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민음 한국사 : 17세기, 대동의 길 - 조선 3 민음 한국사 3
문중양 외 지음, 강응천 엮음 / 민음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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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그러니까 1980년대 초반,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셨던 큰아버지가 계시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그 어려움은 큰아버지가 가장 어른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켜야 할 무언가를 많이 알고 계시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음식은 어디에 놓아야 하고, 순서는 이러이러하며, 누군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집안의 누구도 다 알지 못하는 예법들을 완벽하게 꿰뚫고 계시는 모습을 보면 가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럴 때면 문득 궁금해지곤 했다. 도대체 이 까다로운 예법들, 때론 숨 막힐 것 같은 이 형식들은 누가 만들어놓은 걸까?

 

16세기 두 번의 왜란으로 초토화된 조선은 그 이후도 순탄하지 못했다. 17세기, 광해군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새 왕을 추대하는 인조반정이 있었고, 청나라에 의한 두 번의 호란을 겪으면서 물리적 피해뿐만 아니라 오랑캐에게 굴복했다는 정신적 피해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들은 제도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든 것을 다잡아야 했다. 어쩌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당시 지식인들은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쪽을 택한다. 결국 주자학은 17세기 들어 원칙과 학문을 넘어 이념이자 종교로서 조선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특히 이전과 달리 예학을 강조한 학풍은 요즘 시각에서 볼 때 상상할 수 없을 현상을 만들어냈다. 요즘의 정당 개념과는 다르지만, 당시에는 지역과 학풍, 정책 지향에 따른 붕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핵심이었던 예학에 따라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것이 왕위의 정통성과 연관이 될 때 피바람이 불었다는 점이다. 누군가 죽었을 때 상복을 몇 년 입는지에 대한 문제로 왕을 포함한 조정 신료들이 몇 년간 논쟁하고 결과에 따라 사람이 죽어 나갈 수 있다는 거.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사람들로선 그 상황을 바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건 분명하다.

 

그리고 하나 더. 16세기 왜란 때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친 선조, 17세기 초중반 두 번의 호란으로 청의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던 인조. 이 둘로 인해 왕의 위신은 저 밑바닥에 처박혔다. 그런데 호란 이후 30여 년이 지난 숙종 시기, 조선의 왕권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해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예학에 관한 논쟁에서 숙종 개인의 판단으로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따라 잘못된 주장을 펼쳤던 붕당은 정권 핵심에서 통째로 밀려나거나 목숨을 잃기도 했다. 왕권이 이처럼 강력하게 된 이유는 이 책에 직접 언급된 부분도 있고 내용을 통해 유추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책에 언급된 이유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인조 다음 왕들인 효종, 현종, 숙종이 모두 적장자였다는 점이다> 인조 다음 왕들인 효종부터 그의 큰아들 현종, 현종의 큰아들 숙종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적장자 계승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효종은 둘째 아들). 정실부인의 첫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는 얘기인데 <이게 바로 주자학에서 가장 이상적이라 보는> 이게 바로 예학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왕위 계승 형태다. (참고로 주자학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왕위 계승은 핏줄이나 태생에 상관없이 능력자에게 양위하는 형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방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서 예학에서 규정한 장자 상속의 원칙을 왕실에도 적용한다.) 다시 말해 존재 자체에서 정통성이 이미 확보된 상태이고, 그 정통성이 3대째 이어지면서 막강한 왕권을 수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단다. 그러니까 주자학은 그 시대의 헌법이자 법률이고, 종교 교리였으며 도덕이었다.

 

21세기 들어 큰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렸을 땐 큰아버지의 모습이 지독히도 엄격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유연한 태도를 갖추셨던 걸로 보인다. 예학이 전성기를 누리던 17세기로부터 400여 년이 흘렀으니 그 완고함이 가문에 따라 또는 현실에 맞춰 많이 변형되고 누그러졌음이 분명하다. 난 지금도 부모님 제사를 지낸다. 하지만 제사음식은 주문하고 상을 차릴 때도 대충 위치를 잡는다. 아마 매년 음식의 자리가 다를 수도 있다. 제문을 읽지도 않을뿐더러 술 따르고 몇 번 절하고 끝마친다. 장담하건대 내가 죽은 후 내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제사란 행위 자체도 수십 년 후면 대부분 가정에서 사라질 것이다.


세상은 변한다. 하지만 지우개로 지우듯이 이전 흔적이 말끔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덧칠하거나 덧붙임으로써 고쳐 나간다. 그래서 그 흔적은 자랑스러운 유산이 되거나 없애고 싶은 상처가 된다. 주자학이 전해지고 발전하는 긴 흐름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세계 유일 유학의 나라임을 자처하며 실생활까지 엄격하게 예학을 적용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보기엔 지나치게 형식적이라 굴레에 가깝게 보일 정도로.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그 시대의 치열한 삶에 들어가 본 적 없는 우리가 그렇게 쉽고 일방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린 편을 갈라 상대방을 배제한 적이 없으며, 무엇인가에 집착해 본 적이 없던가? 몇백 년이 지나 우리 후손들은 우리가 남겨놓은 흔적을 생뚱맞게 바라보며 욕할 거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고.

 

... 책 제목에 '대동의 길'이란 말이 있다. 이 시기에 지역에 따라 순차적으로 세제 개편이 이루어졌는데 그게 대동법이다. 대략 그렇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대동법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주자학과 그에 따른 정국 변화가 너무너무 인상 깊었던 나머지. 궁금하신 분은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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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2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이북 도서라는 게 좀 아쉽네요. 이북의 경우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더라구요.

대굴대굴 2025-12-28 10:30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종이책으로 읽는 걸 추천합니다. 그림이나 사진을 설명해놓은 글이 e북으론 잘 보이질 않아요.

그나저나 이 서재 첫 댓글인거 같은데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하필 제 글에 틀린 부분이 있어서 고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