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용을 보여 주는 거울 - 첫사랑을 위한 테라피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5
마르탱 파주 지음, 배형은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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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남편이 첫사랑이라고 말은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겐 언제나 첫사랑이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엔 짝이 그랬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교회 오빠가 첫사랑이었다.  그리고 스물살엔 선배가 첫사랑으로 다가왔다.  그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었고, 사랑외에는 인생에 어떤것도 중요한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때 느꼈던 가슴앓이에 대한 치유를 난 어떻게 했었을까?  어른들 말씀처럼 시간이 약이었던것 같기도 하고, 금새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던것도 같고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도 가물거린다.  하지만 여전히 황순원의 <소나기>나 알퐁소 도데의 <별>을 기억하는 이유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때문일 것이다.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은 있는데, 아련함과 가슴앓이로 엉망이 된 마음에 치유는 어떻게 했을까?

 

 

  '첫사랑을 위한 테라피'라는 얄궃은 제목이 붙어있는 가벼운 책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은 '씨~익' 웃게 만들다가 '아~'하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100페이지도 안되는 이 가벼운 책은 온통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마르탱에 삶에 마리가 들어왔단다.  '그 애에 대해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다른 여자애들의 머리와는 조금 다르고, 몸짓은 조금 느리거나 조금 빠르고, 고양이 눈을 가진 마리에겐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어도 절대 그 속에 섞여 들지 않고,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한 방울의 피처럼 주위로부터 도드라져 보이고, 마리가 나타나면 온 세상이 한발 뒤로 물러서는 것처럼 보인다.'(p.15)라고 마르탱은 이야기 한다. 분명 이건 사랑이다. 만 열세살이 된 소년에게 다가온 사랑. 마리가 마르탱에 삶에 들어온 순간부터 모든 것은 변하기 시작했을것이다.  똑같은 하늘도 똑같은 공기도 새롭게 태어났을테니 말이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사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버렸다.

 

나는 더듬거렸다. 심장 박동이 몹시 빨라지기 시작했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화끈거렸다. 나는 “그래.”라고 말했다, 그것도 셀 수 없이.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 순간 도서관은 온통 “그래.”로 가득 찼다. 문으로, 창문으로 “그래.”가 넘쳐흘렀다. 좀 더 분명히 하기 위해 나도 너를 좋아한다고 말했다.(p.18)

 

  “너와 사귀고 싶어” 마리의 한마디는 마치 심장을 관통하는 기차처럼 마르탱의 주위를 맴돌았다. 꽉 잡은 두 손과, 마주치는 두 눈빛. 마르탱에게 잊을 수 없는 황홀한 사랑은 도서관의 책 사이사이 가득히 스며들고도 넘쳐 도서관 창문을 넘어 흘러내렸는데, 60분 후에 사귀고 싶다는 말을 취소한단다.  이런걸 설상가상이라고 해야한다. 왜냐하면 잠옷을 입고 출근하는 좀 이상한 아빠, 기지개를 켜다 오늘 아침 죽어버린 사랑하는 개. 이 가을, 다른 사람들은 바삭바삭한 낙엽을 밟고 있지만 물에 젖은 낙엽을 짊어지고 힘들게 서있는 중학생 마르탱에게 다가온 60분간의 연애후에 찾아온 이별은 이제 마르탱의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마르탱에게 사랑과 이별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이제 마르탱이 이별 극복기를 들려준다.

 

