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웅진 세계그림책 102
볼프 에를브루흐 글.그림, 김경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작게 삶으로 70 그림책 읽기어주기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

볼프 에를브루흐

김경연 옮김

웅진주니어

2006.11.15.



아침을 먹고 티브이를 보는 짝한테 “그림책 읽어 줄까?” 하고 묻는다. 고개를 끄떡한다. 짝한테 다가간다. 바닥에 그림책을 셋 내려놓는다. “자, 하나 골라 보소.” 짝은 《생쥐와 고래》하고 《작은 새가 좋아요》하고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를 보더니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를 손짓한다.


티브이를 끈다. 그림책은 그림을 함께 보아야 하니 나란히 앉아야 한다. 짝 곁에 앉아서 천천히 넘긴다.


첫 쪽을 펼쳤다. 자리 등받이에 검은 지빠귀가 앉았다. 다음 쪽을 보니, 아주머니는 다림질을 하고, 사다리에 올라가고, 차를 마신다. 이윽고 딸기코 아저씨가 나온다. 천천히 그림을 살피라고 첫 쪽보다 오래 펼친다.


그런데, 그림을 보던 짝이 하품을 한다. 아직 소리내어 읽지도 않고 그림만 보여주었는데 벌써 하품을 하다니. 아이쿠나, 빨리 읽어야겠구나.


짝은 그림을 보고, 나는 글을 소리내어 읽는다. 예전에 아이한테 읽어 줄 적처럼 재미있게 말씨를 섞어서 읽어 주고 싶은데, 쑥스럽기도 하고, 따분해서 안 듣는다고 할까 싶어 그냥 읽는다. 


짝은 슬그머니 왼쪽 팔을 빼더니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머리를 내 머리에 맞댄다. 쭉쭉 글을 읽는다. 짝은 끝까지 얌전하게 듣는다. 이제 책을 덮는다. 


“그림책 처음 읽죠? 어땠어요?”

“그래. 처음 읽지.”

“책에 나오는 딸기코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지 생각나요?”

“뭐라고 했는데?”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하구려’ 하는 말이 몇 번 나오잖아요.”

“……. 내가 동화책 읽을 군번이가? ‘동물농장’이나 보거르 티브이나 틀어라.”


아, 이게 아닌데. 내가 잘못 물었나. 싱긋 웃기만 하는 짝 마음을 읽을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처음으로 짝한테 책을 읽어 주고, 짝이 처음으로 그림책을 읽고, 둘이 함께 책을 읽으니 그냥 좋다.


첫걸음을 뗐으니, 남은 두 책은 흉내를 내며 재밌게 읽어 주면 재밌는 대꾸를 들으려나. 우리가 함께 책을 읽는 날도 있구나. 책을 품에 안고 방으로 들어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실실 웃는다.


곰곰이 돌아오면, 짝이 여태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예전에 짝이 일하던 곳에서 ‘업무평가 시험’ 이 있을 적에만 ‘업무평가하고 얽힌 책’만 펼쳤다. 그때 일하며 살필 법규만 읽었다.


어제 〈실비아〉라는 영화를 보고 음악다방에서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짝하고 같이 노래를 부른 뒤로 아픈 몸이 다 나았단다. 노래하는 부부처럼 우리도 부부가 함께 할 놀이가 있을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쭉 하게 두다가, 오늘처럼 책도 함께 읽고, 가끔 내가 쓴 글을 읽어 주면 되나. 내가 너무 바라는 셈일까.


《날아라, 꼬마 지빠귀야》를 보면, 그림책에 나오는 아줌마는 어느 날 마당에 홀로 떨어진 새끼 지빠귀를 보았고, 이리저리 걱정만 하다가 끝까지 돌보았고, 마침내 새끼 지빠귀가 어른으로 큰 뒤, 같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멍하니 노을을 바라보았다. 새가 날려면 아줌마 스스로 어미 새처럼 하늘을 날아야 할 텐데, 뚱뚱한 몸집인 아주머니는 그저 걱정만 가득했다. 이동안 아저씨는 바깥일만 하다가, 집에서는 신문만 펼 뿐이었다.


