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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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끼의 소설을 읽으면 냉정하지만 따뜻한, 혹은 외로움을 감추고 있는 냉소적인 주인공들을 만나게 된다. 상처받았지만 받지 않은 듯 혼자만의 껍질을 두르고 사는,  그렇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사람들. 하루끼의 10번째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서도 또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잘 아시다시피) 그녀를 데려가는 것은 간교함에 도가 튼 선원들이다. 그들은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여자들을 꼬여내, 마르세유에인지 상아해안인지 하는 곳으로 잽싸게 데려간다. 그런 때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혹 그녀들은 선원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모른다. 그런 때도 우리가 손쓸 도리는 거의 없다. 선원들조차 손쓸 도리가 없다."

 

                                                                                            여자 없는 남자들, p.330

 

 하루끼 열 번째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7편의 소설 모두 여자 없는, 혹은 떠나보낸 남자들이 등장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 가후쿠는 아내가 자궁암으로 세상을을 떠난 후 혼자 살아가는 중년의 연극배우이고, <예스터데이>의 기타루와 다니무라는 에리카를 좋아하지만 끝까지 다가가지 못한다. 한 번에 여러 여자들(유부녀 가리지 않고)을 동시에 사귀며 가볍고 깊지 않은 교제를 추구하던 성형외과 의사 도카이<독립기관>이는  16세 연하의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뒤, 결국 음식을 거절한 채 죽어간다. <셰에라자드>의 하바라는 정기적으로 자신을 찾아오는 셰에라자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기노>의 주인공 기노는 부인과 회사동료의 정사장면을 목격하고 그대로 집을 나와 혼자 술집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모두가 한 명의 여자를 사랑했고, 그녀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되짚어 보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으나 그녀들이 떠나간 후 외로움과 상처를 안고 묵묵히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간다. 그래서 여자 없는 남자들은 어딘가 춥고 외롭고 무심해 보인다. 그러면서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한 사람의 세계는 또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넓어지고 깊어진다.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와 합쳐지면서 더 커지게 되는 만큼 그 사람이 떠나거나 사라졌을 때의 공간은 더 커지는 법이며, 그 만큼 홀로 남겨진 사람은 그곳을 무엇으로 메어야할 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같이 길을 잃거나 방황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을 타인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상대방에게 이해받지 못했다는 상처를 안고 말이다. 하루끼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 점을 주인공들이 깨닫지 못한다해도 말이다. 바로 이것이 하루끼 소설속 인물들의 특징이자, 그만의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는 주요 매력이기도 하다.

 

 또한 하루끼의 소설을 읽다보면 젊은 지난 날들을 되돌아 보게 한다. 40대,  50대, 60대에게도 10대, 20대 시절의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그때의 우리가 느꼈던 고통과 상처, 시간이 흘러 그것이 각자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았는지 잊고 있었던 모습을 찾아보게 한다. 60을 넘긴 작가가 스무 살 시절을 어제의 일처럼 되살려내는 것이 놀랍고, 냉정하지만 따듯한 외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들의 이미지와 상황도 읽는 이들에게 공감을 준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해도 사람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지 않은가? 그러나 이해받지 못했다해서 혹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사랑하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 공허하고 춥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표지에 그려진 차가운 얼음달처럼 말이다. 겨울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봄이 오고 있다는 희망때문일 것이다.

 

 "... 나는 대체 무엇인가, 요즘 들어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것도 상당히 진지하게 말이죠. 내게서 성형외과 의사의 능력이나 경력을 걷어낸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쾌적한 생활환경을 잃는다면,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한낱 맨몸뚱이 인간으로 세상에 툭 내던져진다면, 그때 나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독립기관, 140.p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인지 근원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혹은 사랑받게 될 때 찾아온다. 사람은 무엇보다  나 아닌 타인을 사랑하게 될 때 진심으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이해받으며 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 사랑을 잃어버리면 결국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남자 없는 여자들이 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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