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을 운영할 때 정말 쓸데없는 짓이라 여겼던 게 있다. 1년에 한 번씩 해야만 하는 교육 이수. 본사에서 하는 건 아니고 법률상 해야만 하는 거라 인터넷을 통해 위생교육을 수료해야 했다. 실질적인 내용이라기보단 법률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을. 그나마 나아진 게 예전엔 온라인 수료가 되지 않아서 직접 교육 장소를 찾아가야 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수강해야 할 일이나, 그 3~4시간 동안 방대한 내용을 이해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 갸웃하게 만드는 게 이뿐일까? 은퇴자금을 들고 은행에 찾아가서 주식과 관련된 상품이라도 가입하려 하면 녹취를 위해 무언가를 잔뜩 듣고 대답해야 한다. 핵심은 원금이 보존되지 않는 상품이며, 이를 이해한 상태에서 본인 의사로 가입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필요한 일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장황해야 하냐는 의문을 품는다.


그러다 나도 비슷한 일을 해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매장에 일하러 온 알바들을 교육할 때.


진심은 무슨. 자신한테나 가까운 사람들한테 진심을 다하면서 사니? 그러지도 못하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한테 진심을 다한다는 게 말이 돼? 그런 거 필요 없고 너희들이 서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부터 명확히 알고, 그 자리에서 해야 할 행동을 해. 가장 중요한 건 인사. 들고 나는 손님들한테 꼭 인사할 것. 너희가 인사를 한다는 건 최소한 '난 당신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란 신호니까. 손님들이 듣든 말든, 보든 말든 상관없어.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란 인사말을 손님들 뒤통수에 들이박아. 운 좋게 귓바퀴에라도 걸리면 손님이 반응하는 거고.


흠.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닌 누군가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방편인 셈이다. 위생상 문제가 생겼을 때 공공기관은 할 일은 다 했다고 얘기하려고, 투자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금융기관은 고지를 충분히 했다고 얘기하려고, 손님과 충돌이 생겼을 때 우린 일반적인 대응은 하고 있었다는 핑계를 만들려고. 불편하고 비합리적이라고 남한테 손가락질만 할 일은 아니었네. 괜히 머리를 긁적여 본다.


고양이 너, 내 말 잘 들어. 난 사료나 간식을 살 때 휴먼 그레이드 원료를 사용하는지 확인하고서 사고, 네 녀석이 맛없다는 걸 억지로 먹이지도 않아. 왼쪽 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관리 중이야. 그러니 알레르기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알겠어?


고개를 휙 돌려 쳐다보는 녀석. 그럴 리 없지만, 당연히 그럴 수 없지만 귓전을 때리는 고양이의 목소리. 뭔 개소리래?


아우, 오늘따라 왜 이리 머리가 자주 가렵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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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왜 불평등한가 - 도심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빈부격차
리처드 플로리다 지음, 안종희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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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었던 <도시의 승리>의 저자인 에드워드 글레이저와 대척점에 있다기보단 관점이 다르다고 보는 게 더 맞을 듯하다.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플로리다 역시 도시화에 희망을 걸고 미래가 있다고 본다. 그 점에선 두 사람이 같다. 하지만 <도시의 승리>는 도시의 장점에 초점을 맞춘 채 그 장점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다고 보며,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다른 것들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같은 느낌으로 바라본다. 이에 반해 <도시는 왜 불평등한가>는 도시에 발생하는 위기, 특히 빈부에 따른 지역적, 경제적 격리와 중산층의 소멸이 자칫하다간 도시의 모든 장점을 삼켜버릴 수 있다고 여긴다. 게다가 그 위기가 바로 도시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그 힘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고 판단한다. 책의 내용을 자세히 요약하는 건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번 <도시의 승리>는 이런 취향을 무시한 채 책의 소개에 충실했지만, 이번엔 하던 대로, 내 맘대로 써 보겠다. 아래 내용을 바탕으로 미루어 짐작하거나 아니면 직접 읽어보시길. 자, 내 갈 길 가겠다.


