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엔 유별난 가풍이 하나 있다. 과보호. 어머니가 누나와 나를 그렇게 키웠다. 그 부작용은 한동안 온 집안을 뒤흔들었다. 우리 집에서 어렸을 때부터 지냈던 사촌 누나가 있다. 어머니한테 보고 배웠는지 나중에 자식들을 그렇게 키웠다. 그 부작용이 지금 사촌 누나의 집안을 흔드는 중이다. 우리 누나? 아이들이 어릴 때, 부작용에 휩쓸리던 중이라 과보호고 뭐고 없었다. 나? 결혼을 안 했다. 그런데...


이 좋은 참치 등살을 안 먹는다 이거지?


덩어리로 포장된 참치 등살을 가위로 자잘하게, 거의 가루처럼 자른다. 아니, 이 정도면 가위로 으깬다고 해야겠다. 우리 집 고양이는 어찌 된 영문인지 덩어리가 큰 음식은 먹질 않는다. 유난히 깔끔한 체하는 녀석이라 혀로 핥아서 딸려 오는 것들만 먹는다. 입 주변에 될 수 있으면 무언가를 묻히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래서 가위로 참치 등살을 갈아버리는 중이다. 어디 그뿐인가? 혀로 간식 그릇을 핥다 보면 점점 한 방향으로 음식물이 쏠린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그릇을 돌려준다.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가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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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랄라. 운동할 겸 산에 간다. 하나둘 하나둘.

...

헉헉. 씩씩. 이상하게 밖에만 나오면 걸음이 빨라진다. 앞선 사람들을 다 제치면서 산에 오른다. 누가 먼저 가나 시합하는 것도 아닌데.


드디어 꼭대기. 이곳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리고 고양이 세 마리가 있다. 한 살 남짓 된 녀석들. 등산객들에게 삥을 뜯으며 호랑이 행세 중이다. 나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갈 때마다 삥을 뜯긴다. 그래, 길에서 태어났으면 이 정도 배포는 있어야 하는 거다. 산꼭대기에서 산신령 놀음 정도는 해 줘야지. 닭가슴살을 바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




드디어 집. 이곳엔 내가 산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다섯 살쯤 된 녀석. 내게 삥을 뜯으며 방구석 호랑이 흉내를 낸다. 그래, 집에서 살 거면 이 정도 착각은 해야 하는 거다. 집구석에서 벌레 정도는 잡아줘야지. 간식을 마치고 즐거운 마음으로 앞담화를 나눈다.


고양이, 넌 벌레를 언제쯤 제대로 잡을 거냐?

(멀뚱)

... 그래, 그래, 벌레한테만 안 잡히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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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온이 26도라고? 바깥 기온을 살피다 깜짝 놀란다. 하지만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산에 오르기 위해 밖에 나섰다가 내리쬐는 햇볕에 화들짝 놀란다. 어깨부터 등판까지 뜨뜻한 게 영락없는 여름 햇볕이다. 5월도 아니고 4월 중순에 이 무슨. 봄인데. 아직 나뭇잎들도 다 나지 않은 봄인데. 무엇인가 봄을, 계절을 잊은 듯하다.


산에 오르면 괜찮겠지. 사방이 뻥 뚫린 곳에 가면 바람이 땀과 열기를 식혀 줄 거야. 정상에 가기 전 그런 장소가 한 군데 있다. 겨울엔 모자를 손으로 누르고 지나가야 할 정도로 바람이 위세를 떨치는 곳. 오르고 올라 도달했건만 손은 갈 곳을 잃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항상, 당연히 불어올 거라 여겼던 바람인데. 부는걸, 잊었다.


정상을 찍고 내려온다. 그곳에서도 바람은 보지 못했다. 정상 바로 아래쪽 내려가는 길목에 사람들이 조그만 돌탑들을 쌓아놓았다. 무엇을 소원했을까? 무엇을 바랐을까? 정월대보름이나 추석에 달을 향해 쏘아 올린 수많은 소원으론 부족했던 모양이다.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달에서 방아 찧던 토끼가 도망갔다고 하던데. 이 산의 호랑이는 이 돌탑 때문에 시끄러워 사라진 것일지도. 그래서 호랑이도 잊혔다. 지금은 고양이 뿐. 돌탑을 쌓은 사람들은 그것에 갈무리한 소원을 잊지 않았을까?




