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역 순찰을 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나를 끌고 집안을 한 바퀴 돌곤 한다. 내가 필요한 건 닫힌 문을 여는 문손잡이 용도다. 화장실 문 열어주면 한 번 쓱 훑어보고, 이어 붙박이장 문을 하나씩 열어주면 안에 들어갔다 나온다. 그 와중에 맘에 드는 자리가 있으면 자리 잡고 앉아 꾹꾹이와 골골송에 그루밍까지 세트로 시전하고 나온다. ***


“너, 영역 순찰하냐? 이 집구석에 너랑 나 말고 누가 있다고 그래? 보일러랑 에어컨 언니는 내가 불러야 어쩌다가 나오는 거구.”


(쫄래쫄래) 아저씨, 여기 열어봐봐.


“붙박이장 열라고? 너 또 내 겨울 롱패딩에 들어앉으려고 그러지?”


(빤히) 빨랑 열기나 해봐.


“그래, 자, 됐냐?”


(점프) 내가 너 여기 있을 줄 알았다. 이 붙박이장 완전 새 건데 왜 여기 들러붙어 있는 건데?

귀신 : 저 삼층장이 40년이 훨씬 지난 거라 정말 편한데 거긴 오지 말라며... 그래서... 여기 있지...

저건 내 펜트하우스다. 꼭대기에 방석 있는 거 보이지? 내꺼야, 내꺼. 고양이는 내 물건을 다른 것들이랑 나누지 않아.

귀신 : 내 말이... 그쪽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그건 당연한 얘기고. 내 질문은 그게 아니잖아! 왜 여기 있냐고? 너 또 아저씨 잘 때 괴롭히려고 그러지?

귀신 : 아니야! 고양이가 있는 집은 안 건드려! 재수 옴 붙는다고 옛날부터 명성이 자자한데 왜 굳이...

이 귀신 나부랭이가 지금 나보고 재수 없다고 한 거냐?

귀신 : 아니, 아니, 소문이, 명성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그랬다는 게 아니고. 아, 아, 아야, 아야...

너 마침 잘 걸렸다. 까까 찔끔 먹고 또 기다릴 생각에 짜증 났었는데.

귀신 : 아프다고! 그렇게 누르면 내 몸에 구멍 뚫린다니까!

그러니까 이 옷에도 들러붙지 말란 말이야! 이 옷이 제일 비싼 거라 내가 방석으로 쓸 거라고!

귀신 : 이 옷이 뭐가 비싸! 다른 집 가 보면 이거보다 비싼 옷이 널렸다고! 아야, 아프다니까!

어, 그래? 이게 제일 비싼 게 아니야? ... 너 이 자식, 지금 우리 아저씨 찌질하다고 흉보냐?

귀신 : 아, 그 말이 아니잖아!


“어이, 월이, 너 그 옷에 빵꾸 내지 마라. 그거 찢어지면 네가 돈 벌어 와야 한다.”


(고양이 발톱에 무언가 긁히는 소리) 귀신, 월이 : 응?


“뭔데? 무슨 소린데?”


야, 귀신 나부랭이, 너 다른 집 가서 돈 좀 가져올 수 있냐?

귀신 : ... 지금 나한테 삥 뜯는 거냐? 그래도 상도덕이 있지, 어떻게 귀신한테...

너 진짜 고양이 있는 집은 안 건드린 모양이구나? 고양이는 평생 집사 삥 뜯으면서 산다고. 거기에 귀신 하나 추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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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민음 한국사 : 19세기, 인민의 탄생 - 조선 5 ㅣ 민음 한국사 5
김정인 외 지음, 강응천 엮음 / 민음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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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파른 기울기의 변화 속도


