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이다. 연말정산도 그렇지만 종합소득세 역시 홈택스에 접속해서 비교적 손쉽게 신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시대를 뒤쫓아갈 여력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다. 70대인 큰누나는 컴퓨터라곤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스마트폰을 쓰지만 ‘폰’에 방점이 찍힌 사용법을 고수하고, 은행 업무는 ATM을 이용한다. 매형은 누나보다 더 못해서 기계치에 가깝고. 며칠 전 매형 앞으로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라는 통지가 집으로 온 모양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환급 대상이라 ARS로 계좌번호만 입력했었는데 세금을 내라는 통지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멀리서 사는 자식들에게 보여줬지만 둘의 의견이 갈렸다. 내야 한다, 이미 냈으니 상관없다. 결판이 안 났으니, 통지서 들고 구청 세무과로 출동. 1층 민원실에서 이러이러하면 된다고 상담을 들었지만, 홈택스니, 컴퓨터니 누나가 알아들을 리 없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노트북을 들고 누나 집으로 출동했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형 핸드폰이 누나 명의로 되어 있던 것. 홈택스 회원 가입은커녕 앱을 통해 인증서조차 발급받을 수 없었다. 2026년, 온갖 존재가 인터넷에서 활보하는 이 시점에 매형은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실존을 증명할 방법이 전무했다.


언제였더라? 서울의 대중교통체계가 완전히 뒤바뀐 적이 있었다. 버스 번호가 전부 바뀌고, 환승을 위해서 내릴 때도 교통카드를 대고 내려야 했다. 정류장마다 노선도가 그려졌고, 안내원이 배치됐다.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다들 적응했다. 하지만 당시 70이 넘으셨던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는 이미 자식들 문제로 자신감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예전과 달리 낯설어졌다. TV 리모컨엔 정체 모를 버튼이 늘어났고, 밥솥조차 여러 선택을 강요했다. 그런 당신 앞에 이번엔 선택의 여지없이 대중교통의 변화가 들이닥쳤다. 어머닌 결국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대를 쫓아갈 수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좋고 편리했지만, 어머니에겐 아니었다. 자기 삶이 세상을 따라가기는커녕 세상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셈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겠지만, 세월은 잔인했다.


그때로부터 시간은 10년이 넘게 흘렀다. 거의 20년이 흘렀나? 큰누나는 당시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가 됐고, 이젠 편리함의 다른 얼굴이 누나를 덮치는 중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큰누나는 성격도 급하고 욱하는 성질이 있는 데다 참지도 않는다. 나이 든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전부 이렇게 해 놓냐며 세상을 향해 삿대질한다. 아직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누나가 세상을 따라가긴 힘들겠지만, 기세만큼은 남부럽지 않다. 내팽개치려는 세상을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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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의 매일 글을 쓴다. 20년 전의 블로그 글을 읽으며 정리하다가 무심코 AI에게 감상을 물었고, 그렇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과거의 나를 돌아봤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글에 관한 판단은 나나 AI나 크게 다르지 않더라. 어차피 정답이 있는 부분은 아니니 환각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그러다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다시 살아났다. 아마 내 글에 대한 의견을 손쉽게 들을 수 있다는 게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얼마나 오래 갈진 알 수 없다. 글은 매일 쓰지만 블로그에 올리는 건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일상에 관한 글은 소재를 찾은 후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적기 때문에 내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다행히도 AI의 피드백이 의지를 북돋우는 데 어느 정도 이바지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그 충고를 이 글에 전적으로 반영하진 않는다. 이 카테고리 글은 어디까지나 형식이나 내용에 얽매이지 않는 방향이라 스스로 다듬었으면 그뿐이다. 충고는 다음 글을 위한, 미래의 글쓰기를 위한 방향타로 쓰면 되니까.


