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의 세계사
폴 존슨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윈스턴 처칠, 에이브러햄 링컨, 머더 테레사,  나폴레옹, 톨스토이, 김구, 이순신, 마하트마 간디, 칭기스칸 등 영웅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은 수없이 많다. 정치, 경제, 예술, 문학이 낳은 영웅과 분야를 아우르는 민족적 영웅, 전쟁 영웅, 서양의 영웅과 동양의 영웅, 그리고 세계적인 영웅 등 영웅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무궁무진하다.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영웅의 사전적 의미보다 영웅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유난히 크게 보이고 멀게 느껴지는 건 나만 느끼는 것일까.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내게 '영웅'이란 단어의 어감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범접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힘과 능력과 포스에 눌리고 눈부신 업적에 압도당해감히 본받고 싶기 보다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영웅으로만 느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웅의 거의 대부분이 동시대 인물이 아니기에 늘 책이나 매체를 통해 일정거리를 두고 만났다. 한발짝 건너 전해듣는 영웅의 이야기는 주로 눈부신 업적에 치중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어렸을 적 위인전과 조금 커서는 평전을 통해 만나본 위인들의 삶은 대부분이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 할만 하다. 흠잡을 수 없는 인생, 치부없는 삶을 살다가서 멘토로 정하기조차 부담스러운 영웅도 몇 있다.

 

[영웅들의 세계사]는 미화되고 포장된 영웅보다는 폴 존슨의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본 영웅들을 엄선해 소개한다. 폴 존슨은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자기 자신을 믿고 위험천만한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 자신에게 최면을 걸 줄 아는 사람, 절대적인 독립심과 일관성 있는 행동, 세상의 평가와 자신에게 미칠 결과에 초연한 사람을 영웅의 범주에 넣고 있다. "사회 통념을 깨뜨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고, 혼자가되는 한이 있더라도 서슴없이 진실을 말하는" 새로운 영웅 이야기는 파격적이다. 책에 소개된 30명의 영웅 가운데 여성이 절반 가까이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여성 영웅들 가운데 마릴린 먼로가 포함 된 것이 가장 파격적이라 하겠다. 대부분의 영웅이 서양에 치중된 점은 아쉽지만 성경 인물인 드보라, 유딧, 삼손과 다윗이 등장한 것도 이채롭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삼손에 대해선 부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아서 관심있게 읽었다. 삼손을 순교자이자 성인 그리고 훌륭한 영웅의 모습으로 그린 밀턴의 책을 폴 존슨이 소개하고 있어 나중에 따로 읽을 참이다.

 

[영웅들의 세계사]가 흥미진진한 건 이름 없는 여성 영웅과 명성은 있지만 남편의 그늘에 가린 여성들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일테면 대통령의 아내, 위대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의 아내, 영적 지도자의 아내들 말이다. 에드워드 1세의 왕비 카스티야의 엘리너는 화를 잘 내기로 악명이 높은 남편으로 인해 수모를 당하며 살았고, 에드워드 3세의 아내 에노의 필리파는 남편이 정부를 둔 것을 참아야 했고, 앤드루 잭슨 미국 대통령의 아내 레이첼은 미국 최초의 정치적 중상모략의 희생양이 되었고, 가난에 쪼들리며 산 바흐의 아내, 천부적 재능을 지닌 모차르트의 누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모두 처음 듣는 낯선 이름이지만 이는 제인 웰시 칼라일과 은둔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함이다. 두 여인 중 종교와 부모에 대한 두려움을 평생 안고 살아간 에밀리 디킨스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무거웠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고 아버지가 강제로 교회로 보낼라치면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그녀를 향해 작가는 "지루함을 고집스레 견디며, 용기와 불굴의 의지로, 필사적이고 당당하게 작품들을 써낸 이 여인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한다. 폴 존슨으로 하여금 에밀리를 영웅의 반열에 올리게 한 [나의 전쟁은 책 속에 묻혀있네:에밀리 디킨슨의 생애]도 밀턴의 책과 함께 읽을 참이다.

 

책은 이외에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비롯해 잔 다르크, 토머스 모어, 제인 그레이, 엘리자베스 1세. 워싱턴, 넬슨, 레이건, 윈스턴 처칠, 샤를 드골, 요한 바오로 2세, 대처 등을 다룬다. 저자의 영웅에 대한 재조명은 멀게만 느껴졌던 영웅과의 거리를 좁혀주어 좋았다. 평범함 속에서 용기를 낼 줄 알고 강한 독립심을 가진 영웅들의 이면과 평소에 영웅으로 생각지 못한 영웅들의 색다른 만남과 처음 대하는 영웅들을 만나는 동안 그들을 좀더 알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을 오랫만에 만나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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