그런데 아줌마가 나뭇가지에서 스르르 몸을 내리더니 가볍게 날았다. 새끼 지빠귀는 이 모습을 보고는 매우 놀라면서 기뻐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시큰둥하다. 아줌마는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날 뒤로 조금씩 마음을 가다듬고서, 마음에서 걱정을 치우고, 오직 하늘날기만 바랐다.


이리하여 드디어 하늘을 가볍게 나는 ‘꼬마 새 같은’ 아줌마로 거듭났고, ‘다 자란 지빠귀’는 아줌마가 하는 날갯짓을 지켜보면서 나란히 하늘을 난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저씨는 아줌마가 하늘을 날아도 무덤덤하다. 아무래도 꿈이 없는 사람은 놀랄 일도, 기뻐할 일도, 새롭게 바꿀 일도 없구나 싶다. 나도 작은 새하고 물끄러미 노을을 바라보다가 하늘을 날 수 있을 때를 그려 본다.


2024.01.07.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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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나온 새 정채봉 전집 중단편 1
정채봉 지음, 김동성 그림 / 샘터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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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69 느티나무



《물에서 나온 새》

정채봉 지음

샘터

2006.9.15.



《물에서 나온 새》를 읽었다. ‘어린새’ 이야기는 봉황과 허수아비를 다룬다. 짚으로 여민 몸에 마음이 들어와서 참말로 숨결이 있기를 바라는 허수아비는 들새를 불러서 쉬라 하고, 배를 채우라 하고 싶다. 그렇지만 스스로 들판에 선 허수아비가 아닌 터라, 허름한 옷을 걸친 채 들새를 훠이훠이 쫓아야 한다.


예전에 안동 도산면에서 일하던 날을 떠올린다. 그때 내가 살던 집에서 일터 사이는 오십사 킬로미터 길이었다. 오가는 길이 꽤 멀었는데, 오히려 길이 멀기에 철마다 다른 들빛과 꽃빛을 누리기도 했다. 도라지꽃을 보고, 허수아비를 만나고, 낯선 들꽃을 보면 이름이 뭘까 하고 한참 헤아리던 나날이다.


기차가 다니는 북후면 쪽으로 오갈 적에는 으레 일찍 기차역으로 나왔다. 혼자 논두렁길을 걸으며 벼냄새를 맡았다. 봄에는 매화를 보고, 꽃이 지면 시냇물을 보고, 철길을 건너 멧비탈을 다녀오기도 했다. 일터에서는 낮밥 즈음에 슬쩍 냇가로 가서 꽃을 보았고, 저물녘에는 별바라기를 했다. 곁에 있는 느티나무한테 가서 차도 마시고 빗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느티나무가 잘렸다. 나무가 크게 선 곳에 정자를 지어야 한다면서, 나뭇가지가 걸리적거리니 나무를 잘라야 한다더라.


여러 일꾼은 전기톱으로 굵다란 나무를 베어 넘기고 잘랐다. 왜 나무를 베고서 정자를 세워야 할까? 나무 곁에 알맞게 정자를 세울 수 없을까? 전기톱에 줄기가 잘리고 가지가 잘리는 느티나무는 톱밥을 잔뜩 내놓았다. 수북하게 쌓이는 톱밥은 느티나무가 흘리는 피 같았다.


다 잘린 느티나무를 바라보다가 일꾼 아저씨한테 말을 여쭈었다. 앉은걸상 크기만 한 둥치를 하나 얻었다. 어쩐지 느티나무를 곁에 두고 싶었다. 혼자 들 수 없을 만큼 묵직한 둥치를 집으로 실어 날랐다.


《물에서 나온 새》에는 ‘나무를 때리는 아저씨’ 이야기가 나온다. 나무도 사람처럼 아플 텐데, 우리는 자꾸 잊어버리는 듯하다. 나무하고 마음을 나누고 말을 섞던 눈망울을 잊어버린 탓일까. 나뭇가지에 앉던 새는 어떤 마음일까. 우리는 새한테 물어보고서 나무를 베는가? 나무한테도 새한테도 땅한테도 아무 말을 묻지 않고서 자꾸자꾸 높다란 건물만 올리는 우리들, 사람이지 않을까?