고양이 마을이 있다. 해발 300m가 넘는 산 정상. 성곽이 정상을 휘돌아 나가고 길이 잘 닦여있으며 적절한 볼거리와 서울 시내 한복판이라 접근성까지 갖춘 곳이다. 사시사철 사람들이 꾸준히 오르내리며 차나 자전거는 접근할 수 없다. 고양이 처지에선 최적의 장소다. 어린 고양이들이 자리를 잡았고, 입소문이 났는지 꼬맹이 고양이들이 계속 뒤를 이었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등산객들에게 삥을 뜯는 것을 주요 직업으로 삼는다. 성곽 바깥쪽이나 정상 부근에서 잠을 자다 때가 되면 슬슬 본업을 위해 정상으로 출근한다. 좋은 기반 시설과 훌륭한 주변 환경과 양질의 일자리가 제공되는, 고양이 특급 마을이다.


귀여운 고양이를 끌어들이고 삥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이 마을의 장점이겠으나 모든 일에는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슬슬 고양이 밀도가 올라가면서 경쟁력에 차이가 발생한다. 귀여운 고양이는 더 많이, 그렇지 않은 고양이는 더 적게 삥을 뜯어 삥의 격차가 벌어진다. 정상 부근 한정된 토지로 인해 휴식 공간 또한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힘없고 약한 고양이는 점점 정상 주변에서 밀려남으로써 삥의 기회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진다. 그뿐인가? 냄새 나는 고양이 화장실 근처로 내몰리는 고양이도 생긴다. 더 있다. 소문을 듣고 어른 고양이라도 등장하면 기존 꼬맹이 고양이들은 속절없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다행히 어른 고양이는 이곳에 상주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자기 영역에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싫어해서 잠깐씩 정상을 차지하다 지나칠 뿐이다. 하지만, 이 잠깐의 순간이 쌓일수록 기존 어린 고양이들의 기회는 박탈된다.


그렇다면 고양이 마을은 어떻게 해야 지속가능한 성장과 안정을 할 수 있을까? 재개발? 의미 없다. 고양이는 환경을 중시하지만, 사람처럼 새집이나 지대를 추구하지 않는다. 저소득 직업군을 한 차원 높은 직업군으로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삥의 기회를 늘려주면 상황은 개선될 수 있다. 등산로 초입에 고양이 간식을 지참하도록 푯말을 세우는 식으로 등산객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사회기반시설 투자? 재개발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에서 사람의 손길은 필요 없다. 자연 그 자체가 훌륭한 기반 시설이자 거주지다. 물론 그것은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한정된 정상 공간으로 인해 혜택받은 지역의 확장은 더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 교육까진 필요 없겠으나 중성화 후 방사는 고려해 볼 여지는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산꼭대기에서 포획해서 수술 후 다시 산꼭대기에 방사해야 하니까. 자손이 계속 늘어난다면, 어미 세대에 비해 어렵게 살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으로 지역에 권한 이양? 산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특히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정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중앙정부인 척, 공공의 이득인 척 행동하지 말고, 고양이의 삶은 고양이에게 맡기는 게 좋다. 여름에 화장실 근처를 지나다 냄새가 난다고, 어른 고양이가 나타나 털 날리는 추격전을 벌여 소란스럽다고 민원을 넣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다만 그 산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살필 필요는 있겠다. 과거 일본 어느 지역에서 산에 늘어나는 고양이를 방치했다가 원 거주 동물인 삵의 개체수가 급감한 적이 있었다. 고양이한테 별 영향을 주지 않는 바이러스가 삵한테는 치명적이었던 까닭이었다.


