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의 소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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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져 있는 요코하마 히데오의 데뷔작.


경찰소설을 좋아한다. 아마도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2009, 비채)를 읽고 나서 경찰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다른 경찰소설이 무엇이 있나 싶어 검색하다보면 늘, 사사키 조와 함께 거론되는 작가가 요코마야 히데오였다. 출간된 많은 작품들이 작품성과 사회파 미스터리를 충족시키는 작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의 작품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는데 운이 좋게도 그의 데뷔작으로 먼저 그의 진가를 느끼게 되었다.


<루팡의 소식>은 요코하마의 데뷔작이자 지금은 없어진 제9회 산토리 미스터리대상 가작 수상작이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인 요코하마 히데오의 첫발걸음인 이 책은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소설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작품으로, 중견 작가가 썼다고 생각할 정도로 신인으로서 어색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이 한 편의 책은 세 친구들이 어렸을 때 치기로 학교 시험지를 훔치기로 한 일명, 루팡 작전이 사건의 시발점이다.


"어차피 인간 따윈 말이지······."

다치바나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말로 제대로 듣지 않으면 믿을 수 없어. 자기 귀로 들은 것밖에 믿지 않아. 내 말이 틀리냐?" -p.212


고등학교 기말고사를 앞두고 카페 루팡에서 세 아이들은 시험지를 탈취하기 위해 모의를 한다. 교장실에 있는 시험지를 탈취하기 위한 모험을 하는 기타와 다쓰미, 다치바나는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다치바나를 시작으로 시험지를 훔친다. 그러나 그들이 늦은밤 시험지를 탈취하기 위해 학교에서 숨어 있던 중 평소 글레머러스하고 섹시하다는 평을 들었던 여교사가 시신을 목격하게 된다. 사건 이후 여교사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을 맺고, 15년 후 사건의 시효가 딱 하루 남았을 때 경시청에 한 통의 제보가 날아든다. 15년이 지난 고교생의 아이들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거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제법 잘 살아가고 있는 기타와 영업을 하고 있는 다쓰미, 노숙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다치바나를 연행해 각각 그날을 복기하며 작가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처음에는 치기어린 아이들의 장난같은 사건이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됨으로서 이야기의 폭들이 서서히 조여온다. 계속해서 사건이 진행 될 수록 각각의 인물들이 갖는 딜레마와 그들이 갖는 이야기이 하나 둘 쌓이면서 이야기는 예상한 라인을 벗어나 또다른 이야기로 튀어가 버린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이야기는 세 악동의 청춘소설이었으나 이내 미스테리한 살인사건으로 이어져 버리더니 다시 사랑이야기가 되어 버리다가 학교와 선생님, 학생이 연결되어 버리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로서 변모한다.


아니, 잊어버린 것은 소마나 사치코만은 아니었다. 도도하고 건방졌던, 하지만 스스로는 반짝반짝 빛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고교시절의 많은 일조차, 하나씩 하나씩 색깔도 모양도 없어져서, 의식이 닿지 않는 마음속 깊이 흐리멍덩하게 짐전되어 버렸다. - p.454


세 명의 아이들을 주축으로 하는 인물 뿐 아니라 잠시 나왔던 인물까지도 헛투루 버리지 않는 치밀한 계산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교장실 금고의 이중, 삼중 금고보다 더 치밀하면서도 가슴뭉클한 사연이 가득한 작품이었다. 하나의 경찰소설로서 읽히기도 하고, 청춘소설, 사랑이야기, 성장소설, 사회파 미스터리로 읽히는 여러 변주는 한 신인이 내놓은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군더더기 없는 작품이다. 하나의 미제사건으로 남겨놓은 삼억 엔 탈취 사건과 여교사의 추락사건, 매일 밤 숙직실에서 기거하며 학교를 순찰했던 수상한 화학선생님의 과거 까지고 모두 까발려진 희대의 사건이 물밀듯 이어져 내려온다.