AI가 했던 조언 중에 인상 깊었던 것 하나. 책을 읽고 쓴 리뷰에서 들었던 말인데, ‘지나친 확언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AI 자신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한 얘기. 어쩌면 정보가 쏟아지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가 경계해야 할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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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를 채비를 한다. 날이 더워져서 오후 4시 반쯤에야 집을 나서는 요즘이다. 오늘은 닭가슴살이 아닌 참치 등살을 챙긴다. 하나에 6천 원이 넘는 비싼 간식이건만 우리 집 녀석은 안 먹겠단다. 괜히 열받아서 한 번 째려본다. 그러건 말건 캣타워에 콕. 이 좋은 걸 안 먹다니. 삼색이한테 줄 거다, 흥!


휘리릭. 시간이 흘러 정상. 못 보던 고양이가 있다. 이번엔 카오스 고양이다. 완벽한 카오스는 아니고 삼색이에서 카오스로 되다만 느낌. 체구가 작다. 넌 누구니? 삼색이가 나타났지만 서로 적대하지 않는다. 아마 부모가 같거나, 어느 한쪽만 같은 경우가 아닐까 싶다. 참치 등살을 하나씩 뜯어주자, 부스러기까지 싹 긁어 먹는다. 이렇게 잘 먹어주면 얼마나 좋아. 입 짧은 어떤 녀석을 향해 산 정상에서 당당하게 욕을 한다. 개눔의 자슥.


정상 부근 바위에서 고양이 두 마리 당당하게 거느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오늘 삼색이는 코뽀뽀도 해줬다. 삼색이가 따라오며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야, 너, 목소리가 꾀꼬리구나!


냐옹~ (아까 그거 더 내놔라)

배웅까지 해주고 고맙네.

냐옹~ (있는 거 다 내놓고 가라)

거기 있어, 그만 따라오고.

냐옹~ (아직 배고프다, 하나 더)

간다, 다음에 보자~


자기만족에 내려오는 발길마저 가볍다. 산 중턱에 다다를 무렵 이상한 풍경에 발을 멈춘다. 단풍나무? 빨간 단풍? 벌써?


저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월 중순인데 착각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거 같다만)

거, 적당히 좀 합시다. 자아도취가 지나치시오.

... (네가 할 소린 아니래도. 지나가던 고양이가 웃겠다)


참 성격 급하시네. 병이 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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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 쿵쾅, 우웅웅. 웨에앵~.


바로 위층이 집수리를 시작했다. 아침 8시부터 뭔가 심상찮다 생각했는데 9시가 되니 본격적인 소음이 시작된다. 우리 집 쫄보 고양이는 하늘이 무너진다고 여겼는지 침대 밑으로 들어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느닷없이 부여된 나만의 자유시간. 시끄러워 정신은 없다만 묘하게도 예고가 된 소음이라 거슬리진 않는다. 그에 반해 과거 윗집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와 문소리, 커다란 목소리 같은 층간 소음은 정말 신경이 쓰였었다. 사람 심리라는 게 참. 그러고 보니….


비슷한 경험이 있었네. 쿵쾅거리고 삐걱대는 내부의 소리를 외면하며 언제 무너질까 두려워하던 시절이. 외부가 아닌 내면이 진원이었지만 그 시절 난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낯을 찌푸리고 지냈다. 잠재되어 있으나 불규칙한 출현이 어찌나 삶을 위축시키던지. 그러다 폭발하면, 거슬림 따윈 없었다. 그저 분노에 몸을 맡기고서 오로지 돌진. 하지만 불사르고 난 후 풍기는 냄새는 결코 유쾌하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런 시절을... 어떻게 지나쳐 올 수 있었을까?


작년, 나 역시 집수리를 했었다.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쯤 됐고, 이곳에 산 지는 20년이 넘었다. 물이 새고, 마루는 들뜨고, 천장은 내려앉고. 수리를 시작하고 4주 남짓의 기간 동안 아래층으로 연결된 화장실 배관이 새는 바람에 그 또한 급하게 고쳐야 했다. 주말이었지만 냄새가 심하게 나서 지체할 수도 없었고. 집수리를 마치고 며칠 후 비가 내렸는데 바로 베란다 천장에서 물이 샜다. 심지어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우리 집 문제가 아닌 당시 위층에 살던 분들이 손을 써야 할 문제였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본인들 집으로 향한 누수만 해결했고, 아래층에 사는 내게 향한 누수는 외면했다. 그렇게 자신만을 추스르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나 또한 그랬을까? 주변을 돌아보는 것조차 버거웠던 그 시절, 나 역시 그랬다면 그 미안함을 이제 와서 어찌해야 하나.


