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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평점 :
글이 고픈 어느날 읽게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요즘은 날짜가 언제 가는지, 계절이 가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예전 같으면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에 쓸쓸함을 느끼거나 떨어지는 은행잎을 줏어 모으며 안타까워 했을 시간들이었다. 어떤 요일인줄도 모르고 그저 현재 시간만 확인 할 뿐이었다. 어디든 갈 때마다 가방에는 책 한권은 늘 넣고 다녔으나 그마저도 상황이 안되다 보니 글이 고팠다. 글이 고픈 어느 날, 산뜻하게 들어올릴 수 있는 그의 책을 가방 속에 우겨넣고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그의 책을 허겁지겁 읽었다. 유병재라는 사람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TV를 틀편 어디선가 나왔던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어느 날 그가 YG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읽었다. 어떤 임펙트는 없었으나 그가 나온 프로는 기억하지 못해도 그의 얼굴은 콕 하고 인식이 되었던 그의 글은 제목 그대로 단순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콕콕 찌르는 따가움이 느껴지는 글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될 수 있으면 편독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지만, 단 하나 연예인들이 쓴 책은 읽지 않는다. 몇 번 정도 가수나 배우가 쓴 책을 읽어봤지만 그들의 이름을 내세운 책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고, 습관처럼 그들의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에는 별 기대감 없이 그의 책을 펼쳤다. 글이 고팠던 어느 날 읽게 된 그의 책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내려야 할 역을 한 정거장이나 지날만큼 오롯하게 자신의 글에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아마도 곁에 엄마가 없었더라면 한 정거장이 아니라 여러 정거장을 지나쳤을 만큼 그의 글이 주는 소소한 매력과 따끔 거리는 날카로운 쓴소리가 베어 있는 책이다.
그의 글은 가식이나 허례허식없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책의 첫 장을 펴자 여는 글을 보고 피식~하고 웃었다. 개나 소나 책을 쓴을 쓴다는 그의 글에 웃음이 나면서도 동시에 그런 줄 알면서도 그는 기어코 개나 소의 행렬해 동참했는지 궁금했다. 마치 랩가사 처럼 누군가의 일기장을 삐처리 하나없이 그대로 읽는 기분을 들게하는 그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인 동시에 나의 이야기였고, 우리 사회의 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사회의 거창한 면이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남자,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남자 혹은 방송작가라 불리는. 그의 나이만큼이나 지나온 시간들을 지나 겪어왔던 그의 생각의 편린들이 잘 벼리워진 글이라 그런지 날렵하게 쓰여진 글에 쿡하고 웃음을 짓다가도 다시 진지한 얼굴로 마주하는 그의 글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런 솔직한 속내의 글이라면 연예인의 글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읽지 않겠다는 나의 습관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는 글이다. 때론 그의 할퀴워진 글에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끝내 내뱉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이 사이다를 마시는 것 마냥 뻥하고 뚫어지기도 한다. 절대 욕을 내뱉지 않는 나에게는 그의 글이 시원하고 통쾌한 글이다. 사람이라면 응당 자연적인 배변 현상에 관한 글까지도. 많은 색깔 중에서도 유독 깔끔하면서도 그의 속내가 시커먼 글에 잘 맞는 블랙이 딱이다 싶을 정도로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농담집을 만난 것 같다. 표지를 벗기면 그가 자신을 직접 그린 한 남자가 등장한다. 삶은 농담처럼, 때론 희극처럼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감정들이 주마등같이 스쳐지나간다. 어떤 색채를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내가 결정되는 순간
<매트릭스>의 네오. 빨간 약을 먹고 진실에 눈 뜰 것인가, 파란 약을 먹고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달콤한 인생>의 선우. 보스의 명령대로 희수 애인의 목숨을 빼앗을 것인가, 못 본 척할 것인가.
<다크나이트>의 배트맨. 하비 덴트를 구하러 갈 것인가, 레이첼을 구하러 갈 것인가.
<슬램덩크>의 서태웅. 경기 종료 2초 전 정우성, 신현철의 더블마크를 뚫고 슛을 강행할 것인가, 노마크의 강뱁호에게 패스할 것인가. 이외에도 부지기수.
가만 생각해보면 위 영화, 만화들처럼 내가 누구인지 정의해줄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 드라마틱한 갈등의 순간들은 내 인생에 잘 일어나질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존재인지는,
대부분 담배꽁초 바닥에 버리고, 알바한테 반말하고,
엄마한테 짜증부르고,
이런 기억에도 남지 않을 미세먼지 같은 작은 순간들이
모여 결정되는 것 같다. - P.148~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