2023.11.07.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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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식물 - 속이고 이용하고 동맹을 통해 생존하는 식물들의 놀라운 투쟁기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존 전략 3부작 1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김선숙 옮김 / 더숲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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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68 싸우는 곳


《싸우는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김선숙 옮김

더숲

2018.10.29.



《싸우는 식물》은 풀꽃이 풀꽃 나름대로 싸우면서 목숨을 이어간다는 줄거리를 들려준다. 그런데 참말로 풀꽃은 싸우면서 살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풀꽃을 바라볼 적마다, 또 풀잎과 꽃송이를 쓰다듬을 적마다 온마음이 녹고 느긋한데, 싸우는 풀꽃이라면 내 마음도 사람들 마음도 달랠 수 없는 셈 아닐까?


“싸우는 풀꽃”이 아닌 “어울리는 풀꽃”이라고 생각한다. 풀꽃과 나무로서는 언제나 어울리는 길일 테지만, 사람은 마치 싸운다고 잘못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엉키거나 얽히는 뿌리는 마치 싸움질 같아 보일 수 있겠지. 그러나 서로 만나고 아끼고 돌보려고 하면서 어우러지는 모습이라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운이 빠지는 일이 있어도, 대구 한복판 곳곳에서 돋는 풀꽃을 보면서 시름을 달래고 힘을 얻는다. 아무리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꽁꽁 덮어도 풀싹은 어김없이 돋는다. 아무리 자동차가 끝없이 달려도 나무는 새잎을 내고 푸르다.


《싸우는 식물》은 이래저래 풀꽃 마음으로 이야기를 여미려고 했으리라 보지만, 조금 더 풀꽃한테 다가가서, 풀꽃하고 녹아들면서 바라보았으면 꽤 다르게 쓸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저보다 큰 풀꽃이나 나무한테 기대기도 하는 풀꽃이고, 저보다 작은 풀꽃을 훅 덮는 듯하지만, 어느새 꽃을 피우고 씨를 맺으면 시들면서 다른 풀꽃한테 자리를 내준다.


풀꽃은 서로 기대고 돌아보기도 하지만, 해와 바람과 비를 나누어 누린다. 혼자만 누리지 않는다. 돌고돌듯 자라면서 함께 비를 마시고, 함께 햇볕을 누리고, 함께 땅에 뿌리를 뻗는다.


덩굴도, 나팔꽃도, 메꽃도, 오이와 수세미도, 겨우살이도, 호두나무도, 소나무도, 다 다르게 살아가면서 이곳에 어우러진다. 곰곰이 보면, 풀꽃은 다 다르게 풀꽃냄새를 내놓는다. 달콤한 열매가 아니어도, 나물로 삼지 않아도, 우리가 굳이 안 먹는다는 풀꽃이어도, 풀내음과 잎내음은 온누리 바람을 푸르게 달래는 구실을 맡는다.


《싸우는 식물》을 덮고서 사람살이를 생각해 본다. 나쁘거나 모질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여기지만, 어쩌면 풀꽃하고 등진 채 살아가기에 나쁘거나 모질어 보일는지 모른다. 늘 풀꽃을 품는 사람이라면 나쁠 수도 모질 수도 없다고 본다. 우리가 서로 아끼지 않거나 돌아보지 않는다면, 풀꽃을 잊은 채 싸우기 때문이 아닐까? “싸우는 풀꽃”이 아닌 “어울리는 풀꽃”인데, 우리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싸우는 사람”으로 치닫는 듯하다.




2024.1.2.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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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3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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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67 자동차와 겉모습과



《천재 유교수의 생활 3》

야마시타 카즈미

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1997.1.25.



