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구원의 날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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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살면서 이런 생각 한 번쯤은 해봤을 거다. 후회가 깃들었을 수도 있고, 행복이 스며드는 돌이킴일 수도 있다. 행복한 기억이라면 미소와 함께 잔잔한 회상이 가능하다. 반면 후회가 바탕에 깔렸다면, 현재의 심리 상태는 진폭이 클 수밖에 없다. 단순한 궁금증과 같은 가벼운 호기심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뒤흔들어버린,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에 대한 깊은 죄책감일 수도 있다. 물론 악의가 깔린 선택이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꼭 악의가 아니더라도 내가 한 어떤 선택이 최악의 상황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내 사정 또는 나와 관련된 누군가의 사정 때문에 어떤 상황을 외면했을 때, 각박한 현실에 쫓겨 자신도 모르게 내몰리듯 어떤 일을 행했을 때. 그 한순간의 선택이 삶 전체를 흔들어버릴 수도 있는 게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구원의 날>은 여섯 살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유괴인지 실종인지도 모른 채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3년이 흘렀다. 부모의 삶이 파괴되었으리란 건 뻔하다. 자살 시도, 분노 조절 장애, 상대방에 대한 원망, 자책. 이야기는 이런 것들로 가득하다. 그러다 느닷없이아이의 행방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야기의 흐름은 다른 방향을 탄다. 전형적인 스릴러물을 기대했다면 이 책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책은 범인을 밝히는 데 중점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꺼풀을 하나하나 벗겨내며 진실에 다가가긴 하나 그 진실은 범인이 아닌 상처 입은 자들이 쥐고 있다. 평범하고 착한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실수 또는 선택이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물려서 어디까지 굴러갔는지. 바로 그 이야기를 조금씩 조금씩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회복의 실타래도 함께 그에 맞춰 풀어낸다. 상처 입은 사람들이 서로를 조금이라도 보듬어줄 수 있도록.

 

작가도 후기에 썼지만 기존 범죄물과 결이 다른 이야기다. 보통은 사건의 진실과 범인을 밝히는 게 이야기의 축이고 그것을 돋보이기 위한 장치로 각종 설정이 따라붙지만, <구원의 날>은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 그 회복을 중심으로 범죄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그래서 진실이 밝혀졌을 때 닥치는 속 시원한 쾌감보단, 상대방의 상처를 보듬기 위해 내미는 손길이 느껴졌을 때 밀려오는 잔잔한 감동이 우선이다. 그래서 하는 얘기지만, 굳이 이 소설의 단점을 꼽자면 이 글을 쓰면서 인용부호에 가둬두었던 두 개의 단어다. ‘느닷없이착한’. 범죄물과 어울리지 않지만, 회복을 위해선 꼭 필요한 요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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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유괴의 날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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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읽었던 추리 소설들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단순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등장해서 살인범과 속임수를 밝혀내는 순서. 마지막은 언제나 탐정의 잘난 체하는 설명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 전형적으로 흘러가는 줄거리는 소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현실을 이야기하는 용감한 형사꼬꼬무의 범죄 이야깃거리를 보는 것만으로 그 정도는 충분히 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은 오히려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사회에 잠재된 각종 문제의식이 가미되기도 하고,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이나 인물도 천차만별이다. 한 번씩 꼬는 반전은 기본인 거 같기도 하고. 작가 처지에선 골치 아프겠지만 독자들에겐 즐거운 상황이랄까.

 

<유괴의 날>은 한 번의 유괴(어쩌면 두 번...)와 세 건의 살인이 뒤엉키면서 일어나는 소동을 이야기한다. 굳이 소동이라는 단어를 쓴 건, 유괴범이 유괴한 아이에게 질질 끌려다니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구박을 당하며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유쾌하고 킥킥거리며 쭉 읽어나갈 수 있다. 앞서 적었듯 홈즈나 포와로, 엘러리 퀸과 다른 유형이고, 소년탐정 김전일과도 다르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 옛것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렇다고 지금 것이 싫단 얘기는 아니고.

