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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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고픈 어느날 읽게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요즘은 날짜가 언제 가는지, 계절이 가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예전 같으면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에 쓸쓸함을 느끼거나 떨어지는 은행잎을 줏어 모으며 안타까워 했을 시간들이었다. 어떤 요일인줄도 모르고 그저 현재 시간만 확인 할 뿐이었다. 어디든 갈 때마다 가방에는 책 한권은 늘 넣고 다녔으나 그마저도 상황이 안되다 보니 글이 고팠다. 글이 고픈 어느 날, 산뜻하게 들어올릴 수 있는 그의 책을 가방 속에 우겨넣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그의 책을 허겁지겁 읽었다. 유병재라는 사람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TV를 틀편 어디선가 나왔던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어느 날 그가 YG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읽었다. 어떤 임펙트는 없었으나 그가 나온 프로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의 얼굴은 콕 하고 인식이 되었던 그의 글은 제목 그대로 단순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콕콕 찌르는 따가움이 느껴지는 글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될 수 있으면 편독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지만, 단 하나 연예인들이 쓴 책은 읽지 않는다. 몇 번 정도 가수나 배우가 쓴 책을 읽어봤지만 그들의 이름을 내세운 책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고, 습관처럼 그들의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에는 별 기대감 없이 그의 책을 펼쳤다. 글이 고팠던 어느 날 읽게 된 그의 책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내려야 할 역을 한 정거장이나 지날만큼 오롯하게 자신의 글에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아마도 곁에 엄마가 없었더라면 한 정거장이 아니라 여러 정거장을 지나쳤을 만큼 그의 글이 주는 소소한 매력과 따끔 거리는 날카로운 쓴소리가 베어 있는 책이다.


그의 글은 가식이나 허례허식없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책의 첫 장을 펴자 여는 글을 보고 피식~하고 웃었다. 개나 소나 책을 쓴을 쓴다는 그의 글에 웃음이 나면서도 동시에 그런 줄 알면서도 그는 기어코 개나 소의 행렬해 동참했는지 궁금했다. 마치 랩가사 처럼 누군가의 일기장을 삐처리 하나없이 그대로 읽는 기분을 들게하는 그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나의 이야기였고, 우리 사회의 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사회의 거창한 면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남자 혹은 방송작가라 불리는. 그의 나이만큼이나 지나온 시간들을 지나 겪어왔던 그의 생각의 편린들이 잘 벼리워진 글이라 그런지 날렵하게 쓰여진 글에 쿡하고 웃음을 짓다가도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마주하는 그의 글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런 솔직한 속내의 글이라면 연예인의 글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읽지 않겠다는 나의 습관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는 글이다. 때론 그의 할퀴워진 글에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끝내 내뱉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이 사이다를 마시는 것 마냥 뻥하고 뚫어지기도 한다. 절대 욕을 내뱉지 않는 나에게는 그의 글이 시원하고 통쾌한 글이다. 사람이라면 응당 자연적인 배변 현상에 관한 글까지도. 많은 색깔 중에서도 유독 깔끔하면서도 그의 속내가 시커먼 글에 잘 맞는 블랙이 딱이다 싶을 정도로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농담집을 만난 것 같다. 표지를 벗기면 그가 자신을 직접 그린 한 남자가 등장한다. 삶은 농담처럼, 때론 희극처럼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감정들이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간다. 어떤 색채를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내가 결정되는 순간


<매트릭스>의 네오. 빨간 약을 먹고 진실에 눈 뜰 것인가, 파란 약을 먹고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달콤한 인생>의 선우. 보스의 명령대로 희수 애인의 목숨을 빼앗을 것인가, 못 본 척할 것인가.

<다크나이트>의 배트맨. 하비 덴트를 구하러 갈 것인가, 레이첼을 구하러 갈 것인가.

<슬램덩크>의 서태웅. 경기 종료 2초 전 정우성, 신현철의 더블마크를 뚫고 슛을 강행할 것인가, 노마크의 강뱁호에게 패스할 것인가. 이외에도 부지기수.


