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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평점 :
박노자, 한홍구, 홍세화의 이름만 보고 샀던 '21세기를 바꾸는 교양'이란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 자체의 내용이 가벼운 것은 아니었지만 나오는 내용들이 대부분 저자의 다른 저서(하필이면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릿속에 많이 남아있던 탓에)에서 다뤘던 내용들이라 뭐랄까. 김빠진 맥주같이, 불꽃이 팍팍 튀는 찌릿함이 없어 술술 넘겼더랬다. 그 기억때문인지 여러 저자를 인터뷰한 책은 잘 읽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이 별게 없다기 보다는 나 스스로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것이 더 정확한 이유일 거다. 신문이나 주간지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보였으니까) 최근엔 주간지도 거의 안읽고 신문도 대충 읽어 넘기는지라 무언가 자극이 필요했다. 현 사태에 대한 새롭고 날카로운 시각이 주는 찌릿함. 하여 역시 '박노자, 홍세화, 한홍구, 진중권'의 이름만 보고 덥석 집어든 책이다.
오호, 솔직히 말하면 난 '전문 인터뷰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내가 접하는 인터뷰라고 해봤자 신문이나 주간지에서 나오는 짧고 형식적인 인터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기자의 질문에 청산유수로 대답하는 인터뷰 기사를 볼 때면 '예상되는 질문에 적절한 준비를 했구나'라고, 대답준비의 수고로움을 생각했을 뿐. 그런데 이 책은 거짓말 조금 더 보태면 'interviewee'보다 'interviewer'가 더 많이 준비한 것 같다. 대부분의 질문이 어떤 구체적 현안과 관련해서 했던 말이나 저서의 특정 부분에 관한 구체적인 것들이라 대답 역시 지극히 구체적이다. 멜기세덱님의 리뷰를 보니 'inter-view' 즉 '서로-보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확한 지적이다. 일방적 묻고 답함이 아닌, 현안에 대한 의견교류 혹은 주고받음. 비약하면 '말하기 위해 듣는'게 아니라 '듣기 위해 말하는 것'같은 느낌. 하긴 한번 실리고 마는 기사가 아니라 책으로 엮을 것이기에 당연히 많은 준비가 뒤따랐을거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읽는 내내 책 표지를 가득 채운 7개의 이름 가운데 '지승호'라는 이름을 끼워넣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오버하는건가?
7토막의 인터뷰는 각기 색깔을 갖지만, 전체적으로 '대한민국의 현재'를 그린다. (2006년 초반에 한 인터뷰가 현재와 견주어 전혀 '시대감각이 떨어지지 않는'것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 오히려 악화된 - 현실을 반영하는 걸까) 특히 인상깊은 건 진중권씨 인터뷰. '디 워 논쟁' 한참 전에 한 인터뷰지만, 마치 '디 워'에서의 시니컬함을 예고하는 듯 하다. 하긴 진중권씨도 많이 지쳤겠지. 이젠 미학에 치중하겠다는 '선언'이 아쉽기도 하고. 어쨌거나 조롱하는 듯한 오만함 - 누군가는 80년대 운동권식 글쓰기/말하기의 특징이라던데, 레닌 어법이었나? 모르겠다 -_-;; - 이 기분나쁘지 않은 건 지승호씨 말을 빌리면 '일관성과 실력'탓일게다. '써봐야 별로 알아듣지도 않고, 심각하기 듣는 사람도 없는 대중매체 글쓰기를 접고 학술적 이야기에 매진할까'한다는 박노자씨의 말에서도 일정한 '체념'이 느껴진다. 반면 심상정, 김규항, 손석춘 씨 인터뷰에선 - 현재 무언가 하고있는 지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 새로운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희망이 두드러진다. '한겨레'에 대한 비판은 좋지만, 비판이 더 잘하라는 '격려'가 되게끔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홍세화씨 역시. 이런저런 관점을 두루 둘러보고 드는 느낌은 딱 '불편함'이다. 글은 '불편해야 한다'는 박노자씨의 의도가 적중한건지. 잊고 있었던, 혹은 보고싶지 않았던 얼룩들을 정면으로 마주친 당황스러움 이랄까. 빠져들 듯 휘리릭 읽어내렸지만. 무언가가 덜커덕 걸리는 느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자괴감일까.
거의 사람마다 다른 질문들을 던지지만, 공통으로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이제는 사그라 든 '황빠', '박빠', '노빠'와 더불어) FTA다. 인터뷰 시점만 해도 한미 FTA는, 당연히 막아내야 하고-막아낼 수 있는 '허위'였지만, 그것이 '실체'로 다가올수록 점점 더 허상만 보이는 듯 하다. 요즘은 대선관련 기사때문에 크게 공론화되지도 못하는 듯 하고. FTA 반대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데, 또 내세우는 논리가 전부 비약된 것도 아닌데 왜 달라지는게 없는건지. 절반이 넘는 국민들은 FTA에 찬성하지만, 또 절반이 넘는 국민들은 FTA가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말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한 선생님이 농담처럼 두 가지 해석 - “미국의 국익을 반영하고 있음에도 찬성한다.”면 "자신을 미국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니 정신분열증(통합실조증)이거나 적어도 이인성 해리장애로, “미국의 국익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찬성한다.”면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의존장애형 우울증이거나 수치심(자기모멸)형 우울증이다. - 을 내렸다. 웃어넘기기엔, 너무도 현실적인 문제인데. 일정한 군사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파시즘을 넘어 이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자본파시즘'의 위력이 이런것일까. 손석춘씨 말처럼 '언론개혁'도 필요하고, 아예 초중고등학교 교육제도부터 싹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 소망'이 든다. (어느 중학교 교과서에는 '흑인'을 '니그로'라고 한다는 '용어설명'이 버젓이 실려있던데...길은 멀고도 멀다)
하여간, 해결책은 '불편함'에서 그치지 않고 무언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어서 문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