 

작가의 능력이겠지만 단 한 개의 에피소드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단 하나의 문장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결론을 향해 망설임 없이, 효율적으로 내달리는 느낌이라 이런 여름에 읽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수도 있겠다. 물론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고, 게다가 지금 같이 읽고 있는 소설이 <레미제라블>이라 아주 상대적인 판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 빨리 읽힌다는 건 그만큼 재미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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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더블 - 두 구의 시체, 두 명의 살인자
정해연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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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하철로 퇴근하면서 유튜브로 <용감한 형사>를 보며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한 달 가까이 봤을까?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라 그런지 영화를 보는 것과 느낌이 달랐다. 세상이 달리 보였다. 고작 하루 2~30, 그것도 한 달에 불과한 기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통째로 흔들리는 걸 느꼈다. 젊은 시절, 영화에 푹 빠져서 정말 많은 범죄, 스릴러, 누아르, 공포 영화를 봤지만 내 주변에 그 색채를 덧씌운 적은 없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내가 나이가 든 걸까? 손에 쥔 것들을 이젠 절대 놓을 수 없는 나이가 돼서 세상이 두려워진 걸까?

 

정해연 작가의 <더블>은 한쪽엔 타고난 사이코패스를, 다른 한쪽엔 잠재된 괴물을 후천적으로 끄집어낸 인물을 위치시킨 채, 그 둘의 대립을 얘기한다. 공교롭게 둘 다 형사다.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떠올랐다. 1365, 하루도 빠짐없이 범죄의 세상을 지켜보는 형사들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의무와 책임, 신념만으로 버텨내는 그들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상상이 안 간다. 아니,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작가는 자기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루하지 않았다. 범죄 소설에 '우연은 없다'라는 걸 생각한다면 이야기의 전개가 예측 가능하지만 그래도 아주 재미있게 읽힌다. 적당히 생각할 거리도 있고, <홍학의 자리>에서도 그랬지만 현실과 맞닥뜨리며 서서히 밑바닥을 드러내는 인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을 쉬면서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을 골라 읽어보겠단 계획을 세웠고 대여섯 명의 작가와 작품 하나씩을 책장에 담았다. 그런데 계획과 다르게 도장 깨기 형태가 되어가는 중이다. 원래 의도대로 되진 않았지만, 이것도 괜찮지 싶다. 그들이 풀어내는 세상이 내겐 특별하단 얘기니까. <유괴의 날>로 넘어가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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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레 미제라블 3 (한글) 더클래식 세계문학 83
빅토르 위고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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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의 시작과 끝은 테나르디에의 아들이 담당한다. 하지만 그 외의 대부분은 철저하게 마리우스 중심 서술이다. 마리우스는 2권 워털루 전투 뒷부분에 잠깐 등장했던 인물의 아들이며 작가인 빅토르 위고의 모습이 가장 많이 투영된 캐릭터로 보인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의 할아버지 질노르망부터 시작되는 가족사가 펼쳐지고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바탕이 될 인물들이 소개된다.

 

1, 2권에 대한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떤 느낌을 받게 되는지 3권의 일부 내용을 통해 소개해 본다. 왕당파인 질노르망이 현 시국에 대해 한탄하고 있고, 손주뻘인 테오뒬이 할아버지 말에 거의 무조건 긍정하는 대화가 아주 길게 이어지는 상황이다.

 

도대체 낭만주의란 게 뭐냐? 도대체 어떤 건지 좀 말해 봐라. 모두 미친 짓이야. 1년 전에 그 미친 소동은 너희를 <에르나니>로 몰고 갔지. 그런데 좀 물어보자. 도대체 <에르나니>란 게 뭐냐? 대구(對句)의 집합체가 아니냔 말이다. 프랑스어로 썼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글 아니냐?

