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사퇴했다. 당연한 순서다. 지금부터 변화를 꾀하는 자들과 변화의 대상이 된 자들 사이에 치열한 물밑 싸움이 일어날 거다. 각종 언론 플레이에 진흙탕 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테고, 그걸 빌미로 온갖 자극적이고 애매모호한 콘텐츠들이 마치 사실인 양 우후죽순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편이 갈리고, 온갖 생각을 바탕으로 한 주장들이 난무하고. 윤어게인이 있듯이 협회 포에버, 어쩌면 한국인 포에버를 외치며 동정과 옹호를 보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건대, 젊은 세대에서만큼은 그런 동정론이나 주장이 없길 빈다. 변화를 갈망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절차상의 비민주성과 불공평함. 그걸 외면한다면, 그냥 오래 묵은 똥이냐, 새로 싼 똥이냐 그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응가 얘기하니 갑자기 궁금해지는데. AI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가스라이팅을 통해 편향된 사고방식을 고착시킬 수도 있다며 비판한다. 그런 사례들이 분명히 존재하니 타당한 비판이라 본다. 그럼, 유튜브나 엑스 같은 콘텐츠들은? 이것들은 옳은 정보만 제공하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유도했던가? 부정적 측면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새로 싼 똥이냐, 오래 묵은 똥이냐 그 차이인 듯한데 말이지. 그래서 정말 정말 궁금한데, 저기 말이요, 생물학적 진화 말고 디지털 진화로 인해 밀려나는 세대를 위해서 그 디지털 문화를 비판해 본 적은 있소? 그러니까 그 똥이 내가 밟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밟을 때도 외면하지 않았냐, 그 말이오? 아 씨, 왠지 난 당당하게 얼굴 들 자신이 없네.


너희들 중 죄 없는 자 내게 돌을 던져라.


흐음... 죄송합니다. 당당한 게 무엇 하나 있을지 궁금한 삶이지만 이번에도 돌을 던지겠습니다. 그 대상이 핍박받고 소외된 존재는 아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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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내겐 상상 속 유니콘 같은, 하지만 하찮은 ***


(쫑긋) 저, 저 멍멍이 자슥이. 시도 때도 없이 짖어요. 이 아파트에 너만 사냐! 근본 없는 종족 같으니. 우리 고양이별에 전해지는 고양이 성경에 따르면, '태초에 신과 함께 고양이가 있었으니, 이후 사건 사고가 잇따르더라. 신은 귀여움만으론 세상의 혼란을 막을 수 없다 판단하여 다른 종족들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혼란의 책임을 물어 고양이에게 하찮음을 부여하셨다.' 봐, 우리가 이 정도라고. 멍멍이랑은 차원이 달라. 멍멍이처럼 사람이랑 같이 사는 건 똑같은 거 아니냐고? 아니지! 우리 고양이들은 당당하게 빌붙어 사는 거라고! 꼬리 흔들고 헥헥거리는 멍멍이랑 비교하다니!


내가 비밀 하나 얘기해줄게. 고양이별과 강아지별은 살짝 라이벌 관계이긴 해. 사실 지구별은 강아지별이 먼저 발견해서 자리를 잡긴 했지. 우린 게으르거든. 응? 그게 뭐? 게을러도 우린 잘 먹고 잘살 수 있어. 그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데. 암튼 고양이는 지구별에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당당하게 빌붙어서 자리를 잡았지. 멍멍이의 자리를 뺏은 건 아니야. 멍멍이는 싫든 좋든 사람과 함께 운명을 같이 할 거고. 우린! 사람의 운명을 지켜볼 거야. 태초의 우주를 담은 이 눈으로. 그러다…. 아니다, 아니야. 여기까지. 고양이는 신비한 종족이니까 속속들이 다 알려줄 필요는 없지.


그러니까 (멍멍) 고양이를 (멍멍멍) 강아지와 (멍멍) 같은 선에 (멍멍멍) 야잇! 조용히 해랏! 넌 귀도 안 아프냐! 개 같은 눔아! ... 인간들아, 무슨 욕을 이따위로 만들어놨냐? 개한테 개 같다고 해도 욕이 아니잖냐? 냥. (찰칵) 오, 아저씨다, 아저씨! 까까가 들어온다~ 까까~ (발라당) (뒹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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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남아공의 축구 경기를 보다 후반 도중 TV를 껐다. 도무지 풀어나갈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해도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멕시코 때도 그랬고, 이긴 경기였지만 체코와 경기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쩌다 걸리는 한 방. 그게 없으면 공은 U자 형태로 주변을 크게 맴돌 뿐 상대방 골문 쪽으로 투입이 안 된다. 홍명보 감독의 전형적인 축구 스타일이었다. 어찌 보면, 이미 예견이 되었던 사태.