무엇보다 단 하루 밖에 남지 않는 긴박한 공소시효의 시간이 긴장감과 압박감을 느끼면서 사건을 느끼다 보니 더 사건에 몰입하게 되었다. 거장의 시작점은 그 무엇하나 빠트릴 것 없이 안정적인 발걸음으로 신호탄을 쏘았을 정도로 재미와 이야기, 감동이 겸비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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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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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디하게 전개되는 그들의 이야기.


 ​<죽어 마땅한 사람들>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 피터 스완슨의 새로운 작품이 출간되었다. 새빨간 가제본이 인상적인 이 책은 조지 포스와 리아나를 중심으로 한 스릴러 소설이다. 대학 때 처음만나 사랑에 빠졌고, 학교에서 늘 함께 생활 할 정도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다. 방학이 되어 서로의 집에 간 후 리아나 아니 오드리는 소식이 없었고 그후 그녀의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그와 행복했던 그녀가 갑자기 왜 집에가서 죽었을까?


그렇게 첫사랑의 시작은 강렬했다. 그녀와의 만남은 설레고, 짜릿했지만 갑자기 사라져 버린 첫사랑의 기억은 조지에게 강렬하게 기억 속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지금의 여자친구와 함께 간 단골 바에서 리아나를 보게 된다. 처음 다시 그녀를 본 순간 계속해서 그 여자를 살피게 되고, 바를 나갔다가 다시 리아나 곁으로 되돌아와 그녀를 만난다. 잃어버린 첫사랑인지, 잊어버린 것인지 조지는 리아나와 해후하게 되고, 그녀의 부탁을 서스럼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보스턴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문학 잡지를 만드는 회계사로 일하는 조지가 아무런 의심없이 리아나의 부탁을 받고 그곳을 향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무시무시한 구타였다. 차가 없어서 갈 수 없다는 부탁에 생각없이 행동을 하고, 돈을 훔쳐서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 그녀가 무섭다며 다시 그 돈을 돌려주겠다며 건네던 가방을 가져간 것도 조지였다. 미안함에 훔친 돈 일부를 건네지만, 그건 네가 갖고 있으라며 그녀가 내민 손을 아무런 의심없이 선뜻 들어준다.


보통 많은 남자들이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하지만 조지는 첫사랑의 리아나의 유혹에 빠져드는 것인지 계속해서 그녀가 말하는 모든 것들을 들어주는 '호구' 캐릭터를 갖고 있다. 좋은 말로 하면 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한 남자의 순정이겠지만 아무런 이유없이 맞고, 또 주인에게 돌려주었던 돈가방에 의해 누군가 죽게 되면서 그는 점점 더 깊은 늪지대로 빠져 버린다.


오드리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했던 첫사랑 리아나는 여러 가면을 뒤집어 쓰며 제대로 조지를 유혹하며 이용한다. 조지의 마음을 이용하는 리아나가 나쁜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잃어도 너 하나만 무사하면 다행이다는 생각으로 그녀의 잘못된 행동에도 믿는 조지가 바보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은 빠릿빠릿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작인 <죽어 마땅한 사람들> 역시 가볍지만 빠르게 전개되는 면이 장점으로 부각되었던 것처럼 새로 출간된 그의 장편 역시 그 장점을 내세워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녀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후반부에 나오지만 계속해서 끌려다니는 조지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강단있게 맺고 끊었다면 우연인듯, 계획인듯 스쳐지나가는 리아나의 만행에 걸려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운명의 상대는 리아나였고, 리아나는 시공간을 떠나 언제든 그녀를 사랑해 줄 그를 찾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녀가 걸어간 길에서도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던 조지와 리아나의 이야기는 상투적이지만, 자꾸만 다음이 궁금해지는 작품이다. 


하나의 직업을 찾아 가능한 한 그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할아버지도 똑같이 말해줬다면서 목수가 되어 못을 똑바로 박는 법을 배우면 평생 행복할 거라고 했다. - p.147


조지가 늘 리아나와 살짝 사랑에 빠졌듯이, 그녀도 늘 그와 살짝 사랑에 빠져 있었기를 바랐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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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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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묘한 여운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연애소설.

