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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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데기. 바리공주. 바리. 그녀를 처음 알게된 건 부끄럽지만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어린시절 그 흔한 콩쥐와 팥쥐, 신데렐라 이야기는 숱하게 들어왔어도 '바리공주설화'는 한번도 듣지못했기에. 김선우 시인이 예쁘게 옷을 입힌 '바리공주'이야기는, 시인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낸, 몽환적이면서 슬픈, 하지만 아름다운 한편의 그림처럼 음악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황석영 작가의 글은 대개 간결하고 - 자잘한 수식어나 꾸밈이 없다는 면에서 -  남성적이지만 문장마다 감칠맛이 배어있다. 감정적이지 않으면서도 마음을 울린다고 해야하나. 발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뜻을 파악할 수 없는 사투리도 '따뜻한 구수함'을 풍긴다. 3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소설이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산길같은 바리의 '고생길'이 소설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탈북소녀 바리는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어찌어찌해서 살아나지만 어린나이에 가족들이 하나 둘 그녀의 곁을 떠난다.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지고 숲 속에 움막을 짓고 살다 마지막 남은 가족인 할머니와 칠성이 - 바리와같은 일곱째 강아지 - 마저 보낸다. 전혀 새로운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으며 몇번의 '지옥'을 거치고 어찌어찌해서 영국까지 가고 그곳에서도 삶은 결코 순탄치 않다. 도와준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죄없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 - 바리 자신도 포함해서 - 에 절망하고 세상을 원망하지만 결국 바리공주처럼 그녀도 생명수를 찾는다.

설화에서는 도깨비를 만나 밥짓고 빨래하던 그 물이 생명수였고, 바리공주는 생명수를 길어 왕국을 살린다. 소설에서는 바리가 생명수를 알아보지 못해 가져오지 못한다. 소설에서 생명수는 무엇이었을까. 황석영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분열과 증오와 죽임의 21세기에, 과연 생명수는 무엇일까. 나는 감히 '용서'라고 말하고 싶다. 바리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탄 배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고도 돈을훔쳐 달아난, 결과적으로 바리의 아이를 떠나보내게 한 샹은 바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언제나 너에게서 풀려나게 될까?"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슬퍼하는 것은, 상처준 사람을 내 마음에 묶어두는 것이다. '용서'는 결국 - 자신을 힘들게 한 사람이 더이상 자기 마음에 남아있기를 거부한다는 면에서 - 더 나은 삶을 살기위한, 자기자신을 위한 행위다. 샹이 자살했다는 말에 - 한때 그녀를 죽이겠다고 했던 - 바리는 그녀를 돕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 눈물흘린다. 자신을 버린 사람을 모두 용서한 바리는, 처참한 버스테러 앞에서 뱃속 아기에게 미안해 다시 눈물흘리고, 소설은 막이 내린다.

얼마전 상영했던 '황진이'도 바리설화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낳은 어머니에게도, 기른 어머니에게도 버림받지만 주저앉지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세상을 발밑에 두고 살고자 한 여인. 자신의 출신을 밀고해 인생을 흔들어놓는 '놈이'를 오히려 뜨겁게 사랑한 여인. '진이'도 '명월'이도 모두 툴툴 털어버릴수 있었던 여인. 

여담이지만 '바리'는 '버리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발'의 의미이기도 하댄다. 바리가 '발 마사지'를 통해 생계를 이어나가고, 상대방과 소통한다는 설정은 묘한 접점을 가진다. 사실 발이야 말로 우리몸에서 가장 '천대(!)받지만, 매일매일 걷는 중노동을 견뎌내며, 크게 잘못되지 않으면 별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부분이 아닌가. 버림받은 '바리'가 세상을 구하는것과 묘하게 상통한다. 귀에걸면 귀걸이 코에걸면 코걸이란 말은 여기저기 갖다붙여 그럴듯하게 꾸미는 걸 비꼬는 말이기도 하지만 뒤집어보면 그만큼 적용력이 풍부하단 소리다. 우리말의 '통용성'이란!

아직은 낯설기만 한 북한묘사와 화물선 컨테이너의 밀항,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런던의 모습 등을 통해 생소함과 동시에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 비슷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린다. 바리의 고난을 통해 현재 우리를 짓누르는 문제들 - 빈부격차, 테러, 전쟁, 민족, 종교 등 -을 바라보며 우리모두가 '생명수'를 찾을 수 있길 기원해본다. 매일 먹고 마시는 물이 생명수라는 설화처럼,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짐 - 미움이나 원망 - 을 훌훌 털어내고 평온한 마음으로 일상의 행복을 찾게되길 - 물론 나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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