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마인드 - 세상을 리드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한 가지
스탠 비첨 지음, 차백만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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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은 것을 실행하는 것이 최고가 되는 길.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엘리드 마인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읽어내려간 스탠 비첨의 글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다른 것이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기계발서에서 늘 이야기하고 있고, 주장하는 것들이 들어있다. 세상에서 좋다하는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좋은 것을 알아도 알기만 할뿐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은 책이다.


무엇이든 내가 받아들이고, 몸으로 체득이 되어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 스탠 비첨은 미국의 저명한 리더쉽 컨설턴트이자 스포츠 심리학자이기에 그가 만난 사람들의 사례를 들면서 그들의 정신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겨본 사람만이 이길 수 있다는 마인드. 그것은 스포츠에 있어서 단기간 잘 나타난다. 일종의 이기는 습관을 가진 이들은 자신이 이긴다는 것에 흔들림이 없지만 매번 경기를 진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목표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이겼으면 좋겠지만 만약 진다면 어쩔 수 없는 일로 간주한다. 결과가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다고.


스탠 비첨은 이런 사례를 들면서 정신력이 강한 사람만이 일과 삶에서도 탁월하게 우위를 점한다고 말한다. 스포츠 세계를 비롯하여 비지니스 역시 몰입과 강격한 신념, 멘탈이 중요하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야구를 보다보면 투수가 던지는 공의 움직임을 보다보면 그의 멘탈이 어떤지 정확하게 보여진다. 게임을 유리하게 가지고 있을 때에도 투수의 마음이 불안정하면 구력이 흔들리는 것처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공을 가진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보면 어김없이 그들의 배짱과 인내, 노력만이 최고의 경지에 올랐음을 알 수 있었다.


자기계발서를 손에 꼽을 정도로 보는 나에게 이 책은 이전의 보았던 자기계발서와 별다른 차이점은 없었지만 마음이 흐트러진 요즘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불안정한 시대에 스스로 확신의 마음이 들지 않을 때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 할 때가 있는데 그때 방점을 찍는 확실한 목소리가 간절히 필요하다. 예전에는 학력이 좋은 이들에게 '엘리트'라는 이름을 많이 붙여줬으나 언제부터 인가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점점 사라진 것 같다. 세상을 리드하는 사람들의 멘탈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진리를 '실천'할 수 있다면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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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10퍼센트가 신체적 능력이고 나머지는 90퍼센트는 정신력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나는 개인의 성과와 성공은 100퍼센트 정신력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왜일까? 결국 신체를 지배하는 건 정신이기 때문이다. - p.25


말의 위력만으로 뇌의 화학 작용, 감정, 신념을 변화시킬 수 있다. - p.51


사람은 세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읽기를 통해 배우는 사람이 있다.

두 번째, 소수지만 관찰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 있다.

마지막으로, 전기 철조망에 직접 오줌을 싸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다. - 윌 로저스(p.57)


기억하라. 나의 미래, 그리고 나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돕는 나의 신념은 하나같이 나의 선택이다. - p.91


몰입하려면, 기꺼이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혼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거절과 수치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예술가라면 비평가들과 대중으로부터 비웃음과 무시를 당하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당신과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몰입하려면 실패하고, 웃음거리가 되고, 체면을 구기는 일쯤은 각오해야 한다. - 에드워드 할로웰 (p.92)


스포츠 심리학자, 코치, 경영자를 비롯해 성과 향상을 돕는 사람에게 목표 설정은 대단히 관심이 많은 주제다. 그리고 성과 향상 전문가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① 목표가 있어야 한다. ②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명확한 목표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 p.107


초대받기를, 이상적인 때와 완벽한 상황이 오기를 기다리지 마라.

당신이 있든 없든, 당신의 세상은 돌아가니

지금 당신을 당신답게 만드는 것을 하라.

지금이 그때이니 또 다른 때를 기다리지 마라. - p.168


결국 나의 승리를 결정짓는 건 나의 예상이다. 나의 코치도, 부모도, 팀 동료도 아닌 나 스스로 성공을 결정한다. 사람은 원하는 만큼 얻는다.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하든, 운이 없다고 생각하든, 어느 쪽이나 다 나의 생각대로 된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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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조르주 바타유 지음, 이재형 옮김 / 비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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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의 시작점이 다른 에로티슴과 죽음의 이야기.