 


 오래 전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장송>(2005,문학동네)을 사놓았지만 어마어마한 두께에 손을 못대고 있었다. 왠지 <일식>과 <달>을 읽지 않고서는 <장송>을 읽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기에 오랜시간 그의 신작들이 많이 쏟아졌음에도 그의 책과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여러번 <일식>(2009,문학동네)을 읽으려 했으나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여러번 덮었을 정도로 그의 글이 단숨에 읽히지 않는다. 매끄러운 길을 다가가도 하나씩 돌맹이가 발끝에 걸리는 것처럼 그의 한문투의 문장이 거칠게 다가온다. 중반의 문턱에 넘어서도 두 주인공의 상념이 물 흐르듯 쉽게 겹쳐치지 않는다.


어딘가 모르게 이어질듯 이어지는 인연 속에서도, 불안정하다. 마치 누군가 젠가 게임을 하는 것처럼 그들이 지탱하는 블록을 하나 빼버리면 어긋나는 것처럼 천재 기타리스트인 마키노 사토시와 프랑스 RFP 통신에 근무하는 고미네 요코와의 관계는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만난 두 사람이 한눈에 반한 것처럼 마음이 맞아들어가지만 이미 요코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미국인 남자친구가 있다. 그녀의 상황을 인식하며 마키노는 자신이 좋아하는 감정을 최대한 낮추려고 하지만 자꾸 요코에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중 마키노는 슬럼프가 오게 되고, 요코 역시 바그다드 취재를 하다가 테러가 일어나게 되고, 외상 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두 사람의 개인적인 마음의 손상에 대해 이야기를 터놓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제외한 안부를 서로 물어나간다. 서로의 일 때문에 타국에서 메일과 화상통화를 통해 주고 받으면서 마키노와 요코는 서로를 마음에 들이게 된다. 결국 요코는 약혼자에게 이별을 통보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만 그녀에게 애원하며 울부짖는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마키노를 만나기 위해 요코는 비행기를 타고 가지만 본의아닌 상황으로 핸드폰을 잃어버리게 되고, 마키노는 누군가에게 부탁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180도 바꿔버리게 된다. 순간의 찰나가 그들의 몇 년을 바꿔버리게 하고, 상황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40대의 사랑은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마키노와 요코의 이어진 마음은 수채화 같으면서도 진한 색채를 드러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져 있더라도 조금만 더 상대방을 향해 손길을 뻗었더라면 현재의 마키노와 요코의 관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어쩔 수 없음이 곧 삶이 될 때가 있어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으로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읽게 된다. 띠지에 붙어 있는 "지금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까?"라는 가슴철렁한 문장 역시 두 사람의 처지를 나타내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책은 열린 결말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끝맺었지만 이것이 과연 연애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세번의 짧은 만남이 두 사람에게 온전히 가슴 속에 서로를 박히게 만들었다. 만남의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번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불이 붙는 것처럼 화한 감정이 오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완벽하게 맺어진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았기에 더 오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읽고 나서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이 다른 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작가이기에 그의 소설이 모두 이런 느낌인지는 모르나 생경한 문체나 문장들이 새롭게 다가왔기에 몇 작품 더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마티네의 끝에서>를 한 번 더 읽어본다면 더 선명하게 두 사람의 마음의 결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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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한없는 시끄러움을 견뎌낸다. 소리뿐만이 아니다. 영상도 냄새도 맛도, 어쩌면 온기 같은 것조차도. ·······모든 것이 앞다투어 오감에 쏟아져 들어와 그 존재를 한껏 소리쳐 주장한다. ·······이 사회는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개인의 시간 감각을 파열시켜서라도 다시금 좀 더 처넣으려 든다. 참을 수가 없다. ·······인간의 피로(疲勞).  이것은 역사적인, 그리고 결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인류는 앞으로 영원히 지속적으로 피로에 지친 존재가 된다. 피로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특징이 되려는가. 모두가 기계나 컴퓨터의 박자에 휘말려 오감을 주물러대는 소란에 시달리고 하루하루를 헉헉거리며 살아간다. 애처로울 만큼 필사적으로.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고서는 찾아올 일이 없는 완전한 정적.' - p.53