  딱 열 세살, 영락없는 그 나이에 아이들 같은 프레드, 에르완 바카리는 마르탱과 함께 '부적응자 클럽'에 멤버들이다. 흔한말로 베프다. 베프에겐 비밀이 있을 수가 없으니 60분간에 연애 이야기 시작..  두근두근 귀 쫑긋세우다가 키스도 못해보고 차였다는 말에 마리는 아이들에게 괴물이 되어버린다. "여자애들이 그렇다니까. 음악도 다 그런 내용이잖아. 여자들은 이해 불가능이라고"(p.35). 오해가 있을꺼라고 이야기하는 녀석, 마리가 잔인하다고 이야기하는 녀석. 그럼에도 여전히 마리를 사랑하고 있지만 마리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so cool할 수 밖에 없는 마르탱.  이와 중에 아빠는 아침에 죽은 개에 장례식 축제를 치러야 한다고 하고. 이별은 슬픈데, 해야할 일이 많다.  60분간에 달달하고 짜릿한 경험이 평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마르탱은 자신이 나비였으면 60분은 아주 긴 시간일테니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마리가 어쩌면 용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왜 제목이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일까?  마르탱은 참 친절하게도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첫째, 제목이 아름다우니까.  둘째, 제목을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는가.  셋째, 마리처럼 매력적이고 섬세하며 영리한 소녀가 용이라는 것을 알아채기는 힘이들기 때문이란다. "이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었다"는 마르탱의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다가도 '풋~'하고 웃게 되는 이유가 이것일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살아가며 많은 것을 얻지만, 삶이란 또한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과정이다. 이 모든 과정은 마음속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마르탱은 자신이 구멍난  치즈 덩어리 같다고 표현을 하고 있다.  열세살 소년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60분간에 연애와 긴 이별을 통해 본 사랑 이야기 같지만, 그안엔 인생이 들어있다.  '용'과 '거울'에 대한 '은유'에 대한 이야기인 <숨은 용을 보여주는 거울>은 그래서 책에 무게보다 훨씬 무겁게 다가온다.

 

'내가 구멍이 잔뜩 난 치즈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내가 자라 어른이 되어 갈수록 나의 내면이 풍선처럼 부풀어 새로운 공간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날 것 같았다. 그 빈자리에 정신이 아찔했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그 공간으로 떨어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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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독립 프로젝트 - 옥 패밀리 삼남매의 홀로서기 도전기
박임순.옥봉수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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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도 아닌 책을 이렇게 몰입해서 읽은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책을 펼치고는 '와우~'소리를 끊임없이 되네이면서 읽어내렸다.  이런 멋진 프로젝트가 다 있구나 하면서 말이다.  22년간 근무하던 학교를 그만두고 중학교 1학년이었던 막내아이까지 세아이를 설득해서 545일 동안 전 세계를 누빈 가족이 있단다.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를 스치듯 들을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도 공무원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세계여행후엔 당연히 복직을 했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럴수 있기 때문에 1년 6개월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고 당연하게 믿었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내 상식으로는 먹고 사는것만큼 중요한 게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니란다. 그냥 관뒀단다. 가족이 회복되기 위해선 그럴 수 밖에 없었단다.  그리고 지금은 선생님으로 있을때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몸은 바쁘고 소득은 줄었지만 행복하단다.  먹고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마음의 여유를 찾아서 마음만은 그렇게 부자일수가 없다고 박임순, 옥봉수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옥 패밀리 삼남매 역시 이런 생각일까?

 

 

  "저라고 이런 집에 들어오고 싶은 줄 아세요?"  큰아이가 예전에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했던 말이란다. 이 대단한 가족에 큰아이가 말이다.  '이런 집'.  하숙생 아닌 하숙생들이 각자 혼자 끙끙 앓으며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채 살아가는 공간. 성적 때문에, 기질상의 문제 때문에, 때로는 부모의 비료로 인해 지금 이 순간에도 하숙집 같은 '이런 집'에서 아이와 부모가 아파하고 있는 집이 혹시 우리 집은 아닐까?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인 집.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하고 부모 말 잘 들어 남부러울 것 없는 집에서 부부에 교육관이 서로 다르면 소리가 높아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어느쪽이 강자인지 눈치를 살피고, 불똥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숨어든다. 옥 패밀리 또한 그랬단다. 그래서 떠날수 밖에 없었단다.  다소 극단적인 조치이긴 했지만, 그만큼 몇 년간 살얼음판을 걷는 듯 살아왔고, 마치 절벽 끝에 다다른 것과도 같았던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했기에,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고 싶었단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에 길을 묻기위해서 길위를 걷는 다는 것은 말이다.  내눈으로 본 아이와 다른이에 눈으로 본 아이는 다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난 큰아이에 대한 기대가 높다. 그에 비하면 작은 아이는 뭘해도 그냥 넘어가고,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가끔 학원에서 들려오는 작은아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때가 많다.  놀기만 하고 컴퓨터게임만 하는것 같은 녀석이 잘하는게 많다는 게 아닌가?  사실, 학원은 다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가끔씩 뭔가 하는걸 보면 놀랄떄가 있긴하다. 그래도 여전히 내 옆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녀석에게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지금도 째려보고있는데 모르고 게임삼매경이다.  옥 패밀리 역시 마찬가지다. 툭하면 멍때리고 이거했다 저거했다 끈기도 없다고 여겼던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니 '척척 해결사'로 다가오고, 어릴 적부터 완벽을 추구하면서 공부한다고 짜증만 내던 범생이가 '공간감각의 대가'로 다가오고, 별 기대를 하지 않던 까불이 막내가 '협상가'로 다가왔단다.

