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아저씨인지 아주머니인지 모르겠지만 거기 그러고 있는 건 좀 아니지 않소?


아파트 단지 옆을 지나서 산 중턱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수로가 있다. 꽤 폭이 넓고 깊이도 있어서 지나던 사람이 굳이 안으로 들어갈 일도 없다. 보통 때는 물이 흐르지 않은 탓인지 식물이 곳곳에 자리 잡아서 시멘트의 모습은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이곳에 터를 잡은 고양이가 몇 마리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닥에서 대놓고 자는 중이다. 아니, 그냥 실신한 거 같다.


이보시오, 아직 오후 5시도 안 됐는데 낮술을 얼마나 했길래…. 정신 좀 차려보소.


꿈쩍도 안 한다. 이 더위에 턱시도를 그대로 입고 뻗은 걸 보면, 엄청 내달린 듯하다. 부디 살아있길 기원하며 열심히 산으로 향한다.


산꼭대기엔 모지리가 퍼져있다 내 인기척에 슬쩍 쳐다본다. 카오스냥이 한 마리도 바닥에 부어놓은 사료를 저만치서 먹고 있다. 요즘은 이 둘 빼곤 다른 녀석들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지난주에 못 와서 닭가슴살을 다섯 개 가져왔는데 모지리에게 두어 개 먼저 까준다. 카오스는 하나 물고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 먹고 올 모양이다. 결국 모지리 혼자 4개 흡입. 다행히 군것질거리는 모지리와 카오스 둘이 나눠 먹었다. 카오스는 하나 줄 때마다 하악질이다. 전혀 무섭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모지리는... 좋단다. 땅바닥에서 뒹굴고 난리다. 내가 이름 하나는 참 잘 지었어. 그치, 모지리? 덤으로 울음소리까지 들려준다. 그런데 울음소리가 왜 저쪽에서 들리냐? 너, 스텔스 모드에 복화술까지 할 줄 알아? 볼수록 신기한 녀석일세. 따라오지 말고 여기 있어라. 지난번에 삼색이가 울면서 따라왔었는데 그 뒤로 사라졌다. 그러니까 모지리 넌, 여기서 길고 가늘게 버텨라. 내가 이름까지 지어줬으니까 모질게 자리 지키는 거다.




내려가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오른쪽에서 귀여움이 감지된다. 그때 봤던 새끼 고양이들이다. 정상에서 안 보인다 했더니만 어미가 자리를 이쪽으로 옮겼나 보다. 하나, 둘, 셋, 넷. 모두 건강해 보인다. 먹을 걸 줬으면 했는데 순간 모지리 입으로 들어간 닭가슴살 4개가 떠올랐다. 저, 저 모지리 자슥이 또! 어미는 보이지 않았고, 아기들만 모여 있었는데 나랑 눈이 마주치자, 세 마리는 수풀 속으로 숨고 고등어 한 마리만 나랑 눈싸움에 들어갔다. 역광이라 사진이 제대로 찍히질 않네. 건강하면 됐다. 여긴 삼색이와 모지리와 고등어, 초기 멤버들이 겨울에 햇볕을 쬐며 장난을 치던 장소다. 아쉬움과 걱정을 뒤로 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듯하다. 그 모든 게 삶이다. 이별까지도. 어쩌면 죽음까지도.


꼬리말) 업데이트된 정보(내 짐작)에 따르면, 사진 속 카오스냥이가 아이들의 어미다. 그리고 어미가 모지리를 경계하지 않는 걸 보면, 모지리가 아빠가 맞지 싶다. 이 글은 7월 중순에 썼던 글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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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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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외로움이 가슴에 박히기 마련이다. 그땐 그저 가끔 혼자 있고 싶은, 사치스러운 외로움이다. 그러다 가슴에 박힌 씨앗이 자라 묘목이 되면 외로움은 스스로를 가두는 울타리로 변한다. 묘목이 자라 큰 나무가 되면 주변 다른 것들을 빨아들이고 가로막아 거대한 외로움 그 자체가 된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큰 나무가 거대한 고목이 되면 고목 주변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 채 모든 것을 압도하는 두려움으로 변질된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외부로 손을 내밀지도 못하고, 외부의 손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난 한 번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어. 사람들이 날 미워했어. 사람들이 나를 놀려댔어. 사람들이 나를 떠났어. 사람들이 나를 괴롭혔어. 사람들이 나를 습격했단 말이야. 그래, 그 말은 맞아. 난 사람들 없이 사는 법을 배웠어. 오빠 없이. 엄마 없이!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웠다고!” - P433, 434


- 인간


인간은 크건 작건 문명을 이룬다. 아이러니한 건 기술이 발달할수록 문명은 자연과 공존하기보단 파괴하는 쪽을 선택하는 듯하다. 개발과 발전이 언제나 최우선 화두이니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그러다 보니 인간은 자연과 선을 긋고 고립의 길을 택했고, 그렇게 많은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외롭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 한가운데 파고든 외로움에 자기기만이란 돌연변이를 일으켜 자신을 스스로 자연의 수호자로 높였다. 고결하고 고독한 파수꾼.