18세기 영·정조 때에도 이미 상업의 확장은 전국을 아우르고 있었다. 한양 중심으로 정책적 육성 대상이었던 시전 상인과, 개성상인이나 경강상인처럼 지역과 유통망을 기반으로 해서 대규모 부를 이룬 상인들, 거기에 지방 장시에서 무엇이라도 팔았던 농민들까지. 이처럼 조선은 일부 지배층부터 일반 백성까지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상업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철저한 유교 국가였다. 심지어 개혁 군주라 일컬어지는 정조조차 상업의 필요성만 인정하며 배척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런 체제 아래서 부를 쌓은 상인들이 한 선택은 개혁이 아닌, 기존 세력을 등에 업는 편입이었다. 세도가나 권력에 줄을 댄 상인들은 그들의 보호 아래 세를 늘렸고, 유통과 공급 등 물자의 흐름뿐만 아니라 생산까지 장악했다. 19세기 조선의 상인들은 상업 자본으로 가는 문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하지만 돈과 권력의 결탁은 언제나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법이다. 대상인은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세도가는 그 이익을 나누기 위해 서로를 이용했고, 그 과정에서 중소 상인이 몰락하고 빈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국가 재정이 파탄이 날 지경인데도 상업에서 비롯되는 이익을 조세 체계에 본격적으로 끌어들이는 대신 권력의 사익을 챙기는 돈 보따리로 보았고, 그 결과 민의 근본이라던 농민들은 세금에 짓눌려 압사당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서북지방에서 홍경래의 난이, 서울에서 빈민들의 쌀 폭동이 일어나고 만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벅찬 판국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디어 은둔의 나라 조선에 본격적으로 이양선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은 유교적 측면에서 봤을 때 느껴지는 격세지감이었다. 그러나 이양선의 출몰과 그들의 통상 요구는 조선 전체에 던져진 급격한 충격파였다. 결국 1876년 강화도에서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를 일본과 체결하면서 조선은 강제로 개항하게 된다. 힘에서 밀린 탓에 조선에 불리한 불평등 조약이었고, 이후 다른 서구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의 기초가 됐다. 하지만 더욱 어이없는 건 우리 스스로 관세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당시의 관료들은 새로운 무역 질서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2026년. 세계는 AI와 전쟁의 열풍이다. 그 둘과 연관된 산업이 활활 불타오르며 경제를 이끌어가지만, 공교롭게도 그 둘 덕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쉽지 않다. 산업 혁명과 인터넷 혁명에 이어 AI는 또 하나의 혁명이 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활용의 가능성은 한도 끝도 없지만 그 가능성이 오히려 앞길을 막고 있고, 그 가능성을 애초에 뜬구름처럼 보는 관점도 있다.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사용하느냐의 논쟁을 넘어 SF적이고 묵시록적인 관점에 집착하다 AI는 어느새 전쟁의 도구로, 해킹의 도구로, 더욱 광범위하게는 일상에서 남을 해코지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기까지 한다. 러시아와 미국이 각각 한쪽을 차지하는 두 개의 전쟁은 그들의 명성(?)답지 않게 장기전에 돌입한 상태고, 전장에서 인명 피해는 물론 솟구치는 물가로 온 세상이 들썩거린다. 한편, 그동안 세상을 지배했던 자유무역도 미국에 의해 기세가 꺾였다. 트럼프는 자국의 이익을 위한다며 관세를 대폭 높였고, 관세를 낮추는 대가로 미국 내 직접 투자를 원했다. 외교적 결례와 돌발행동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최강국 대통령 덕에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새로운 무역 질서와 맞닥뜨렸다. 변화의 기울기가 너무 가팔라 어느 순간 아무도 모르게 임계점을 돌파해 버릴 것만 같은 요즘이다.


● 터져 나오는 갈등들


19세기 조선은 세도 정치의 시대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대표적인 외척이자 세도 가문이었고, 흥선대원군 이후론 기존의 세도 가문과 딱 들어맞진 않지만, 전주 이씨 종친들과 명성황후의 본가인 민씨 가문이 권세를 누렸다. 그들은 때론 손을 잡고 때론 견제하면서 권력을 탐했고, 이 시기의 왕들 역시 왕권 강화를 위해 때때로 이들을 이용했다. 더구나 이 시기는 일본과 청이 본격적으로 우리 내정에 간섭하던 때였다. 유학을 고수하는 유생들을 중심으로 외래 문물을 거세게 반대하는 세력이 한쪽에 있었다면, 그 반대쪽엔 고종을 중심으로 신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세력이 자리를 잡았다. 그뿐이 아니다.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것이냐, 아니면 현실에 등 돌린 채 학문에만 정진할 것이냐, 외래 문물을 배척하고 화이사상을 지켜낼 것이냐, 아니면 시대에 맞춰 유학도 변화를 택할 것이냐. 또는 점진적으로 개방할 것이냐, 아니면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냐, 청을 모델로 삼을 것이냐, 아니면 일본을 모델로 삼을 것이냐. 척화를 주장하는 쪽도, 문호를 개방하자는 쪽도 그야말로 가지각색이었다. 심지어 권력을 탐하는 자들은 청을 등에 업었다가도 곧 일본으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갈등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터져 나오면서 개혁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2026년.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지금의 양상은 다른 때와 달라 보인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매몰된 진보는 개혁에 대한 추진력을 상실한 채 실용과 원칙 사이에서 방황하고, 보수는 철저한 차별과 배제를 바탕으로 극우가 모든 것을 휩쓴다. 세대 간의 갈등도 있다. 거칠게는 대략 20년 터울로 묶여서 다른 집단과 가치관의 차이가 드러나고, 그로 인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연히 구별된다. 경계를 뭉뚱그려 길을 터야 할 정치는 그럴 생각은커녕 경계를 더욱 확실히 새기는 중이고, 자본주의의 단물을 고르게 퍼뜨려야 할 경제 역시 구조적 모순에 허우적대며 특정 집단에게만 그 과실을 허용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이 모든 것들이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듯하지만, 핵심엔 딱 하나, 아주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나의 이익. 지극히 원초적인 욕구고, 지극히 원초적인 충돌이라 어쩌면 해소하고 중재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 민(民)의 저항


