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출판사 열린책들 알라딘 서재지기입니다.

여러분, 설 잘 보내셨나요.

2016년 한 해 동안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앞으로 2017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책을 들고 돌아왔습니다!

2017년 서평 이벤트를 시작할 첫 책은 바로, <동급생>입니다.


두 소년의 아름답고 슬픈 우정 이야기를 담은

짧지만 완벽한 걸작, 불후의 우정 소설!


프레드 울만 지음 |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영미문학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은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의 우정을 그리는 중편 소설로, 나치즘과 홀로코스트 시대를 다룬 소설 중 가장 유명하고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는 책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에 2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유럽에서만 매년 10만 부씩 판매되는 스테디 고전으로, 한국에서는 처음 소개됩니다.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 p.21 중에서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더 많은 독자들이 읽어야 할 놀라운 작품. – 이언 매큐언(작가)


이 책의 결말은 몇 줄에 걸쳐 걸작 내에서도 걸작이다. 대단원을 이루는 행들에서 나는 싸움을 포기하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 장 도르메송(작가, 저널리스트)


어떤 책을 평하는 데 있어 완벽하다는 표현을 쓰는 일은 거의 없지만 이 책에 대해서라면 나는 그 표현을 쓰는 걸 망설이지 않겠다. – 레이철 시퍼트(작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며, 정말로 감동적이다. – 존 보인(작가,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원작자)


주변 사람을 테스트할 수 있는 책.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했는데 만약 싫어한다면 그냥 깨끗하게 절교해라. 아니면 경찰에 신고하든지. – 사라 페리(작가, 저널리스트)


나치즘의 시대를 다룬 가장 밀도 있는 작품 중 하나. 청소년 독자들에게 망설임 없이 권할 수 있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르 몽드』


『동급생』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실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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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드시 위 네 가지 모두 지켜야 합니다.


* 모집 인원: 3명

* 모집 기간: 1월 31일~2월 5일(7일 간)

* 당첨자 발표 및 도서 발송: 2월 7일 화요일 예정


* 서평단 활동 방법

도서를 받으신 후, 2월 19일까지

알라딘 서재와 개인 블로그(또는 타 SNS: 인스타/페이스북 등)에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남겨 주신 리뷰는 당첨자 발표 페이지 아래에 댓글로 주소를 남겨 주세요.

★ 도서 수령 후 리뷰를 올리지 않으신 분들은 이후 이벤트에서 당첨 제외됩니다.



이 소설은 <작은 걸작>이라고 불리는데요, 왜 <작은 걸작>이라고 하는지 한 번 읽어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서평단에 당첨되시는 분은 출간 동시에 가장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신청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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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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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고 매혹적인 단 한 권의 이야기.


 이야기를 좋아해 소설을 읽은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어느 정도 책을 접하고 나면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사라지겠지, 라고 생각했건만 아직까지도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갈증이 생겨난다. 이야기 바다에 허우적거리면서도 자꾸 소설을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그 답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사유하면서도 뚜렷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언젠가 책을 읽다보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몇 년전까지만 해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히스클리프의 지독한 사랑을 이해하느라고 그녀의 소설을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고 단번에 '히스클리프의 사랑'에 빠져 그를 이상형으로 지목한 사람들의 답이 이해가 가지 않아 몇 해에 한 번씩 <폭풍의 언덕>을 읽기도 하고 그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 깊이를 가늠해 보았다. 다이앤 세퍼필드의 <열세 번째 이야기> 역시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과 같은 매혹적이면서도 우울하고,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기이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소설이다. 


인간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웃음, 숨결의 온기, 살과 뼈도 함께 사라진다. 살아 있는 그들의 기억도 거기에서 멈춘다.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소멸에는 예외가 있다. 그들이 남겨놓은 책 속에서 그들은 영원히 존재한다. 책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다시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의 유머, 문체, 기분까지도. 그들은 책을 통해 독자를 화나게 할 수도 있고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 세상을 떠났지만 그토록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p.30


