망가라고 말하고 루미카는 자신을 속인 젤렌카에게 손을 떼려고 하지만 이내 젤렌카가 기거하는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젤렌카가 루미카에게 일방적인 접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접점이 없었을 두 소녀는 이내 서로를 도와주며 서로를 지켜낸다. 그 어떤 것도 같은 점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두 소녀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는 같은 '갈망'이 느껴진다. 나를 봐주고, 다른 보듬어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마음들이 느껴져 두 소녀를 더 애달프게 하면서도 그릴 듯 그릴 수 없는 갈망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한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베라 소바코바는 음모론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충격적인 특종 기사와 인간적인 비극들이 터지는 타이밍이 특정 언론사들의 재정 위기와 놀라울 만큼 맞아떨어질 때가 있었다. - p.209
살라 시무카가 그려내는 어둠과 갈망은 결국 어른이 그려내는 그림에 의해 발현이 되고, 결국 그 그림의 모든 결말의 피해자는 마음을 어디에도 두지 못하고 서성이는 아이들이었다. 사이비 같은 종교 의식을 마치 진짜처럼 따르게 하고, 그것을 어기면 어김없이 그 댓가를 따르게 하는 무시무시한 폭력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이 너무나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그곳에 머물렀던 젤렌카를 데려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루미카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면서도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맹목적인 충성심을 내세우며 그곳에 그들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루미키와 몇 살 위의 어릴 적 친구. 그들은 '흰 눈'과 '붉은 장미'라는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재미있게 놀곤 했다. 그녀는 문득 그 시절 즐겼던 이야기와 게임을 떠올렸다. 이야기 속에서 마법에 걸려 곰으로 변한 왕자는 소녀들을 구해주었다. 비록 규칙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루미키는 게임을 좋아했다. 친구는 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흰 눈'과 '붉은 장미'는 늘 붙어 다녔고, 위험이 닥치면 서로를 구해주었다. 그림자극 속의 두 공주처럼. - p.217
외로운 두 소녀에게 거침없는 거짓의 손길이 다가오고 흰 눈과 붉은 장미처럼 서로를 구해주는 두 소녀의 이야기는 아릿하면서도 아찔하게 느껴진다. 루미카의 정확하고 빠른 판단에 의해 젤렌카의 목숨을 살렸던 것처럼 두 사람이 모르는 음모가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구현되고 실행하며 만들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루미카의 부모는 이 사실을 모르고 그저 아이가 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지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더 분통이 느껴지기도 한다. 컬트 종교 단체의 집단 자살이 결국 루미카와 이르지 덕분에 무마되었지만 그 엄청난 완력과 빠른 판단 덕분에 피해는 최소화 되었다.
어린아이의 모습이지만 그 어떤 판단과 결단으로 사건을 풀어낸 루미카의 캐릭터는 굉장히 매력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러나 중간중간 동화의 목소리는 누군가를 위한 목소리이고 그것이 왜 나오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적절한 조합이 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어렵게 느껴졌던 요소중 하나였다. 동화와 스릴러의 결합은 여러 색채를 동시에 결합하는 것이지만 더 잔혹하면서도 아찔한 스릴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로 변주된다는 것을 작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표지에 그려진 것처럼 차가운 금속성이 느껴지듯 차가우면서도 냉혹한 스릴러를 깔끔하게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