젊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육체와의 경계쯤에 매우 가연성이 높은 부분이 있다. 어느 순간 우연한 계기로 ㄱ 한끝에 불이 붙으면 그것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서 손을 댈 수 없게 되고 만다. 그 불길에 상대의 마음이 만나 불타버리면 두 사람은 단지 고통에서 달아나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원할 수밖에 없다. - p.118


『두이노의 비가』에 관해서도 처음 제 1비가가 쓰인 것은 1912년이고 그 장소는 북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 근교에 자리한 두이노 관(館)이었다는 것(요코는 아드리아 해가 내려다보이는 그 절벽 끝의 고성(孤城)을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릴케 자신도 1년 반 동안 소집되었던 제 1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10년의 세월에 걸친 긴 방랑생활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 p.182


"전쟁은 그야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했느냐는 문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거기에 '인류'라는 견지도 있잖아요? 인간으로서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나는 그나마 나았다든가(우리 나라는 괜찮다든가) 그런 상대적인 관점은 어차피 가해자끼리 주고받는 추한 눈짓이죠. 나는 그런거,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피해자라는 건 결코 상대화되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잖아요. '나가사키의 원폭과 런던의 공습을 비교해서 양쪽 모두 지독했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말기도 합시다'라는 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어요.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역시 피해자에 관해서는 인류라는 관점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런 발상 자체가 유럽적이라고 한다면 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다음부터의 논의에는 흥미가 없어요." - p.204~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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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1 - 5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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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시작한 이래로 로마의 일인자를 시작으로 풀잎관, 포르투나의 선택, 카이사르의 여자들에 이어 5부인 카이사르까지 왔다. 길고 머나먼 여정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2015년 7월부터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 감격스럽다. 아마도 7부작까지 모두 완결은을 맺는다면 이보다 더 큰 감동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콜린 매컬로가 쓴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는 그야말로 장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책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15권의 책중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를 무려 두 권에 걸쳐 '카이사르'라는 인물의 매력을 마구마구 쏟아 놓는다. 실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를 공부하면서 그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많은지를 그녀의 저서에서 톡톡히 느낄 수 있었기에 콜린 매컬로가 바라보는 카이사르의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카이사르는 군인으로서, 로마인의 한 사람으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다. 그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곧 로마이고,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로마인이 많았기에 로마의 영광은 하루 아침에 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카이사르는 강인한 군인이자 영예로운 로마인이었기에 그가 가는 길에 안 되는 것이 없었고, 결이 다르지만 그를 지지하며 정치가로서, 군인으로서 입지를 다져 나간다. 그의 단단한 면모 속에서 폼페이우스와 결혼했고, 그의 아이를 낳다가 그녀는 죽음을 맞이한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딸인 율리아의 죽음과 곧 이어 죽음을 맞이한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깊이 슬퍼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슬픔을 부하들에게 알리기 보다는 홀로 슬퍼하며 그들을 애도한다.


이로써 카이사르와 접점을 두었던 폼페이우스와의 관계가 율리아의 죽음으로 인해 흐트러진다. 결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가족이 아닌 경쟁관계로서 만나게 되는 신호탄이었다. '카이사르'는 로마를 통틀어 가장 불세출의 영웅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의 단점으로 꼽는 것이 바로 적은 머리 숱이다. 많은 매력을 갖고 있는 그에게도 없는 것이 머리 숱이니, 늘 그를 말할 때면 항상 언급되는 이야기 인 것 같다. 카이사르에게는 어린 아내가 있음에도 여기저기 정부를 두며 살아가고, 곳곳에 자식을 둔다.


