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한그루입니다 1
최라온 지음 / 발해커뮤니케이션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어린아이가 큰 나무로 성장해가는 이야기.
몇 년전에 외갓집에 갔을 때, 도토리를 주으러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엄마가 어렸을 때 뛰어놀던 언덕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엄마가 꼬꼬마였을 때 작은 묘목이었던 나무는 엄마의 나이만큼이나 우뚝 자라있었고, 그 나무들이 울창하고 빽빽해 산을 뒤덮고 있었다. 큰 소나무가 되기까지 나무는 오랜시간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지난한 삶을 살았을 것이고, 모든 것을 이겨내고 한그루의 어른나무가 되기까지 긴과정을 거쳐왔다. 엄마의 어린시절을 함께 한 나무는 수많은 세월동안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체감하며 그 곳에 오랫동안 버텨왔구나 싶었는데 문득 최라온 작가의 <나는 한그루 입니다>를 읽으니 그때 생각이 난다.
주인공 그루는 폐쇄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아이지만 누구보다 맑은 아이다. 책은 그루의 시점으로 쓰여져 있는데 그루를 형성하고 있는 엄마, 아빠, 누나 담홍, 동생 담빛, 민우성 교수,옆집 누나 제나, 나무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그루 역시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을 주는 아이가 아니기에 늘, 핸디캡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을 더듬거리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누구보다 편견이 없이 마음과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루에게 있어서는 엄마 혜란과 그루의 피아노 레슨을 도와주는 민우성 교수와 동생 담빛, 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제나 누나만이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이였다. 반대로 아빠와 누나 담홍은 무심하면서도 냉혹하게 폭력을 행사하며 그루를 짓밟았다. 어린시절 두 사람에게 많은 핍박을 받으며 생활했지만 그루에게 있어서는 그를 더 행복하게 해주는 이가 많아 서러운 어린 시절을 겪지 않도록 도와주는 이들이 그에게는 빛이 아니었을까 싶다.
1권의 내용이 그루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면 2권은 소년이었던 아이가 성장해 큰 나무가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1권과 2권의 이야기 사이에 10년의 격차가 있었다고 집필후기에 써 놓았을 정도로 두 권의 이야기가 세월만큼이나 다른 모습의 이야기가 꾸며져 있다. 어린아이였을 때도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았던 그루와 제나가 어른이 되어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더없이 단단하게 그려져 있다. 말하는 것에 있어 소질은 없었지만 피아노 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던 천재소년이었던 그루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살고 있고, 제나는 유학 후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취직했다. 제나의 유학길에 올랐을 때 두 사람이 떨어져 있었지만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두 사람의 인연은 다시 이어져 어른으로서의 사랑을 하며 점점 더 관계가 깊게 이어진다.
<나는 한그루 입니다>는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은 아니지만 한 남자의 성장이야기이자 음악을 너무도 사랑하는 천재소년의 가족사이기도 하다. 성장이야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족사 역시 그루에게 있어서 많은 시련을 줬지만 어른으로서 그 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라 알을 깨고 나아가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누군가 이 세상에서 '좋은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을 경청하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는데 삶을 살다보면 어렸을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느낄 때가 많다.
최라온 작가의 책 역시 아이의 시점에서 볼 때와 어른이 된 그루의 시점이 달랐던 이유가 세월의 흐름이었다고 말했지만 어른의 삶 역시 다르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비로소 어른이 되어야만 달콤쌉싸름하게 느끼는 것 또한 우리의 인생사가 아닌가 싶다. 현란하게 피아노를 익히는 과정을 보며 음악에 문외한인 독자가 읽었을 때도 그런 느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찬란하게 느껴졌다. 각각의 인물들이 보여지는 면면들이 한계가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나아가려는 시도를 하는 그들의 모습들이 좋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그루가 항상 자신을 의심하면서도 하고자 하는 것에 굽히지 않고 성장해가는 과정이 좋았던 책이었다.
---
"그들 위에 우뚝 서란 소리가 아니야. 너로서 그냥 존재하면 되는 거야. 경쟁적인 삶은 우리에게 의미가 없단다. 우린 각자가 창의적으로 살아야 할 필요가 있어. 그런 삶은 누구에게도 이익이지." 그의 말이 아련하게 와 닿았다. 나로서 존재하면 된다는 것. 누굴 밝고 일어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
"뭔가를 하는 데 있어 부담을 완전히 털어 내야 한단다. 특히, 교수님이 내 작은 손을 다정하게 감싸 쥐었다. "오늘은 좋지 않은 자세를 좀 봐줄게." 그가 내 곁에 나란히 않았다. "손 모양을 최대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달걀을 쥔듯이. 기억하지? 손목의 긴장을 풀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되지. 피아노는 마라톤 같은 거야.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함께해야 하잖이. 그렇게." -1권 p.110
음악은 그냥 공기 같았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듯이. 숨을 쉰다고 그게 중독이라곤 하지 않지 않은가. -1권 p. 179
쇼팽의 녹턴 20번. 피아노의 시인답게 피아노 하나만을 사랑했던 남자. 잔잔하고 달콤하지만 마냥 그런 느낌만 있진 않다. 녹턴에는 슬픔과 사랑, 기쁨, 고통까지 인간이라면 지니고 있는 모든 감정들이 다 녹아 있었다. 단순하지만 뛰어난 예술성이 있어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곡이 바로 논턴이었다. - 1궈 p.180
[근데 완벽한 아빠란 게 사실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흠없는 사람 어디 있어. 스스로를 완벽한 아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실수를 더 많이 하고도 바로잡지 않아. 착각에 빠져 사는 거지. 그런 사람들이 더 무서워. 잘못을 저질러도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거든. 일단 너는 그런 착각은 안 할 것 같고, 뭐 그런 점에선 나쁘지 않아. 자기반성이란 걸 하겠지, 끈임없이.] - 2권 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