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한강 (무선 보급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디 에센셜 The essential 1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90 흉내



《한강》

한강

문학동네

2023.6.1.



올해 늦가을에 제주도에 다녀오면서 《한강》을 장만했다. 제주에서 보름살기를 하는 동안 제주 마을책집을 돌아보았고, 이때에 눈여겨보았다. 《한강》이라는 책에는 한강 씨가 쓴 소설과 시와 산문을 싣는다. 그런데 〈희랍어 시간〉을 읽으며 자꾸 흐름이 끊긴다.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가 너무 길다. 뭔가 낱낱이 그리는 듯하지만 오히려 말만 너무 긴 듯해서 답답하다. 어제를 돌아보며 오늘을 빗대는 듯하지만 잘 모르겠다.


〈종이 피아노〉로 넘어간다. 어릴 적에 피아노를 하고 싶은데 집안살림이 안 되어서 종이 피아노를 놓고서 치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런데 한강 씨 아버지는 소설가이고 집에 책이 많았다. 피아노를 만질 수 없어서 종이 피아노를 눌렀다지만, 책이 잔뜩 있던 한강 씨네 살림이 오히려 부럽다. 나는 어릴 적에 교과서를 뺀 다른 책을 만지지도 보지도 못 했다.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내가 배우고 싶으면 배워 보라고 피아노학원이라든지 다른 어느 곳도 보낼 수 없었다. 아마 보내려는 엄두조차 못 내었으리라. 의성 멧골마을에 무슨 학원이 있겠으며 무슨 책집이 있겠는가.


나는 세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수 있었다. 의성을 떠나 대구에서 살았으니, 도시에는 학원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쉽게 보낼 수 있다. 나는 내가 못 배웠다는 마음에 아이들을 학원에 밀어대듯 보냈다. 그러나 거꾸로 우리 아이들을 괴롭힌 셈이더라. 내가 못 배웠으면 내가 다니면 그만 아닌가.


한강 씨는 스웨덴으로 날아가서 노벨상을 받는다. 스웨덴에서 했다는 강연을 아침에 들어 보았다. 한강 씨가 말을 마치자마자 손뼉소리가 우렁차다. 손뼉소리에, 멋쩍어하며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한강 씨 얼굴에, 나도 모르게 북받친다. 요즘 온나라는 계엄령 탓에 시끄러운데, 저 먼 나라에서는 글꽃으로 잔치이네.


〈기억의 바깥〉을 읽고 〈출간 후에〉를 읽는다. 토막토막 짧은 글이다. 한강 씨는 날마다 시집과 소설을 한 권씩 읽는다고 한다. 아마 아침이든 저녁이든 어느 때에 이르면 꾸준히 글을 쓸 테지. 나도 날마다 책을 한두 권씩 읽고, 나도 날마다 어느 때에 꼬박꼬박 글을 쓰면 내 눈길과 글길이 나아갈까.


나는 작가 흉내를 내는지 모른다. 내가 몇 살을 살는지 모르지만, 나무 한 그루보다 오래 못 살 수 있는데, 나보다 오래오래 살아갈 나무를 섣불리 베어낼 일을 벌어는지 모른다. 내가 쓴 글을 책으로 묶는다면 어느 곳에서 내 책을 보듬어 줄까. 앞으로 100년 뒤에도 내가 쓴 글을 묶은 책을 고이 둘 곳은 몇 곳이나 있을까. 




2024.12.13.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리 자르러 왔습니다 2
타카하시 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89 보고 자라요

 

머리를 자르러 왔습니다2

타카하시 신

정은 옮김

대원씨아이

2021.9. 15.

 

머리를 자르러 왔습니다 2를 지난해 이맘때에 처음 읽었다. 시골에 가는 날이 잦아서 아예 책을 따로 꾸러미에 담아서 들고 다닌다. 움직이는 작은책집처럼 여긴다. 제주나들이에도 책꾸러미를 챙겼고, 이 책을 담는다.

