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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강상구 지음 / 문화과학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신자유주의는 ‘자유’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고, 빈곤을 퇴치하며, 만인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는 이론이나 정책인 것처럼 여겨진다. 신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자들의 근거는 오직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여기서 자유를 가진 ‘개인’이란 ‘재산을 소유한 존재’. ‘부르주아’, 곧 ‘자본가’이고 오직 이들에게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는 전통은 자유주의의 오랜 역사이다. 신자유주의는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자유'따윈 안중에도 없다. 그들이 내세우는 '사적 소유권의 자유, 시장의 자유, 교역의 자유, 경쟁의 자유'등은 특정 계층을 위한 '특수한 자유'지만 마치 모든사람을 위한 '보편적 자유'인것처럼 세뇌된다. 사실 '신자유주의'는 '신보수주의'가 휘두르는 칼이지만, 그럴듯한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그럴듯한 속성을 가진것처럼 꾸며내는 수법이란! 이젠 거의 '상식'이 되다시피 한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노동자들에겐 '안정성'이다. '효율성'이란 이명박정부의 슬로건은 또 얼마나 그럴듯한지.
이 책은 지극히 '노동자'적인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의 이론을 재정의한다. 이를테면 개발도상국들이 산업 발전을 위해 끌어다 쓴 '외채'는 "노동자들이 만들어낼 '미래의 잉여가치'를 빼앗아 갈 것을 보장해주는 특출한 장치"며 IMF나 세계은행 등 국제 기구는 "제1세계 민중들이 일해서 낸 세금을 이용해 제3세계 민중들을 착취하는 장치"라는 등. 이 책의 논리에 따르면 세계화는 "초국적 자본과 헤게모니 국가들이 벌이는 자본축적 과정의 새로운 형태"일 뿐이기에, 기든스가 주장하는 "제3의 길"은 유럽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대응에 불과하다. 스스로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라 주장하는 대부분의 NGO들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일 뿐이다.
“태초에 시장이 있었다” 는 시장주의자들의 순진한 예찬과 달리, 시장의 거래는 재산권의 확립과 보호 없이는 불가능하며 시장경제의 발전은 시장의 확대와 국민적 시장의 확립을 위한 국가의 노력에 기초한 것이다. 근대 국가의 탄생은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해 "국가 안의 사람들을 어떤 '단일한 존재'로 통합시켜 하나의 가치관, 관점, 사상으로 묶어놓는" 이데올로기 작업의 결과다. 영악한 신자유주의자들은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를 위해 - 좀 더 직설적으로, 마음껏 착취하기 위해 - 국가의 역할 축소를 부르짖으면서도 '노동력 관리'라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그 부분에 관한 한 '강력한 국가'를 원한다. 저자는 결국 신자유주의자들이 '국가'를 '시장'으로 대체하려는 것은 국가가 '계급투쟁'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며, 국가를 초월하는 국제기구나 지역블록은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민중들의 저항이나 반발을 원척적으로 막기 위한 수단이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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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역할은 지방자치제, 소수민족, 각종 국제기구, 지역 블록, 그리고 NGO에 의해서 분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화의 경향이 국가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킨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오히려 그 이면에는 국가라고 하는 기구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성격, 계급지배의 도구이자 계급투쟁의 반영이라고 하는 두 가지 성격 중에서 자본에게 유리한 것은 살리고 불리한 것은 없애는 그런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p.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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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자유주의 역사 - 신자유주의 이전, 불황과 신자유주의 등장, 팽창, 위기, 그리고 '세계화'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구성되어 있다. - 에 대한 강의록이다. 각 시대/국가별로 행해진 정책뒤엔 언제나 '노동에 대한 탄압'이 있었음을 밝히고 생소한 용어 - 선물, 옵션, 통화주의 헤지펀드 등 - 에 대한 설명도 쉽고 자세하다. 수치상으로 보이는 '수출증가'및 '경제성장'의 증거들이 사실은 초국적 자본으로 흘러들어간 돈이라는 지적도 명쾌하다. 아쉬운 것은 2000년에 출간된 책이다 보니 경제지표를 나타내는 자료들이 이전것들이고 최근 논의되는 쟁점들 - 지적재산권 문제 등 - 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것. '계급 역관계'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부르주아'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기엔 효과적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또 다른 반감을 줄 수 있겠다. 조목조목 비판한 후에 대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것은 허탈하기까지. 두페이지짜리 저자 후기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과 저항들을 정리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 하며 다소 황당한 문구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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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은 그다지 이론적이지도 않고, 그다지 이성적이지도 않습니다. 현실의 변화는 너무 역동적이어서 때로는 불합리하거나 비이성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안을 모색해야 할 공간은 바로 그곳입니다. 그 속에 희미한 길이 있을 뿐입니다. 이론적 대안을 화려하게 떠벌리는 것은 그렇게 하는 자들, 특히 '운동'을 밥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는 일부 엘리트들에게나 어울립니다. 그러나 너무도 분명한 것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온몸 던져서 모순에 저항하기 위해 싸우는 삶. 그런 삶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운동. 그리고 그런 운동들이 전세계적 차원에서 힘을 합하고 강화되는 국제연대. 이것이 현재로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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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론이고 뭐고 그냥 "열심히 살자"라는 얘기인가?
공부 모임때문에 읽은 책인데 나름 재미있었다. 2000년에 이런 책들이 나왔건만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진것도 모라자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권이 출범했으니 아직 진짜 '신자유주의'가 되기엔 모자란건가. 총선때문에 국민에게 굽실굽실한 '그분들'이 총선 이후엔 어떻게 변신하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