목이 아프더니 머리까지 아프고 몸살이 다시 난다. 꼬박 하루를 자다가 깨며 보낸다. 누운 채 《천재 유교수의 생활 3》을 집었다. 셋째 이야기에서 유교수는 자동차를 스스로 몰아 보겠다면서 배우는 모습이 나온다. 자동차를 떠올리다 보니, 길에서 부딪히는 온갖 일을 더 눈여겨본다. 멀쩡한 사람도 손잡이를 쥐면 어느새 마구마구 몰아대기에, “사람이 운전을 하면 무대포가 될 수 있는 줄 알게 되고, 차란 마약작용이 있는 위험한 탈것”이라고 여긴다. 걷는 쪽에서 알아서 살펴야 한다고 여긴다.


우리 집은 언제부터 자동차를 몰았는지 돌아본다. 짝꿍은 1990년부터 몰았다. 헌차를 그때 오십만 원에 장만했다. 짝꿍이 일할 적에 몰던 자동차인데, 나는 딱 하루를 타 보았다. 마침 그날 예천으로 놀러가는 길이었는데, 눈길에 먹통이더라. 그날 그 자동차는 숨을 다했고, 비로소 새차를 장만했다.


갓 살림을 차리던 무렵 다달이 내는 집삯이 후덜거렸는데, 차값으로 다달이 빠지는 돈도 후덜거렸다. 그래도 나는 큰딸을 낳고 바로 면허증을 땄고, 딸아이를 무릎에 앉히면서 다녔다. 이제 와 생각하면,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몰았으니 얼마나 엉터리인가. 예전에는 아이만 따로 앉히기 어려웠고, 으레 어버이가 무릎에 앉혔지만, 참 무서운 줄 몰랐던 셈이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3》을 보면, 면허를 따려는 유교수는 더없이 바르고 착하다. 끼어들지도 않고, 척척 길을 내준다. 빨리 몰지도 않고, 마구 꺾지도 않는다. 옆에 앉은 사람은 느긋이 모든 교통법규를 지키면서 다니는 유교수를 보며 부아를 내고 답답해 한다. 그러나 유교수가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마구잡이로 자동차를 몰지 않는가?


만화책 뒤쪽에는 모꼬지(MT)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생이 누리는 이런 문화를 누리지 못한 터라, 이 대목을 읽으면서 살짝 부럽다. 스무 살 대학생이라면, 책을 품에 껴안고서 학교 뜰을 거닐고, 교수 이야기를 들으려고 졸졸 따라다니는 그림을 떠올린다. 스스로 누려 보지는 못 했지만, 만화책에 나오는 모습으로 엿본다.


그리고 유교수는 딸아이 남자친구를 겉모습으로 따지지 않는다. ‘락 가수’ 차림새는 언뜻 날라리 같을 수 있지만, 언제나 마음과 말로 마주한다. 문득 나를 돌아본다. 나는 우리 작은딸이 남자친구를 데려와서 얼굴을 보일 적에 어떠했던가? 나는 유교수처럼 오직 마음으로만 바라보았던가?


이제 만화책을 덮는다. 끙끙 앓는 몸을 푹 쉰다. 이동안 우리 짝꿍이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한다. 쓰레기도 바깥에 내놓는다.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집안일을 다 해주는구나. 



2023.12.23.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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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상상력
정호완 / 정신세계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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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66 낱말겨레


《우리말의 상상력 1》

정호완

정신세계사

1991.4.15.



나는 우리말을 좋아하지만, 아직 우리말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우리말의 상상력 1》는 우리말이 어떻게 낱말겨레를 이루고 낱말날개가 어떠한 길을 지나는지 살핀다. 우리말 뿌리와 가지에 걸리는 말이 어떻한지 들려준다.


아기가 태어나면 알록달록 움직이는 그림을 천장에 달아 준다. 아기 이름을 부르고 손뼉을 치면, 아기는 소리 나는 쪽으로 본다. 젖을 먹는 동안 엄마 냄새와 엄마 살결을 촉촉하게 느낀다. 말이 아닌 웃음과 울음으로 말을 한다. 목을 가누고 뒤집고 기고 잡고 일어서고 걷는데 온 하루를 보낸다. 문득 이 모습이 우리한테 숱한 길을 가르치고 말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가 글을 모를 적으로 돌아가면 아름다이 글과 노래를 짓고 만날 수 있겠구나 싶다. 