 

이 책은 아빠가 아이한테 들려주기보다 보여주는 쪽이다. 혼자 살아가는 길에 익숙한 사람이 어느 날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한테도 짝한테도 서툴렀다. 아이가 제법 자라서 초등학교에 들 즈음부터 갑자기 아이를 혼자 맡아야 한다.

 

어떻게 아이를 돌봐야 하는지, 이러면서 살림과 집안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던 젊은 사내가 비로소 어버이로 선다. 처음으로 아이 곁에 씩씩하게 서려고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어버이 마음을 만화로 담는다. 아이는 아빠가 해준 밥을 먹으면 힘이 난다. 아버지는 온마음을 담아 밥을 짓는다. 엄마도 아빠도 아이 키우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는데, 으레 혼자 지내야 하면서 말이 없어진 아이인데, 아빠와 새롭게 둘이 살면서 아빠가 하는 일을 지켜보고, 섬마을에서 여러 이웃과 동무를 만나면서 천천히 마음을 연다. 이제 아이는 스스럼없이 아빠를 돕는다. 가르쳐 주지도 않아도 시키지도 않아도 스스로 두 손으로 짓는다.

 

아이나 어른이나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말로 가르치면 자꾸 엇나간다. 말에는 마음을 품는데, 말만 앞서면 어긋나기 쉽다. 이것도 못 알아듣나라든지, 어떻게 이 쉬운 일도 못 하나라든지, 자꾸 꼬집어 창피하고 부끄럽다. 어느새 잔소리로 들린다. 나를 작게 보는 일을 견디지 못한다. 하려던 일도 싫고 팽개친다. 얕잡아보는 말씨에 높고 앙칼진 목소리를 듣다 보면, 피가 거꾸로 솟구치기도 한다. 몇 마디 말만 하기보다는, 그저 말없이 보여주는 일은 더딜 테지만, 몸으로 스밀 수 있다. 스민 마음이 어느 때에 문득 우러나서 스스로 일어선다.

 

글은 어떨까. 내가 쓰는 글은 어떠한가. 낱낱이 풀어서 쓰거나 가르치듯 쓰면, 어쩐지 나로서는 마음에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눈은 우리 몸으로 빛을 들인다. 본다고 할 적에는 살아숨쉬는 빛이다. 보는 눈은 들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잘 보려면 그림을 그리듯 또렷하게 그대로 말을 하듯 글을 쓰면, 읽는 사람이 쉽게 그림을 그리며 글을 읽게 마련이다. 글쓴 사람 마음대로 마구 밀어넣지 않고 따분하지도 않게,


머리를 자르러 왔습니다 2을 돌아본다. 어버이나 아버지라는 이름이 서툴지만, “웃는 얼굴을 본 것으로 아버지는 너에게 가슴을 펴고 오늘 일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83)”라는 대목에 한참 눈이 간다. 즐겁게 부푸는 아빠 마음처럼, 아이는 아침 일찍 일어나 수건을 개고 쓰레기를 버리고 쌀을 씻고 쓸고닦고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학교에 간다. 아이는 아빠 곁에서 새롭게 하루를 배우고, 스스로 돌아보는 길을 익힌다.

 

섬마을 할매나 할배는 곧잘 아이는 말이여 부모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려고 태어나는 것이여(200)” 하고 이야기한다. 이런 말 한두 마디를 만화책으로 읽으면서 다시 헤아려 본다. 우리는 어버이나 어른으로서 아이한테 밥을 차려줄 수 있고, 아이도 작은손으로 기쁘게 손수 밥을 차려서 엄마아빠한테 베풀 수 있다. 아이가 품을 들여 지은 밥을 먹으며 아이가 있는 집이 어떤 곳인지 아빠도 함께 알아간다.