글을 쓴다는 것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은 무엇을까 라는 물음이 절로 생겨나는 이 소설은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에서 한 소녀의 거짓말로 연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이야기는 아니나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이 결합되어 각 인물의 탄생과 죽음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돌아 영국 시골마을인 앤젤필드 가의 3대에 걸친 이야기를 유명 작가인 비다 윈터를 통해 듣게 된다. 그녀가 쓴 모든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내렸지만 한 번도 진짜 인터뷰를 한 적이 없어 비밀에 싸여있는 비다 윈터가 아빠의 헌책방에서 일을 도우며 인물들의 전기를 쓰는 마거릿 리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실의 조각을 맞춰나간다.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 그래. 지금까지의 내 삶, 내가 경험한 모든 일들, 내게 일어난 모든 사건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 나의 모든 기억, 꿈, 환상, 내가 읽은 모든 것들. 그 모든 것이 그 퇴비더미에 던져졌다네. 시간이 흘러 반죽이 발효했고 결국엔 검고 비옥한 거름이 된 거야. 세포분열을 거치면서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 어떤 사람들은 그걸 상상력이라고 부르지. 난 그걸 퇴비더미라고 생각한다네. 때때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그걸 그 거름 위에 심어놓고 기다리지. 나의 생각은, 한때는 생명이 있었던 퇴비로부터 양분을 먹고 자라는 거야. 그리고 스스로 힘을 갖게 되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지. 그러다가 어느 화창한 날, 난 하나의 이야기, 소설을 갖게 되는 거야." - p.73


비다 윈터는 마거릿 리에게 자신의 이야기인 앤젤필드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절대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끊어서도, 질문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약속을 한다. 그것은 책을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방식과도 닮아 있어 읽는 내내 비다 윈터라는 인물이 갖는 진실과 거짓말, 앤젤필드 대저택의 사연이 엮이면서 기묘하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대저택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은 오래도록 해피엔딩이 될 줄 알았으나 사랑하는 아내가 죽으면서 조지 앤젤필드는 절망에 빠져 버린다. 그는 아들인 찰리와 딸 이사벨 사이에서 그는 이사벨만을 집착적으로 사랑하게 되고 아들인 찰리는 관심 밖이다. 그런 그의 사랑이 무섭도록 휘몰아 치면서 찰리는 아버지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을 즐기면서도 삐뚤어진 애정을 갖게 된다.


오빠인 찰리 또한 동생인 이사벨을 사랑하게 되지만 이사벨은 다른 남자와 함께 떠나 버린다. 그 후 이사벨이 낳은 쌍둥이 에덜린과 에멀린 또한 기묘한 행동과 서로에 대한 집착으로 두 사람의 세계에 빠져있다. 앤젤필드 가문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정상적인 인물이 없다. 저마다 삐뚤어진 사랑과 집착으로 한 사람에게 올인하게 되지만 결말은 '광기'에 치닿는 사랑이 독이 될 뿐이다.


'사람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끔찍한 고통에는 쉽게 익숙해지는 법이라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잊곤 하지.' -p.87


비다 윈터가 말하는 이야기 속에서 인물들은 저마다 기묘한 행동으로 살아가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함께 살아왔던 가정부와 정원사, 쌍둘이들을 돌보았던 가정교사까지도 죽거나 사라진다. 크나큰 저택에서의 삶은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고 비다 윈터가 말하는 앤젤필드 가는 죽어가듯 기묘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저택에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도저히 내뱉지 않고 서는 도저히 살아 갈 수가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는 조각조각 맞춰가는 퍼즐처럼 맞아 떨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속임수처럼 맞을 듯 맞아들어가지 않았다. 과연 그 아이들이 벌였던 사건은 누구의 손길이었을까? 3대에 걸친 이 매혹적인 이야기를 품고 누군가에게 건네주지 않았더라면 사라져 버렸을 그 이야기를 비다 윈터는 전해왔고 그것이 열세 번째 이야기로 남아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살아 숨쉬게 했다.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의 음울하면서도 기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다이앤 세터필드만의 필치를 통해 뽑아 내었다. 2007년에 출간된 <열세 번째 이야기>를 근 10년이 흘러 다시금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두꺼운 두께 만큼이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빠르게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폭풍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던 사랑을 조금 더 깊게 표현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퍼즐을 맞춰나가는 재미도 있었지만 이름이 헷갈려 몇 번을 다시 읽고 읽었던 작품이다. 누군가의 지독한 사랑의 궤적을 잊지 않고 말해주는 동시에 삐뚤어진 사랑의 이야기를 봉인하여 다시 책으로 묶어 놓은 것 같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다.


