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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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배에서 나옴과 동시에 끝을 경험한 아이. 당차고 모질게 틀을 깨고 나왔지만, 항상 우는 아이. 어쩌면 자신을 찾기 위해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아니 그 기간을 천년처럼 지리하게 살아간 아이. 그런 아이가 세상을 돌아다닌다. 모두가 애써 외면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일면을 들쑤시면서.

 

술술 읽히면서 머릿속에 들어오는 문장. 그래서 웃고 안타깝고 놀라고. 그렇게 책을 한 번 읽는다. 그리고 두 번째 읽기. 다시는 처음처럼 웃을 수가 없다. 아이가 틀을 깨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순간이 곧 끝이나 다름없었음을 알아버린 탓이다. 진짜가 되고 싶었던, 계속 진짜로 남고 싶었던 아이의 이야기. 가짜 같지만, 누군가에겐 말도 안 되는 가짜로 보이겠지만 잔인하게도 진짜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해되면서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그래서 세 번은 절대 읽기 싫은 이야기. <당신 옆을 스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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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구의 증명 은행나무 노벨라 (오디오북) 7
최진영 지음, 김다올 외 낭독 / 은행나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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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 인생에서 누군가 지워지기를 바란 적이 있다. 제발 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를 지울 방법은 내가 사라지는 것. 내가 이 끔찍한 관계 속에서 발을 빼고 어딘가로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아예 실현 불가능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에겐 실현 불가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와도 담을 쌓아야 했으니까. 그건 나만 살겠다고 도망치는 거였으니까. 그래서 그 사람이 더, 더 미웠다. 그 사람이 한심했고, 그 행동에 치를 떨었고, 그 생각이 기가 막혔다. 동시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기력한 내가...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내 젊은 시절의 한때가 흘러가고 있었다.

 

인간관계라 하면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말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사회에서 부여하는 사람의 의미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이미 포함되어 있어서다. 가족이란 혈연 범위, 돈에서 비롯되는 각종 지위, 계층. 수많은 것들이 모여 사람을 이루고 그런 존재들이 관계를 형성한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관계라면 그나마 괜찮지만, 선택할 수 없는 관계가 자신을 굴레처럼, 낙인처럼 지배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굴레를 깨뜨리라고? 낙인을 지우라고? 모든 걸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래서 이 사회가 너에게 부여한 의미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라고? 흥이다.

 

책을 읽고 쓴 글 치곤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그건 작가가 지나치게 지독한 소설을 써서 그렇다(그렇게 우겨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얘기인데 도무지 처음부터 끝까지 편치가 않다. 단순하고 전형적인 설정이지만 그래서 이성보단 감성을 더욱 자극한다. 관계 속에서 버둥대는 구와 담을 보면서 한때의 내가 떠올라 더욱 그렇다. 그런데 한때의 나라고? 지금의 나는 그 누군가를 완전히 지운 걸까?

 

사진첩을 정리했다. 옷장 정리를 하다 구석에 처박힌 대여섯 권의 옛날 사진첩을 발견했거든. 그 사람이 있고 내가 있고 또 다른 누군가도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다 지나간 건가? 그때의 많던 감정의 격동들이?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내 경우는 그 사람을 지우려 했기 때문에. 하지만 담은? 소설 속 담은 어떨까? 사랑하는 구를, 구의 존재를 자기 안에서라도 어떻게든 증명하려고 하는 담은 시간에 많은 걸 흘려보낼 수 있을까? 궁금한 것처럼 물음표를 달아보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을 덮는 순간 이미 나만의 대답을 찾은 모양이다. 그러니 이렇게 감정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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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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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한국사 참고서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교과서’라고 할까, 하다가 책의 내용이 기본적, 기초적인 내용을 압축해서 다뤘다기보단 조선이란 왕조 국가의 체계에 영향력을 발휘했던 현상들을 선택적으로 다루기에 ‘참고서’란 단어를 사용했다. 14세기 말부터 15세기 조선의 왕들, 즉 태조부터 성종까지 치세를 살펴보면서 그들과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생각이 현실에 어떻게 반영되고, 멀리는 조선왕조가 유지되던 내내, 가깝게는 바로 다음 왕의 치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서술한다. 특이하게도 같은 시대 서구 유럽은 어떤 길을 밟고 있었는지 개략적인 설명을 담고 있어서 머릿속에서 따로 놀던 동서양 역사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기회도 제공한다(아, 저 사람들이 이때 사람들이었던 거야!).