 

집은 작은별 같다. 태어난 아이는 어버이 곁에서 자라면서 집에서 본 대로 살아가는 바탕이 되지 않을까. 아버지가 꾸준히 배우며 다른 사람 머리를 만지는 가위질마저 마음에 스미듯이. 다함께 튼튼히 살아가는 바탕이란, 늘 곁에 있고 함께 있는 작은집에서 피어나지 싶다.

 

 


2024.12.01.숲하루

#머리를자르러왔습니다2 #타카하시신 #정은 #대원씨아이 #보고자라요#숲하루#작게삶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거 그리고 죽어 1
토요다 미노루 지음, 이은주 옮김 / 대원씨아이(만화)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88 즐거운 일



《이거 그리고 죽어 1》

토요다 미노루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24.4.23



지난달 시골에 머물 때 몇 권 들고 간 책 가운데 《이거 그리고 죽어 1》는 쉽게 읽었다. 만화라서 쉽게 읽었을까.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면서 짬이 없거나 지칠 적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모아서 읽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 ‘작문’ 시간이 참 따분했다. 그렇다고 그때에 만화를 읽지도 않았다.


《이거 그리고 죽어 1》를 보면, 담임 교사가 아이한테 “만화 같은 건 그 어디에도 도움이 안 돼요!(22쪽)” 하고 말한다. 아마 나는 고등학교 때에 이렇게 여겼는지 모른다. 그때 어른들도 만화는 삶에 이바지하지 않는다고 여겼을 테고. 그렇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달랐다. 막내는 만화책을 좋아했다. 읽고 또 읽고 외울 만큼 읽고 혼자 까르르 웃었다. 막내는 만화를 읽으면서 누나가 배우는 눈높이를 조금씩 알아갔다. 그래서 “만화는 거짓이 아니다(24쪽)” 하고 나오는 말에 고개를 끄떡끄떡한다. 


가만히 보면 이 만화책은 ‘만화’를 말하는 줄거리인데, ‘만화’를 ‘시’나 ‘글’로 바꾸어서 읽을 만하다. 사람들은, 또 이 나라는, ‘만화’뿐 아니라 ‘시’나 ‘글(문학)’도 삶에 이바지하지 못 한다고 여기는 듯하다. 작게 삶으로 나오는 책을 북돋우는 길은 없어 보인다. 방위산업이나 첨단과학이나 대규모관광단지나 대형발전소 같은 데에만 마음을 쓴다. 아이들도, 나 같은 어른들도, 틈을 내어 느긋이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삶을 돌아볼 겨를 같은 데에는 마음을 못 쓴다.


‘만화’를 좋아할 뿐 아니라 사랑하는 아이들은 ‘테즈카 오사무 선생 연역법 작법(158쪽)’을 배우기도 한다. 미리 죽 틀이나 금을 세워 놓지 않은 채, 꼬리에 꼬리를 물듯 차근차근 돌고돌면 어느새 이야기 한복판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한다. 시나 글도 이렇게 꼬리를 물듯 차근차근 돌고돌아서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다.


시를 배우고 글을 처음 써 볼 적에 으레 ‘필사(베껴쓰기)’를 시키더라. 잘 쓴 글을 베껴 보라고 한다. 그런데 잘 쓴 글을 베끼는(필사) 일을 자꾸 하다 보면, 내 글을 잊고 내 삶도 잊은 채, 잘 쓴 글을 흉내내거나 따라하는 틀에 갇히지 않을까? ‘창작(짓기)’이란 내 손으로 내 삶을 옮기거나 담는 길일 텐데, ‘필사(베끼기)’에 길들면, ‘필사 같은 창작’, 그러니까 흉내내는 겉멋만 나온다고 느낀다.


내가 시나 글을 쓸 깜냥이 안 되니까, 잘 쓴 시나 글을 베끼면서 배워야 하는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잘 쓴 시나 글을 자꾸 보고 외우고 베끼다 보면, 내 삶이 초라해 보이고 내 시와 글도 나란히 초라해 보인다고 느낀다. 이러면서 요 몇 달 동안 책도 제대로 읽지 못 했고, 책글도 아예 못 썼다. 시도 도무지 못 쓰겠더라.


