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살로메 - 자유로운 여자 이야기 삶과 전설 7
프랑수아즈 지루 지음, 함유선 옮김 / 해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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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루 살로메. 김선우 시인 산문집에서 처음 알았고, "니체가 눈물을 흘릴때"에서 니체를 쥐락펴락 했던 그녀의 당당함이 조금은 낯설었다. 알고보니 니체 뿐 아니라 프로이트, 릴케 등 당대의 석학들에게 천재적 지성을 자극했던 "대단한 여인"이랜다. '자유로운 여자', '한시대를 풍미했던 여자',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 살로메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하기만 하다. 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당당함과 날카로운 지성으로 한순간에 사람을 매혹시키곤, 잡힐 듯 말 듯 줄다리기를 하다 어느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몰차게 돌아서곤 했던 루. 당대의 사회적 통념을 깨고 남자에게 종속되지 않고, 성적인 접근도 허용하지 않으며 오직 지적 충만감만 허락했던, '까칠했던' 여인. - 서른다섯에 비로소 "여자"로서 남자와 "관계"맺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어떤 연유로 돌변한건지 전기 작가들사이에 논란이 많은가보다. 남들에겐 "당연한" 일상들이, 그녀에겐 "특별"했던 까닭은 뭘까. - 전기 작가는 조심스럽게 근친상간의 가능성을 꺼내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책을 가득 채운 파란만장한, 화려한 그녀의 경력과 재능엔 왠지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돌연 열등감, 혹은 컴플렉스에 관한 짧은 생각을 해본다. 연인을 쉽게 떠나는 그녀의 행동은, "또다시"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어린아이의 방어기제였을거란 나름의 추측에 빠져.

어떻게 자신에 목매다는 - 심지어 실제 자살했던 사람들도 있다 - 사람들을 매몰차게 떠날 수 있었을까 라는, 케케묵은 도덕적 잣대로 그녀를 평가하고 싶진 않다. "사람이기에"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고, 그녀가 떠나지 못할 아무 이유도 없었다. 내가 궁금한건, 왜 그녀는 그들처럼, 그네들을 사랑할 수 "없었"을까다. 사랑은 엄연히 동사고, 사랑"받음"보다 사랑"함"이 훨씬 더 충만한 마음의 기쁨을 준다는 것 - 모든것을 쏟아부었던 사랑이 떠나고 나면 열병처럼 무섭게 앓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랑하지 못하느니보다 열렬히 사랑하고 버림받는쪽을 택하겠노라, 김선우 시인은 말한다. - 이, 수천년에 걸쳐 경험자들이 말하는 사랑에 대한 진리며 전부다. 적어도 이 책 속의 루는, 많은 연인들과 더불어 사랑받음을 즐기고 지적 유희로 충만하지만, 사랑의 안타까움으로 눈물짓거나 가슴앓는 '인간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쿨"한 여인일 뿐.

적어도 의학적 관점으로는, 일체의 섹슈얼한 접촉을 거부했던 루는, 강박증 환자거나 신체이상자다. 인간, 특히 여성은 다달이 변하는 정교하고 복잡한 호르몬체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흔히 말하는 노처녀 히스테리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호르몬불균형인 경우가 많다. - 히포크라테스시절엔 히스테리 치료 처방으로 임신이 내려지기도 했다나! -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빌헬름 라이히는 오르가슴을 통한 오르곤에너지의 방출이 생명의 원천이라고도 주장했는데, 루의 성에 대한 '강박관념'은 평범하다고 보기엔 도가 지나치다. 하긴 전에 어딘가에서 고승들이나 고매한 수행자들이 느끼는, 정신적 깨달음에서 얻는 엄청난 희열을 "non-sexual orgasm"이라고 표현한것을 본적이 있긴 하다. 지성이 너무 뛰어났던 나머지, 천재들과 지적 유희를 즐기는 것으로도 이미 충분했던건지. 흠.

글쎄. 왠지 그녀가 행복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분명 책엔 당당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행복한 그녀의 모습이 가득하지만, 평전임에도 불구하고 루의 심리묘사는 거의 없다. 루는, 자신이 쓴 편지나 자신에 대한 글 - 릴케가 쓴 에로틱한 시 등 - 을 상당수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녀의 일기에도 소소한 일상 - 지적 자극을 주지않는 관계, 예를들어 남편, 평범한 의사였던 체메크 등 - 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심지어 고의적으로 추정되는 두번의 유산에 관해서도 언급조차 없댄다. 그녀는, 스스로에게도 페르소나가 너무 강했던것은 아닐까. 혹은 스스로 고매한 영혼이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일종의 '분열증' 상태였거나. 똑똑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우울증에 잘 걸리는 이유는 바로 "평범함의 부재"란다. 자신이 평범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비현실성"에 갇혀버리기 때문에. 혹 루의 강박관념도 그런 경우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녀는, 마음속 깊숙히 채워지지 않은 고독감으로 고통스러워 했을지도.

얼굴한번 보지 못한 사람에게, 너무 혹독한 말을 많이도 늘어놓는다. 글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단한 여인"이 일견 멋져 보이는 건 사실이다. 슬픔에 고립되지 않고 늘 당당했으니까. 하지만 난 오늘도 사랑에 울고 웃고 좌절하는 평범한 여인네들에게 어쩐지 더 애정을 느낀다. 평범함 속에서 의미를 찾는, 지리멸렬한 일상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그런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 아마도 내가 루 처럼 뛰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책 곳곳에 등장하는, 사랑에 눈멀고 서서히 죽어간 니체와 릴케의 시구들이, -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 루의 화려한 에피소드보다 더 깊숙이 마음속에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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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1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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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1 1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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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1 23: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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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2 00: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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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2 0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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