그것이 그에게는 자연스러운듯 리안논과 사랑을 나누고, 아들을 낳았지만 그는 억지로 아들을 '로마인'으로 기르지 않는다. 왕의 딸인 리안논은 카이사르에게 왕을 꿈꾸라고 하지만 그는 단번에 거절한다. 로마에 대항하는 이들을 저지하러 가는 와중에도 그는 각 부족들에게 투항하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대로 조용히 투항하면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헤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존하겠다고 했으나 각 지방에서는 그의 말에 따라 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반기를 들며 격렬하게 저항한다. 카이사르는 조용히 투항한 지역에 대해서는 그의 말대로 약속을 지켰으나 꼼수를 부리는 지방민들에게는 가차없이 그들이 살던 공간을 파괴했다.


그의 생각들,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면 로마의 장단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로마가 이토록 많은 영토를 지배하고 오랫동안 영광의 빛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말하는 로마 공화정의 체제가 잘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귀속된 지방에 대해 로마화하며 그들의 문화를 몰살시키지 않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 주었다. 그들의 지배방식이 오랫동안 로마를 결속 시키며 살아오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카이사르의 행동과 몸짓을 통해 알 수 있다.


중간 중간 시리즈의 공간을 띄우고 책을 읽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카이사르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 그를 보자하는 키케로와 리안논, 폼페이우스가 부각된다. 각각의 자리에서 빛나는 그들 사이에서 카이사르는 갈리아 원정에서의 어려움 속에서도 군인으로서의 용맹함과 영리함으로 임무를 해나간다. 책에서는 영웅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인간 카이사르에 대해 쓰여져 있기에 그저 그가 로마의 한 영웅으로 기억되기 보다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기교와 남다른 지혜가있기에 어려운 돌파구도 잘 바져 나가는 생각이 든다. 그의 딸과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도 결고 좌절되지 않는 강인함과 뼛속까지로 로마인이라는 결계가 어우러진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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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타니아여, 잘 있어라. 나는 너를 그리워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제까지 아무도 가보지 않은 저 너머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이것은 작은 바다가 아니다. 대양이다. 위대한 바다의 신 넵투누스가 사는 곳이요, 우리 고마의 지중해 바깥이다. 어쩌면 내가 늙었을 때, 내 혈통과 권력이 요구하는 모든 과업을 끝마친 뒤에, 다단한 떡갈나무로 만든 베네티족의 배에 올라 가죽으로 만든 돛을 올리고 태양의 길을 따라 서방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 로물루스는 마르스 평원의 염소 늪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 뒤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가 천상의 신이 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영원의 안개 속으로 항해해 가리라.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천상에서 신이 되었다고 믿으리라. 나의 율리아가 있는 곳.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율리아를 포룸 노마눔에서 태우고 영웅들 사이에 묻었다. 하지만 나는 일단 내 혈통과 권력이 요구하는 과업을 전부 끝마쳐야 한다.  - p.62~63


어쩌면 나는 이렇게 끝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율리아 없이 살아간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아, 어째서 여자들이 이렇듯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세상을 움직이는 건 여자들이 아니야, 여자들은 잘못이 없어. 그런데 어째서 여자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여자들은 세상과 단절된 채 가정을 중심으로 살아가지 자식들과 집과 남자들 순서로. 여자들의 타고난 본성이 그러하니까. 그러니 그들에게 자식을 앞에우는 것만큼 잔인한 현실은 없어. 내 삶에서 그 부분은 이제 영원히 문이 닫혔다.  - p.91


카이사르는 움츠리며 리안논의 손을 떨쳐냈다. 그의 눈빛이 번득였다. "리안논, 로마는 왕을 세우지 않소! 나 역시 로마에 왕이 서는 걸 동의하지 않고! 로마는 공화국이고 그 역사가 500년에 이르오! 나는 로마의 일인자가 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로마의 왕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오. 왕정은 구시대의 유물이오. 심지어 당신네 갈라이안들도 깨닫고 있는 사실 아니오. 나라는 선거 제도를 통해 바뀌는 사람들이 운영해야 더욱 번영하는 거요." 그가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최고의 인물이 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선거요. 때로는 최악의 익물이 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 p.170~171