못 쓴 시나 글이어도 내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고 본다. 《이거 그리고 죽어 1》에 나오는 아이도 그림을 되게 못 그린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그림만 못 그릴 뿐,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모두를 웃긴다. 이야기에 마음이 담겨서 모두를 울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도 못 쓰는 시나 글을 창피하게 여기지 말아야겠다. 잘 쓴 글을 흉내내는 필사는 멈춰야겠다. 남이 내 글을 안 좋게 보면 어떡하나 하고 눈치나 걱정을 내려놓아야겠다.


《이거 그리고 죽어》를 그린 분은, 그야말로 떨어지고 또 떨어진 ‘퇴짜 맞은’ 이야기를 엮었다고 한다.  만화책에 나오는 담임 교사는 학생한테 만화가인 줄 숨기며 스스로 움츠린다. 그렇지만 담임으로 맡은 학생이 담임 교사 만화를 사랑한다. 학생은 담임 교사가 그 만화를 그린 사람인 줄 아직 모르지만, 담임 교사는 학생이 만화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인다.


책을 써내고 나면, 잘 팔리거나 이름을 알리기를 바라면서 꿈에 부푼다. 그나마 꿈꿀 때에는 힘을 조금 얻는다. 이러다가 막상 부딪쳐서 깨지면 꿈도 사라진다. 요즘 나는 마음이 바닥을 친다. 심부름을 하기 싫은 아이처럼 글쓰기도 그만두고 싶고, 글을 쓰는 길도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문득문득 든다. 그래서 스스로 되물어 본다. 나는 뭘 하고 싶은가? 나는 뭘 쓰고 싶은가? 나는 글로 무슨 삶을 남기고 싶은가?


날마다 들여다보는 누리길(SNS)에는 온통 책과 작가를 알리는 사진이 넘친다. 그런데 책과 작가를 알리는 듯하지만, 제대로 작품을 바라보거나 읽거나 적는 글은 아닌 듯하다. 좀 아닌데 싶은 책조차 방방 띄우는 사진이 넘쳐난다.


이제 가을로 접어들고, 또 여러 문화재단에서 공모를 낼 텐데, 내 글을 다시 보내려고 생각해 본다. 뽑힐는지 안 뽑힐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꼭 보내어서 심사를 기다리고 싶다. 이곳에서는 나를 알아보려 하지 않을 수 있으니, 저곳으로 글을 보낼 수 있다. 이 만화책에서도 말하지 않는가. 떨어지고 또 떨어져도 다시 그리고 또 그려서 보낸다고. 떨어졌으니 주눅이 들거나 울기보다는, 붙을 때까지 다시 그리고 또 그려서, “이거 그리고 죽”도록 그린다고.




2024.09.23.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씨앗 철학 - 씨앗에서 삶으로
변현단 지음 / 들녘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87 씨앗에서 삶으로



《씨앗철학》

변현단

들녘

2020.3.13.



뒷산을 내려오다가 나팔꽃씨를 네 알 따서 주머니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창가 흙에 바로 놓았다. 흙을 살살 뿌려서 씨앗을 덮었다. 앞으로 나팔꽃씨는 어떻게 자랄는지 궁금하다. 싹이 트는 모습부터 지켜보고 싶다.


《씨앗철학》을 읽었다. 이 책은 뿌리기, 자람기, 맺기, 이렇게 세 갈래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올봄 개구리가 깨어나던 무렵에 한멧줄기(백두대간)에 간 적이 있다. 문학답사를 하는 모임에서 갔는데, 이때 나는 ‘씨앗집(씨드볼트)’라는 데를 멀리서나마 보고 싶었다. 볼 수 있을지 모임 분들한테 여쭈니, 다들 이곳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듯싶다.


