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전이었다. 조카에게 카톡으로 질문을 던졌다. 너희 엄마, 뭐 필요한 거 있어 보이든? 돌아온 답은 예상대로였다. 엄마 까다로워. 뭘 사줘도 맘에 안 들어 해. 사실이다. 예민하고 까탈스럽다. 곧이어 추가 답변. 그래서 오히려 편해. 그냥 돈으로 담아 드리면 되거든. 그래, 취향이 까다로운 사람한텐 돈을 주고 알아서 사게 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이긴 하다. 봉투에 돈을 담는다. 사실 이미 예상했던 터라 봉투도 미리 준비해 뒀었다. 그냥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컴퓨터를 켜지도 않았는데 책상 앞에 앉아 고민 중이다. 스마트폰 검색 내용을 살피면서 아래로 스크롤 하는데 고양이가 의자 밑으로 지나가더니 급식기 앞에 선다. 깔짝깔짝. 한입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만 나를 쳐다본다. 사료가 먹고 싶은 게 아니다. 까까를 먹고 싶어서 나를 떠보는 중이다. 녀석과 마주 보던 눈을 매몰차게 돌린다. 가서 자라, 잘 시간이다. 다시 스마트폰에 집중. 화면엔 자동 화장실과 관련된 후기들이 쭉 떠 있다. 적당한 가격대와 적은 소음과 낮은 오작동 빈도와 편리한 AS, 마지막으로 아이의 배변 행위에 걸맞은 작동 방식까지. 제품 하나를 정했고, AI에게 질문해서 비교·분석까지 했다. 사실 이미 두어 달 전에 끝냈다. 그리고 지금 또 고민 중이다.


고양이가 터덜터덜 문밖으로 걸어가더니 캣타워로 들어간다. 까까는 포기한 모양이다. 저 녀석한테 돈봉투를 건넬 수는 없고. 이걸 사면 저 녀석이 써 줄까? 그동안 돈 들여 샀지만, 그 제품이 담겨온 박스만큼도 사용해 주지 않은 상품들이 느닷없이 마루를 행진한다. 숨숨집, 장난감, 물그릇, 전기방석(온), 또 전기방석(냉), 입맛에 맞지 않는 간식들. 열린 베란다 창문으로 하나씩 하나씩 밑으로 떨어진다. 이번에 사는 건 무게나 비용 모두 묵직해서 타격감이 꽤 클 텐데. 내년에 맘 편히 여행 다녀오려면 이 녀석이 이 제품을 써 줘야 하는데. 걱정을 한가득 품고서 녀석을 살피니 방석에 머리 박고 잠을 청하는 모양이다. 저 얄미운 녀석. 봉투에 돈을 담아서 머리통을 한 대 갈기고 올까? 참자.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더불어 녀석이 우리 집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날이다. 조그맣고 귀엽고 모든 걸 좋아했던 녀석. 그러고 보니, 나 사기당했네, 사기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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