나는 ‘감사합니다’라 안 하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쓴다. 아직 우리말을 모르던 때에는, ‘고맙다’가 아닌 ‘감사하다’가 훌륭한 말인 줄 여겼는데, 이 책을 만난 뒤 생각해 보니, ‘고맙다’는 우리말이고, ‘감사하다’는 한자말일 뿐이었다. 우리말 ‘고맙다’ 뿌리를 살피면 어마어마한 사랑과 숨결을 품는 줄 뒤늦게 알아보았다. 이제는 우리말 ‘고맙다’를 즐겁게 쓴다. ‘고맙다’를 이루는 뿌리인 ‘고마’는 어머니 하느님인 ‘곰’을 뜻한다고 한다. 배달겨레가 빛나면서 넉넉히 누리기를 바라던 마음인 하느님이 ‘고마(곰)’이다. 고마는 ‘고맙다’로 바뀌고, ‘꼬마’라는 이름으로도 굳었다.


《우리말의 상상력 1》를 읽으면 여러 풀과 목숨이 나온다. 풀꽃나무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운다. “짐승의 새끼들은 암컷과 수컷 사이에서 태어나며 자란다. 어미의 다리 사이에서 솟아 나와 개체를 드러낸다. 식물도 다르지 않다. 봄이 되어 싹이 트는 걸 보면 잎 사이에서 새순이 돋아 오르고, 뿌리와 뿌리 사이에서 새싹이 나온다. 식물의 새끼는 싹이 되고 동물의 싹은 새끼로 되었으나 말 뿌리는 하나”라고 들려주는 대목을 곱씹는다. 삶도 숨결도 말도, 잎과 새싹과 뿌리 사이에서 나온다. 짐승도 사람도 다리 밑으로 낳는 모습을 헤아려 본다. 


낱말이 태어난 뿌리를 돌아본다. 나무와 살고, 굴에서 살고, 숲을 안고 살던 때에, 숲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는 물과 해와 풀이나 나무처럼, 푸새나 남새가 푸르게 있기에, 오늘도 먹고 마시면서 살아간다. 꽃을 피우는 풀꽃나무가 참으로 고맙다. 


우리말은 보이지 않는 곳도 들려준다. 입고 먹고 만지고 맡고 듣고 느끼듯이, 말밑마다 눈으로도 보고 눈이 아닌 마음으로도 보는 곳을 짚는다. “집이란 풀숲을 뜻한다”는 이야기도, “풀과 나무에 목숨살이가 깃든다”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비가 무생물로 우주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것이라면, 피는 생물의 몸속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돌아다니는 물이고, 비가 식물 색깔이라면, 피는 동물이다”라는 이야기도 가만히 되새긴다.


내가 생각 없이 뱉는 말도 죽지 않는다. 사람들 입에서 그냥그냥 나온 말도 죽지 않는다. 이모저모 책을 읽고 쓰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곰곰이 생각한 말도, 아무 생각이 없이 뱉은 말도,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온누리를 맴돌 뿐 아니라, 언제나 우리한테 깃들었다가 나오는 줄 새삼 느낀다.


열 해 앞서 우리 어머니가 “딱 열 해 돈 잔뜩 벌어서 돌아오라”고 하던 말이, 요즘 나한테 척 달라붙어 괴롭다. 말과 글이 들이나 밭에 자라는 풀처럼 싹을 틔운다. 우리말 뿌리는 알아갈수록 재밌으면서 놀랍다. 


그래, 우리말 한마디가 고스란히 삶이다. 작은 낱말 하나하나에 우리 삶이 스민다. 내 얘기를 풀어놓는 글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삶을 바탕에 깔지 않은 글이 오히려 부끄럽다. 착 달라붙지 않고 어딘가 붕 뜨면 부끄럽다. 우리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말로 이야기를 하면, 고등어는 고등어 냄새가 있고, 꽁치는 꽁치 냄새가 있다. 사람도 다 다른 냄새와 빛깔이 있다. 우리를 가리키는 이름에 마음이 묻어난다. 삶은 나답게 뿌리를 내려야지. 내 뿌리를 말로 하고 글로 써야지. 




2023.12.2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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