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탄생에서 소멸에 이르기까지 그와 연관한 행위는 폭력적일 수 있기 때문에, 생명에 관한 모든 행위에서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28쪽
유혹은 기술과 전략 이전에 생명력의 발현이다. 밀고 당긴다는 것 자체가 생명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건강하지 못한 생명은 지속되는 밀고 당기기의 긴장을 견뎌내지 못하고 빨리 결말을 내려 하거나 손쉽게 포기한다.-64쪽
'유혹 당하기'는 곧 '욕망 채우기'와일치한다. 유혹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는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유혹이 곧 욕망을 실현하는 기회라는 점에서는 매우 능동적이다.-67쪽
유혹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되고, 유혹 당하기는 단순하게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유혹을 받아주는' 지혜를 발휘하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행위가 된다.-69쪽
"고통을 명백히 들추어내고자 하는 필요성이 모든 진실의 조건이다" - 아도르노-75쪽
"고통은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없이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아니 적어도 그런 희망이 있기 때문에 괴로워한다." - 카사노바-76쪽
희망을 현실로 극복하는 에너지로 내세울 때마다 우리는 그 진지함을 저울질해보아야 한다. 아울러 희망의 이름으로 바라는 바가 실현될 가능성이 설득력있게 제시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다짐과 조언으로 연명하는 삶은 자칫 더욱 절망스럽기 때문이다.-86쪽
혼자 있는 영혼은 그 지평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래서 고독한 사람은 엄청난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것이 또한 고독한 사람의 낭만성이다.-116쪽
후회는 과거를 향한 것이고, 희망은 미래를 향한 것일 뿐, 둘 다 현재에 없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후회는 '이미'일어난 일들에 대한 감정이고, 희망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감정이다. 이런 점에서 둘은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에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감정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감정은 '허전함'이라는 공간에서 만난다.-179쪽
순수는 순간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은 우리 삶에 영원히 남는 감성적 경험이 된다. 여기에 순수의 존재적 의미가 있다. 순수는 감성적 경험의 순간으로 존재한다.-201쪽
진짜 소신을 중요시하는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생각해오던 것과 믿어오던 것을 수정할 줄 안다. 소신을 내세우고 지키며 굽히지 않는 것 이상으로 소신을 관리할 줄 안다......진정으로 소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신에 귀 기울이고 그것이 부각되도록 하며, 그것이 지켜지도록 배려한다. 이것이 소신 있는 사람의 겸허함이다...결국 소신의 종합적인 차원은 타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얼른 보아 소신은 매우 개인적이고 독자적인 차원을 갖는 것 같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덕목인 것이다. -264쪽
포기는 상대의 힘을 아는 것인 반면, 체념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포기하지만, 알아서 체념한다. 포기는 힘에 꺾이는 것이지만, 체념은 힘을 거두는 일이다. 그러므로 '쉽게 포기한다'는 말은 맞아도 '쉽게 체념한다'는 말은 맞지 않는다 깨달음을 얻는 일에 용이함이란 없기 때문이다. 체념은 '그만두고 거두는 일'에도 공을 들인다. -274쪽
소외된 자들의 삶은 쓸쓸하고 괴롭지만 삶의 진정성마저 상실한 건 아니다. 그들은 투박하고 누추한 생활환경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다. 마치 이 세상에 완전한 순수도 없지만 순수의 완전한 상실도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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