"자네가 원한다면 아무 말도 안 해도 좋아. 하지만 이야기는 침묵을 좋아하지 않아. 이야기에겐 말이 필요해. 말을 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엔 죽어버리고 말아. 그리고 영원히 우릴 따라다니지." - 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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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감옥 모중석 스릴러 클럽 41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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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공포가 마음의 심연 속까지 파고들다.


 물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바다에 놀러갔다가 친척 동생이 자신이 허우적 거리면서도 나를 잡아 끄는 힘에 이끌려 발이 닫지 않는 곳에 빠진 적이 있다. 그때 몇번 바다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물을 먹었지만 다행히 나도, 친척 동생도 무사히 물에서 나왔다. 그 이후 바다에 가서도 발이 닫지 않는 곳이면 가지 않지만, 그때 일로 물에 빠진 사람이 잡아끄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몸소 체감하게 되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지푸라기도 잡으려는 무시무시한 손길. 아마도 나와 같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동생이 아닌 어른의 힘이었다면 더 강한 힘으로 물 속에 빠져 들어갈 것 같았다.


호수에 들어가서 수영을 한 적은 없었지만 예전에 놀러를 가서 신고 있던 샌들을 바다에 빠트린 적이 있다. 손길이 닿고 닿지 않는 긴 거리로 신발이 빠져 들어갔고, 파도가 철썩철썩치다보니 더 이상 잡을 수도 없었다. 신발을 잊어버렸구나 싶었는데 몇 시간 후 같이 놀러간 아저씨 한 분이 신발 한 짝을 찾아 주셨다. 바다에 신발을 빠트렸을 때 산 사람의 신발을 다시 돌아오지만, 망자의 신발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그때 들은 적이 있다. 물 때문에 많은 고통이 있어도 '물'과 '불'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물과 불에 대한 공포는 누구나 조금씩은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기꺼이 필요이상으로 물과 불의 존재를 아끼고, 잘 사용하고 있지만 언제나 이 존재의 유무에 대해서는 늘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시리를 더 세게 안았다. 손가락 끝이 동생의 부드러운 살을 파고 들어갔다. 자기 뺨을 동생 뺨에 꼭 눌러 붙였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이 새로운 느낌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보다 더 좋고 이보다 더 완벽함을 느낀 적도 없었다. 질문도 의혹도 없이 그저 본래의 운명을 받아들일 뿐이었다. - p.328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물의 감옥>은 인간이 느끼고 있는 마음의 심연을 더 확장하여 물에 대한 공포감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조용히 앉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어도 공포감이 몸 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이 눈을 마비 시키고,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물에서 만큼은 누구나 태초의 그대로 수영을 즐기기도 하지만 어린아이의 몸이 시간이 지날수록 성인의 몸으로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본능이 꿈틀댄다. 단지, 어떤 시간 속에서 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소년은 동생을 구하려고 하지만 이내 그녀의 몸이 축 늘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금기하는 것들이 다시금 마음 속에서 꿈틀대고, 소년은 아이를 잡아 올린다.


두 번 성큼성큼 팔을 휘저어 여자에게 다가가, 다시 한 번 발목을 잡고 아래로 끌어 내렸다. 그러고는 여자의 두 팔을 자기 상체에 꽉 눌러 붙이고는 팔로 휘감았다. 여자 다리도 자기 다리 사이에 끼워 전혀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온 힘을 다해 여자를 안고는 최대한 세차게 눌렀다. 여자의 심장 박동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남녀 무용수가 두 개의 몸이 아니라 하나의 공동체이듯이 남자도 녹아서 여자와 하나가 되었다. 그의 심장도 여자의 박동에 맞추어 같은 박자로 뛰었다. - p.184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소년의 불순한 생각, 본능적인 시선, 사고를 빠르게 인지하지 못한 순간, 한 경관이 이도저도 따져보지 않고 소년의 몰아 붙였을 때. 순간의 퍼즐들이 맞춰가며 남자가 표적으로 잡는 여자들의 발걸음을 따라 갔을 때는 이미 활시위는 당겨졌다. 범인은 여자들을 표적삼아 물에서 익사를 시켜 버린다. 그러면서 에릭 슈티플러라는 경찰에게 예고를 하며 여자들을 하나씩 죽여 버린다. 그와 관계를 가졌던 매춘부를 죽이는가 하면 그녀의 가장 가까운 여자들에게도 눈을 떼지 않는다.


