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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유교수의 생활 5
야마시타 카즈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11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86 입만 아팠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5》
아마시타 카즈미
소년 매거진 찬스 옮김
학산문화사
1997.3.15.
《천재 유 교수의 생활 5》을 새해 첫날에 펼쳤다가 덮고서 다시 펼친다. 유교수는 딱히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늘 마음을 열고서 생각을 펼친다. 스스로 곰곰 생각하고 스스로 눈을 뜨고 알아가는 그림을 보여주는데 대단한 끌린다. 가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답답할 때 이 책을 펼쳐놓는다. 유교수라면 내가 부딪히는 일을 어떻게 맞설까 하는 생각으로 바라본다.
유교수는 뉴스를 보다가 아나운서가 한 말을 따진다. 시나 삶글이라면, 주어를 바로 쓰면 꼬이지 않는다. 신문글은 주어를 흐리거나 조사를 빼서 큰 글씨로 눈에 띄게 올린다. 궁금해서 눌러 보도록 하는 미끼나 덫인 셈이다. 엉터리로 올리고 뼈대로 제목에 쓴 말을 하고 또 하면서 칸을 가득 채우는데 알맹이는 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 여섯을 가장 잘 드러내야 할 신문이 아닌가 싶다. 나도 고쳐야 하고.
딸아이 남자친구는 말도 불쑥불쑥 뱉고, 사내여도 머리를 기르고(요새는 사내도 누구나 머리를 기른다지만, 이 만화책이 나오던 때를 생각하면 보기 드문), 코걸이 귀걸이를 하고, 튀는 옷을 입지만, 유교수는 막내딸 남자친구를 겉모습으로 가누지 않는다.
막내딸 남자친구는, 이이가 사랑하는 아가씨네 아버지인 유교수가 걸림돌인 줄 알았는데, 막상 유교수네 집까지 찾아가서 마주하는 동안, 걸림돌은 유교수가 아닐 수 있다고 느낀다. 가만히 보면, 유교수 걸음걸이를 네 딸이 고스란히 따라한다. 걸음걸이뿐 아니라 마음도 매무새도 똑 닮았다. 반듯하게 걷고 깊이 생각하는 아버지처럼, 네 딸이 반듯하게 걷고 깊이 생각한다.
어느 날 유교수는 고양이한테 전갱이를 건네면서 뼈를 발라 주는데, 유교수 짝꿍은 ‘고양이한테 전갱이구이를 그대로 주면 소금을 많이 먹어서 죽는다’고 나무란다. 유교수는 이 말을 처음 듣는다. 여태껏 모르던 일을 처음 마주하는 유교수는 걱정에 휩싸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전쟁이를 삶아서 소금을 빼내면 되겠거니 여기고, 한참 품을 들여서 고양이한테 전갱이구이를 전갱이삶이로 바꾸어서 내준다.
늘 같은 시간에 담 너머로 지나가는 유교수를 보는 마을 할머니가 있단다. 이 할머니는 창밖으로 보이는 그림에 함께 들어가고 싶다. 집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와 보는데, 유교수하고 문득 말 한 마디를 섞고 나서 할머니네 집을 다시 바라볼 적에 이 집도 참 좋은 줄 비로소 알아차린다. 유교수는 유교수대로 마을 할머니 한 분을 알아보고 말을 섞은 뒤로는, 이 집 앞을 지날 적에 단출히 마주하고서 지나간다. 할머니는 유교수하고 이런 토막틈을 나눌 수 있는 삶이 기쁘다.
학교에서 학생이 가장 많이 듣는 교수가 강의하는데 한 학생이 재미없다고 말했다고 달뜬 말투로 털어놓았다. 유교수는 “적어도 그 학생만은 수업을 들었다는 얘기가 되는데 어째서 그 학생에게 화를 낼 필요가 있습니까?” 하면서 ‘학생은 훌륭한 연구자료’라고 말한다. 그날 그 교수는 처음으로 한 학생을 새롭게 알아보았다.
유교수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한결같이 사람 사이를 ‘경제’로 생각한다. 유교수는 경제학과 교수이다. 어떤 길이 살림 밑천이 되고 나아지는 길인지 술술 풀어 간다. 이제 만화책을 덮는다. 뭔가 북받쳐서 어느 곳에 전화를 한다. 우리한테 돌려줄 돈이 있는데 마흔 날이 지나도록 감감한 곳에 따따부따 쏘아붙이는 말을 한다.
전화를 끊고서 아차 싶다. 그들이 제때에 돈을 돌려주지 않을 듯하고, 이자를 붙여 주지도 않을 듯한데, 입만 아픈 말을 굳이 했구나. 뭔가 유교수처럼 어질게 한마디 해줄 수 있을까 싶었으나, 나는 유교수가 아니네.
2024.3.20.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