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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이펙트 -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필립 짐바르도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표지의 아기모형물의 표정이 강렬하다. 천진한 듯 하면서 사악해보이는 표정. 누구라도 꾀어낼 수 있다는 듯한 오만한 포즈. 이 아기 루시퍼는 각 장 사이사이에서 튀어나와 "너라고 안그럴 것 같아?"라며 독자를 비웃는다. 앞머리에 수록된 천사와 악마가 맞물린 에셔의 그림은 선과 악을 개인의 기질적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는 책의 요지를 잘 보여준다.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 - 이 책은 평범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다. 유태인 수용소의 그 '극악무도한' 독일인들이, 사실은 너무도 평범하고 때로는 '좋은'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익숙하다. 쁘리모 레비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찾지 못해 결국 자살로 마감하고ㅡ 인간이 원래 악한존재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 매일 끔찍한 사건/사고들이 터진다. 이 책 1장에서 예로 든 르완다 내전이나,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잔인한 사진들을 보며 "어떻게 인간이..."라는 탄식이 나오지만 오히려 더 무서운 건 "너도 이 사람들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의 주제다.
'시스템'이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지만 그 '시스템'을 고안해내는것 역시 인간이다. 저자는 나쁜 시스템을 고안해 낸 사람들과, 시스템이 악하다는 걸 알면서도 방관한 주변인들의 "행동하지 않는 악"에 대해 책임을 묻는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사건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자 당국에서는 문제가 된 '불량'군인 몇명을 처벌하는것으로 대처했지만 이 책에 따르면 그 몇명의 군인보다 더 엄하게 처벌받아야 하는 사람을은 시스템을 고안해 낸 - 국방부 장관, 부통령, 대통령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 고위직들이다. 하지만 사회가 늘 그렇듯 응징받는건 제일 아래의 '소모품'들일 뿐.
'행동하지 않는 악'의 여운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는다. 단순한 무관심에서 부터 나와 '상관없는'일에 공연히 잘못걸려들고 싶지 않은 개인주의, 혹은 내집단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두려움, 혹은 별로 달라질것이 없을것이라는 무기력함이 오늘도 우리를 주변의 사건들에서 떼어놓는다. 김상봉 교수의 어법을 빌리면 '홀로주체성'의 환상에 빠져 스스로 웅크리고 있는 것. 타인에 대한 신뢰/연대가 전제한다면, '서로주체성'이 내면화 되어 있다면 그럴 수 있을까? 88만원 세대는 자기 앞가림 하기에도 기진맥진해서 다른사람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사회가 88만원세대에게 부과한 부당한 대우 - 생각할 수 있는 여력을 빼앗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세울 수 없도록 만드는 - 에 꼼짝없이 당하고 있는게다. 세상 물정 모르는 소박하고 순진한 내 가슴은 당장은 변화가 보이지 않아도 무언가 하기위해 노력하는것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 믿고싶다.
'누구나 악해질 수 있다'는 말은, '누구나 선해질 수 있다'는 말의 반증이기도 하다. 책 말미엔 평범한 사람들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며 악한 시스템에 걸려들지 않도록 늘 '깨어있을'것을 주문한다. (친절하게도 '악한상황에 맞서는 10단계 프로그램'까지 제시하면서!)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집단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부당한 권위에는 반항하라는 등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 들이지만 앞서 살펴본 '책임없음'이 초래한 참혹함 때문에 조금 더 가슴에 와닿는다. '평범한 영웅'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조금 더 바뀌는 것이겠지.
**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과 비싼 책값은 독자를 주눅들게 한다. 보고서처럼 자세한 설명때문에 지루해지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지지하기 위한 부연설명들이 너무 많다. 요즘 책들은 100페이지면 할 말을 200,300페이지로 불려놓는데 용한 재주가 있다. 결론은 별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