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만남'. '만나다'라는 지극히 익숙한 동사의 명사형. 우리는 매일 수많은 누군가를 '만나고' 또 '누구 만난다'는 말을 스스럼 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만나는 행위'에도 '급'이라는게 있어 어떤 역사적 순간을 가리키기도 하고, 별 감흥없는 일상의 순간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책은 '시대적 요청에 의한 만남'이라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라 한다. '타인과의 만남'속에서 서로주체성이 발현된다 말하는 김상봉 교수에게 중요하지 않은 만남이 있으랴 싶지만 서경식과의 만남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나 보다.

김상봉 교수의 책은 몇 권 접해봐서 대략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짐작했었지만 서경식 교수의 책은 한권도 읽지 않았었다. '디아스포라의 눈'이란 칼럼을 몇 번 보긴 했어도 '재일조선인'이라는 타이틀때문에 그가 말하는 '고통'들에 대해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던 건 사실이다. 박노자의 글(한국에 대한)에서 느껴지는 급진성과는 조금 다른, 내면에 감추어진 - 별로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 흉한 모습을 보는 불편함이랄까. 이 책에도 거론되듯 자기 정체성을 상실해 본 적 없는 주체와 끊임없는 자아 상실속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물어야 했던 주체 사이의 차이리라. 박노자씨에게 한국이 '춘향뎐'을 통한 막연한 동경으로 다가왔다면 서경식씨에겐 '재일조선인'이라는 딱지와 두 형을 가둔, 차라리 부정하고 싶은 '타자'였을테니.

450여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에 걸맞게 다양한 주제들이 튀어나오지만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역시 '만남' 특히 '고통받는 타인과의 만남'이다. 첫 대담은 광주에서 518을 화두로 씨알(민중)에 대해 말한다. 김상봉 교수에게 씨알은 타인의 고통에 동참함으로서 형성되는 서로주체성의 현실태이자 자기 존재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억압을 뚫고 분출하는 저항의 에너지, 고통받는 타자에 대한 응답이자 연대. 2부는 역사 - 특히 프리모 레비를 필두로 한 '증언의 역사'가 이어진다. 3부는 '타자의 고통과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교육, 교양, 예술을 되짚어본다. 직접적인 화두가 무엇이든 책 어느곳을 펴나 '고통'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다. 적어도 이 책에서 '고통'과 '슬픔'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보고 껴안고 가야하는 '동반자' 혹은 '스승'이다. 어떤 위선이나 가식 없이 '인간은 어쩔수 없이 고통을 통해 더 많이 깨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서경식 교수의 '재일조선인'이라는 신분은, 한국어로 진행되는 대담에서 미묘한 의사전달을 어렵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상적으로 지나갔을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 예로 프롤로그에서 '뜻'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느라 네 페이지 가량을 쓰는데 이런 '제동장치'는 나같이 둔감한 독자에게 단어의 숨은 의미에 대해 곱씹을 기회를 준다. 초반에 서경식 교수는'외부'와 '내부'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대담이 진행되면서 내부와 외부의 경계는 차츰 모호해져 절대적 '내부'의 이미지는 허구라는 데 까지 이른다. 대담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신뢰 - 어떤 주제든지 주의깊게 듣고 성의있게 답하는 -는 더욱 깊이있고 열린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런것이 진정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

물론 이 책의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는 않는다. 깜냥이 안되서 도무지 소화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고,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다. 아쉬운 것은 '대담'이 가질 수 있는 '치열한 공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곳곳에 상대 의견에 대해 다른 견해를 펼치는 부분은 많지만 기본적으로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책 마지막에도 나오지만 김상봉씨에겐 '서승,서준식'이란 이름은 '잊혀지지 않는 시대의 상흔이자 어떤 고통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성의 숭고함'의 상징이었기에,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 애쓰는 서경식씨가 '걸어다니는 철학적 철학적 문제'일만큼 특별한 존재라고 한다. 하지만 나같이, 서경식씨를 잘 모르는 독자에게는 그런 존경심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 한가지. 함석헌 선생의 글이 많이 인용되고, 또 일종의 근거로서 사용되기도 하는데, 마찬가지로 함석헌선생의 책 한권 읽어보지 않은 나에겐 극단적으로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같은 불편함으로 다가오기도. 뭐 이건 내 개인적 소양부족의 문제겠지만. 

대담집이지만 대화의 수준과 깊이에서 오랫동안 준비해 온 정성이 느껴지는 책이다.

* 덧붙이는말로 곳곳에 수록된 사진과 파란색 컨셉이 맘에 든다. 소장하고 있는 돌배게 책 중에 - 그래봤자 몇 권 되지도 않지만 - 가장 컨텐츠와 부합하는 디자인이지 않나 싶다. 거리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는듯한 장면을 담은 사진들은 '시대적 만남'이라는 대담의 컨셉을 부각시킨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의 장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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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08-02-21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메일링리스트를 받았는데, 독자추천에 제이드 님 후기가 있길래.. ^^; 축하드립니다~

Jade 2008-02-22 00:27   좋아요 0 | URL
어머 정말 제 글이 있었네요 ㅎㅎ 축하는요 무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