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집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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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처음 본 마그리트 그림은 백화점 광고로 기억되는 <겨울비>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의 소설 <빛의 제국> 표지를 통해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을 만나게 되었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그림이 묘하게 어울려 시선을 끌었던 생각이 난다. 예술은 분야가 다를지라도 각 분야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또 다른 영감을 일으켜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열어간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빛의 제국>과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가 만나 소설 <빛의 집>이 된 것처럼 말이다.

 

 

  사랑은 힘이 세다. 사람을 강하게 만들기도 하고, 미처 알지 못하고 살아가던 심연의 세계로 빠지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우리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것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말이다. 당사자들을 새로운 환경과 사건 속으로 몰아넣는다. 연인 캉디스에게 외면당하고 혼자 베네치아로 여행을 온 제레미처럼. 그는 곤돌라를 타다가 충돌하는 가운데 필리프 네케르를 만나게 되고, 구겐하임 미술관에 걸린 <빛의 제국>을 보다가 불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목격하고 그림에 빠져든다.

 

 

 

나는 나가고 싶지 않다. 더구나 나는 꼼짝할 수가 없는 상태다. 창문에서 스며나오는 부드러운 광채가 고맙게도 나를 붙들고 놔주질 않는 것이다. 나는 이 그림 속에서 정말 좋았다. 캉디스와 함께한 첫 일요일을 거기서 되찾았고, 그녀 없는 내 인생의 무거움을 훌쩍 벗어던졌고, 그녀의 깃털 이불 속에서 미적대는 가운데 시간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24.p

 

 

 

  두 사람은 다음 날 그림의 불빛을 확인하러 다시 그곳을 찾아가고 바로 그 자리에서 제레미는 첫 번째 임사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빛의 제국>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리게 된 것이다. 제레미를 그림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 것은 그가 아직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랑의 끈 때문이다. 사랑에 거부당하기 훨씬 전으로, 두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졌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제레미가 간절하게 캉디스의 사랑을 원하고 집착했을 때 역설적으로 그는 연인에게 실연을 당하는 대신 나약해진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었다. 사랑을 하게 되고 점점 마음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자신의 약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상대방을 통해 반사된 내 모습이 부족해 보여 더 잘 해주려고 노력하다보면 그것이 집착처럼 보여 질 때도 있다.(그렇게 변할 수도 있고.)

그러나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것 때문에 사람을 성장하게 하고, 성숙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게 캉디스를 돌려줘!”

당신이 이런 식으로 그녀를 찾으려고 하니까 자꾸 놓치는 거라고. 이 멍청이!”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나 좀 알려주든지!”

내 진짜 모습을 찾아봐!”

172.p

 

 

 

  헤매본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정신없이 헤매던 길에서 던진 질문이 답이 되어 돌아올 때가 있다. 그림 속의 마르타가 사라지면서 제레미에게 말해준 것처럼.

 

 

  제레미가 처음 캉디스와 헤어졌을 때는 아픔과 상처가 매우 컸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더 성숙해지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랑까지도 말이다.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기도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삶에서 가장 원하고 갈망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사랑이고, 가장 큰 파격일 수도 있다. 그것이 때에 따라서 다른 것으로 이름을 바꾸어 가겠지만. 자신의 삶에서 열정적으로 살아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그런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 혹은 그 무언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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