"물의 정령이 또 누굴 끌고 올지 난 정말 모르겠네." - p.226


에릭 슈티플러는 익사된 여자들을 조사하지만 범인이 왜 자신에게 예고를 하며 살인을 저지르는지 감을 잡지 못한다. 프랑크와 라비니아, 마누엘라 슈페를링까지 네 인물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지만 뒤로 갈수록 범인이 왜 물의 감옥 속으로 여자들을 데려가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 하나의 시발점이자 사고였던 그 사고가 큰 파장을 일으키고, 누군가에게 가슴에 멍이 들 정도로 큰 사건으로 번져 나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사건의 진실과 모호한 이야기가 결합이 되어 차가운 심연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다.

그럼에도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인물들의 '적극성'이다. 누구하나 이 사건을 넘어서는 이가 없고, 네 인물 모두 범인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장 가까이 사건에 접었을 때 비로소 그와 대면하게 되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범인을 알고 있음에도 그를 잡지 못하고, 그저 범인이 하는 대로 휘둘린다.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시선의 흐름을 주욱 따라가 보면 우리가 늘 느꼈던 불안감이 더 증폭되어 이야기를 더 공포감있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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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멈춤 - 삶을 바꿀 자유의 시간
박승오.홍승완 지음 / 열린책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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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을 일으키는 아홉가지 도구들.


 언제부턴가 우리는 '빠름~빠름'을 외치며 살아왔다.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빨리' '빨리'라는 단어를 먼저 말하는 것처럼 무엇이든 '빨리' 하는 것을 원해왔고, 지금도 그런 사회를 쫓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발걸음이 공장에 돌아가는 기계처럼 착착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 속에서 점점 인공화되어 가는 삶의 쳇바퀴가 계속 힘차게 돌아가다 보면 어느새 동력은 떨어지고 저만치 홀로 떨어져 발걸음을 옮길 때가 있다.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사회가 바라는,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보일듯 보이지 않는 개인의 삶을 하나씩 돌아다 보면 꾸준하게 도로 선상에서 잘 달리는 차가 있는가 보면 잘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춰설 때가 있다. 개인의 의지로 차를 멈추기도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환경적인 요인으로 삶이 멈춰버릴 때면 우리는 어떻해야 될까?


글을 쓰는 지금도 시계는 계속해서 째깍째깍 돌고 있고, 자기 계발서 책들을 보면 오히려 뒤를 돌아보지 말고 한발짝 더 앞서가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많은 책들을 뒤로 하고 과연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위대한 멈춤'이라는 말로 표현 할 수 있을 정도로 삶의 공백기를 가질 수 있을까. 이 책은 순간을 뜻하는 '터닝 포인트'가 아니라 기간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실험과 성찰을 통해 내면의 가치관과 방향성이 달라지는 과정(p.15)이라고 전환기의 정의를 설명한다. <위대한 멈춤>은 이전의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사들의 삶을 통해 전환기를 알아보고 있다. 조지프 캠벨, 카렌 암스트롱, 구본형, 빅터 프랭클, 조지프 자보르스키, 이윤기, 폴 고갱, 헤르만 헤세, 헨리 데이비드 소로, 스콧&헬렌 니어링, 카를 융, 모한다스 간디, 벤저민 클랭클린등 삶의 전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멈춤의 시간'이 얼마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인지를 알려준다.


그들의 내면을 변화시키고, 삶을 더 확장할 수 있었던 아홉가지 도구들은 독서, 글쓰기, 여행, 취미, 공간, 상징, 종교, 스승, 공동체를 통해 각기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이루어왔다. 이 책을 쓴 두 명의 저자들 또한 오롯하게 평지의 길을 걷다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닌 환경적인 요인으로 전환기를 거쳤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스스로 혹은 타의적으로 시간을 멈추는 것이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나 삶을 되돌아 볼 때야 비로소 그 시간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것이지 실제로 인지하여 스스로 삶의 시간을 멈추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그 일이 '위대한' 일 중 하나가 되겠지만 사회적인 편견과 인식들이 아직도 우리의 삶을, 각 개인이 살아가고 있음에도 편하게 멈추지 못하는 것은 그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회적인 편견이 갖는 무시무시한 눈길들이 마음을 옥죄어 오고 그것으로 하여금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금기시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책과 달리 한문적인 접근법으로 전환자들이 사용한 도구를 통해 하나씩 대입하며 그들이 겪은 이야기가 오롯하게 기억에 남는다. 어떤 도구들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지는 나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며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보니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맞는 도구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던 책이다. 쉽게 쓰여진 책은 아니나 천천히 책을 읽다보면 잠시 멈춰서는 과정 안에서 무엇을 느끼고, 채워나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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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델핀 드 비강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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뗄레야 뗄 수 없는 숙명 같은 존재.


