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김영숙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시간이 널널한 전업주부임에도 바깥 외출이 쉽지 않은 것은 내가 처한 환경과 음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성격 탓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라곤 십여 가호가 드문드문 앉아있는 마을과 뒷산뿐이고 나머지 볼일은 모두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산골이 나를 두른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 처하게 되면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볼일을 한번에 몰아서 보게된다. 시골 할머니들이 장날에 몰아서 목욕하고 장에 다녀오는 것처럼. 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 나가는 게 귀찮아졌다. 어지간한 일은 출퇴근하는 남편이 해결해줘서 게을러진 것도 있지만 솔직히 나가 봐야 딱히 갈 데도 없다. 영화를 보려면 1시간 이상을 달려서 다른 지방으로 가야하고 백화점도 1시간 이상 고속도로를 밟아야 한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건 아예 꿈도 못꾼다. 시골에서 살아 보니 문화인 되기는 영 그른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시에서 살 때 문화생활을 많이 누릴 걸.

 

이렇게 미술과 담쌓고 살아서 나는 현대 미술이 어렵다는 걸 솔직히 모른다.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지도 않지만 작품에는 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관심있는 건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 미술사의 뒷이야기 정도라 하겠다. 고흐로부터 출발한 미술가들의 삶에 관한 관심은 세잔과 카라바조, 고갱과 루벤스, 고야, 피카소 등으로 이어졌다. 예술가에 대한 관심은 작품으로 이어져 작년 한해 동안 미술 관련 서적 십여 권을 읽었지만 모두 20세기 이전의 화가를 다룬 책이어서 현대의 미술사조는 잘 모른다.

 

[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은 현대 미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사람이나 현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글 솜씨로 현대 미술을 알려주는 책이다. 현대 미술의 입문서 격인 이 책은 목차부터 흥미를 유발한다. '똥도 예술이다. 혹은 예술은 똥이다', '사진 찍으면 되지롱'. '소변금지'. '못 먹어도 고', 갈 때까지 가보자고', '선무당 사람 잡는다', '텔레비전을 폭파하라' 등의 다소 자극적인 목차가 시선을 끈다. 프롤로그에서 이미 저자의 글발에 매료된 나는 책에 사정없이 빨려들었다. 읽으면서 연신 야, 참 재미있게 잘 쓴다! 어~ 이것도 작품이야?  아, 이 작품은 이런 거였구나, 를 연발했다.

 

현대 미술 이론을 쉽고 편안하고 재미나게 들려주는 작가 덕분에 현대 미술에 대해 조금 눈이 떠졌다. 근대미술에서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탄생한 현대 미술의 이론과 작가들의 난해한 작품에 대한 설명을 편안한 글솜씨로 풀어내고 있다. 또한 작가들이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을 왜 완성했으며, 왜 그런 작품이 인정을 받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빈 캔버스에 칼로 흠집은 낸 미술가, 자신이 만들지 않은 물건들을 쌓아놓는 걸로 작업이 끝났다고 강변하는 예술가, 공장에서 가져온 형광등을 이용해 미니멀리즘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 아무리 보아도 아름답지 않은 작품과 형편 없이 못 그린 그림들이 과연 미술 작품이기나 한가? 이에 대해 [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은 그렇다! 이것이 바로 현대 미술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름다움과 관련된 기술이 '미술'이고 보면 '아름다움'이란 말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보편적인 생각이 너무 편협했다는 것을 저자는 지적한다. 현대 미술가들은 더 확장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말 그대로 '미술가' 들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

 

조각과 회화, 미술과 연극, 사진과 음악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것이 혼성 된 모습으로 바뀐 현대 미술은 부정과 수용이 뒤죽박죽인 채 벌겋게 알몸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정치나 인권, 여성문제, 대중문화 등으로 영역을 넓힌 현대 미술을 접하며 다소 생경하고 거북하기도 했지만 저자의 재미난 설명 덕분에 편하게 현대 미술에 입문하게 되었다. 현대 미술가들이여! 발칙한 저항을 계속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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