 비채에서 조르주 바타유의 신간인 <눈 이야기>가 출간 된다는 소식을 듣고 난 이후부터 근 1년간 기다려왔다. 그의 저작들을 하나도 접해보지 않았지만 전방위적인 영역의 글을 쓰는 그의 이름을 여기저기서 접해본 터라 그의 작품이 너무나 궁금했다. 99년에 푸른숲에서 번역되어 나왔을 때는 <하늘의 푸른빛>과 합본되어 나왔지만 이번에는 따로 나뉘어 나왔다. 에로티슴의 거장인 조르주 바타유의 자전적인 이 소설은 표지에서 드러난 은밀함 때문에 왠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강렬한 인상을 줄 것 같은 예감에 펼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주는 남녀간의 운우지정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그의 문학적 사유는 성을 탐닉하는 것 이상으로 비이상적인 체위와 몸짓이 만연하게 그려진다.


이성적인 사랑의 방식이 아니라 어딘가 비틀려진 인간의 태초의 몸짓과도 같은 날 것의 방식으로 그들의 사랑을 드러낸다. 사람과 사람과의 몸짓이 성스럽거나 혹은 야한 언어로 대변 되기 보다는 그들이 표현하는 언어적 방식은 거리낌없이 방출하는 것이다. 그것이 십대 아이들의 몸짓으로 보기에는 풋풋하거나 아름답지 않는 굴곡된 모습이라 조르주 바타유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무엇인가, 골몰할 정도로 그의 작품으로 그의 언어를 따라가기란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눈동자는 대부분 위쪽 허공을 향했으며, 그런 일은 특히 그가 오줌을 싸는 순간에 일어났다. 그런데 그는 매의 부리 모양으로 잘려진 얼굴에 늘 눈을 크게 뜨고 있었기 때문에 오줌을 쌀 때면 그의 커다란 눈이 거의 대부분 흰자위만 보였다. 그럴 때에는 오직 그만이 볼 수 있는 세계, 그로 하여금 냉소적이고 멍하고 모호한 웃음(여기서 나는 예를 들면 맹인의 고독한 웃음이 갖는 유주적遊走的 특성 등등을 여기서 한꺼번에 환기하고 싶다)을 짓게 만드는 어떤 세계 속에 버려져 방황하는 듯한 따분한 표정이 얼굴에 나타났다. 어찌됐든 내게 있어 달걀의 그것과 직접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이 이야기 속에 '눈'이라든가 '달걀'이 나타날 때마다 거의 규칙적으로 따라붙는 오줌의 출현을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이 순간의 '눈'의 이미지이다. - p.133


남녀의 몸짓으로 하여금 환희의 감정이 솟을 때 드러나는 에로티슴을 조르주 바타유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인 '오줌'으로 대변한다. 끊임없이 그는 두명이든 세명이든 그들의 언어를 표현하고 환희의 감정을 내품을 때는 오줌을 싸게 되고, 그것이 드러운 배출의 현장이 아니라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소설을 읽었을 때는 왜 이런 이미지로 표현이 될까 궁금했는데 수전 손택의 해설과 2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통해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그의 언어는 생경한 언어였고,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그가 보여주는 전통적인 서술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금기의 언어를 이야기한다.


나는 결코 이런 유의 추억에 연연해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 추억이라는 것이 이미 오래전에 온갖 감정적 특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추억들이 언뜻 알아보기 힘들게 변형될 때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추억은 그렇게 변형되면서 가장 음란한 의미를 띠었기 때문이다. - p.137


그들이 누리고 표현한 몸짓은 언뜻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더러운 혹은 인간의 태초의 원형이라 생각한다면 그들의 언어는 음란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 이들의 표현을 더럽게 볼 것인지, 아니면 남녀의 사랑의 몸짓에 대한 위반인지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포르노그래피하면 뭔가 더 야한 몸짓을 떠올리겠지만 <눈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에로티슴의 언어였다.