대략 100년 단위로 시기를 구분했으니, 조선사만 다섯 권 분량.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겐 괜찮은 역사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많이 등장하는 한자어나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 탓에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처럼 자신의 관심 여부를 떠나서 반강제적으로 읽어야만 하는 교과서도 아니고, 성적을 내기 위해 외워야 하는 참고서도 아니라면, 다시 말해 조그마한 관심이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역사서라면 그 정도의 장애물은 충분히 극복하면서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거다. 아마도.

이 책을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을 선택해서 읽는 거라면 전용 ebook 리더기보단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읽는 걸 권한다. 흑백이면서 해상도가 떨어지는 ebook 리더기로는 책에 실린 사진과 그에 딸린 주석을 제대로 볼 수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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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벨 아미 (한글판) 더클래식 세계문학 40
기 드 모파상 지음, 베스트트랜스 옮김 / 더클래식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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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가진 그를 보노라면 통속소설에 등장하는 악당이 떠올랐다.


가식과 허세와 타락으로 물든 프랑스 파리 사교계에서 출세하는, 가진 거라곤 매력적인 몸뿐이었던 젊은 남자의 이야기다. 아니다. 가진 게 하나 더 있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지녔던 것보다 더욱 두드러지는 속물근성. 출세욕, 이기심, 여성 편력, 체면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자기중심적 사고와 어우러져 엄청난 속물근성을 드러낸다. 어느 정도냐면, '어우 야, 이거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을 정도.

 

그러다 든 생각. 왜 이렇게 거부감이 심할까? 영화나 소설에서 비열하고 치사한 악인 캐릭터를 많이 봤지만, 거부감이 이렇게 심하진 않았는데.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나 싶어 기억을 더듬다가 문득 한가지 예가 떠올랐다. 그리곤 바로 공통점을 알았다. 현실감. 요즘을 사는 우리는 가면에 익숙하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도 아주 세련된 가면을 쓰고서 내면을, 속성을 감춘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가면을 벗은 날것 그대로의 욕망과 마주하게 되고 불행히도 그 욕망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특별하거나 유별난 자가 아니더라도 가질 수 있는 욕망, 나에게도, 내 주변 누군가에게도 잠재된 현실적인 욕망, 게다가 만족할 줄 모르는 끝없는 욕망이 이 글 속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 모파상이란 작가에 대해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기억하는 건 이름뿐. 그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당시 처음 작가의 이름을 들었을 때 '노파''고물상'이라는 뜬금없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나 모르겠지만 사춘기 시절 아이들의 머릿속을 이해하는 건 포기한 지 오래다. 어쨌든 수십 년이 지나서 이 작품을 접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도 하나 정도는 더 읽어봐야겠구나 싶은 생각이다. 만약 이번 작품과 똑같이 강렬한 거부감을 선사한다면 더는 시도하지 않을 거다. 난 아무래도 가면을 벗은 존재에겐 적응하지 못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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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무너진 세상에서 : World Gone By 커글린 가문 3부작 1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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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겠어. 조지프, 당신은 이 세상에 수없이 죄를 흘려보냈소. 그 죄가 조수를 타고 돌아오는지도 모르지. 우리 같은 사람들...... 우리 같은 사람이 되려면 마음의 평화는 영원히 날 샜다고 봐야지.“

 

외로움과 불안감이 커지자, 잠재되었던 죄의식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피와 폭력으로 일구어낸 자리가 다시 피와 폭력으로 위태로워지면서 서서히 낭떠러지로 밀려나는 인물을 그려낸 이야기다. 전편인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에서 아버지가 했던 말을 완벽하게 구현해 낸 결말이랄까. 죄의식과 몰락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이야기를 꾸려가지만, 작가의 솜씨가 워낙 좋은 터라 읽는 재미가 있다. 만약 전편을 재미있게 읽고 그 줄거리가 머릿속에 정돈된 상태라면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남는 여운은 꽤 클 거라 생각된다.

 

나 여기 있어요. 곧 죽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여기 있단 말입니다. , 게다가 아주 잘 살기까지 했죠. 자유롭게. 그들의 등 뒤에 대고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당신들이 졌어! 그들의 등 뒤에 대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들이 이겼어.

 

전편에서 아버지가 했던 얘기, 폭력은 결국 너에게 되돌아올 거라는 충고에 대한 아들의 답변이다. 당신들이 이겼어. 모든 걸, 정말 소중한 걸 잃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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