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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함민복 시인의 이름을 접한건 벌써 몇년전. 배우고 있는 선생님 한의원 탁자에 놓여진 시집이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그 선생님이 입에 달고 다니시는 말 중 하나가 "경계에서 꽃이 핀다"였기에, 그 제목이 가진 카리스마에 끌려 들춰보았다. 허나 시라는 건 언제나 읽는 사람이 준비가 되어있어야 마음속에 다가오는 법. 어리버리하면서 은근 까칠했던 내게는 시집의 내용이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 밍숭밍숭해 보였다. 그리고 곧 잊혀졌다.
어느날, 어느 서재지기님이 시인의 시를 한편 올려놓으셨다. 어느님이 한편, 또 어느님이 한편. 내가 예전에 지나쳤던 그 시인이라는 걸 모르고 물끄러미 시를 읽어내렸다. 시인들의 산문집에서 읽었던 어느 에피소드도 이 시인 글이었구나. 그러다 덜컥. 작년 이맘때쯤이구나. 촛불집회에서 어느 시인이 크게 다쳤다는 글을 읽었고.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시인이 그 시인이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뒤늦게야 먹먹한 마음을 달랬다. 그때서야 부랴부랴 시인을 검색하고 책을 사들였다. 표지 뒤에는 강화도 뻘을 배경으로 한, 옆집 아저씨같은 푸근한 시인의 얼굴이 실려있었다.
나는 '몸쓰는 일'과는 영 거리가 먼 사람이다. 서울 출신이고, 겉보기에나 실제로나 비리비리하고, 생긴것 마냥 '일주변' 또는 '몸감각'도 영 아니다. 하여 '험한 일'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왠지 나와는 딴세계 사람 같기도 하고, 그들의 고단한 삶이 일종의 낭만처럼 느껴질때도 있었다. 처음 시인의 시집에서 느꼈던 느낌은 거칠고 투박한 시에대한 일종의 거부감이었다. 예쁘고, 단아하고, 고상한 시들만 진짜 시인줄 알았으니까. 그때와 지금이 무엇이 달라졌을까? 거의 어민 후계자가 된 시인의 산문들이 낯선것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투박함이 정겹다. 숱한 고뇌에 치여왔음에도 아직 모질지 못한 순박함. 착해빠진 사람이 주는 넉넉함. 허세도 허식도 없는 간결함.
다른 사람의 짊어진 고통을 보며, 내 슬픔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을 느끼며 얻는 위안이란 얼마나 잔인하고 간사한 것인지. 허나 그런 간사함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슬픔에 빠져 허우적댔을 것인지. 삶이 '고통 콘테스트'가 아님은 분명하지만, 여태껏 걸어온 삶의 궤적 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내 슬픔에 겸허해지는 시간들.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근무했다" 무미건조한 두 문장 사이에는 시인이 넘어야했던 첩첩 바위산들이 쌓여있다. 시인의 인생에서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다. 어느 글들을 보나 그의 삶이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배어나온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넉넉하고 푸근하다. 시집 한권과 등가관계에 놓인 삼천원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는 국밥 한그릇과 등치가 된다. 남자 혼자 사는 자신의 집에는 제비도 염탐왔다 집 아니짓고 그냥 간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제비야 네가 옳다" 웅얼거리는 시인이다.
함민복 시인에게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1998년 무렵,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오늘의 예술가상'이란 상을 받게 되었는데, 당시돈으로 상금이 500만원이었다고 한다. 어머니 방 구해드릴 200만원이, 태어나서 만져본 가장 큰 돈이었다는 시인인데, 내심 얼마나 들떴을까. 헌데 그놈의 IMF가 뭔지, 딱 그해에만 상금 없이 청동인지 돌인지 한없이 무겁기만 한 트로피를 주었댄다. 무거운 트로피를 들고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시인은 내내 중얼거렸다고 한다. "이 무거운 게 쌀 가마니였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던 시인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시 한편에 삼만원'을 쌀 두말과, 시집 한권팔아 받는 삼백원을 굵은 소금 한 됫박과 연결시키며 스스로 마음 다잡던 시인인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받든다는 이 나라의 대답은 여전히 폭력이었다. 이런 현실을 볼 때면 어릴때부터 들어왔던 "인과응보","고진감래"라는 말은, 사람들을 세뇌시키기 위한 국가적 최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 "인과응보"가 제대로 이루어진적이 있었는지. 이럴때야말로 '내세'의 필요성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거기서도 이명박 장로님이 대통령이라면 연옥이나 지옥이 또다른 '내세'가 될런지도 모르겠다만.
함 시인의 초기 작품들에는 반생명, 비인간적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분노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강화도에 자리잡고 살면서 부드럽고도 강한, "말랑말랑한 힘"을 가진 시들이 흘러 나왔다고. 산문집에는 강화도 어민들과 뻘을, 바다를 누리는 경험담이 많다. 아득히 멀고 또 가까운. 언제나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거친 노동의 숨소리가 섞인, 유려하기보단 숭숭 썰어놓은듯한 글이지만 밑바탕은 '말랑말랑한' 어머니의 힘이다. 시인 주변의 못배우고 가난한 사람들의 에피소드엔 구구절절 사연이 가득하지만 춥고 궁핍한 가난보다는 다른이에게 손을 내미는 따스함이 먼저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거잖아"라며 넌지시 어깨 한번 쓰다듬어 주는. 등 한번 두드려주는 마음. 표지 뒤 둥글둥글하고 넉넉한 시인의 얼굴과 똑 닮은 손길.
밤이다. 혼자사는 이에게는 더욱 더 농밀해지는 밤. 이시간에도 도로엔 차들이 지나간다. 차들이 내는 바람소리가 어쩐지 파도소리처럼도 들리는 밤이다. 혼자 먹는 밥상 앞에서 시인은 혼자 밥 드실 어머니를 떠올린다고 했다. 늦은 밤 간소한 술상 차려서 시인이 퍼주는 국밥 안주에 취해야 겠다. 당신이 퍼준 국밥들 만큼이나 넉넉하게 사랑하며 사셨으면. 당신의 마음에 시를 쓰는 바다를 뻘을 사람을 마음 가득 사랑하고 사셨으면. 머지않은 날 당신 집 처마밑에도 제비 한 쌍 둥지 틀고 한지붕아래 다른 생명과 오롯이 보듬고 사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