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지음, 조혜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유대감을 느끼며 살아가면서도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는 장소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길 원한다. 테스 또한 부모님과 언니, 남동생 잭을 피해 집의 뒤테라스에 편하게 앉아 나무로 된 우물을 바라보는 시간을 즐겼다. 그것은 테스에게 최고의 시간이자 행복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두운 밤,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테스는 낯선 여인이 우물에 아기를 빠트리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그 여자가 아기를 내버리고 간 뒤, 한동안 꽤 오래도록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내 귓가에는 그 첨벙하는 물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13.p)

 

 

  그 물소리는 아기가 수면에 부딪혔다기보단 우물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 같았다. 자신 안에 끔찍한 뭔가가 떨어진 사실을 알고 놀라고 당황해 소리를 내지르듯 내게 도움이라도 요청하듯(15.p)

 

 

  그날 밤부터 테스는 악몽에 시달린다. 테스와 그 가족에게 있어 우물과 탄광은 어떤 것일까? 탄광은 아버지 앨버트의 세계이자 그의 가족들의 삶을 유지하고 지탱하게 해 주는 근원이다. 탄광이 있고 그곳에서 계속 일을 해나가는 아버지 앨버트가 있는 한 테스의 가족은 부유하지 않지만 평화롭고 소박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것이 있다면 어둠 속을 불빛으로 비춰보는 일이었다. 나는 어둠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아니, 어둠에 찌들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팔꿈치 주름과 손금 사이사이 그리고 손톱 밑마다 지워지지도 않는 새카만 자국이 들러붙어 있었다. 늘 목구멍 저 밑에서부터 어둠의 맛이 느껴졌고, 한밤중이면 기침을 해대며 그 어둠을 뱉어내곤 했다. 19.p

 

 

  또 다른 면에서 그들이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심에 우물이 있다. 우물은 갈증과 배고픔을 해결해 주고, 인간으로서 존재를 지키며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한 축이다. 그래서 어린 아기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은 가족 전체의 삶과 가치관, 그들의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끔찍한 일은 갖가지 모양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지만 그로인해 세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성숙한 한 사람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테스가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죽은 아기의 이름을 찾아 주고 싶어 하는 것이나 버지가 의심이 가는 부인들의 리스트를 작성한 뒤, 그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을 통해 부끄러움과 잘못을 깨닫게 되는 것까지 말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빈부 차이와 상관없이 사람들 나름대로의 생활이 있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우물사건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앨버트 역시 우물에 아기를 버리는 것이 끔찍한 일이긴 하나 그 이유가 전부 잔인하고 악의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흑인이자 성실한 동료인 조나를 통해 깨닫게 된다.

 

  …… 그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봐온 느낌이야. 그게 껍데기라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껍데기를 까거나 깨서 그 안에 든 걸 보려는 시도도 안 했던 거지. 171.p

 

 

  우리도 살다보면 자신과 무관하거나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들이 삶 속에 불쑥 끼어드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로 인해 아픔의 시간을 겪거나 괴로워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조금은 예전과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란 존재가 세상에 당당히 소리치고, 무엇이든지 마음먹은 일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왔지만, 국가적 재난과 사회관계망의 불신, 사람들과의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 등 불가항력적인 일을 겪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고 나약한 자신을 인정하며 타인과 협력하며 해결방법을 찾아 애를 쓰게 된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었다고 삶이 끝나거나 일단락되어진 후 다시 이어서 시작할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테스와 그의 가족이 우물 속에서 아기 시신을 발견하고 나서도 힘겨운 일상을 계속해서 살아내는 것처럼. 소설은 무언가 삶을 흔들고 고통스럽게 만들 수는 있지만, 우리의 삶은 그 속에 빠져서 마냥 허우적대며 있을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물과 탄광이 단편이었다면 우물사건이 소설전반에 중심이 되고, 그 순간이 주는 이미지와 묘사가 독자를 끌어당기는 묘미가 되었을 것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장편이었기에 우물 사건은 화두가 되고, 그것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성장과 변화해 가는 모습들이 핵심이 되었다. 그것이 물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정해놓은 규율 안에서만 행해졌던 선의에 대한 앨버트의 자각과 테스가 우물에 아기를 버린 여자를 찾아내고 그녀에게 용서한다고 말해주는 장면은 독자로서 잊혀 지지 않는 장면이다. 그 가운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하고 치열하며, 생생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또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앨버트와 리타, 그들의 보호 아래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끈끈한 우애를 보여주며 성장해 나가는 버지, 테스, 잭의 모습을 통해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등장인물의 각 시점으로 진행되는 구성도 소설의 지루함을 없애주는 데 한 몫 한다. 추리소설일줄 알았던 나의 추측이 빗나간 것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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