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고물상 - 개정판
이철환 지음, 유기훈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추억

역시 이철환 작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울고 웃고 감동하고 안타까워하고 미소지으며 책에 푹 빠져들었다. 꼭지마다 표정이 있고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정겨운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한 벗의 어릴적 이야기, 모두가 가난했고 힘겨웠지만 훈훈한 정을 나누던 그때 그시절의 이야기는 내 유년기와 겹쳐지는 풍경이 많다. 가게를 하던 우리 집에 껌을 파는 아이들과 구걸하는 사람이 많이 드나든 일, 연탄가스에 온가족이 중독되어 죽다 살아났던 일, 도시락을 못 싸오는 몇 몇 친구, 갈탄 난로 위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도시락, 방학이면 시골 외가에 가서 새까맣게 그을리며 친구들과 뛰놀았던 일들이 내 유년 시절과 닮아 있어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한 소꿉친구들과 시골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살까? 사무치게 그립다.

 

아이스께끼, 짐자전거, 구멍 난 운동화, 육성회비, 회초리, 공동 화장실, 고물상, 양계장, 가을 운동회! 쉬지 않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에 족한 단어들이다. 이렇듯 <행복한 고물상>은 독자를 추억여행으로 초대해 오래된 흑백 사진을 보는 듯한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책 제목인 '행복한 고물상'은 이철환 작가의 아버지가 실제로 운영했던 조그만 고물상의 간판 이름이라고 하는데, 제목부터 정겹다. 책에는 산동네 고물상을 배경으로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정겨운 이야기와 강직하면서 따뜻한 성품을 지닌 부모님, 친구 같은 쌍동이 형, 누나, 할머니, 친구들과 얽힌 재미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빼곡하다. 작가의 따뜻한 글과 사람 냄새나는 글은 아마도 부모님께 따뜻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영향이지 싶다. 잘못한 일엔 어김없이 따끔하게 회초리를 들지만, 가난하고 약한 사람에겐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작가가 그대로 닮은 것 같다.

 

 

*감동

책을 받고 뒤편 책날개에 적힌 '축의금 만 삼천 원'이란 짧막한 글에 눈이 먼저 갔다. 남자들의 도타운 우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함석헌 님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에 비견될 만한 친구를 둔 작가가 부럽다. 하지만 뒷날개의 감동은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감동의 물결이다. <연탄길>에 소개된 바 있는 '우리들의 지붕, 아버지'는 다시 읽어도 감동이다.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치는 날 밤, 성치 않은 몸으로 지붕 위에 웅크리고 앉아 가족을 위해 온몸으로 비를 막은 아버지 이야기에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처음 읽은 것도 아닌데.

 

"그날밤 아버지는 천둥치는 지붕 위에 앉아 우리들의 가난을 아슬아슬하게 받쳐 들고 계셨다. 우리 가족의 든든한 지붕이 되기 위하여 비가 그치고 하얗게 새벽이 올 때까지..."(p60)

 

작가 형제는 골프장 주인에게 받은 돈으로 어머니의 새구두를 사고, 작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질기고 단단한 새바지를 사드리기 위해 아이스께끼 장사를 한다. 가난 속에 孝가 있다는 옛말이 딱 맞다. 가난은 작가에게 효를 비롯해 정직과 성실, 나눔 등 선하고 바른 성품과 물질관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가난이 아니었다면 배우지 못했을 귀한 가르침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작가의 가족은 베풂과 나눔과 섬김의 정신으로 이웃을 사랑한다. 껌을 팔러 온 오누이가 방석 아래 살며시 놓고 간 껌 3통, 상이군인 아저씨가 몰래 놓고 간 옥수수 두 자루, 돌산 할머니가 양은 냄비에 들고 온 호박죽, 삼희네 집에 몰래 갖다 놓은 씨암탉, 되찾은 짐자전거 안에 든 사과봉지 등 인정 넘치는 이야기는 작가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이웃들의 깜짝 선물이다. 내 코가 석자라고 모른척 하지 않았기에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보답이다. 눈물겹고 아름다운 감동의 향기가 책 밖으로 솔솔 풍겨 나와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웃음 

작가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유년 시절 이야기는 추억과 감동뿐 아니라 웃음도 선사한다. 은실네 집의 무시무시한 개 깜치한테 쫓겨 바지를 벗은 채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형의 이야기는 큰웃음을 준다. 속옷도 입지 않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소년을 상상하니 얼마나 웃긴지 까르르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씹던 풍선껌을 형 눈썹에 붙인 일, 변소에서 볼일 보는 작가를 향해 먹던 수박통을 집어던져 보기 좋게 복수한 형, 술래잡기 할 때 쓰레기통 속에 들어가 숨는 바람에 김치찌개 세려를 받은 일 등은 웃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에피소드다.

 

웃다 울다 미소짓다 하다보니 어느새 한권을 다 읽었다. 따스하고 정겹고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정감 어린 일러스트와 생소하지만 예쁜 형용사와 부사가 이야기를 한층 더 따스하게 해준다. 낯선 단어가 나올 때마다 사투리인지, 옛말인지 알 수 없어 따로 메모를 해두고 책을 다 읽은 뒤 찾아보았다. 덕분에 새로운 형용사와 부사를 많이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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