《눈 이야기》와 《마담 에두아르다》가 강렬하고 충격적인 인상을 주는 한 가지 이유는, 포트로그래피가 실제로는 섹스가 아닌 죽음을 의미하는 것을, 바타유가 내가 아는 다른 어떤 작가보다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포르노그래피 작품이 대놓고 혹은 은밀하게 죽음을 말하고 있다고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욕과 '음란함'의 테마를 특정하고 날카롭게 굴절시킨 작품만이 그러하다. 그러한 작품은 정욕을 만족시키고 초월하는 것으로 죽음의 희열을 향해 나아간다.  - p.185


조르주 바타유의 <눈 이야기>를 읽다보면 언뜻 영화 '몽상가들'과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들이 떠오른다. 남녀의 몸짓과 인간에게 떼어놓을 수 없는 환희의 상징이 돌고 돌아 죽음을 의미하는 것. 클림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다 보면 조르주 바타유가 말하는 강렬하고 충격적인 모습이 연결되어 이해가 될 것 같다. 생경한 언어였지만 다른 언어로서 표현되는 몸짓의 향연들이 다채로운 이미지로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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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를 안아 준다 - 잠들기 전 시 한 편, 베갯머리 시
신현림 엮음 / 판미동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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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을 때 포근하게 읽을 수 있는.


 베개에 머리를 누이면 언제나 쉬이 잠을 잘 자는 편이어서 불면증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늘, 책을 옆에 두고 수면모드의 등을 켜놓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요 근래에는 책 대신 스마트폰을 보며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가 웹소설을 읽다보니 늘 늦은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시간을 한 두달쯤 가지다 보니 잠이 부족했고, 이른 잠자리에 들어서도 잠이 오지 않아 불면의 밤을 보냈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스마트폰의 불빛 때문인지 눈도 피로했고, 바로 잠이 들지 않아 이제는 다시 책을 읽다가 잠을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신현림 시인이 엮은 <시가 나를 안아준다>라는 시집이다. 밤, 고독, 사랑, 감사, 희망이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나라의 시는 물론이고 외국시와 함께 명화를 수록해 놓아 읽고 보는 맛이 좋다. 그림의 제목을 그림 아래에 적어 놓았는데 번역을 해놓는 대신 영어 그대로를 적어 놓아서 그런지 제목과 함께 그림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든다. 때로는 시가 좋아 포스트잇을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림이 좋아 계속 해서 한 페이지를 오랫동안 바라 본 적도 많았다. 또, 제목을 번역해 보기도 하면서 시를 읽다보니 점점 눈이 감겨 때이른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제목 그대로 시가 나를 안아주는 포근함과 함께 곁들여진 그림이 좋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고, 때로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절로 경건해지는 문구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시를 읽다가 서서히 눈이 감겨지고, 절로 잠이 드는 시간들. 한 편의 시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늦은잠 호젓한 시간에 충만함이 흐르는지 미처 몰랐다. 늦은 밤 홀로 누워 소설을 읽는 맛도 좋지만 시를 읽는 시간 또한 즐거움이 더한 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저번 달에 읽은 장영희 교수의 <생일 그리고 축복> 또한 많은 영미시를 접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신현림 시인이 엮은 <시가 나를 안아준다> 역시 성별을 떠나 국경을 넘어서 다양한 시를 접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특히 곳곳에 배치된 시화가 너무 좋았던 책이다.




왼손


                                     도종환


말없는 왼손으로

쓰러진 오른손을 가만히 잡아주며

잠드는 밤


오늘도 애썼다고

가파른 순간순간을

잘 건너왔다고


제 손으로

지그시 잡아주는

적막한 밤


어둠속에서

눈물 한방울이 깜빡깜빡

그걸 그려보는 밤 



고독


자기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과 잘 지내겠는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온전한 사람일 수 있는가.

자기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은

움켜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것.

침묵하는 것, 귀를 기울이는 것을 뜻한다. - 베테딕트 교황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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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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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푸체족 사람들과 아프마우의 우정이 담긴 이야기.