가만 생각해보면 위 영화, 만화들처럼 내가 누구인지 정의해줄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 드라마틱한 갈등의 순간들은 내 인생에 잘 일어나질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존재인지는,

대부분 담배꽁초 바닥에 버리고, 알바한테 반말하고,

엄마한테 짜증부르고,

이런 기억에도 남지 않을 미세먼지 같은 작은 순간들이

모여 결정되는 것 같다. - P.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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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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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판타지를 넘어선 경이로운 여정의 발길을 내딛다.


  얀 마텔이라는 작가의 책을 접할 때마다 내가 같은 작가를 읽고 있나 싶을 정도로 그의 작품은 하나의 독립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첫번째로 만난 작품이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2013, 작가정신)이었고, 두번째로 만난 작품이 그의 대표작인 특별판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2017,작가정신)이였다. 세번째로 만났지만 얀 마텔은 어떤 점에 있어서 가장 자연친화적이면서 동시에 자연의 모든 현상을 불러 일으키는 바람, 불, 천둥, 지진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천재지변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삶의 슬픔을 말한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사랑과 절망, 생과 사, 각각의 생각의 편린들은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예측하는 것과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여행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뒷표지에 수록되어 있는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추천사처럼 수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얀 마텔의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세상에 절대적인 존재도 없다는 것이다. 세월의 흐름을 뒤로 하고 보면 어느새 절대적인 누군가도 나의 곁을 떠나게 된다. 그것이 가혹한 운명인 동시에 인간이 겪어야 할 슬픔이고 인내라는 것을 그는 누가보다 더 생생하게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 혹은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겪었던 생과 사와 인간의 삶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삶의 희노애락을 곁에서 보고 배우며 자랐다. 시간이 지나 그것이 소멸되고, 행복의 조건이나 소중한 것들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할지라도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이상과 갈망은 늘 함께 결을 같이 해 왔고, 누구나 가장 인간적이고, 내가 누군가임을 확인하기 위한 존재론적 인식을 갈망하며 되돌아보게 만드는 것 같다.


그래서 얀 마텔의 소설은 세명의 주인공이 시공간을 떠나 겪는 상실감이 가혹하면서도 낯설지 않았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삶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나를 다시금 바라보게 만든다.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는 왜 본질을 훼손하고 세속적인 것들에 목을 매고 살아 가고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들기도 한다. 종교를 믿지 않지만 사람들은 오랜 세월부터 자신의 마음을 종교적인 것들에 대한 완벽한 믿음으로 부터 자신을 지켜왔다. 그 누구도 무너뜨리지 못한 단단한 마음을 새기기 위한 인간들의 가장 처절한 방법은 아니었을까?


산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숨이 하늘에 턱까지 차오르고, 발걸음은 모래 주머니를 찬듯 무거운 발걸음으로 하나 둘 이어가며 기꺼이 목적지에 이른다. 인간의 삶 또한 가장 높은 산이 있을까? 어느덧 경지에 다다랐다 싶으면 한 페이지가 넘어가 또다른 산의 초입에 들어서다 보니 인간의 삶에 있어 다다를 산이 있을까 싶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총 3부작으로 되어 있지만 각 인물이 들어간 이야기가 꼭 한 편의 소설 같이 읽힌다. 1904년, 1939년, 1980년 세월의 흐름은 격변하고 있지만 포르투갈 리스본, 브라간사, 캐나다로 이어지는 시공간의 배경이 다르게 이어져 각각의 인물과 배경이 갖는 매혹적인 이야기는 3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다채롭다. 사랑과 아별, 동물들과의 교감이 하나의 연결고리로 들어가 매듭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구성이다. 삶의 변곡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그것으로 하여금 숨이 찰 정도로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얀 마텔의 이야기를 글로 옮길 수 없을 만큼 그는 현실적이면서도 인간의 삶의 근원을 가장 최악의 상황까지 내려간 후에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할 수 있다.


늘 언제 읽어도 생경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채색하는 것도 다르고, 구성 또한 달라 늘, 처음 접하는 것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으로 그의 책을 읽게 된다. 신형철 평론가의 글처럼 그의 이번 작품은 한 번만 읽고 그저 책장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난 후에 다시 펼쳐 들고 읽고 싶을만큼 선연해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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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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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면서도 블랙유머의 진수가 느껴지는 과할 스릴러.