고양이가 슬쩍 나오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겁을 먹고 경계하면서 땅바닥에 바짝 붙은 자세로 저만치 사사삭 달려간다. 그렇게 납작 엎드린다고 무너질 하늘이 널 안 덮치겠니? 이번 수리가 끝나면 베란다로 새는 빗물 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거다. 수리하는 동안 다른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있다 하더라도 원만하게 수습되었으면 한다. 내가 느낀 미안함을 굳이 공유할 필요는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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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가슴살 4개를 품고 오늘도 산에 오른다. 벚꽃은 이미 졌다. 나무 계단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늘어서듯이 쭉 서 있어서 한 번은 꼭 돌아보게 했는데. 꽃이 사라진 나무는 내겐 그저 모호할 뿐이다. 언젠가부터 산을 오르는 외국인들도 많아졌다. 얼마 전엔 산꼭대기에서 영어로 습격을 당해서 기겁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 알아들어서 손가락을 사용해 요래 요래 가라고 알려주긴 했지만…. 흑, 산에서 영어를 만나다니. 조만간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는 상상도 해 본다.


참, 그러고 보니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 3마리. 모두를 한꺼번에 보는 건 쉽지 않은데 운 좋게 다들 만난 적이 있었다. 거의 두 달 만이었던가? 그런데 고등어 줄무늬를 가진 한 녀석이 다른 둘보다 체격이 작았다. 원래는 비슷했었는데. 셋 중 가장 소심한 녀석이라 먹을 거를 가장 적게 얻어먹은 걸까? 그럼, 저 빵빵한 배는? 임신이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인데, 내가 알던 고등어는 분명 수컷이었거든. 배에 물이라도 찬 거라면, 이런 환경에선 결말은 뻔하다.


그날 본 후로, 고등어는 열흘 가까이 보지 못했다.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닭가슴살도 반만 먹고 눈치를 보던 모습.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려 오늘도 정상 부근을 기웃거려 보지만 고등어는 안 보인다. 삼색이에게 닭가슴살 3개, 젖소에게 1개 삥 뜯기고 발길을 돌린다. 활기찬 이 두 녀석은 자신들 주변에 드리워진 그림자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 언제나 삶의 주변을 기웃거리는 그 무엇 따윈.


내려오는 길. 아쉬움에 미적대며 주위를 살피는데 특이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나뭇잎은 가지 쪽에서 자라나야 하는데 이 나무는 어째 밑동부터 나무 전체에 걸쳐 잎이 나 있다.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봤더니 죽은 나무를 덩굴 식물이 감고 올라간 상태더라. 아이고, 억척스러워라. 죽음마저 휘감고 피어나는 생명이라니. 그래, 그러니 잘 있을 거야. 잘 있으면 언젠가 보겠지. 사람이 적었던 어떤 겨울날, 햇살 아래 수풀 속에서 장난치던 셋의 모습을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한다.


꼬리말) 426일에 썼던 글이다. 계절감이나 시기가 명확한 글은 바로 올리는데 이 글은 놓쳤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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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5-1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고양이들의 숙명이 참 안타깝습니다. 작년 가을까지 산 방향으로 자전거 타고 가면 만나 캔이라도 하나 주던 치즈와 젓소도 겨울이 지나고는 보이지 않더군요.

대굴대굴 2026-05-17 11:46   좋아요 0 | URL
겨울 나는 게 가장 어렵다고들 하더라구요. 어떻게 가든 최소한 사계절 세상 구경은 하고 갔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