 <연애 소설 읽는 노인>(2009,열린책들)을 통해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품 세계에 발을 디뎠고, 임펙트 있는 작품이라 늘, 그의 신작이 나올 때면 귀를 쫑긋 세우거나 눈을 반짝이게 된다. 이번 작품 역시 기대가 되었고, 읽어보니 역시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마푸체족 사람들과 아프마우의 우정이 가슴먹먹하게 다가온다. 개를 일컫어 많은 이들이 '충직한' 동물로 비유하고 있고, 그에 대한 일화는 무수히 보았지만 루이스 세풀베다의 필치를 통해 아프마우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더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이 녀석은 내 개가 아니라 내 손자 아우카만 -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콘도르- 의 친구일세. 재규어 나웰이 어디서 이 녀석을 발견했는지, 그리고 어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기는 어려울 거야. 하지만 이 어린 녀석이 깊은 산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 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네. 그러니까 라콘, 즉 죽음의 달콤한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몬웨, 즉 삶에 대한 강한 충직함을 보여 주었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이 녀석을 우리말로 충직하다는 뜻을 지닌 아프마우라고 부르기로 했다네.」 -p.37


언제 어디서 엄마의 품을 떨어져 나왔는지 모를 어느날 눈 속의 추위에 떨고 있는 어린 강아지를 물고와 자신이 기거하는 동굴 안에서 품어준다. 먹이도 함께 먹고 놀아주면서 자신의 곁에 데리고 있던 강아지를 마푸체족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재규어 나웰이 사는 곳은 더 이상 어린 강아지가 살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곳이었기에 그는 마을로 데려가 마푸체족 즉, 대지의 사람들에게 어린 강아지를 맡긴다. 그곳에서 아프마우는 '충직하다'는 뜻을 가진 이름을 얻고, 웬출라프 할아버지와 그의 어린 손자인 아우카만과 함께 살아간다.


자연의 모든 것에 감사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누며 정겹게 살아가는 그곳에서 아프마우는 건강하게 자라난다. 웬출라프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옛 이야기를 듣고, 향긋하게 만들어진 비스킷을 아우카만과 나누며 실컷 먹을 수 있는 풍요로움이 있던 그 시절을 아프마우는 기억하고 있다. 개와 사람이 아닌 서로의 곁을 나눈 형제로서 살아가던 어느날 윙카라는 난폭한 침입자에 의해 마푸체족 사람들의 터전을 짓밟히고, 아프마우와 아우카만의 웬출라프 할아버지는 그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그 후 아프마우는 이름을 잃어버렸고, 자신과 우정을 나누어던 형제를 잃어버렸다. 난폭한 침임자인 부족에게 붙잡힌 아프마우는 그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지만 아프마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부른 이름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기에. 그들이 원하는 곳으로 향한듯 하지만 아프마우는 늘, 자신의 형제를 생각했고 그를 지키기 위해 대나무 숲이 울창한 곳으로 유인한다. 그저 그곳에서는 '개'로 불렸고, 말을 듣지 않으면 무자비한 폭력은 물론 다른 동물을 헤치는데 있어 그를 이용했다. 아프마우는 굶주리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따르지 않았고, 자신을 따스하게 길러주고 아껴주던 아우카만을 떠올린다.


아우카만은 내 눈을 바라본다. 나에 대한 믿음이 그의 시선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자기를 두고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개에는 오로지 행동이나 몸짓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가 있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세상이 시작될무렵, 응구네마푸는 인간과 동물이 말 대신, 눈빛으로 드러나는 감정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 p.82~83


아프마우의 기지로 목숨을 건진 아우카만과의 재회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선명하게 다가온다. 오랜시간이 지났어도 개와 사람이 만난 것이 아니라 형제를 만난 것처럼 진한 우정이 그들 마음 속 깊이 숨겨져 있었다. 오랜시간 함께 하지 못해도 늘 아프마우에게도 아우카만에게도 서로를 그리워 했기에 이제는 함께 하기로 했지만 재회의 즐거움도 잠시 윙카 부족의 보급품을 망가트린 아프마우를 가만두지 않는다. 낯선 침임자는 끝까지 그들에게 위협과 살인을 저지르며 그들의 형제를 빼앗아 갔다.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과 터전과 자연, 그리고 그들의 손길이 오롯하게 담긴 곡식까지도.