재미 삼아 자주 다니는 산의 고양이들을 모델 삼아 이 책의 이론을 적용해 봤다. 저자는 주로 미국의 도시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그 해법을 제시한다. 그러다 보니, 모든 도시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해법이 아니다. 당장 저 고양이 마을도 그렇고(흠...), 대한민국 서울에 적용해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정책이 있다. 한 예로 저임금 노동자들을 중산층으로 만들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독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 자영업자 중에서 프랜차이즈 형태가 특히 많다. 흔히 접하는 편의점, 치킨, 카페가 그렇다. 이런 곳은 장사의 이익을 본사와 나눠야 하지만 최저임금의 상승분은 고스란히 자영업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무작정 높게 책정하면, 저임금 노동자가 중산층으로 올라갈 기회를 엿보는 만큼 자영업자는 몰락할 위기로 내몰리게 될 거다. 그러니 단순히 자리바꿈을 원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향상을 원한다면 추가적인 대책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빛이 있고 존재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를 외면하고 사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그림자가 슬금슬금 커지더니 존재 자체를 에워싸려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요즘이다. 결국엔 존재를 잠식할까? 날뛰는 자본주의를 보완해서 나눔과 공존을 실행해야 할 시기지만, 그 어느 때보다 ‘공존’이란 단어가 힘을 쓰지 못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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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성화수술을 마치고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껏 붕대를 이빨로 다 뜯어낸 고양이를 딱 한 번 봤었다고. 그러니까 별문제 없을 거라고. 살짝 불길했었는데 이 녀석이 두 번째 고양이였다. 같이 산 지 5년. 새벽에 불을 켜고 마주한 녀석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붕대를 찢어놓고 그루밍을 하면서 자랑스러워하던, ‘나 잘했지?’라며 칭찬해달라는 그 표정. 표정뿐이겠나? 이후 이틀은 사진처럼 뇌 속에 각인된 이미지들이 수두룩하다. 옷을 입혀 놨더니 그것도 뜯겠다고 등 쪽을 물고 바닥을 구르지 않나(서커스단에서 탈출한 고양이인 줄), 앞발 하나를 빼서 목이 들어갈 자리에 집어넣고 걸어 다니질 않나, 앞발을 옷 밖으로 꺼내질 못해서 세 발로 나타나질 않나. ***


어제 중성화 수술이란 걸 했다. 하늘색 옷 입은 무서운 사람이 목덜미에 뭘 찔렀는데 갑자기 정신이 뿅 사라졌다. 눈 떠 봤더니 집. 오오! 고양이별에 있을 때 미리 얘기를 들어서 그렇지 안 그랬음 바보 될 뻔했다. 그런데! 배에 둘둘 감아놓은 이 하얀 거! 너무 불편하다! 가만있어봐라. 이거, 요기를 물어뜯으면…. 에잇, 뜯어져라, 뜯어져! (뒹굴뒹굴) 아우, 어지러워라. 먹은 것도 부실했는데 힘을 썼더니만…. 이봐, 아저씨! 생각이 있는 거냐? 잠만 자지 말고 까까를 내놔라! 냥. 아니야. 일단 이것부터 벗겨내고. 배를 감고 있어서 먹다 체하겄어.


자, 다시 침착하게. 요렇게 요렇게. 이이잇. 냥! 뜯어졌다! 랄랄~ 이쯤은 포장 뜯긴 츄르 먹기지. 응? 아저씨, 일어났냐? 이거 봐라, 내가 다 풀어 헤쳤다, 잘했지?


야! 너 뭐 한 거야!


아우, 깜짝이야! 왜 소릴 지르고 그래? 애 떨어지게. 냥, 애는 어차피 못 가지는구나. 아니, 아니, 다시 감으면 안 되지! ... 히히, 내가 확실하게 물어뜯어 놓아서 다시 안 감길 거야.


아 진짜. 옷을 입혀야겠네. 붕대를 이렇게 해놓으면 어떡하냐.


옷? 뭐냐 이건 또? 어라, 왜 뒤로 간다니? 이거 당장 벗겨라! 몸이 고장 난 거 같다! 왜 가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여지질 않냐? 아저씨, 고양이는 이미 털코트 입고 있는 거 몰라? 이거 치워라, 답답하다! 고양이에게 자유를 달라! 아파트 주민들, 여기 보시오! 삐쩍 마른 아저씨가 고양이를 잡소! 그냥 가냐? 야, 이 아저씨야, 생각이 있는 거냐! 두고 봐라, 너. 내가 아저씨랑 다시 놀아주면 고양이가 아니다!