세도 정치 아래의 조선은 그야말로 탐학의 시대였다. 조정의 대신부터 지방의 하급 관리까지, 그들이 뽑아 먹을 수 있는 건 모조리 뽑아 먹으려 들었다. 한계에 몰린 사람들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들고 일어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민란이 번졌고, 중앙 정부는 때론 힘으로, 때론 회유로 버텼다. 천주교와 동학은 사람들 사이에 평등과 존엄이란 개념을 퍼뜨렸다. 신분제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이 개념을 지배 계급은 용납할 수 없었기에 박해와 탄압으로 맞섰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동학농민운동은 외세까지 동원된 무력에 무참히 짓밟혔지만, 그 변화의 흐름과 의지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조선은 어떤 방식으로든 바뀌어야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1890년대, 독립협회가 만들어지고 만민공동회가 열린다. 독립협회는 초기에만 해도 보수와 개화가 모두 모인 친목 단체의 느낌이었지만, 서서히 정부를 견제하고 시대에 맞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 위한 결사체로 변모한다. 독립협회가 처음 주체했던 만민공동회는 시간이 흐를수록 일반 민중들이 주체가 되었고, 토론과 시위와 집회를 통해 정부를 압박하면서 일정 성과를 거두어냈다. 이처럼 19세기의 마지막 거대한 흐름은 유학도, 양반도 아닌, 평등과 자강을 꿈꾸는, 민중의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1897년에 수립된 대한제국은 독립협회를 해산하고 만민공동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맞섰고, 전제군주제를 더욱 명확히 하며 19세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21세기. 예전과 달리 정보의 흐름은 정말 다양해졌고, 그 속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물론 고급 정보는 예나 지금이나 접근이 제한적이다. 그러다 보니 양만큼 질은 따라가지 못하고, 심지어 오류투성이인 정보가 사실인 양 세상에 유포된다. 사람들은 지위를 막론하고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의견을 표출하지만, 그 근거가 되는 정보가 불확실하다 보니 결과가 어디로 튈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 나타나는 경향은, 정말 못 살겠으니 우리만이라도 잘살아 보자. 현대 사회에선 민란이나 변란의 형태보단 참정권의 행사로 저항이 표출된다고 봤을 때, 바로 저 경향이 극우 정권이나 정당이 득세하고 보호주의가 되살아난 이유일 테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이 이런 건 아니다. 정보가 불확실하고 파편화되었다는 것은, 사람들 역시 이리저리 쪼개져 있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경향성은 나타났지만 그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게 현재 상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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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누적되어 온 오류와 모순을 세상은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못 살겠으니 좀 바꿔보자’라고 외치며 사람들은 참정권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지만, 정치 또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어쩌면 공교롭게도 정치 자체가 그 변화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권력의 사유화에 대해선 아직 많은 사람이 한목소리로 반대를 외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아직 기회는 있을 것이다. 19세기의 조선은 무척이나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그래도 움켜쥘 수 있었던 기회들을 날려버린 채 암울한 20세기의 시작을 맞이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어떤 길을 가게 될까? 나만 잘 살면, 우리만 잘 살면 그만일까? 모든 게 연결된 이 세상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한 걸까? 수없는 싸움과 좌절을 거치며 22세기를 열 때, 아무리 못해도 우리 손에 희망 한 줌을 꼭 쥐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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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난 매번 똑같은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삶이 도돌이표 같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반목과, 그때그때를 넘기는 미봉책과, 다시금 쏟아지는 불만과…. 그런 것들이 쌓여 딱딱하게 다져지면 그곳에서 분노와 두려움이 자라났다. 분노는 충돌을, 두려움은 회피를 낳았고, 돌고 도는 순환의 끝에 설 때면, 나는 항상 같은 생각과 마주쳤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그 해결책은 누구를 위한 것이지?