토끼와 호랑이로 흘러가는 생각에 넋을 놓다가 정신을 차려본다. 어느새 산 중턱, 도로가 있는 곳이다. 벌써 여기까지 내려왔다고? 자주 가는 길이라 그런지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로 하산했다. 미쳤구나, 미쳤어. 뒤를 돌아보니 내가 내려온 계단이 저만치 위까지 이어지다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문득 궁금해진다. 난, 뭘 잊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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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잎이 흩날린다. 비가 내리기도 했고, 예년보다 벚꽃 개화 시기가 일주일 정도 빨랐던 터라 서서히 꽃이 질 때도 됐다. 벚꽃은 꽃이 피어있을 때도 예쁘지만, 질 때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매년 피고 지지만, 매년 똑같지만, 사람들은 그 반복을 즐거운 마음으로 반긴다.


집에 들어와 청소를 한다. 10년 넘게 쓴 진공청소기는 나이 먹었다고 큰 소리로 어찌나 유세를 떠는지 일 안 시킨 지 오래다. 그래서 선택한 건 돌돌이. 다른 집에선 보통 옷이나 천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데 쓴다. 하지만 우리 집에선 밀대에 연결해 바닥을 밀고 다닌다. 그런데 문제는 고양이. 청소할 때 가만히 있어 주면 좋겠는데 이 녀석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놀이라 생각하는 모양. 결과는? 돌돌이로 밀고 지나간 자리에 바로 고양이 털 투척. 이 짓거리를 매일 반복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매년 피는 꽃과 매일 반복하는 짓거리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뭐, 어쨌든, 난 매일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한다.


이눔의 자슥, 거기 가만히 안 서냐!

(우다다 우다다)

말을 들으면 고양이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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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오페라의 유령 (한글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52
가스통 르루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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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큰 기대를 하며 첫 표지를 넘기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일 때 어떤 설렘 같은 건 있지만 딱 거기까지만이다. 그런데 간혹 나도 모르게 큰 기대를 품고 책을 읽기 시작할 때가 있다. 지금 이 책이 그랬다. 작가나 소설 자체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다. 단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원작이라는 사실, 그 한 가지가 모든 기대의 원인이었다.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출간 당시 이 소설에 대한 반응이 어땠는지 검색해 보기. 1909년부터 1910년에 걸쳐 프랑스 일간지에 연재.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땐 별다른 화제가 되지 않음. 그러다 1925년에 무성영화로 개봉되어 큰 성공. 현재 명성의 가장 결정적 원인은 1986년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래서 다음으로 한 일은, 이 소설이 다른 장르의 원작으로 선택된 이유를 생각해 보기. 일단 다채로운 시각적 이미지. 화려한 파리 오페라 하우스와 그곳에서 연기하는 배우들, 그리고 지하에 펼쳐진 어둡고 음침한, 정반대의 다른 세계. 다음으론 음악 자체가 소설의 중요한 소재. 마지막으로 미녀와 야수라는 가장 대중적이며 통속적인 사랑 이야기. 그래,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래서 다음은, 파리 오페라 하우스 검색하기. 설계자의 이름을 따 오페라 가르니에라고도 불림. 건설 과정에서 지하에 물이 차올랐으나 빼낼 수가 없어 그대로 완공. 공연 중 샹들리에가 떨어져 관객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 발생. 소설은 이 둘을 내용에 맞게 차용. 그렇군. 그래.


마지막으로, 작가 가스통 르루 검색하기. 특종 기자 출신의 프랑스 장르 문학의 개척자. <오페라의 유령>보다 먼저 출간된 <노란 방의 비밀>로 명성을 얻음. 밀실 살인을 다룬 추리소설로 아서 코난 도일(셜록 홈스)과 모리스 르블랑(아르센 뤼팽)에 비견될 정도. 그래, 그랬어. 어쩐지.


그러니까. 현실적 배경을 바탕으로 트릭과 구조를 짜서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그 모든 것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후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게 작가의 핵심이라는 건가? 그런데 문제는 그 설명이 내겐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거. 사랑 얘기는 흥미롭지만, 인물의 심리 변화나 특정 캐릭터들의 역할이 내겐 잘 수긍되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정말 마지막으로 한 일은, 내가 멍청한 게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그래. 그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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