어디 보자…. 몸통을 감싼 상태에서 머리랑 발들이 구멍으로 빠져나와 있네. 그럼 앞발을 하나 끌어당겨서 안으로 넣고…. 아 씨. 아 씨. 아이 씨이! 냥. 냥. 저기, 아저씨. 앞발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서 안 빠지는데 이것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발 세 개로 걸으려니까 고양이답지 않아서 말이지. 아니, 그렇게 째려보지만 말고. 내가 놀아달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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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6-2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 넥카라 선에서 해결되지 않던가요? ㅎㅎ

대굴대굴 2026-06-22 21:56   좋아요 0 | URL
그때만 해도 초보집사라... 플리스틱으로 된 짱짱한 넥카라를 도저히 씌울 수가 없었어요;;
 

지난 토요일(5월 16일).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집안 온도가 예사롭지 않다. 낮 기온이 30도를 넘은 건 며칠 됐지만 밤에는 선선했는데 이날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밖은 시원했는데 집안이 그렇지 않았다. 고양이도 축 처져서 한여름 자태를 내보이는 걸 보면 나만 더웠던 건 아닌 게 분명했다. 내가 취한 조치는 딱 하나뿐. 부엌 쪽 자그마한 창을 열어놓는 거였다. 그렇게 월요일(18일)까지 버텼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부엌뿐 아니라 마루 쪽 창문까지 열면 바람이 시원하게 가로지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상식을 가로막는 게 하나 있었다. 집 앞에 공사 현장이 있었는데, 요즘 마무리 단계로 보도와 차도를 새로 만드느라 먼지가 말도 못 하게 많았다. 그게 이유였다. 내가 마루 쪽 베란다 창을 열지 않는. 그런데 그게 불합리한 생각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머릿속에서 각종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거든. 집수리 중인 윗집에서 난방을 확인하느라 난방을 켜놓은 게 아닐까? 윗집에 사람이 없어서 환기를 안 하니까 낮 동안 가열된 열기가 우리 집으로 내려오는 게 아닐까? 몇 가지 이유를 만들어가며 마루 베란다 창을 열지 않는 내 선택을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월요일 밤. 큰누나 집에 다녀오면서 현실을 직시했다. 선선했던 거리와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도 시원했던 누나 집. 내가 틀렸음을 알았다. 아니, 진작에 알고 있었다. 집에 와서 마루 베란다 창문을 살짝 열었다. 바람이 통하는 게 느껴졌다. 얼마 안 있어 집안 공기가 변했다. 그러니까 내가 바보였다.


쓸데없이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신념이나 믿음을 위해 그러기도 하지만 자존심과 귀찮음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선 타인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그럴 때도 있다. 어떤 이유든 살면서 한 번쯤은 그래봤을 거다. 고집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아집이라면. 아무리 잘났어도,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올바른 선택만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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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 번 선택하면 잘 바꾸지 않는다. 낯설거나 모르거나 어색한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성향 탓이 크다. 한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 가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점심은 딱 한 군데 가던 곳에서만 먹었다. 동네 식당 가는 곳은 두 군데, 직장 근처는 그나마 세 군데. 그곳들이 사람이 많거나 하면 그냥 집에 들어와 먹는다. 배달은 피자, 치킨, 중국 음식 세 종류만. 20대 초반에 가입했던 통신사를 지금까지 쓰고 있고, 어렸을 때 다니던 은행을 여전히 이용 중이며, 얼굴에 바르는 스킨로션류는 30년 가까이 한 상품만 쓴다. 뭐가 더 있을까 생각하다 갑자기 두려운 마음에 생각을 멈춘다. 나, 정상이 아닌가? 다행이다. 얼마 전 가전 브랜드를 싹 다 바꿨는데. 집에 무려 GOLDSTAR란 상표가 찍힌 제품도 있었으니까….


어이, 고양이! 니가 아무리 하던 것만 하고 가던 길만 간다고 해도 나만 하겠냐? 넌 아직 멀었다 이눔아.


한 번은 저 녀석을 이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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