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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세트 - 전3권 ㅣ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내용이 궁금해서 보게되는 책이 있고, 저자의 유명세 때문에 보게되는 책이 있다. 사실 '미학'이란 학문은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주제는 아니기에 - 약간은 현학적 냄새도 나고 - 여러번 마주쳤지만 선뜻 손이가는 책은 아니었다. 그러다 저자의 신간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보고 책 내용보다는 저자에 대해 알고싶어졌다. 이름부터 딱딱한 '미학'에 대해 세권이나 되는 적지않은 분량을 대체 어떤 내용으로 채워 놓았을까. 사실 '내용'보다는 말을 풀어나가는 작가의 말솜씨가 궁금했던건지도 모른다.
철저한 구어체. 인터넷이 생활이 된 지금에야 낯설지 않은 문투지만 책이 처음 나왔을 94년엔 상당히 충격적이었을것 같다. 내용은 전혀 가볍지 않지만 무거운 얘기를 적당한 유머를 섞어 무겁지 않게 풀어내는 방식은 - 요즘에라면 분명 장점이지만 - 한편으론 비판받지 않았을까. 뭐 어쨌거나 94년에 찍힌 책이 아직까지 꾸준히 읽히는 걸 보면 - 총 판매부수를 볼때 전혀 적지않은 양으로! - 이 책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어떤 학문에 대한 '오디세이' - 원래는 고유명사지만 어떤 긴 여행등을 가리키는 말로 일상화 된 - 는 학문 전체에 대한 개괄적이고도 간결한 설명을 요구한다. 분야에 상관없이 시중에 나온 개론서들은 대개 갓 입문한 사람들은 생소하기만 한 어려운 단어들을 동원해 장황한 각론들을 요약해 놓은 듯한 느낌을 주곤 한다. 이 책이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는 이유는 기나긴 미학의 역사를 - 안에 담긴 철학까지 포함해서 - 어설프게 축약하지도, 또 지리하게 부연설명하지도 않으면서 중간중간 적절한 삽화들로 부족한 공백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또 처음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특이한 구성 - 큰 틀로는 시간순으로 전개되지만 각각 독립된 챕터들,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플라톤/아리스의 대화, 그리고 각 권의 큰 주제를 담당하는 세 명의 화가의 세계 - 역시 신선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한 후, 이어진 각 부분들끼리 따로 읽어보면 또다른 재미를 준다. 마치 챕터마다 각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처럼.
전시회 등에서 무심히 마주쳤던 그림들이 내포한 당대의 철학적 논쟁거리나 작가가 고민했던 부분들에 대한 설명을 보면 불현듯 전시회에 가고싶어진다. 혹은 쟁점이되는 철학논쟁부분에 관심이 쏠려 관련 철학서적에 손이 가기도 하고. 일상성을 깨뜨린 마그리트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갑자기 주위의 사물들이 낯설어지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되기도. 여러면에서 볼 때 독자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선물상자 같은 - 함께 온 작가노트도 작은 선물같다! -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