영화 '마션'의 유명세로 영화의 원작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접하는 작가였지만 영화의 흥행만큼이나 앤디 위어의 소설 <마션>은 독자들의 입소문에 이내 베스트셀러가 될만큼 호응이 컸던 작품이다. 페이지가 두툼했지만 그의 필치는 그 어떤 작가에 비견 할 수 없을 정도로 독창적이고, 유머감각이 있다. 소설이라면 어떤 장르든 가리지 않고 보는 나에게는 SF소설은 독특하지만 신선했고, 때론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부터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책이나 영화에서 보는 과학적인 픽션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세상들을 보여준다. 몇 십년 전, 혹은 몇 백년 후의 우리의 모습을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당장 인간의 앞날을 모르는 우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 보다는 두려움, 혹은 살아가야 할 내일에 대해 고민하고 조바심을 느끼곤 한다.

앤디 위어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깨고, 최초로 화성에 발을 디딘 한 남자가 생존을 향한 고군분투기를 그린 것이 <마션>이라면 <아르데미스>는 이전보다 더 깊고 단단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아르테미스>는 달 위에 건설한 도시다. 이번 작품에서의 주인공은 달에서 십수년째 살고 있는 재즈 바샤다. 천재적인 머리를 갖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그는 그가 가고픈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늘, 낙방하여 짐꾼으로 일하고 있다. 부업으로는 밀수도 하며 하루하루 생활을 영위하지만 어느날 그는 돈이 많은 이의 제안을 받게되고, 돈을 위해서라면 가뿐히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가 내놓은 패를 주어 담는다. 그의 미션을 하나하나 성공할 수록 재즈는 생각하지 못한 미로 속으로 뛰어들어가게 되는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앤디 위어의 글은 과학적이면서도 유쾌한 입담을 자랑한다. 피식하며 웃게 되는 블랙유머가 곳곳에 숨어져 있고, 읽다보면 과학적 지식이 풍부하게 베어져 나와 과학과 문학, SF와 스릴러의 조합이 콤비를 이루어 적절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이 좋은 이유는 무조건적인 선과 악이 아니라 유쾌하면서도 따듯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재즈를 중심으로 많은 이들의 사람들이 개성있게 등장함으로서 아르테미스의 인간군상을 다채롭게 그려내고 있다.

분명 그가 그리는 도시는 지금의 우리와 양상이 많이 다르지만 글을 읽다보면 살고 있는 곳만 달랐을 뿐, 인간의 욕망이나 그들이 그리고 있는 인류애에 대한 생각들은 여지없이 우리와 궤를 함께하고 있다. 이토록 박학다식한 수학적인 재능과 과학, 화확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학문이 <아르테미스>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어 읽는 내내 지식적인 재미와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 

또한 소설 《아르테미스》에는 여주인공의 출신지인 사우디아라비아부터 노르웨이, 러시아, 케냐, 라틴아메리카 등의 다양한 인종들이 나옵니다. 달이란 그런 곳이니까요. 미국이나 다른 어떤 나라도 '소유'한 곳이 아니죠. - p.10

앤디 위어의 <아르테미스>를 시작하기 전 서문에 쓰여져 있는 글이다. 그의 글이 좋은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한계를 스스로 그리지 않고 다양한 인종들과 영토, 무구한 신비가 담긴 달에서의 모습들이다. 선을 긋지 않고 기발하게 하늘의 공간에 집을 짓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앤디 위어의 이야기는 그곳에서 매혹적인 도시를 만들고, 다시 그곳에 살고 있는 인물들을 덧대어 기발하고, 놀라운 범죄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의 놀라움과 흥미를 이끌어 낸다. 그 어떤 작품보다 경계를 명확히 그려내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색깔을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아주 재미있다는 말이 아쉬울 정도로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들어가 그가 그려내는 도시 속의 인물이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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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그루입니다 1
최라온 지음 / 발해커뮤니케이션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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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큰 나무로 성장해가는 이야기.


