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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알고 있으나 깊이 알지 못했던 추사의 삶과 예술
알쓸신잡 2에서 나왔던 제주도편에서 추사 선생의 세한도를 본따서 만든 제주추사관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유시민 작가가 들어가 추사 김정희 선생에 대한 소개와 함께 세한도에 관한 이야기도 곁들이면서. 제주도의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멋진 기념관이 있는지 몰랐다. 다음에 제주도를 가본다면 꼭 들러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으나 왜 제주도에 추사를 기념하는 공간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교과서를 통해 그의 이름과 호, 그의 글씨들, 그림으로 남겨 놓은 저작들을 몇 작품 알고 있으나 그가 언제적 사람인지 무슨 일을 했고, 그의 삶은 어떠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추사 김정희로 알고 있었기에 유홍준 교수의 <완당평전>이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인지도 몰랐다. 그저 다른 인물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다. 알고 있으나 깊이 알지 못했던 추사의 이야기를 유홍준 교수는 <추사 김정희>를 통해 이전에 출간되었던 <완당평전>의 오류를 바로 잡고 한 권의 책으로 다시 출간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깊이 알지 못했던 한 선비이자 예술가의 이야기는 산과 바다에 비유한 것처럼 높고 깊다. 경주 김씨 월성위 집안에서 태어난 추사 김정희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판서로 지낸 김노경이고 어머니는 김제군수를 지낸 유준주의 딸인 기계 유씨다. 그의 집안은 순조 시대때 세도정치에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안동 김씨, 풍양 조씨, 풍산 홍씨와 더불어 가세를 자랑했는데 추사의 고조 할아버지가 영의정, 증조 할아버지가 영조 대왕의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했기에 대대로 권력과 부를 축척했던 이유가 아닌가 싶다. 더불어 영조의 비였던 정순왕후 역시 경주 김씨의 사람이였기에 그의 탄탄한 입신양면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귀한 집 종손으로 한껏 귀여움을 받았으나 열살을 넘어서는 대들보였던 양아버지, 할아버지가 타계하게 된다. 그의 삶에 있어서 예술과 학문은 누구도 막을 수 없이 쭉쭉 뻗어갔지만 그의 식솔들은 그가 깊이 뿌리를 내린만큼 명을 다하지 못한다. 그의 생애에 있어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 뿐만 아니라 스승, 벗의 죽음까지도 그의 삶에 깊숙히 파고든다. 그럴 때마다 그는 글을 통해 그를 기리게 되지만, 그가 제주도로 위리안치라는 형을 받아 그곳에 머물렀을 때도 그는 아내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그의 탄탄한 집안을 뒤로하고 그가 영향을 받고 인연을 이어갔던 이들 중에서는 스승 박제가와 다산 선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의외의 사제지간이었던 추사 김정희와 박제가의 만남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위치적으로 추사는 귀한 대갓집 자제였고, 박제가는 서출 출신이었으나 청년 김정희는 그를 잘 따랐다. 훗날 박제가가 죽은 뒤에 그의 영향을 받아 추사 김정희가 청나라 연경에 간다. 신분의 차이 때문이었는지 그와 박제가는 서로를 존중하며 서신을 이어받았다고 전해진다. 책은 그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삶과 예술, 학문에 관한 이야기가 잘 그려져 있으나 그가 때때로 써내려간 글귀가 때때로 정갈하기도 하고 힘이 느껴지기도 하다가 때론 일부러 흘려쓴 글씨를 마주 하기도 한다. 글씨에 대한 평가는 내릴 수 없음으로 그가 써내려간 작품들을 알아가듯 페이지마다 정성가득한 그의 글씨와 그림들이 수록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가득한 책이었다.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책이었고, 무엇보다 세월이 흘러 변해가는 그의 글씨체를 보는 재미를 준다.
너는 열심히 읽고 가르침에 따르고 정밀하게 생각하고 힘껏 실천한즉 사람의 도에 이를 것이니 열심히 공부할지어다. 때는 경진년(1820) 5월 초승달이 뜬 지 사흘이 지난 날(6일) 아비가 쓰다.
자식에게 줄 교과서로 쓴 것이기 때문에 그 글씨를 보면 아주 모범적인 해서체로, 필획마다 강철을 오려놓은 것 같은 굳센 힘이 느껴진다. 자신은 개성을 추구하지만 자식은 정도로 가기를 희망하는 아비의 마음이 그렇게 서려있다. - p.149
더불어 그의 본처가 죽고 다시 얻은 부인에게 자식이 없어 첩에게서 낳은 아들인 상우가 태어난 것이 반갑고 기뻤는지 그는 유려한 글씨로 아들을 위해 <동몽선습>을 직접 필사한다. 예전에 드라마 '이산'에서 정조가 아들인 문효세자의 공부를 돕기 위해 직접 필사를 했다며 의빈 성씨에게 건네는 장면이 나오는데 추사 역시 직접 필사를 해서 묵은 책 뒤에 아비의 마음을 담아 글을 몇 자 적어 놓았다. 후세에 남길 정도로 대단한 작품도 좋았지만 아들에게, 벗에게 남긴 편지들을 통해 당시의 추사의 마음을 알아갈 수 있어서 그 부분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눈길을 사로 잡았다.
이를 보면 추사는 인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승 박제가를 만난 것, 연경에서 옹방강과 완원을 만난 것, 벗 조인영이 죽음에서 그를 구원한 것, 초의와 권돈인 같은 평생의 지우를 얻은 것 모두가 큰 인복이 아닐 수 없다. 복은 덕으로 인해 받는다고 했으니 추사의 인덕이 인복으로 내린 것이리라. - p.257
그의 삶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그를 도와주지만 그가 어렸을 적 예지적으로 예언을 했던 채제공의 일화도 기억에 남는다. 앞을 내다본 그는 추사의 평탄하지 못한 삶을 알았던 것처럼 추사 김정희는 두 번의 유배길에 오른다. 척박했던 제주도에서의 유배는 그의 삶을 압박했지만 알고자 하는 학자로서의 삶은 꺾지 못했다. 때때로 까다로운 입맛을 자랑하는 그의 편지가 식솔들에게 전해져 그가 어떻게 살고 있으며, 주변에서 식재료를 구할 수 없기에 식솔들에게 당부와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내려보내라는 전갈이 전해진다.
후에 그의 연구를 우리의 학자가 아닌 조선 북학파를 깊이 연구한 후지쓰카 지카시와 그의 아들인 아키나오가 이어 받아 청나라 학술 연구를 비롯 추사 연구에 힘썼다. 청조학 연구의 일인자였던 그는 추사 김정희가 학문의 핵심이라고 했을 정도로 추사의 학문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다. 그가 연구하면서 모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업적과 귀한 작품 역시 그의 손에서 얻을 수 있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 역시 책의 중반부에 세한도를 얻는 과정이 세세하게 나온다. 우리가 훗날 이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과정은 드라마틱했으며, 한 사람의 열정이 가져다 준 효과는 어마어마했음을 알 수 있다. 이토록 다양하고 다채로운 추사의 예술과 학문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다변적으로 느껴졌다. 한 권의 압축된 액기스는 두고두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추사 김정희를 말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