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그리고 역사 -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 역사도서관 교양 7
최영태.김상봉 지음 / 길(도서출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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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광주를 알게된 건 임철우의 소설 '봄날'을 통해서였다. 현대사라곤 고등학교 국사책 끄트머리 훝고 지나간게 다였으니 처음 그 '사실'을 맞닥뜨릴때의 당황스러움이 아직 생생하다. 어떻게 그런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얼마나 쉽게 그 일을 잊고 사는가...아는것은 상처받는 것이라는 말은 사회와 역사를 알아갈수록 다시금 되뇌이는 일종의 금언처럼 되어버렸다. 작년 여름 '화려한 휴가'가 흥행하면서 어떤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으나 '영화관에서 울고 나온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찍는'수준으로만 머물렀고, 급기야 "경제를 살리는 것이 광주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라는 선전으로까지 이용당했으니. 붉은 색 표지만큼이나 광주는 아직 여물지 않은 핏빛이다.

80년 광주가 단지 열흘간의 '전쟁'에 그친다면ㅡ 극악무도한 공수부대와 용감했던 시민들 그 뿐이다. 이 책은 그 열흘동안 벌어졌던 끔찍한 사실들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역사속 흐름으로서 광주를 되짚어본다. 총 3부로 되어 있는데 1부에선 항쟁의 배경과 전개과정, 항쟁 후 민주화 운동 등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그 즈음 전개되었던 아시아(필리핀, 중국, 태국) 민주화운동을 살핀다. 2부는 '5월운동'의 변천과 가요/연극/영화 등 광주와 관련된 문화운동에 대한 내용이고 3부에선 김상봉 교수의 '서로주체성'을 요체로 하는 5.18 항쟁의 정신을 다룬다. (5.18을 사상적 관점에서 조명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란다.) "철학. 사회학. 문학. 역사학. 정치학 등의 전문가들이 5ㆍ18항쟁을 ‘종합적인’시각에서 서술, 특히 인문학적(철학적) 성찰을 시도했다"는 책 소개에 걸맞게 전부 학문적 글들이라 무겁고 어렵다. (특히 1부 4장 -5.18 항쟁과 1980년대 아시아 민주화운동- 은 동아시아 현대사에 기본상식이 없으면 읽기 힘들다.) 화려한 휴가의 광주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듯' 영문도 모르고 당해 본능적으로 저항했다는 느낌이 든다면 이 책에서의 광주는 온갖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진 현대사속에서 민주화라는 필연적 과제를 향한 절박한 요구와 굳건히 맞선 의지가 배어나온다. 수동적 피해자가 아니라 당당한 주체다.

김상봉 교수의 '서로주체성'은 이미 다른 책에서 많이 봐왔기에 오히려 이 책에서 가장 잘 와닿는 부분은 3부였다. 우리가 광주를 기억해야 할 이유ㅡ 그 정신을 이어받는 것.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보편적 뜻으로 이어지는 것. 철학자답게 단어의 개념을 정의하고 확장해가며 길게 설명하지만 요체는 '서로주체성'의 현현인 절대공동체로서의 광주정신을 이어받는 것이다. 전에 출간되었던 '서로주체성의 이념'이나 '만남'에서 서로주체성을 이야기할때 꼭 등장했던것이 80년 광주인지라 -'만남'에서는 대담 형식이라 훨씬 부드럽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 김상봉의 독자라면 크게 새로울 내용은 없다. 광주를 처음 '절대공동체'라 명명한 최정운 교수의 저서 "오월의 사회과학"을 보충/인용하기도 하고 상당부분 비판하기도 한다. ("오월의 사회과학"은 당시 상황을 묘사해 놓은 인용문이 많아 다소 감정적인 느낌을 준다.) 거칠게 말하면 최정운 교수가 광주를 일종의 트라우마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인 반면(전쟁으로 비유) 김상봉 교수는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어떤 정신을 찾으려 한다. 타인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투쟁에 뛰어들고, 함께 맞서 싸우기 위해 피와 밥과 수류탄을 나누었던 그들에게서 우리가 지향하는 '서로주체'를 발견한다.

2부에 수록된 저항시들이 인상적이다. 억압이 심했던 80년대에도 활발했던 문화운동 - 저항가요/시/연극 등 - 은 현재에는 찾아보기 힘들고 대신 개인의 감정과 고뇌를 이야기한다. 가시적인 억압은 분명 많이 사라졌고 어떤 의미에선 살기 좋아졌다고 할 수도 있을게다. 모든것이 정치적이어서 마치 일상생활은 정치와 무관한 듯 보이기까지 한다. 보이지 않는 경제가 노골적인 정치적 탄압을 대신한다. 우리는 모두, 여전히 난장이다.

곧 5월이다. 작년 여름에 찾은 망월동 묘지엔 대선을 앞둔 탓인지 성지순례하듯 유명인사들이 많이 찾아왔던데. 이번 18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겠지. 빛나는 민주화 역사에 대해 연설하겠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그것을 기억함으로서ㅡ 더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함이다. 동떨어진 사건으로서 5.18을 바라보는 것은 그 사람들을 영원히 가련한 '피해자'의 위치에 붙박아놓는 것이다. 그들의 증언에 귀 기울이는 것은 그들의 고통에 같이 괴로워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ㅡ 스스로를 일깨우는 각성제가 되어 현재의 또 다른 폭력에 맞서 싸우기 위함이다. 지금 세상에선 어느 한 지역에 군대를 몰아넣고 사람들을 죽이며 외부와 차단한다는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ㅡ 양상은 다를지라도 특정 약자들을 억압하고 사지로 몰아넣는것은 지금도 자행되고 있다. 그 대상이 외국인 노동자든, 살기 위해 슬럼으로 기어드는 빈민층이든, 하루 열 몇시간씩 일하고 겨우 연명하는 제3세계 국민들이든. 광주를 기억한다는 것은 이 모든 억압받는 약자들과 연대하고 저항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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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3 0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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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3 0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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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3 0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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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3 04: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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