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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 봉사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희곡선집
채만식 지음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채만식의 희곡 제목은 <심청전>이 아니라 <심 봉사>이다. 딸 청이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효를 다하는 대상인 심 봉사를 제목으로 삼은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가 자신의 분수를 알고 허황된 꿈과 생각을 버리고 살았다면 딸을 잃은 불행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심 봉사는 탁발승에 말에 혹하여 당장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겠다고 약속하고 뒤늦게 후회한다. 그의 한숨이 어린 심청의 마음을 자극하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감출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많은 곡식을 장 승상 부인에게 얻어 왔다는 청이의 말을 그대로 믿고 의심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재물을 뺑덕어미에게 다 빼앗기면서까지 그녀를 의지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만 하고 있지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결국 심청이의 효심 때문에 눈을 뜨지만 그는 다시 자신의 손으로 두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된다.
심 봉사: (자기 손가락으로 두 눈을 칵 찌르면서 엎드러진다.) 아이구 이놈의 눈구먹! 딸을 잡어먹은 놈의 눈구먹! 아주 눈알맹이째 빠져 바려라.(마디마디 사무치 게 흐느껴 운다. ) 아이구우 아이구우
자기가 자기의 눈을 찌르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을 작가는 심 봉사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며, 1930년대 무능력한 지식인들, 조선의 많은 사람들을 묶어 버린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허상을 보여준다. 현실속에서 임당수에 제물로 바쳐진 불행한 심청은 살아 날 수 없었다. 작가는 심청을 죽음에서 건져내지 않음으로써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눈 먼 아버지를 살뜰하게 챙기고 결국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까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주려는 심청의 마음은 대견하기도 하다. 그러나 효라는 커다란 윤리의 강요 속에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중생을 구제하고 위로해야 할 몽은사 스님들과 부처님은 공양미 삼백 석을 바쳐야만 눈을 뜨게 해준다고 말한다. 종교적 자비와는 거리가 먼 재물에 대한 탐심이 가득하다. 장사를 하러 떠나는 길, 무사귀환을 빌기 위해 어린 여자 아이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상인들의 생각은 자신들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인간의 이기심을 그럴 듯하게 포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은 아니다. 때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든다. 그것을 잊은 인간들이 때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불행 속으로 뛰어든다. 우리의 모습이라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