그 답은 지금도 모른다. 시간이 질문을 묻었고, 날뛰던 감정도 바람결에 날리듯 흩어버렸다. 그 시절, 뱅뱅 돌며 떠밀리듯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생각해 보면 내 감정의 자리는 언제나 달랐다. 어리둥절함에서 연민과 당혹으로, 분노와 혐오로, 아득한 막연함으로. 자리가 바뀔 때마다 질문을 대하는 내 태도도 바뀌었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똑같았다.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답을 얻지 못한 난 또다시 쳇바퀴를 돌아야만 했다. 무한히 돌 것만 같던 그 쳇바퀴도 이젠 시간에 녹슬어버렸다.


고양이를 뒤쫓는다. 그렇게 악착같이 쫓지는 않는다. 고양이가 멈추면 다가가고, 다시 움직이면 또 쫓는다. 그러다 보면 내 무릎도 이제 녹이 슬어간다는 걸 깨닫곤 한다. 고양이는 곧 멈출 것이다. 그럼 서너 번에 걸쳐 귓속을 닦아줄 거고. 이걸 하기 싫어서 녀석은 나를 꼬리에 붙이고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방문을 닫아본 적이 없다. 화장실 문을 제외하곤 항상 열려 있어서 그냥 아무렇지 않게 들락날락한다. 이제 와 든 생각이지만, 언제나 질문에 가로막혔던 나는, 그럼에도 해결책을 알고 있었던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문을 이미 열어젖혔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었다고 해서 꼭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안방 문 앞에 서서 가만히 있자, 방 안에서 고양이가 무슨 일인가 싶어 빤히 쳐다본다. 그 시절, 방 안에 있던 건 고양이가 아니었다.


AI가 제시한 문장 : 같은 문 앞에 몇 번을 서든, 여는 손은 매번 다른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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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전이었다. 조카에게 카톡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희 엄마, 뭐 필요한 거 있어 보이든? 돌아온 답은 예상대로였다. 엄마 까다로워. 뭘 사줘도 맘에 안 들어 해. 사실이다.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곧이어 추가 답변. 그래서 오히려 편해. 그냥 돈으로 담아 드리면 되거든. 그래, 취향이 까다로운 사람한텐 돈을 주고 알아서 사게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긴 하다. 봉투에 돈을 담는다. 사실 이미 예상했던 터라 봉투도 미리 준비해 뒀었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컴퓨터를 켜지도 않았는데 책상 앞에 앉아 고민 중이다. 스마트폰 검색 내용을 살피면서 아래로 스크롤 하는데 고양이가 의자 밑으로 지나가더니 급식기 앞에 선다. 깔짝깔짝. 한입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만 나를 쳐다본다. 사료가 먹고 싶은 게 아니다. 까까를 먹고 싶어서 나를 떠보는 중이다. 녀석과 마주 보던 눈을 매몰차게 돌린다. 가서 자라, 잘 시간이다. 다시 스마트폰에 집중. 화면엔 자동 화장실과 관련된 후기들이 쭉 떠 있다. 적당한 가격대와 적은 소음과 낮은 오작동 빈도와 편리한 AS, 마지막으로 아이의 배변 행위에 걸맞은 작동 방식까지. 제품 하나를 정했고, AI에게 질문해서 비교·분석까지 했다. 사실 이미 두어 달 전에 끝냈다. 그리고 지금 또 고민 중이다.