 몇 년전에 외갓집에 갔을 때, 도토리를 주으러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엄마가 어렸을 때 뛰어놀던 언덕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엄마가 꼬꼬마였을 때 작은 묘목이었던 나무는 엄마의 나이만큼이나 우뚝 자라있었고, 그 나무들이 울창하고 빽빽해 산을 뒤덮고 있었다. 큰 소나무가 되기까지 나무는 오랜시간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지난한 삶을 살았을 것이고, 모든 것을 이겨내고 한그루의 어른나무가 되기까지 긴과정을 거쳐왔다. 엄마의 어린시절을 함께 한 나무는 수많은 세월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체감하며 그 곳에 오랫동안 버텨왔구나 싶었는데 문득 최라온 작가의 <나는 한그루 입니다>를 읽으니 그때 생각이 난다.


주인공 그루는 폐쇄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아이지만 누구보다 맑은 아이다. 책은 그루의 시점으로 쓰여져 있는데 그루를 형성하고 있는 엄마, 아빠, 누나 담홍, 동생 담빛, 민우성 교수,옆집 누나 제나, 나무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그루 역시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주는 아이가 아니기에 늘, 핸디캡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을 더듬거리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누구보다 편견이 없이 마음과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루에게 있어서는 엄마 혜란과 그루의 피아노 레슨을 도와주는 민우성 교수와 동생 담빛, 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제나 누나만이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이였다. 반대로 아빠와 누나 담홍은 무심하면서도 냉혹하게 폭력을 행사하며 그루를 짓밟았다. 어린시절 두 사람에게 많은 핍박을 받으며 생활했지만 그루에게 있어서는 그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이가 많아 서러운 어린 시절을 겪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들이 그에게는 빛이 아니었을까 싶다.


1권의 내용이 그루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면 2권은 소년이었던 아이가 성장해 큰 나무가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1권과 2권의 이야기 사이에 10년의 격차가 있었다고 집필후기에 써 놓았을 정도로 두 권의 이야기가 세월만큼이나 다른 모습의 이야기가 꾸며져 있다. 어린아이였을 때도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았던 그루와 제나가 어른이 되어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더없이 단단하게 그려져 있다. 말하는 것에 있어 소질은 없었지만 피아노 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던 천재소년이었던 그루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있고, 제나는 유학 후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취직했다. 제나의 유학길에 올랐을 때 두 사람이 떨어져 있었지만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이어져 어른으로서의 사랑을 하며 점점 더 관계가 깊게 이어진다.


<나는 한그루 입니다>는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은 아니지만 한 남자의 성장이야기이자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는 천재소년의 가족사이기도 하다. 성장이야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족사 역시 그루에게 있어서 많은 시련을 줬지만 어른으로서 그 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알을 깨고 나아가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좋은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는데 삶을 살다보면 어렸을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느낄 때가 많다.


최라온 작가의 책 역시 아이의 시점에서 볼 때와 어른이 된 그루의 시점이 달랐던 이유가 세월의 흐름이었다고 말했지만 어른의 삶 역시 다르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비로소 어른이 되어야만 달콤쌉싸름하게 느끼는 것 또한 우리의 인생사가 아닌가 싶다. 현란하게 피아노를 익히는 과정을 보며 음악에 문외한인 독자가 읽었을 때도 그런 느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찬란하게 느껴졌다.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지는 면면들이 한계가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나아가려는 시도를 하는 그들의 모습들이 좋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그루가 항상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하고자 하는 것에 굽히지 않고 성장해가는 과정이 좋았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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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위에 우뚝 서란 소리가 아니야. 너로서 그냥 존재하면 되는 거야. 경쟁적인 삶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단다. 우린 각자가 창의적으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어. 그런 삶은 누구에게도 이익이지." 그의 말이 아련하게 와 닿았다. 나로서 존재하면 된다는 것. 누굴 밝고 일어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

"뭔가를 하는 데 있어 부담을 완전히 털어 내야 한단다. 특히, 교수님이 내 작은 손을 다정하게 감싸 쥐었다. "오늘은 좋지 않은 자세를 좀 봐줄게." 그가 내 곁에 나란히 않았다. "손 모양을 최대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달걀을 쥔듯이. 기억하지? 손목의 긴장을 풀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되지. 피아노는 마라톤 같은 거야.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해야 하잖이. 그렇게." -1권  p.110