- 카야


카야는 떠나는 엄마의 뒷모습을 봤다. 이어 큰오빠와 언니가 떠나고, 함께 있어 줄 거라 믿었던 조디 오빠마저 떠났다. 지옥 같던 아빠가 잠깐의 햇살을 비춘 후 카야의 곁을 떠나자 6살 카야는 혼자가 됐다. 도무지 상상도 되지 않는 벅찬 상황이지만 카야는 습지의 아이로, '마시 걸'이란 멸칭을 안고서 성장한다. 10대가 되고, 20대가 되어 성인이 되지만 뒤에 남겨지는 건 항상 카야였다. 꼬리표처럼 들러붙은 이별과 차별은 카야의 마음속 외로움의 씨앗을 거대한 고목으로 자라게 한다. 카야에게 평범한 삶이란 이젠 불가능하다.


- 인간

 

자기기만의 길은 험난하다. 착취하면서도 보존하는 척해야 하고, 개발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환경 보호를 외쳐야 하고, 쓸 거 다 쓰면서도 고갈과 훼손은 기술 발달이 해결해 줄 거라 믿어야 한다. 자연은 묵묵히 견뎌내지만, 인간이 가한 압박은 변화의 속도를 조금씩 끌어 올리는 중이다. 게다가 자기기만의 돌연변이는 두려움까지 억눌렀다. 두려움이 제거된 인간은 자연이 내는 파열음을 마치 일회성인 듯 가볍게 소비한다. 인간은 어떻게 될까?


- 카야


하지만 아무리 험난한 여정이라도 그 여정을 비추는 빛이 있다. 어린 카야의 생존에 큰 몫을 담당한 점핑 아저씨와 메이블 아주머니, 그리고 첫사랑인 테이트. 이들은 카야를 비추던 커다란 등불이었다. 그리고 도망치던 어린 카야를 못 본 척하면서 미소를 던져주던 사람, 셈을 못 하는 어린 카야에게 푼돈 몇 푼이라도 더 안겨 보내주던 상점 직원까지. 일급 살인으로 기소되어 법정에 선 카야의 뒤편엔 이들이 자리를 잡는다. 카야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 인간


자연은 차이를 두지 않는다. 자연이 재해를 일으킨다면, 자연을 옹호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나 자연을 무엇인가 꺼내 쓸 창고처럼 여기는 사람이나 똑같이 피해를 볼 것이다. 그걸 배신이라고 해야 하나? 자연은 이치에 따라 인간에게 재난을 선사하고 많은 죽음을 초래할 수 있다. 그걸 범죄라고 해야 하나? 자연이 무엇을 하든 인간이 그 행위를 이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카야


소설은 두 갈래로 시작해서 하나의 줄기로 합쳐진다. 하나는 시체가 발견되어 수사가 시작되는 이야기, 다른 하나는 어린 카야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다. 늪지에 대한 작가의 전문 지식이 어우러져 카야의 성장 스토리는 아찔할 정도로 읽는 사람을 빨아들인다. 다른 한 갈래의 이야기 때문에 어떤 흐름으로 갈지 예측이 되지만, 그래서 더욱 카야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단 생각을 끝날 때까지 떨칠 수 없었던 소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책을 읽으면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나이가 들었거나 현실이 팍팍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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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딱 붙어 자리 잡은 침대 아래쪽으로 터널 같은 긴 공간이 있다. 어두컴컴하고 그 끝은 사람 손이 절대 닿지 않을 자리. 엎드려서 그 안을 쳐다보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선다.


주말은 바빴다. 일을 마치고 오면 고양이랑 함께 있는 시간도 적을뿐더러 지친 탓에 잘 놀아주지도 못한다. 이번 주말은 특히 그랬다. 토요일은 그래도 좀 정신을 차리고 있었는데 일요일엔 축 처져서 간식만 주고 놀아주지도 못하고 일찍 잠들었다. 월요일 아침엔 늦잠을 잤다.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 먹고 밀린 집안일하고 났더니 바로 12시. 간식 시간이 지나버렸다. 까까를 외치자 이를 반기는 고양이의 목청이 다른 때와 달리 높다. 반기는 게 아니라 살짝 짜증 난 거 같기도 하고. 청소하면서 어제 남은 과자를 먹었더니 점심을 먹기엔 애매하다. 아침도 늦게 먹었고. 그래서 피자 한 조각을 데워서 마루에 주저앉아 먹기 시작했다. 전방에 고양이 접근. 코는 벌름벌름. 피자에 있던 감자를 떼어 냄새를 맡게 해준다. 그 후 감자는 내 입으로. 피자에 있던 치즈를 떼어 냄새를 맡게 해준다. 다시 내 입으로. 피자 도우, 냄새, 내 입. 뭔지 모르지만 냄새, 내 입. 마지막 빈 접시와 젓가락. 고양이가 터덜터덜 안방으로 들어간다.