로마는 로마가 낳은 그 누구보다도 훨씬 위대하오. 내가 죽더라도 로마는 계속 다른 위대한 인물들을 낳을 것이오. 내가 떠날 때 로마는 내가 오기 전보다 더 세고 더 부유하고 더 강력해져 있을 것이도. 내 뒤에 올 자들은 내가 남긴 업적을 활용하고 향상시킬 것이오. 민주주의에서는 바보와 현자가 늘 공존하지만, 전반적으로 왕가의 계보다는 낫소. 위대한 왕이 하나 나오려면 보잘것없는 왕은 열 명은 거쳐야 하니까." - p.196~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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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트러몰로지스트 1 - 괴물학자와 제자
릭 얀시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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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을 뗄 수 없는 무서움.


 릭 얀시가 그리고 있는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지금껏 읽어왔던 추리 · 스릴러 소설과 다른 기괴함이 느껴진다. 평소 호러 영화는 잘 보지 않고, 보게 된다면 낮에 보는 편이다. 같은 영화를 볼 때 낮과 밤의 차이는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크게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다. 아무리 무서운 영화라도 낮에 볼 때는 상대적으로 으시시한 무서움이 낮은 반면, 밤에 볼 때는 소리하나, 감촉하나하나가 모두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모르는 누군가가 슬며시 다가와 나를 잡을 것 같은 무서움이 증폭되어 될 수 있으면 혼자 있을 때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영상으로 보는 무서움과 활자를 통해 상상하는 무서움 중 어느 것이 더 무서울까?


워낙 무서움을 많이 타는 터라 호러 근처에는 가지 않았는데 릭 얀시의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기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점에 있어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무서워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는 흡입력과 상상력이 매개되어 작가가 이끌어가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윌리엄 제임스 헨리의 유품인 일기장을 전달받게 되고, 도굴꾼이 발견한 시체를 배달 받는다. '괴물학자'인 워스롭 박사는 조수 윌은 괴이하게 끌어안고 있는 남자와 십대여자의 유골을 바라보며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도려낸다. 마치 그의 수족인 것 마냥 윌을 부려먹는 워스롭 박사는 괴이한 모습들의 괴물들을 바라보면서 인간과는 다른 괴물의 모습을 부각시키며 탐구해 나간다.


마치 옷을 자르듯 자연스럽게 소녀와 함께 붙어있는 덩치가 커다란 괴물은 얼굴이 없다. 그런 그의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윌에게 '수술'하듯 자연스럽게 그들의 몸피를 떼어내고, 표본에 해당하는 것을 빈 표본병에 담아낸다. 열 두살의 고아 소년인 윌은 워스롭의 말에 따라 바쁘게 움직인다. 자연스러운 그들의 모습에 으시시한 무서움을 느끼지만 괴물의 정체가 궁금해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섬뜩한 장면들과 무시무시한 장면들이 오고가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손을 놓을 수 없었다.


표지에서는 십대 아이들의 판타지 같은 느낌을 주는 책으로 보여지지만 <몬스트러몰로지스트>는 19세기 말엽 미국을 배경으로 한 '괴물학자'들의 이야기다. 띠지에 쓰여진 것처럼 "러브크래프트와 스티븐 킹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게 기괴한 성격의 과학자와 인간의 틈으로 자꾸만 파고드는 안트로포파기의 위협과 그들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1권에서 담고 있다. 어린 나이지만 워스롭 박사와 함께 산전수전을 겪어나가는 소년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이 책은 총 4권으로 구성으로 있고, 1권에 이어 4권까지 이어져갈 괴물들의 이야기를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어 읽는 내내 만족감을 주는 책이다. 과학 이론은 물론 재미가 가득한 책이라 이 시리즈를 마칠 때까지 그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여 보고 싶은 작품이다.


틀렸다, 윌 헨리. 우리의 적은 두려움이다. 맹목적이고 비이선적인 두려움이지. 두려움은 진실을 좀먹고 명백한 증거를 오염시키며 잘못된 가정과 비합리적인 결론을 이끌어 낸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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