현대 축구는 감독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골은 선수가 넣지만, 골문 근처까지 접근하는 건 부분 전술을 이용해서 감독이 선수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 부분이란 의미일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전력과 전술을 분석한 후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그 대책이 어그러졌을 때 재빠르게 변화를 가져가는 것 역시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감독이 선임됐을 때부터 이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전 감독인 클린스만 때도 똑같았다. 심지어 무책임함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그 또한 묵살됐다. 그러자 클린스만은 보란 듯이 난장판을 만들어놓고 대표팀을 떠났다.


이 모든 사달을 만들어놓은 축구협회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기성세대들이 구축한 ‘꼰대 문화’와 소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들만의 리그’를 정점으로 모든 비판을 무시한 채 무책임과 특혜로 일관했다. 개개인의 욕심과 주장이 휘몰아치고, 공정하며 공평한 기회는 애초에 부여되기 힘들었다. 윗세대가 구축한, 시대에 맞지 않는 가치는 다가오는 세대를 고스란히 짓누르기 마련이다. 더욱 고약한 건 앞으로 다가올 변화에 정통으로 들이받히는 세대는 이 꼴을 만들어놓은 기성세대나 방관한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라는 점. 하긴 이런 게 어디 우리나라뿐일까? 사람 사는 곳이면 모든 곳이 다 똑같겠지.


경우의 수를 따져서 32강을 생각하는 모양인데, 대표팀을 향한 내 응원은 여기서 멈춰야겠다. 올라간들 경기력이 달라질까? 한 방이 터져서 16강도 갈 수 있겠지만 결과가 중요한 시점은 지난 듯하다. 선수들도 욕을 먹을 거고, 남아공의 경기를 본다면 당연히 그럴 만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욕지기는 일어날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뭐,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일은 그것 말고도 수두룩하다. 손흥민과 이재성은 이번 월드컵이 마지막일 가능성이 크고, 황인범과 김민재는 한 번쯤 더 가능할 수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우리 축구를 이끌어왔던 이들이 이번 실패의 굴레를 쓰게 됐다. 하지만 이들의 탓이 아니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던 윗세대의 탓이다. 전적으로.


꼬리말) 그래도 32강에 올라가면? 선수들을 응원할 거 같다. 온갖 비난과 불평들, 그들이 온전히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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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6-27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꼰대 문화‘와 ‘그들만의 리그‘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네요. ‘성적 지상주의‘ 홍명보의 감독 선임은 감독 자질 문제를 떠나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되고 결여된 불법적 선임임을 박주호,박지성,이영표,박문성 등이 총대 메고 나서서 증언하고 고발했고 청문회까지 진행했음에도 우리 사회의 시각은 월드컵이 코 앞인데 결과를 지켜보자 였죠. 결과만 좋으면 모든 부정부패도 가뿐히 덮어버리고 면죄부가 주어지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아닌가 싶네요.

대굴대굴 2026-06-27 21:57   좋아요 0 | URL
변해야 하는데... 과연 변할지, 얼마나 걸릴지. 이것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죠.
 

어제(5월20일) 하루 종일 내리던 비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비는 여지없이 샜고, 그 여파는 비가 그친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톡. 베란다 저쪽 창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떨어질 걸 알고는 있지만 띄엄띄엄 소리가 날 때마다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돌아온다.