 종이 위에 물감을 바르고 반을 접어 펴보면 같은 색상의 무늬가 똑같이 찍혀져 있다. 어릴 때 미술시간에 했던 놀이다. 일명 데칼코마니라 불리는 회화 기법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효과를 볼 수 있다. 델핀 드 비강의 <실화를 바탕으로>를 읽고 책을 덮으면서 표지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 세계미술용어사전에서 일컫는 데칼코마니의 뜻과 예전에 놀이를 통해 했던 문양과 색감이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다. <실화를 바탕으로>를 읽기 전에 읽었던 <길 위의 소녀> (2016,비채) 역시 두 소녀가 처한 환경이 다르면서도 같은 색채를 드러내는 짠함과 그 사이의 모순이 드러났던 것처럼 이번 작품 역시 두 여자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진실이란 건 없어. 진실은 존재하지 않아. 내 신작은 붙잡을 수 없는 어떤 것에 다가가기 위한 서툰, 그리고 도달할 수 없는 시도였을 뿐이야. 빛을 꺽는 프리즘을 통해 고통과 후회와 거부의 프리즘을 통해, 그리고 사랑의 프리즘을 통해 이야기하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뿐이야. 너도 잘 알잖아. 우리가 생략하거나 늘이거나 압축하거나 구멍을 메우는 순간, 우린 이미 픽션 속에 있다는 걸. 나는 진실을 찾았어. 그래, 네 말이 맞아. 나는 근거들, 관점들, 이야기들과 대면했어. 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글쓰기는 소설이야. 이야기는 환상이야. 실재하지 않는 거라고. 다만 어떤 책에도 대놓고 그렇게 적는 게 용납되지 않을 뿐이지. - p.90


"난 결과를 말하는 게 아니야 의도를 말하는 거라고. 자극에 대해 말하는 거라고. 글쓰기는 진실을 추구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야. 만일 네가 글쓰기를 통해 너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너에게 깃든 것을, 너를 이루는 것을 뒤지려 하지 않는다면, 너의 상처를 다시 열어 건드리고, 네 손으로 후벼파려 하지 않는다면, 네 인격과 뿌리와 환경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면, 그건 무의미해. 글쓰기는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어야 해. 그 밖의 것은 중요하지 않아. 그래서 내 책이 그만한 반향을 불러왔던 거야. 너는 소설의 영토를 떠났어. 너는 기교와 거짓말과 가신을 떠났어. 너는 '진실'로 돌아왔고 네 독자들은 그 점을 정확히 파악했어. - p.91


책을 읽는 내내 작가를 마주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던 이 작품은 소설의 화자가 '델핀' 자신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여자의 존재는 이니셜 'L'로 소개 되어 있다. 미스테리적인 기법이 가미되어 몇 권의 책을 출판하여 많은 독자들의 이목을 받은 델핀과 일명 유령작가로 불리는 대필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L의 끈끈한 추적과 시선은 나도 모르게 L을 자꾸만 경계하게 만든다. 어딘가 모르게 델핀을 자신에게만 몰두하게끔 가두는 '집착녀'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데칼코마니처럼 델핀과 같은 색채와 문양으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여자의 모습으로 감쪽같이 가면을 쓴 것도 같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이것이 작가의 진짜 이야기인지 아니면 소설 속의 주인공인지 모를 착각에 빠져들쯤 L의 행동이 심상찮다. 더 깊은 심연속으로 빠져 든 것은 독자가 아니라 소설 속 델핀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진짜 델핀이 아니라 소설 속 델핀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델핀과 L이 주고 받는 실재와 허구의 치열한 공방이었다.


