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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김앤장 - 신자유주의를 성공 사업으로 만든 변호사 집단의 이야기 ㅣ 우리시대의 논리 10
임종인.장화식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1월
평점 :
언젠가 이런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가운입고 일하는 사람 - 의사, 성직자, 법관 - 은 자신의 인격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처음 이 말을 들을 땐 끊임없이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선비'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인격을 파는(sell)" 이미지가 떠오른다. 요즘은 어릴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신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훈계를 들으니, 스스로를 '팔아야 하는 상품'으로 여기는 것이 딱히 이상할 일도 없겠다. 하긴 150여년전에 쓰인 공산당 선언에서도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존경받던 경외의 직업 -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 - 들조차 부르주아지의 유급 임금 노동자로 전락"했다고 한탄하지 않았던가.
김앤장은 하나의 권력 ㅡ 저자들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나처럼 시사에 무지한 사람은 그 이름조차 생소한. 다행히 최근 국세청에서 김앤장 조사한다고 신문에 오르내리니 그 신성한 이름이 조금 세속화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국세청 출신 유명 인사들이 김앤장에 몸담고 있는 상황에서 그 '신성함'이 얼마나 타락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조금 엇나간 말이지만 흔히 하는 말중에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다"라는 말을 들을때마다 쓴웃음이 나온다. 여태까지 역사에서 '지식'이 중요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던가? 차라리 '지식상품기반사회'라고 하는것이 더 솔직하겠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 김앤장 사람들은 참 자신의 상품가치를 잘도 높이는, 전형적인 부르주아구나 하는 찬탄이 절로 나온다. 난해한 법조문을 요리조리 잘도 피해가고 심지어 친절하게 법률 작성 및 개정에 자문도 해주시고. 몇년 혹은 몇십년 동안을 법과 씨름해온 수재분들이니 오죽하시겠나. 적당한 시기에 세금내서 받은 표창 덕분에 세금문제를 피해가는 '수준'은 일도 아니겠지. (이번 국세청 조사와 삼성특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설마'가 '역시'가 될지, 혹은 그 반대일지)
이 책은 그리 얇지도 않은데(약 270페이지) 왠만한 소설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 무언가 '특별한 재미'를 원한다면 한번 읽어보시라. 김앤장 대표이사 김영무 변호사는 운현궁 영로당을 사적으로 소유한 비범한 인물이다. 김앤장은 스스로를 '반드시 이겨야 하는 소송에 처한 고객이 제일 먼저 선택하려고 하는 법률사무소'라 칭한다. 그런 자신감의 출처가 무엇인고 하니 내로라 하는 전직 고위직 관료들이 자문위원에 포진해 있다. 아예 김앤장과 정부부처직을 번갈아 하는 사람도 있고. 이거 원 무슨 스파이도 아니고. 더 황당한 건 공정위에 있으면서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과징금을 부과한 한 의원이 몇달 후 MS대리인인 김앤장에 입사. 필요하면 쌍방대리도 문제없음. 불법이라고 문제되면? 문제제기가 처벌로 이어지진 않는데 무슨 상관. 변호사윤리규정쯤은 무시해주는 센스. 이정도면 만능 해결사 '제이슨 본'보다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물론 그건 허구고 이건 바로 여기서 일어나는 현실이란게 다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럼 이 책이 말하려는 것이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은 다 양심이라곤 조금만큼도 없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다"는, 속된 말로 "김앤장 죽이기"인가? 김앤장의 화려한 전적을 살펴볼수록 이건 특정 집단/특정 개인의 양심을 탓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이 책을 읽고 분노하는 많은 사람들이, 만일 자기 친인척이 김앤장 소속이어도 그렇게 분노할까? 혹은 자기에게 이런 기회가 온다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거부할 것인가? 김앤장은 철처히 고객의 이익 - 그리고 이어지는 고액의 수임료에 충실한 집단이다. 똑똑한 머리를 이용해서 놓치기 쉬운 법률의 구멍을 쏙쏙 잘 찾아내는 것일 뿐. 김앤장이라는 특정 실체에 분노하기 전에, 모든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현 사회구조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돈 많고 똑똑한, 혹은 출신성분이 좋은 1%를 위해 돌아가는 현 상황에 대해. 그 1%에 들어가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나머지 99%에 대해 고민해야하지 않나. 소버린에 400% 수익률을 보조해 준 김앤장을 욕하기 전에, 한때 높은 수익률로 열풍을 일으켰던 주식/펀드 수익의 원천이 과연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물론, 김앤장은 단순한 '변호사 집단'을 넘어 이미 하나의 거대한 권력체이기에 김앤장에 맞선다는 건 충분히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 책 마지막에도 나오듯 김앤장은 우리사회 모두의 문제다. 사회의 온갖 부조리에 대해 맞서는 것,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고 저항하는것은 인간의 권리임과 동시에 의무이기도 하다. 워낙 사는게 힘들다보니 당장 내 일이 아닌것에 대해 둔감해지는건 어쩔수 없다 하지만 그런 무관심과 체념이야 말로 저들이 가장 좋아하는것이 아니던가. 너무도 쉽게 '주체적'이란말을 남발하지만 스스로 주체가 된다는 건 한편으론 끊임없이 싸운다는 의미다.
덧붙이자면 이 책의 내용은 KBS<시사기획 쌈>에 방영되었던 내용과 크게 차이가 없다. 1년정도의 차이가 있어 추가된 내용도 있지만 김앤장의 중요한 업적(!)은 대동소이다. TV에도 방영되었는데 1년동안이나 김앤장 이름도 모르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아직 김앤장이 생소하신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이나 TV방영분에 30분만 투자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