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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네의 끝에서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오묘한 여운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연애소설.
오래 전에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장송>(2005,문학동네)을 사놓았지만 어마어마한 두께에 손을 못대고 있었다. 왠지 <일식>과 <달>을 읽지 않고서는 <장송>을 읽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기에 오랜시간 그의 신작들이 많이 쏟아졌음에도 그의 책과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여러번 <일식>(2009,문학동네)을 읽으려 했으나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여러번 덮었을 정도로 그의 글이 단숨에 읽히지 않는다. 매끄러운 길을 다가가도 하나씩 돌맹이가 발끝에 걸리는 것처럼 그의 한문투의 문장이 거칠게 다가온다. 중반의 문턱에 넘어서도 두 주인공의 상념이 물 흐르듯 쉽게 겹쳐치지 않는다.
어딘가 모르게 이어질듯 이어지는 인연 속에서도, 불안정하다. 마치 누군가 젠가 게임을 하는 것처럼 그들이 지탱하는 블록을 하나 빼버리면 어긋나는 것처럼 천재 기타리스트인 마키노 사토시와 프랑스 RFP 통신에 근무하는 고미네 요코와의 관계는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의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만난 두 사람이 한눈에 반한 것처럼 마음이 맞아들어가지만 이미 요코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미국인 남자친구가 있다. 그녀의 상황을 인식하며 마키노는 자신이 좋아하는 감정을 최대한 낮추려고 하지만 자꾸 요코에게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던 중 마키노는 슬럼프가 오게 되고, 요코 역시 바그다드 취재를 하다가 테러가 일어나게 되고, 외상 후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두 사람의 개인적인 마음의 손상에 대해 이야기를 터놓지 못하고, 마음의 병을 제외한 안부를 서로 물어나간다. 서로의 일 때문에 타국에서 메일과 화상통화를 통해 주고 받으면서 마키노와 요코는 서로를 마음에 들이게 된다. 결국 요코는 약혼자에게 이별을 통보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자꾸만 그녀에게 애원하며 울부짖는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마키노를 만나기 위해 요코는 비행기를 타고 가지만 본의아닌 상황으로 핸드폰을 잃어버리게 되고, 마키노는 누군가에게 부탁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을 180도 바꿔버리게 된다. 순간의 찰나가 그들의 몇 년을 바꿔버리게 하고, 상황 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40대의 사랑은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마키노와 요코의 이어진 마음은 수채화 같으면서도 진한 색채를 드러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여져 있더라도 조금만 더 상대방을 향해 손길을 뻗었더라면 현재의 마키노와 요코의 관계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어쩔 수 없음이 곧 삶이 될 때가 있어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으로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을 읽게 된다. 띠지에 붙어 있는 "지금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까?"라는 가슴철렁한 문장 역시 두 사람의 처지를 나타내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책은 열린 결말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끝맺었지만 이것이 과연 연애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세번의 짧은 만남이 두 사람에게 온전히 가슴 속에 서로를 박히게 만들었다. 만남의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번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불이 붙는 것처럼 화한 감정이 오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완벽하게 맺어진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았기에 더 오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소설이었다. 읽고 나서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이 다른 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작가이기에 그의 소설이 모두 이런 느낌인지는 모르나 생경한 문체나 문장들이 새롭게 다가왔기에 몇 작품 더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마티네의 끝에서>를 한 번 더 읽어본다면 더 선명하게 두 사람의 마음의 결들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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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한없는 시끄러움을 견뎌낸다. 소리뿐만이 아니다. 영상도 냄새도 맛도, 어쩌면 온기 같은 것조차도. ·······모든 것이 앞다투어 오감에 쏟아져 들어와 그 존재를 한껏 소리쳐 주장한다. ·······이 사회는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개인의 시간 감각을 파열시켜서라도 다시금 좀 더 처넣으려 든다. 참을 수가 없다. ·······인간의 피로(疲勞). 이것은 역사적인, 그리고 결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인류는 앞으로 영원히 지속적으로 피로에 지친 존재가 된다. 피로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특징이 되려는가. 모두가 기계나 컴퓨터의 박자에 휘말려 오감을 주물러대는 소란에 시달리고 하루하루를 헉헉거리며 살아간다. 애처로울 만큼 필사적으로.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고서는 찾아올 일이 없는 완전한 정적.' - p.53
젊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육체와의 경계쯤에 매우 가연성이 높은 부분이 있다. 어느 순간 우연한 계기로 ㄱ 한끝에 불이 붙으면 그것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서 손을 댈 수 없게 되고 만다. 그 불길에 상대의 마음이 만나 불타버리면 두 사람은 단지 고통에서 달아나려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원할 수밖에 없다. - p.118
『두이노의 비가』에 관해서도 처음 제 1비가가 쓰인 것은 1912년이고 그 장소는 북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 근교에 자리한 두이노 관(館)이었다는 것(요코는 아드리아 해가 내려다보이는 그 절벽 끝의 고성(孤城)을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릴케 자신도 1년 반 동안 소집되었던 제 1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10년의 세월에 걸친 긴 방랑생활 끝에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 p.182
"전쟁은 그야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했느냐는 문제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거기에 '인류'라는 견지도 있잖아요? 인간으로서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다른 사람에 비하면 나는 그나마 나았다든가(우리 나라는 괜찮다든가) 그런 상대적인 관점은 어차피 가해자끼리 주고받는 추한 눈짓이죠. 나는 그런거,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요. 피해자라는 건 결코 상대화되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잖아요. '나가사키의 원폭과 런던의 공습을 비교해서 양쪽 모두 지독했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말기도 합시다'라는 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어요.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역시 피해자에 관해서는 인류라는 관점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런 발상 자체가 유럽적이라고 한다면 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다음부터의 논의에는 흥미가 없어요." - p.2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