음악은 그냥 공기 같았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듯이. 숨을 쉰다고 그게 중독이라곤 하지 않지 않은가. -1권 p. 179


쇼팽의 녹턴 20번. 피아노의 시인답게 피아노 하나만을 사랑했던 남자. 잔잔하고 달콤하지만 마냥 그런 느낌만 있진 않다. 녹턴에는 슬픔과 사랑, 기쁨, 고통까지 인간이라면 지니고 있는 모든 감정들이 다 녹아 있었다. 단순하지만 뛰어난 예술성이 있어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곡이 바로 논턴이었다. - 1궈 p.180

 

[근데 완벽한 아빠란 게 사실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흠없는 사람 어디 있어. 스스로를 완벽한 아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실수를 더 많이 하고도 바로잡지 않아. 착각에 빠져 사는 거지. 그런 사람들이 더 무서워. 잘못을 저질러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거든. 일단 너는 그런 착각은 안 할 것 같고, 뭐 그런 점에선 나쁘지 않아. 자기반성이란 걸 하겠지, 끈임없이.] - 2권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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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리미널 씽킹 - 변화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데이브 그레이 지음, 양희경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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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만의 벽을 변화 시키는 방법.


 예전부터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고, 강한 이 또한 인간이라는 생각이든다.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기도 한 동시에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인간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해낸다. 그래서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무한대라고 하지만 그 생각을 바꿀 수 없는 것 또한 우리의 한계이기도 하다. 어느 때는 인간의 그런 능력에 놀라기도 하지만 인류 역사상에 그런 인물들이 손에 꼽는 반면 우리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고, 매일 매주 매시간 생각의 경계에서 생각이 막히거나 한계의 벽을 뛰어 넘지 못해 내가 생각하는 공간 안에서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이해하는가'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p.78)


책을 보면 이해는 하지만 스스로 생각의 경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 뛰기를 하고 만다. 생각의 영역은 한없이 펼쳐져 있지만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의 범위는 내 방의 크기보다 더 작게 느껴질 때가 많다. 데이브 그레이의 책을 읽다보니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던 맹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부채꼴처럼 생각이 펼쳐져 있다가도 어느새 길을 잃거나, 다시 좁아진 틈 사이로 생각을 꼬아대곤 하는데 그는 그런 우리의 눈을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원한다.


 객관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구를 가진다. 우리는 물과 음식, 그리고, 안식처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일하고 쇼핑하며 점심을 먹는 등의 행위를 한다. 그리고 이들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더 멋진 집과 자동차 같은, 보다 큰 의미와 목표를 지향하는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욕구가 생겨난다. 따라서 '사사로운 감정은 문간에 남겨두라'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 감정은 외투마냥 벗어서 문간에 걸어둘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 p.135 


종종 화가 나거나 속이 상할 때 그때의 감정을 갖고 오지 말고 그 자리에 꽁꽁 묶어둘 때가 있다. 물론 그 감정을 그 자리에 묶어두고 오기란 쉽지 않고, 잔재들이 가슴 속에 남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함께 그 무거운 감정들을 차에 태우지 않으려 한다. 그런 조언들을 엄마의 말을 통해 들으며 감정의 분리를 하려고 하지만 매번 쉽지 않다고 여겼는데, 그런 분리를 그는 하지 말라고 한다. 인간의 감정은 절대 객관화 될 수 없고, 나를 항상 중심점에 두고 있기에 객관화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사람은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의 방향을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생각의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필요성과 대처법을 저자는 그림과 그래프를 통해 명확히 설명해 놓았다. 세밀하고도 자세한 설명이 좋았고, 알고 있음에도 다시근 실천해 보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담겨져 있는 책이다.


오롯하게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의 한계를 한 순간에 바꿀 수는 없으나 점점 능동적인 생각과 표현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다. 결국 편견은 남이 하는 것도 있지만 나 자신이 스스로 옭아매고 있는 하나의 습관이자 끈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 끈의 매듭을 풀어 생각을 풀어둘 수 있는 것 또한 나 자신이 아닌가 싶다. 새로운 사고방식과 생각의 유연성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좀 더 넓은 생각의 면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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