마푸체족 사람의 옛 터전인 칠레의 왈마푸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를 사람들의 시선이 아닌 오롯하게 개인 아프마우를 목소리를 통해 세풀베다는 순수하면서 강렬하게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 어떤 욕심도,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는 순수의 결정체가 세풀베다의 문학 속에 드러난다. 그가 아프마우의 목소리를 통해 전하고픈 이야기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과 동시에 삶에서 가장 비극적인 있음에도 굴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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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히말라야 씨
스티븐 얼터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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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걸으며 치유의 여정에 오르다.


​<친애하는 히말라야씨>의 저자 스티븐 얼터는 어느날 갑자기 밤에 낯선 침입자들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아내 아미타를 흉기로 찌르고,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자신을 무자비하게 때리고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여러군데 자상이 심했지만 그의 기지로 그의 집과 가까운 이웃을 불러냈고, 그는 이내 정신을 놓아버렸다. 심한 자상이 여덞 곳이나 찔렸고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 그와 아내 아미타는 목숨에 지장이 없었다. 병원에 있으면서 그는 다친 곳들은 서서히 상처가 아물고 있었지만 피습 이후에는 마음에 구멍이 점점 더 크게 생겨났다. 병원에서 있으면서 그는 범인을 찾기 위해 경찰에 신고 했지만 경찰 또한 범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아미타와 스티븐 얼터는 퇴원해서 돌아왔지만 낯선 사람을 보면 무섭고, 어딘가 집을 피습해 왔던 낯선 남자라도 보이면 기절할 정도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몸은 나아가지만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행동반경이 점점 좁아지는 것을 보면서 그는 그의 주위에서 항상 가까이에 있던 히말라야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산을 정복하고자 올라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순례길에 오른 그는 울퉁불퉁한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오직 불완전한 산길에서 그가 히말라야를 느낄 수 있는 건 오직 걷는 것 뿐이었기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몇 번씩 산에 오르지만 산을 정말 싫어하는 나는 가까운 산을 두고도 오르지 않는다. 올라갔다가 내려올 길을 왜 올라가느냐고 반문을 할 때면 등산의 매력을 몰라서 그렇지 정상에 올라갔다 오면 얼마나 상쾌한지 모른다는 답이 들려온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그 매력을 아직도 느끼지 못하기에 산을 등정하지 않지만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을 산을 정복하기 위해 가는 산악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의 여정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영화 '히말라야'를 보다가 엄홍길 대장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산을 정복하러 간다는 말을 잘못된 말이라고 했다. 그는 산이 허락하기에 오를 수 있었고,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 16좌 등반에 성공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 산을 오르는 것 또한 자연이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븐 얼터는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산의 등정일기가 아닌 치유의 여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하게 그의 일화가 아닌 '치유'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그것이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과 현재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과도 닿아있다. 글을 씀으로서 그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조금씩 없애고 있고, 단순히 산을 올랐다고 모든 트라우마가 치유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보았던 수 많은 풍경과 자연이 우는 울림, 숨 가쁘게 산길을 걸으면서 느낀 통찰의 시간들이 그의 마음을 조금씩 열게 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 뿐 아니라 순례자들이 걸었던 발걸음이나 지혜에 관한 책이나 명언에 대해 소개하기도 한다. 위험에 맞닿은 순간을 어떻게 지혜롭게 이겨내고 넘어갔는가에 대해. 더불어 인간이란 한 없이 작은 존재이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얼마나 강인해져야 하는지도 그는 설명하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매개가 되어 필연적으로 히말라야에 오르게 되고, 산을 오르면서 느꼈던 많은 철학과 지혜, 걷는 것에 대한 의미, 돌이표처럼 돌아오는 삶의 깨달음은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고, 인간으로서 본능적인 욕구가 다시 되살아나는 힘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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