고양이가 터덜터덜 문밖으로 걸어가더니 캣타워로 들어간다. 까까는 포기한 모양이다. 저 녀석한테 돈봉투를 건넬 수는 없고. 이걸 사면 저 녀석이 써 줄까? 그동안 돈 들여 샀지만, 그 제품이 담겨온 박스만큼도 사용해 주지 않은 상품들이 느닷없이 마루를 행진한다. 숨숨집, 장난감, 물그릇, 전기방석(온), 또 전기방석(냉), 입맛에 맞지 않는 간식들.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하나씩 하나씩 밑으로 떨어진다. 이번에 사는 건 무게나 비용 모두 묵직해서 타격감이 꽤 클 텐데. 내년에 맘 편히 여행 다녀오려면 이 녀석이 이 제품을 써 줘야 하는데. 걱정을 한가득 품고서 녀석을 살피니 방석에 머리 박고 잠을 청하는 모양이다. 저 얄미운 녀석. 봉투에 돈을 담아서 머리통을 한 대 갈기고 올까? 참자.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더불어 녀석이 우리 집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날이다. 조그맣고 귀엽고 모든 걸 좋아했던 녀석. 그러고 보니, 나 사기당했네, 사기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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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유난히 미적거렸다. 산에 가야 하는데. 누가 등 떠미는 것도 아닌데 왜 가야 하는 걸까? 지난주는 고관절이 아파서 운동을 쉬었고, 지지난주는 산에 갔었는데 모지리를 못 봤다. 모지리를 꼭 봐야 하나? 그래도 잘 있는 거 보면 좋잖아. 어기적대다가 어차피 쓰레기도 버려야 해서 꾸역꾸역 길을 나섰다. 다른 때보다 늦은 시각이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서니 아파트 단지 후문 앞쪽 신호등이 막 빨간불로 바뀌는 게 보였다. 후문 쪽으로 가는데 왼쪽에서 승용차 하나가 나온다. 후문은 오전 출근 시간대만 차량이 통행할 수 있어서 이 시각엔 차가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차가 진행할 방향은 내가 걸어 나오던 길뿐이다. 먼저 지나가라고 길옆으로 물러섰는데 차도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다. 차 안이 잘 보이지 않아서 잠깐 주저하다가 내가 먼저 차 앞을 가로질러 지나친다. 그 순간 경적 소리. 아주 짧게. 나한테 그런 건가 싶어 차 쪽을 뒤돌아 봤지만 별 반응이 없다. 햇빛이 창에 반사돼서 내부가 보이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다시 제 갈 길을 간다. 후문을 벗어나 건널목 앞에 섰는데 다시 짧게 빵. 내 시야에선 담에 가려 차가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누굴 부르는 건가 싶어 잠시 두리번거린다. 그 주변이 마침 그늘에 벤치들이 있는 자리라 어르신들과 아파트 주민들이 주르륵 앉아 쉬고 계시는 곳이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두리번. 어르신들도 두리번.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어 관심 끄고 신호등을 바라본다. 모지리 보러 가야지.


그리고 쿵. 충돌하는 소리, 아니면 넘어지는 소리. 이어 브레이크 밟는 소리. 걸음을 옮겨 소리가 난 쪽을 봤더니 오토바이 한 대가 땅에 쓰러져 있었다. 아까 그 차는 우회전한 상태로 멈췄고, 조금 전 내가 서 있던 자리보다 조금 더 앞서 있었다. 소리가 한 번만 났던 걸로 봐서 둘이 부딪쳤다기보단 오토바이가 차를 피하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듯하다. 다친 사람은 오토바이 운전자 한 명뿐인 거 같다. 불행 중 다행인 게 쓰러진 오토바이가 벤치 쪽을 덮치진 않았다. 많이 다치진 않았으면 좋겠구나. 몸이 재산인데.


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내가 집에서 1분만, 아니 몇십 초만 늦게 나왔으면 저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내가 똑같은 경로를 걸었다면, 차도, 오토바이도 나를 보고 멈췄거나 방향을 바꿨을 테니 아예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예 내가 그 사고에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 미끄러져 넘어진 오토바이가 후문을 나가려던 나를 덮쳤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애초에 난 왜 미적거렸지? 다른 때처럼 나왔다면 이 상황을 아예 몰랐을 거다. 2주간 모지리를 못 봤고, 지난 주엔 고관절이 불편해서 운동을 쉬었다. 고관절 쪽이 불편한지는 한 달 정도 되어 간다. 가까이 벌어진 현상으론 이런 것들 때문에 산에 갈지 말지 고민했었다. 그런데 따지고 들어가면, 오른쪽 고관절이 불편한 건 내 무게 중심이 오른쪽으로 쏠린 자세 탓이고, 십몇 년 동안 장사하면서 같은 자세로 서 있을 때가 많았던 탓이다. 모지리가 신경 쓰이는 건 작년 9월 이후에 봤던 고양이 중 유일하게 이 녀석만 자리를 지킨 탓이고, 더 멀리는 내가 고양이를 입양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관점이 바뀐 탓이기도 하다. 내가 저 사고에 포함되었더라면, 이 모든 것들이 켜켜이 쌓여 기반을 다진 꼴이 되나? 세상에나, 줄줄이 낚여 올라오는 생각에 숨 막혀 죽겠다. 이래서 ‘운명’이란 단어가 신비하고 모호하고 매력적인 거구나. 이래서 ‘우연’이란 단어가 삶에 숨통을 틔워주는 거구나. 에라, 모르겠다. 걷자. 목표는 산 정상. 중간에 뭐가 있든 내 알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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