...

옳은 말씀입니다, 할아버지.

 

테오뒬이 말했다.

(본문 중)

 

에르나니? 에르나니가 뭐지? 검색 후 빅토르 위고가 실제 쓴 연극임을 알게 된다. 1830년에 초연된 이 작품으로 고전극의 전통을 지키려는 고전주의와 그것을 깨려는 낭만주의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렇군... 질노르망은 골수 왕당파에 보수적 성향이라 새로운 경향보단 고전주의에 더 호의적인 모양이야.

 

그럼요. 정말 지당한 말씀만 하시네요.

 

중위가 외쳤다.

 

질노르망 씨는 어떤 몸짓을 보이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창기병 테오뒬의 얼굴을 물끄러미 쏘아보더니 말했다.

 

넌 멍텅구리구나.

(본문 중)

 

? ? ! 나한테 욕한 거 맞지? 맞는 거 같은데. 각종 동의어가 갑자기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머저리, 멍청이, 바보 천치, 얼간이. 내가 살다 살다 빅토르 위고한테까지 욕을 먹을 줄이야.

 

대략 이런 분위기가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된다. 물론 프랑스 역사, 특히 프랑스 혁명 이후 역사에 지식이 있다면 멍텅구리가 될 이유는 없다. 거기에 더해 다방면에 지식이 출중하다면, 어느 시대 사람인지도 모를 수많은 인물과 일화들이 한 문단 안에 수두룩하게 등장해도 절대 꿀릴 이유도 없다. 뭐 그렇다. 움베르토 에코 아저씨도 나한테 욕은 안 했던 거 같은데.

 

어쨌든 3권은 앞서 언급했듯 철저히 마리우스 중심 서술이라 장발장과 코제트가 등장하지만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마리우스가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재미있어진다. 자베르는 극적인 순간에 아주 멋지게 등장한다(아저씨 좀 멋진데!). 장발장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시대의 엑스맨 같은 느낌. 사람이 아니고 초인이야, 초인(아다만티움으로 만든 클로가 손에서 튀어나오는 거 아니겠지?).

...

...

 

멍텅구리가 맞는 거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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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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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폭파된 곳이지만 열심히 글을 써 올리던 블로그가 있었다. 그곳에서 독특한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하루 이틀 간격으로 포스팅을 하면서 하나의 주제로 다섯 개의 글을 올렸는데 일상적인 나의 얘기인 듯 시작해서 세 번째 글 말미부터 허구(소설)로 전환했다. 눈치가 빠른 이웃들은 글이 속한 카테고리를 보고 처음부터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글을 따라오다 아차 싶었던 분들도 꽤 있지 않았나 싶다. 그때 그 글은 영상이나 책이었다면 불가능한 전개 방식이었다. 블로거들과 상호작용하는, 글만으로 나름대로 소통이 이루어지던 블로그였기에 가능한 반전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반전이 그런 식이기 때문이다. 영화나 웹툰이었다면 불가능했을 반전, 오직 문자로만 전달되는 책이기에 가능한 반전. 그래서 그 순간에 도달했을 때 !’ 하는 순수한 탄성이 나오는 게 아니라 ? ~’ 하는, ‘이런, 당했네라는 의미가 포함된 탄성이 흘러나오는 반전.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고 일상적이라 생각하는, 평균이라는 단어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대상을 그들의 본질과 관계없이 재단하며 사는 걸까? 당연, 일상, 평균이란 단어는 언제부터 이렇게 주관적인 단어가 되어 버린 걸까?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재미있게 진행된다. 특정 인물이 밑바닥을 보이기까지 그 심리 변화를 쫓아가는 것도 제법 흥미롭고. 다만 평균이란 틀을 이용해 독자들을 가둬두고 그 틀을 깸으로써 충격을 주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 이 부분이 다소 허탈하게 느껴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난 장르 문학을 좋아한다. 작가의 글을 몇 권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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