날마다 먹는 밥을 돌아본다. 예전에는 밥을 버리기가 아깝다고 여겼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밥알도 씨앗 한 톨이라는 대목을 떠올린다. 어릴 적에 엄마아빠가 논밭을 지을 적에는 미처 느끼지 못 하다가, 요즈음 들어서야 새삼스레 되새긴다. 씨앗으로 깨어나서 나한테 밥이 되어 주는 쌀알을 고맙게 여기면서 박박 긁어서 한 톨도 안 남기고 먹는다.


《씨앗철학》은, 씨앗이나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고 들려준다. 씨앗이나 내 몸이 다르지 않다고 한다. 씨앗이 살아가려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뿌리를 내리지 못 하거나 싹을 틔우지 못한 일도, 사람살이하고 마찬가지인 길이라고 한다. 우리가 옛마을(고향)을 품고 살듯이 씨앗도 처음 자라던 때를 품는다고 한다. 씨앗을 받아서 건사하는 할머니는 맛 때문에 씨앗을 이었다고 하는데, 곰곰이 보면 모든 시골집은 다 다른 씨앗을 품으면서 살림을 한 셈이다.


파프리카를 손질하다 보면 씨앗이 참 많이 나온다. 그동안 파프리카씨는 그냥 버렸지만, 어쩌면 싹틀는지 모르기에 흙에 묻어 보기로 한다. 싹이 터 줄까?


나팔꽃씨도 묻고, 파프리카씨도 묻고서 생각한다. 이 작은 씨앗처럼, 나는 우리 집 세 아이한테 어떤 마음씨하고 꿈씨를 심었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어릴 적에 내 마음에 어떤 말씨하고 꿈씨를 심었을까?


씨앗에서 말이 태어난다. 씨앗이 흙을 비집고 나와서 바람을 마시고 해를 받아들이듯, 내가 마음에 심는 말도 바로 아이들하고 나한테 스며서 싹트는 기운이지 싶다.


집에서 짝꿍하고 말을 섞다 보면 으레 엇갈리거나 다툰다. 즐겁게 하자는 마음보다는 자꾸 토를 달거나 퉁을 치면서 힘이 빠진다. 짝꿍한테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고 들려주어도 안 달라진다. 스스로 안 즐겁게 자르거나 쳐내는 말씨를 마음에 심으면, 될 일도 안 되지 않을까. 일이 답답해서 아무 말이나 나올 수 있지만, 일이 답답할수록 더 마음을 기울여서 말 한 마디를 할 노릇이라고 본다.


요새는 살림집이나 비닐집 모두 철을 잃어간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니, 철을 알 턱이 없다. 씨앗도 사람도 삶과 마음을 잃어버리고 잊어가니, 말도 흔들리거나 엇갈릴 수 있겠다. 책을 덮고서 다시 생각한다. 짝꿍이든 누구이든, 아무렇게나 문득 읊는 말이 있어도, 나부터 씨앗말을 가다듬어서 들려주자고. 나부터 스스로 풀꽃나무로 살자고.




2023.11.26.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재 유교수의 생활 5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86 입만 아팠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5》

아마시타 카즈미

소년 매거진 찬스 옮김

학산문화사

1997.3.15.



《천재 유 교수의 생활 5》을 새해 첫날에 펼쳤다가 덮고서 다시 펼친다. 유교수는 딱히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늘 마음을 열고서 생각을 펼친다. 스스로 곰곰 생각하고 스스로 눈을 뜨고 알아가는 그림을 보여주는데 대단한 끌린다. 가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답답할 때 이 책을 펼쳐놓는다. 유교수라면 내가 부딪히는 일을 어떻게 맞설까 하는 생각으로 바라본다.


