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 위의 소녀 - 개정판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단절과 분절의 근원.
아이였을 때는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고,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아가지만 어른이 된 후에는 아이였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지난날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른이 되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빨리 어른이 되기를 소망하지만 한 아이가 소녀가 되고, 아가씨가 되고, 누군가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역할이 바뀌면서 생각하는 것도,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시간이 변해 역할에 따라 생각도, 시선도 변하지만 그 역할에 다다르지 못했다 할지라도 성장이 멈춘 시간을 살고 있는 '어른'들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또한 바람이 불어온다. 지금껏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생각들이 시간을 거쳐가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사람답게 사는것에 대한 고민과, 한 아이의 부모로 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된다. 가깝게는 부모님을 바라보고, 친척들을 바라보고, 친구들을 바라보며 인간의 삶이란 결코 계획대로 평온하게 가는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양量의 부재를 '0'이라는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이 그렇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과학백과사전에서 읽은 얘기다, 어떤 사물이나 주체의 부재는 수로 표현하기보다는 '없다'(또 '이제는 없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하는 게 더 낫다. 숫자는 추상에 불과하고 '없음'은 부재도 슬픔도 내비치지 않는다. - p.20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단단한 나무처럼 흔들림없이 살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금처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하게 나만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이을 먹고, 또 먹어보니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사는 시간이 없는 것 같다. 단단한 나무처럼 흔들림없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어려운 어른인지 새삼 몸소 느끼게 되다 보니 델핀 드 비강이 쓴 두 소녀 루와 노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엄마는 절대 나를 어루만지지 않는다. 엄마는 내 머리칼을 쓰다듬지 않고, 내 볼을 만지지도 않는다. 엄마는 절대 내 머리나 허리를 안아주지 않는다. 엄마는 절대 나를 꼭 안아주지 않는다. - p.61
우리의 침묵에는 세상의 무력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의 침묵은 사물의 기원으로, 사물의 진실로 돌아간다. - p.68
루는 지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다 보니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아닌 언니, 오빠들과 같이 공부를 배우며 여느 집과 같이 평온하게 살고 있었으나 엄마 아빠의 둘째 계획으로 태어난 동생 타이스가 몇 년을 살지 못하고 죽게 되자 그녀의 엄마는 그 충격으로 모든 것을 놓아 버린다. 한 남편의 아내, 루의 엄마로서 갖는 공백기가 너무나 길다 보니 루는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어버린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수업시간에 발표할 주제로 길 위의 아이들을 인터뷰 해서 발표한다는 주제를 내었고 선생님은 반색하며 그녀의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렇게 '노'라는 길위의 소녀를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노의 엄마는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다가 주변의 청년들에 의해 겁탈을 당하고 노를 낳게 되지만, 낳은 것 이외에는 노와 그녀의 엄마 사이에 온기라는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냉랭한 사이로 전락하게 된다. 이후 조부모의 손에서 자랐다가 엄마의 재혼으로 멀리 떨어져 살다가 조부모의 죽음으로 다시 엄마 곁에서 살지만 그녀의 엄마는 '노'에게 그 어떤 애정도 주고 싶지 않은 듯 그녀를 멀리한다. 양아빠가 관심을 두는 것을 싫어했던 그녀의 엄마는 결국 이혼을 하게 되고 그녀는 결국 엄마와 살기 보다는 길 위의 삶을 택하며 이리저리 잠자리를 바꾸며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삶을 선택한다.
침대에 누워 신문 파는 아줌마를 떠올린다. 그 아줌마가 한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너하고는 다른 세상에서 사는 애야.' 난 말이다, 하나의 세상 안에 여러 개의 세상이 있고 각자가 자기 세상에 머물든지 말든지 상관 안 한다. 하지만 내가 속한 세상이 부분집합 A이고 그 A가 다른 부분집합 B,C,D 등과 전혀 교집합이 없는 건 싫다. 나의 세상이 완전히 단절된 다이어그램으로, 공집합으로 칠판에 그려지는 건 싫다. 난 말이다, 오히려 내가 다른 곳에 있으면 좋겠다. 쭉 뻗은 직선을 따라서 세상들이 서로 소통하고 서로 겹치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윤곽선들이 서로 투과되는 곳, 삶이 아무 단절 없이 쭉 이어지는 곳, 만사가 불현듯 이유없이 멈춰버리지 않는 곳, 중요한 순간들이 닥칠 때에는 사용설명서(위험수준, 전원이나 건전지에 열결하는 법, 연속동작 예상시간등이 적혀 있는)와 필수장치(에어백, GPS, 브레이크 보조 시스템)도 딸려서 나오는 곳으로. - P.87
루와 노의 삶의 경계는 맞닿아 지는 지점은 없지만 두 소녀가 갖는 외로움의 근원은 같다. 부모님의 보살핌과 사랑을 충만하게 느껴야 하는 시기에 두 소녀의 부모는 자기만의 방으로 빠져 버렸고 두 소녀는 길 위에 놓아져 버렸다. 서로 다른 상황에 살고 있지만 마음이 닿아지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두 소녀의 단절과 분절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 두 사람의 허한 마음이 가장 맞닿아 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루는 노의 그런 부랑자의 삶을 청산하고 자신이 있는 영역으로 옮겨와 안전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노는 루와 달리 누구의 보살핌도 안정적으로 받아보지 못했기에 그 누구의 영역조차 들어가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와 너. 타인의 삶에 있어서 잠시 한정적으로 몸을 기대고 있을 뿐 그 사람의 삶으로 들어가고픈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루의 손길에도 그녀는 그 어떤 여운조차 남기지 않고 슬며시 사라진다.
언제나 사정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복잡하다. '사물은 존재하는 바로 그대로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렇다, 어른이 되려면 분명히 그런 걸 받아들여야 한다. - P.93
루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안전하고, 따듯하고, 괜찮은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노의 삶이 불안정하다고 하여 그녀가 살고 있는 삶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그 소녀를 길 위에 올려 놓았는가? 물음은 그녀의 부모를 비롯하여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왜 그녀를 길 위에 올려둔 것인가를. 어른들의 삶의 희생양이었던 두 소녀의 모습은 서로 각자 다른 모습일지라도 루와 노가 서로 닮은 꼴처럼 보며 루가 처한 상황, 노가 느끼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그저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노라고 생각한다. 한 부모가 된다는 것, 한 아이를 보듬어야 할 상황임에도 그저 한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상처를 바라 볼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또 다른 외로움과 단절의 근원이 되어 길 위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아주 큰 슬픔은 물에도 녹지 않고 공기 중에 퍼지지도 않는다. 어떻게 해도 완강하게 변하지 않는 견고한 성분처럼. - P.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