미저리처럼 달라 붙는 L을 자신의 생활에서 멀리 떨어 놓고자 할 때쯤 델핀은 어떠한 이유도 알지 못한채 무방비하게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고, 너무도 당연하게 옆에서 본 것처럼 L이 존재했다. 그때부터 델핀은 몸과 마음 모두 L과 함께 생활 했지만, 다리를 다치기 이전에 펜도 컴퓨터로 작업을 할 수 없을 때 보다 L을 더 믿었던 것 같다. 모순적이게도 델핀은 L의 삶들이 너무도 궁금했고, 두 사람이 함께 쿠르세유에 머물면서 L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글을 쓰고픈 욕망이 생기고, L을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조금씩 더 은밀하게 L을 캐치하려는 델핀과 델핀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가는 L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시작된다.


나는 불현듯 그녀를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L이 처음부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매혹적이고 세련된 여자는 아니었으리라는 야릇한 직감에 사로잡혔다. 그녀 안의 뭔가가, 아주 잘 숨겨서 거의 지각할 수 없는 뭔가가 L이 먼 곳에서, 어둡고 질척한 땅에서 왔다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특이한 변태變態를 겪었으리라는 것을 드러냈다. - p.59


나로 말하자면 무엇이든 미리 예측하고 최대한 계획대로 실행함으로써 불안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 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p.60


시간이 흐르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는데도, 이제는 나름 나답게, 평화롭게, 심지어 조화롭게 사는 것 같은데도, 나 자신의 일부 혹은 전부를 더 매력적인 여성과 맞바꾸고 싶다는 절대적 필요를 더는 느끼지 않는데도 여전히 나는 여자들에 대한 그런 시선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나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깃들었던, 타인이 되고자 하던 무의식적 욕망의 기억을, 마주치는 여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더 아름답고 더 불순하고 더 빛나는 뭔가를 찾는 내 시선을 말이다. 하지만 어쨋거나 현재까지 내 성적 욕망은 남자들을 향해 있었다. 아랫배에 느껴지는 일렁거림, 떨림, 뜨거움, 가쁜 숨, 깨어나는 몸, 전류가 지나가는 살갗, 이 모든 것은 오로지 남자들과의 접촉으로만 일어났다. - p.76


L이 날큼하게 델핀의 삶을 치밀하게 파고든다면 델핀이 L을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느리다. 자신의 코 앞에 위험이 닥쳤을 때 비로소 자신의 위험을 알게되는 델핀의 생각과 행동은 자칫 외나무 다리를 건너듯 불안하고 위태롭다. 오롯하게 델핀의 시선으로 L을 바라보기에 델핀의 위험 수위가 끝에 다다랐을 때 이야기는 점점 더 고조되고, L은 무서운 속도로 델핀을 치받는 것 처럼 느껴졌다. 무서운 속도로 델핀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는 치밀함과 섬세한 가면이 벗길듯 벗겨지지 않는 무서움이 더해져 델핀을 압박한다.


책을 읽고 나면 L의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실재인지 허구인지 헷갈린다. 과연 L이라는 여자는 존재했던가. 제목에서처럼 델핀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글일까 아니면 그녀가 만난 어느 여자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실재와 허구를 반반으로 섞어 쓴 이야기일까 하는 물음표어린 질문들이 새록새록 머릿속에 차올랐다. 더불어 델핀 드 비강이 쓴 글이야 말로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2009,민음사)처럼 두 여자의 존재가 아니라 쓰는 사람 즉, 소설가 글을 쓰는 '나'의 모습을 실명인 델핀이라는 여자와 L이라는 여자를 대변해 쓴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사실, 두 여자는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나'이고, 거울을 바라보듯 같은 모습을 하지만 실재와 허구 사이를 오가는 작가인 나를 투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이전 작품에서도 그녀는 어느 한쪽에 손을 들어 주지 않았고, 서로의 환경이 다른 모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역시 델핀도 L도 선하거나 악하거나 하는 인물의 특징적인 성격을 규정짓지 않았다. 그것이야 말로 두 사람이 갖는 모순적인 모습과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제약을 두지 않고 생각해 볼 수 있게 연관관계를 두며 작품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런 점이 델핀 드 비강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빠르게 하나의 이야기로만 읽기 보다는 천천히 그녀가 만들어 놓은 방 하나하나를 두드리며 열어보고 무언가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무엇이라고 정의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실재와 허구 사이를 오가는 자신의 작품의 진의라는 것을 그녀는 글을 통해 명확히 드러내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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