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사랑한다 - 최병성의 생명 편지
최병성 지음 / 좋은생각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인천 부평에서 태어나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하다가 

오랜 고민 끝에 신앙의 진정성을 찾아 10년 전 낯선 서강가 숲에 은거했다.

그러나 서강 유역에 쓰레기 매립장 건설이 불거지자 이를 막기 위해 환경 운동에 뛰어들어

소기의 성과를 이룬 뒤 글과 사진으로 서강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최근에는 산업 폐기물 시멘트에 고통 받는 현대인을 위해 사비를 털어 시멘트의 심각한 해악을 조사, 분석, 잠복까지하며

언론과 국회와 감사원까지 움직여 근본적 해결을 위한 길을 열었다.

세상을 바꿔 가는 1인 환경운동가이자 생태교육가이며 이 책의 저자인 최병성 님의 이야기이다.

 

한고향 사람을 만난것도 반가운데 목회를 하시던 목사님이라니 더 반갑다.

거기다 영월 숲에 사신다니 나와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것 같아 설레이기까지 했다.

인천에서 태어나 신앙생활을 하다가 2년 전 아무 연고도 없는 동강가 숲으로 옮겨앉은 나와 닮은꼴 아닌가.

여기서 영월까지 20분 거리니 타향에서 고향사람 만난 것처럼 반가울 수밖에.

하지만 읽을수록 웬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나와 닮은 듯 하나 전혀 닮지 않은 모습들이 속속 발견되니 부끄럽고 멀게 느껴진다.

숲과 강을 사랑하고 숲속의 모든 생명을 지극히 사랑하며 친구처럼 대하는 자세는 숙연하기까지 하다.

 

나?

나는 숲속의 모든 생명이 저자만큼 사랑스럽지도 않고 친구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솔직히 아직은 그렇다.

왜?

저자는 숲을 거닐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대낮에도 무서워서 숲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내가 사는 숲은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원시림에 가깝다.

그 숲엔 밤나무가 많아 뱀이 유난히 많고,

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는 공장의 기계소리처럼 요란해 감히 들어갈 엄두를 못낸다.

저자는 숲에 들어가면 풀 한 포기부터 작은 벌레 한 마리까지 모두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라고 말하지만,

나는 숲에 들어갔다가 풀에 걸려 넘어질까 무섭고,

넘어지다 뱀이라도 밟을까 겁나고,

숲을 걷다 벌에 쏘이거나 벌레가 슬금슬금 기어오를까 몸이 오그라들고,

바스락 소리만 나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 숲에 못들어간다.

 

저자는 멧비둘기라 부르는 산비둘기를 '식구'라고 소개하지만,

나는 애써 심어 싹을 틔운 옥수수 알을 파먹는 산비둘기가 얄밉다.

올해도 산비둘기 녀석들이 막 올라온 새싹 밑둥을 파헤쳐 무려 너댓 고랑의 옥수수알을 훔쳐갔다.

저자는 다람쥐를 밤나무와 도토리나무를 숲에 넒게 퍼지게 한 일등공신이라고 말한다.

놀라운 발견이다.

하지만 마당가에 줄지어 심어놓은 앵두나무 열매가 채 익기도 전에 싹쓸이 해가는 다람쥐 녀석들을 보면 귀엽지만은 않다.

산에도 먹을 게 지천인데 예까지 내려와서 우리 것을 모조리 따먹어 입맛만 다시게 만든 다람쥐들은 가족의 공공의 적(?)이다.

그렇지만 심하게 밉지는 않으니 그 생김새가 귀엽고 하는 짓이 앙증맞아서 그런가 보다.

 

[알면 사랑한다]가 들려주는 숲 이야기는 경이로움과 행복으로 가득하다.

책에는 우체통에 포근한 보금자리를 마련한 딱새 부부를 반갑게 맞이하는 이야기가 있고,

쇠딱따구리의 엄지손가락 굵기만한 작은 둥지를 발견하고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 이야기도 있다.

꽃잎과 수술 사이에 일정한 비율과 대칭 관계를 발견하고 신비로움에 젖는 이야기가 있고,

눈꼴실 정도로 사랑에 푹 빠진 멧비둘기의 진한 애정 표현을 보며 질투심을 느끼는 이야기도 있고,

강추위에 민들레가 어떻게 될까 싶어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날이 밝자마자 찾아갔더니

밤새 내린 서리로 하얀 면사포를 쓰고 있다는 민들레 이야기도 있다.
모두 수심 깊은 서강의 잔잔한 물결처럼 잔잔한 감동과 아름다움을 주는 이야기이다.

 

저자의 서강과 숲속 생명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유별나고 각별하다.

이름 없는 들풀 하나에서 꽃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식물의 모든 이름과 특성을 줄줄이 꽤고 있고,

숲속 짐승과 벌레 곤충, 산새, 강에 사는 물고기와 물새들의 이름과 특성을 모두 꽤차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이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인지,

어떻게 해줘야 그들이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알고 있는 그대로 자연을 사랑한다.

마치 말이 필요없는 오래된 지기처럼.

 

그가 산새들을 위해 새집을 만든 것 하나만 봐도 그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지 금새 알 수 있다.

직접 만들어 숲 여기저기에 걸어둔 새집에서 산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운다.

모든 산새에게 둥지를 만드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추운 겨울 날이면 산새들이 어떻게 견딜지 마음이 아려 새집을 만들어 달아주었다고 하는데,

새들 입장에서 보면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다.

사진에 나와 있는 새집은 모두 제각이다. 모양도 디자인도 재료도 색상도 모두 다르다.

목수 뺨칠 정도로 솜씨도 좋고 감각도 뛰어나다.

새들의 특성과 기호에 맞게 예쁘게 지어준 그의 마음을 새들도 알고 예쁜 노랫소리로 보답하는 것 아닐까.

 

서강을 향해 몸에 흐르는 핏줄기처럼 친근하다고,

숲을 향해서는 삶의 지헤를 들려주는 스승같고, 신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같다고

말하는 최병성 저자는 자연과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진정한 자연의 친구'이다.

자연도 인정한 자연의 벗이다.

나는 8년을 더 살아도 그의 근처에도 못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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