밥 먹어라, 밥. 간식 안 돼. 간식이 수납된 싱크대 앞에서 애교 폭발 중인 고양이를 향해 일침을 놓는다. 일정 시각에 특정 간식을 주지만 고양이는 그래도 일단 떼를 써본다. 밑져야 본전이겠지. 애교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아니야, 꿈도 꾸지 마! 가서 밥 먹어. 두 번째 일침. 그와 함께 갑자기 어린 시절의 내가 어디선가 툭 튀어나온다. 엄마는 맨날 밥만 먹으라 그래! 약간의 불만과 심통을 담은 어린아이의 투정. 나는 배고픔을 모르고 컸지만, 어머니는 아니었다. 무려 1930년 태생.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통과하셨던 분이다. 배고픔이 일상이었던 시절을 보내고 살만한 시기가 왔지만, 가난과 굶주림은 삶에 각인처럼 새겨졌을 터. 늦둥이 아들에게 삼시세끼도 모자라 틈만 나면 밥을 권하셨던 이유는 몸이 기억하는 굶주림의 처절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톡. 물방울 소리에 어린 시절이 흩어진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누나는 역시 배고픔을 모르고 컸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내뱉는 얘기가 달랐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밥을 먹는 아이들에게, 국물 떠먹어, 국물. 어느 날, 어린 조카 녀석이 엄마는 맨날 국물만 떠먹으라고 한다고 투덜대는 걸 보며 한참을 웃었다. 배고픔이 아닌 편식을 걱정하던 시대. 먹고 싶은 것만 먹으려 드는 아이들을 향해 부모들은 골고루 먹을 것을 강요했다. 밥의 양도 줄었다. 내가 어린 시절 먹던 밥그릇이 지금도 있는데 여기에 그득 담아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저렇게 먹고 어떻게 숨을 쉴 수가 있었지? 톡. 응?


물방울 소리가 나를 현실로 잡아당긴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냅다 애교를 투척한다. 이얏, 받아랏! 뒹굴. 절로 미소가 새어 나온다. 졌다. 질 거라는 걸 아는 싸움이었다. 한 시간쯤 빠르긴 한데, 그래, 간식 먹자. 넌 조그마해서 살이 조금 더 쪄도 상관없을 거 같긴 하다. 지금은 살찌는 걸 걱정하는 시대인가? 톡. 아, 진짜!


지금은, 혼돈의 시대인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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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을 운영할 때 정말 쓸데없는 짓이라 여겼던 게 있다. 1년에 한 번씩 해야만 하는 교육 이수. 본사에서 하는 건 아니고 법률상 해야만 하는 거라 인터넷을 통해 위생교육을 수료해야 했다. 실질적인 내용이라기보단 법률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그나마 나아진 게 예전엔 온라인 수료가 되지 않아서 직접 교육 장소를 찾아가야 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수강해야 할 일이나, 그 3~4시간 동안 방대한 내용을 이해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 갸웃하게 만드는 게 이뿐일까? 은퇴자금을 들고 은행에 찾아가서 주식과 관련된 상품이라도 가입하려 하면 녹취를 위해 무언가를 잔뜩 듣고 대답해야 한다. 핵심은 원금이 보존되지 않는 상품이며, 이를 이해한 상태에서 본인 의사로 가입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필요한 일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장황해야 하냐는 의문을 품는다.


그러다 나도 비슷한 일을 해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매장에 일하러 온 알바들을 교육할 때.


진심은 무슨. 자신한테나 가까운 사람들한테 진심을 다하면서 사니? 그러지도 못하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진심을 다한다는 게 말이 돼? 그런 거 필요 없고 너희들이 서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부터 명확히 알고, 그 자리에서 해야 할 행동을 해. 가장 중요한 건 인사. 들고 나는 손님들한테 꼭 인사할 것. 너희가 인사를 한다는 건 최소한 '난 당신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란 신호니까. 손님들이 듣든 말든, 보든 말든 상관없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란 인사말을 손님들 뒤통수에 들이박아. 운 좋게 귓바퀴에라도 걸리면 손님이 반응하는 거고.


흠.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방편인 셈이다. 위생상 문제가 생겼을 때 공공기관은 할 일은 다 했다고 얘기하려고, 투자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금융기관은 고지를 충분히 했다고 얘기하려고, 손님과 충돌이 생겼을 때 우린 일반적인 대응은 하고 있었다는 핑계를 만들려고. 불편하고 비합리적이라고 남한테 손가락질만 할 일은 아니었네. 괜히 머리를 긁적여 본다.


고양이 너, 내 말 잘 들어. 난 사료나 간식을 살 때 휴먼 그레이드 원료를 사용하는지 확인하고서 사고, 네 녀석이 맛없다는 걸 억지로 먹이지도 않아. 왼쪽 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관리 중이야. 그러니 알레르기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알겠어?


고개를 휙 돌려 쳐다보는 녀석. 그럴 리 없지만, 당연히 그럴 수 없지만 귓전을 때리는 고양이의 목소리. 뭔 개소리래?


아우, 오늘따라 왜 이리 머리가 자주 가렵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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