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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 우리 시대와 나눈 삶, 노동, 희망
하종강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2월
평점 :
연한 황토색 바탕에 놓여진 목장갑. 아기자기한 글씨. 따뜻한 책 표지가 말 그대로 '희망'을 대변한다. 험한일도 많이 겪고 수년 혹은 수십년을 싸워온 사람들이 ㅡ 그리 많은것이 바뀌지않은 현실을 보면서도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일까? 현실과 교과서 속 이상적인 사회와의 괴리를 알아갈수록 뛰어들기도 전에 절망하는 나같은 사람들도 많은데ㅡ 희망을 계속 만들어가기 때문이기도 하고, 역사에 대한 신뢰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희망을 갖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바뀌지 않으리란걸 알면서도,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것이 없기에ㅡ 불평과 좌절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하종강씨 글은 ㅡ 인터뷰집에 수록된 것을 보았던 게 전부다. 발간된 책을 몰랐던건 아니었으나 여태 손에 잡지 않은건 순전히 '노동운동'에 대한 생소함 - 나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알량한 자기기만 때문이었다. 가끔 거리에서 벌어지는 농성를 보면 '저 사람들 고생하는게 딱하다'고 철없이 동정하다가도 지나가면 그뿐이었다. '공돌이-공순이'에 담긴 경멸을, 나는 '노동자'라는 단어에 투사하고 있던게다.
대학 1학년때인가. 내가 다니던 과는 학교를 상대로 투쟁 - 병원건립, 교수확충, 등록금 등 - 했었고 우리의 무기는 '수업거부'와 집회 뿐이었다. 당시 우리과 학생중엔 사회에서 여러 활동하신 분들이 많았고 이런 저런 일이 겹쳐 다행히 학교의 약속을 받아냈다. (물론, 그 뒤로 학교는 이런저런 핑계로 거의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우리는 모두 '승리했다'는 기쁨에 들떠있었다.) 교내에서 집회할때면 시끄러워서 수업에 방해된다며 소리지르는 교수들도 있었고, '쟤넨 뭐가 아쉬워서 저 난리야?'라며 싫어하는 타 과 학생들도 있었는데 그 순간엔 얼마나 매정하게 느껴지던지. 나중에 누가 '파업'한다고 하면 꼭 관심있게 보리라 다짐하곤 했다. 그때 '동지가' 나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배웠는데 가사의 의미나 배경도 모르면서 부르다가 나중에야 알았다. 불과 이십년전에 벌어지던 일, 혹은 지금도 벌어지는 투쟁들에 비하면 우리의 '거사'는 얼마나 '배부르고 귀여운'것이었나. 그나마도 귀찮아하고 '기껏 공부해서 대학와선 왜 이짓을 하고 있을까' 회의하기도 했는데.
이 책은 하종강씨가 만난 노동자들에 얽힌 일화가 대부분이고 가족에 관한것도 있다. 멋들어지고 잘 꾸며진 문체는 아니지만 글에서 묻어나오는 '진실함'때문에 마음에 남는 글들이다. 여기 실린 얘기들은 분명 '재밌다'기보단 '슬픈'일들이지만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보이는 소박한 진심과 일/사람에 대한 애정때문에 어느샌가 마음이 따뜻해진다. 실화는, 아무리 잘 꾸며진 소설보다 더 끈끈하다. 어디엔가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관심도 없고 혹은 존재조차 모르지만 묵묵히 그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 그것 자체가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숱한 어려움을 겪고 좌절하고 변심한대도 욕먹을 것 없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희망이라. 더욱 따뜻하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오던 글들이라는데 - 쓰인 날짜가 적혀있지 않아 예전이야긴지 요즘 이야긴지 파악이 잘 안되는 것들도 있다. 유명 제과업체 종업원 임금이 40만원이 안된다는 시절 - 설마, 이건 예전 일이겠지. - 일도 있고. 간간히 쓰인 "80년대에 벌어지던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문구가 가슴아프다. 얼마 전 인터넷 블로거 뉴스에서 의류 공장을 - 점점 낮아지는 옷 가격때문에 70,80년대와 다름없는 열악한 작업장에서 하루종일 일하는 노동자들 - 이야기하며 "싼 옷만 찾지 말고 제 값 주고 옷 사입자."는 요지의 글을 본적이 있다. 먼지 풀풀 날리는 공장 사진보다 가슴아픈건 "자본주의 경제 원리도 모르냐"."소비자 입장에서 싼 옷 찾는게 뭐가 나쁘냐"."우리가 안사주면 그나마 싼 옷 만드는 공장 망하는거 아니냐"는 감정섞인 댓글들이었다. 물론 안사는게 궁극적인 해결책은 안되겠지만 그런식의 반응밖에 할 수 없었나. 자본주의는 사람의 타고난 감수성까지 먹어치우나보다.
포기하고 싶을때마다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수십만명의 문제다"라며 마음을 다잡는 사람들이나, "농민이 망하면 결국 저임금 노동자가 되서 기존 노동자들을 옥죌텐데 남의일처럼 보지 말라"라고 말하는 농민을 보면, 세상을 제대로 보는 '지혜'는 똑똑한 머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란 평범한 진리가 떠오른다. 자신만은 비정규직이 아닐거라 믿는 88만원 세대들도 언젠가는 깨닫겠지. 조만간 "프리랜서 의사" - 말이 프리랜서지, 비정규직 의사 - 도 등장할지 모른댄다. 유럽의 공공의료체계는 그 사람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먹고살기 힘들어진 의료인들이 투쟁한 결과라는데 ㅡ 어쩌면 빨리 그런 상황이 되는게 나을수도 있겠다.
마지막 6장은 2006~2007년 한겨레에 실렸던 칼럼들이라 딱딱하다. 차라리 수기들만 모아놓았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