유교수는 뉴스를 보다가 아나운서가 한 말을 따진다. 시나 삶글이라면, 주어를 바로 쓰면 꼬이지 않는다. 신문글은 주어를 흐리거나 조사를 빼서 큰 글씨로 눈에 띄게 올린다. 궁금해서 눌러 보도록 하는 미끼나 덫인 셈이다. 엉터리로 올리고 뼈대로 제목에 쓴 말을 하고 또 하면서 칸을 가득 채우는데 알맹이는 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 여섯을 가장 잘 드러내야 할 신문이 아닌가 싶다. 나도 고쳐야 하고.  


딸아이 남자친구는 말도 불쑥불쑥 뱉고, 사내여도 머리를 기르고(요새는 사내도 누구나 머리를 기른다지만, 이 만화책이 나오던 때를 생각하면 보기 드문), 코걸이 귀걸이를 하고, 튀는 옷을 입지만, 유교수는 막내딸 남자친구를 겉모습으로 가누지 않는다.


막내딸 남자친구는, 이이가 사랑하는 아가씨네 아버지인 유교수가 걸림돌인 줄 알았는데, 막상 유교수네 집까지 찾아가서 마주하는 동안, 걸림돌은 유교수가 아닐 수 있다고 느낀다. 가만히 보면, 유교수 걸음걸이를 네 딸이 고스란히 따라한다. 걸음걸이뿐 아니라 마음도 매무새도 똑 닮았다. 반듯하게 걷고 깊이 생각하는 아버지처럼, 네 딸이 반듯하게 걷고 깊이 생각한다.


어느 날 유교수는 고양이한테 전갱이를 건네면서 뼈를 발라 주는데, 유교수 짝꿍은 ‘고양이한테 전갱이구이를 그대로 주면 소금을 많이 먹어서 죽는다’고 나무란다. 유교수는 이 말을 처음 듣는다. 여태껏 모르던 일을 처음 마주하는 유교수는 걱정에 휩싸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전쟁이를 삶아서 소금을 빼내면 되겠거니 여기고, 한참 품을 들여서 고양이한테 전갱이구이를 전갱이삶이로 바꾸어서 내준다.


늘 같은 시간에 담 너머로 지나가는 유교수를 보는 마을 할머니가 있단다. 이 할머니는 창밖으로 보이는 그림에 함께 들어가고 싶다. 집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와 보는데, 유교수하고 문득 말 한 마디를 섞고 나서 할머니네 집을 다시 바라볼 적에 이 집도 참 좋은 줄 비로소 알아차린다. 유교수는 유교수대로 마을 할머니 한 분을 알아보고 말을 섞은 뒤로는, 이 집 앞을 지날 적에 단출히 마주하고서 지나간다. 할머니는 유교수하고 이런 토막틈을 나눌 수 있는 삶이 기쁘다.


학교에서 학생이 가장 많이 듣는 교수가 강의하는데 한 학생이 재미없다고 말했다고 달뜬 말투로 털어놓았다. 유교수는 “적어도 그 학생만은 수업을 들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어째서 그 학생에게 화를 낼 필요가 있습니까?” 하면서 ‘학생은 훌륭한 연구자료’라고 말한다. 그날 그 교수는 처음으로 한 학생을 새롭게 알아보았다. 


유교수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한결같이 사람 사이를 ‘경제’로 생각한다. 유교수는 경제학과 교수이다. 어떤 길이 살림 밑천이 되고 나아지는 길인지 술술 풀어 간다. 이제 만화책을 덮는다. 뭔가 북받쳐서 어느 곳에 전화를 한다. 우리한테 돌려줄 돈이 있는데 마흔 날이 지나도록 감감한 곳에 따따부따 쏘아붙이는 말을 한다.


전화를 끊고서 아차 싶다. 그들이 제때에 돈을 돌려주지 않을 듯하고, 이자를 붙여 주지도 않을 듯한데, 입만 아픈 말을 굳이 했구나. 뭔가 유교수처럼 어질게 한마디 해줄 수 있을까 싶었으나, 나는 유교수가 아니네.



2024.3.20.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