설거지하고 주변을 보는데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곳에도 없다. 이상한데. 그러다 아까 안방으로 들어가던 뒷모습이 떠올라 안방 침대 밑 터널을 살핀다. 있다. 정확히는 명확하게 보이는 두 눈이 있다. 고양이, 너 뭐 하냐? 묵묵부답. 한참을 저기 저러고 있었던 거 같은데 말이지. 어디 아픈가? 아니다. 아까 까까도 잘 먹었고, 심지어 사료도 먹었다. 삐졌구나, 삐졌어. 먹을 거(피자) 가지고 장난 쳤다고 삐진 게 분명하다. 간식을 또 줘야 하나? 아닌데, 조금 빠른데. 장난감을 흔들어 봐도 안 나온다. 하아, 제대로 삐졌다.


나와라, 고양이, 아저씨랑 놀자.


침대 옆 벽에 기대앉아 핸드폰으로 이 글을 쓴다. 언젠가 나오겠지.


나와라, 고양이,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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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 중이다. 새도 벌레도 없는 창밖을 고양이가 무료한 듯 내다보기에 나도 따라서 바깥 풍경을 살핀다. 저 멀리 남산이 보이고 물안개가 산봉우리를 휘감으며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다 남산타워가 안개에 완전히 가려 시야에서 사라진 걸 깨닫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처음부터 산 위에 타워 따윈 없는 걸로 생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지워졌다. 흐음...


고양이, 아저씨가 어렸을 때 말이야, 국회의사당 지붕 뚜껑이 열리면 로봇 태권V가 거기서 출동한다는 소문이 있었거든. 조종사는 아마 국회의원들이었을 거야. 신분을 위장하려고 그렇게 욕 많이 먹는 직업을 일부러 선택했겠지.


이름을 부르자, 힐끗 쳐다보던 고양이는 또 헛소리인가 싶었는지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지금 보니까 저 남산타워도 어딘가로 발사된 모양이야. 로켓처럼 우주 공간으로 가기도 하고, 전망대만 따로 UFO처럼 날아다니기도 하겠지? 사진이나 찍히지 말 것이지, 무슨 일을 그렇게 허투루 하는지 몰라.


계속 중얼대고 있으니, 고양이가 빤히 쳐다본다. 헛소리가 너무 길었나 보다.


내가 느끼는 시간과 고양이 네가 느끼는 시간이 다르듯이 또 다른 시간이 어딘가에는 분명 있을 거야. 또 다른 공간도. 그새 다시 착륙했네.


안개가 옆으로 비켜나자, 남산타워의 모습 일부가 드러난다.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좋겠다. 스페이스X보다 더 나아 보이는데.


곁눈질로 슬쩍 훑어보니 고양이는 여전히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는 중이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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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보통 자기 영역을 벗어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병원에 데려갈 때마다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한다. 게다가 이 녀석은 의사 선생님을 굉장히 무서워한다. 스스로는 부정하는 것 같지만. ***


(선생님) 응? 살이 쪘나요? 동글동글해졌는데? 몸무게 먼저 측정할게요.

...

(선생님) 4kg? 지난번이랑 똑같네?

얘가... 여기만 오면 앞뒤론 이만큼 줄어들고 양옆으론 이만큼 늘어나는 거 같아요. 하도 겁을 먹고 웅크려서.

(선생님) 아~


나 겁 안 먹었다. 내가 우리 집에서 왕이다, 왕! 겁을 먹기는. 그니까... 병원 올 때 아저씨 힘들까 봐 목을 집에다 떼어놓고 와서 그런다! 토끼도 간을 빼놓고 다니잖냐? 고양이도 그 정돈 할 수 있다고. 와우... 귓구멍에 왜 그런 걸 쑤셔 넣고...


(선생님) 이렇게 닦아내니까 시원하지? 아이구, 착해라.


우웅. 우우웅. 선생님아 그만 해라, 나 진짜 화낸다.


(선생님) 알았어, 금방 끝낼게. 한 번만 더 하자.


우웅. 우우웅. 나 진짜 진짜 화낸다. 나 겁대가리 없는 고양이다, 선생님아.


(선생님) 어유, 다 했다. 다 했으니까, 딱 한 번만 더 닦자.


우웅. 우우웅. 이제 금방 화낸다. 화내면 나 진짜 무섭다!


(선생님) 끝났다. 이제 집에 가자.


(후다닥. 이동장에 스스로 뛰어 들어감) 운 좋았다, 선생님아. 한 번만 더 했으면 나 진짜 화냈을 거다. 냥. 쩝.


(집으로 복귀. 이동장 밖으로 뛰쳐나옴. 길이, 부피 정상 회복.)


냐아옹. 간식! 냐아옹. 병원 갔다 왔으니까 먹을 거 내놔라!


"왜? 선생님한테 그렇게 소리를 질러보지 그랬어? 밖에선 꼼짝도 못 하더니만."


내가 목을 집에다 떼어놓고 가서 그런 거잖아! 목만 제대로 붙어 있었으면 다 뒤집어 놨을 거라고!


"아, 눼눼."


뭐냐, 그 요상한 발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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