 

  어느순간 짠하고 아이들이 변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기질이 세상에 나오고 부모의 잔소리와 손이 가지 않으니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장점을 펼치지 시작하고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녀독립 프로젝트'라고 책명이 붙어있지만, 자녀독립 프로젝트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닐것이다.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고, 가다가 실패할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옥 패밀리는 이야기 한다. "공부 잘하고, 실패 안하고,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잘하는 아이라서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란다. 너는 엄마 딸이기 때문에 엄마에게 소중한 거야! 사랑해요! 힘내요!'(p.187)  1년 6개월동안 세계를 누빈 후 아이들이 한것은 검정고시였단다.  그 또한 부모가 강요한것은 아니었다. 세아이가 서로 상의하고 어떤것이 낳은지를 찾아서 인강을 듣고 공부를 했고, 세 아이는 이제 각자에 길을 찾아 또다른 공부를 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  17살된 막내아이까지도 말이다. 부모는 아이의 장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아니,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아이를 가두려고 하기에 아이가 장점을 펼치기 힘이든다.

 

  옥 패밀리는 이야기한다. 자녀독립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갈등과 고민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의논하며 하나씩 해결해나갔다고 말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은 자신이 더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배움의 길'에 대해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자녀독립 프로젝트를 통해 거둘 수 있는 큰 소득중 하나라고 말이다.  그리고 자녀독립 프로젝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독립 프로젝트'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옥 패밀리처럼 아이들에게 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지만 쉽게 답을 낼 수가 없다.  물론 알고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립'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진짜 '생활'을 보면서, 책을 읽어 나가는 중에 이렇게 해야 내 아이에게 꿈과 웃음을 되찾아줄수 있겠구나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쉽지 않다.  옥 패밀리가 말하는 '부모독립 프로젝트'가 먼저 되어야하는데, 내 자신이 그렇게 바로 서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끊임없이 돌아보게 된다. 지금 나와 아이들은 어디에 서 있는지 말이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며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말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어라." - 생텍쥐페리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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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쟁이가 달라졌어요! 애플비 그림동화
질리언 쉴즈 글, 캘리 존슨 이삭스 그림 / 애플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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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 전부터 주일학교 유치부를 맡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이들이 예쁘다는 걸 몰랐었는데, 내 아이들을 낳고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서 미치게 아이들이 좋아져버렸다.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너무 좋아서 동화구연을 배우고, 종이접기를 배우고 인형만드는 법도 배웠다.  작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전부터였으니 꽤 오래된 이야기다.  그렇게 유치부 교사가 되었다.  내가 맡은 아이들은 주일학교에서도 가장 어린 아이들이다.  우리교회 주일학교는 24개월 부터 아이들이 예배를 드릴수가 있다.  물론, 24개월 전 아이들도 오기는 하지만, 혼자서 6-7명에 아가들가 함께 하기에는 역부족이라서 우리나이로 4세가 되는 시기부터 아이들은 주일학교로 오기시작한다.

 

  7년이 넘어가니 처음 만났던 어린 아가들이 벌써 중학생이 되었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커갔는지도 알고 있다.  해마다 아이들에 성향은 많이 다르다.  어떤해에는 떼를 쓰고 우는 아가들이 많을 때가 있고, 어떤해에는 궁금한게 많은 아가들만 있을때도 있다. 올해는 우리 나이로 세살, 네살 아이들 다섯명이 들어왔는데, 세명의 아이들에게 동생이 생겨버렸다.  동생이 생긴 아이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변화를 한다. 그 중 <떼쟁이가 달라졌어요>에 마리와 같은 아이도 있다.  마리는 어떤 아이일까?

 

 

  마리는 갖고 싶은 걸 가질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워 떼만 쓰는 떼쟁이다.  부모 마음에야 아이가 울고 떼를 쓰면 몸 상할까 걱정이 되기 때문에 들어주고 싶어진다.  특히 첫 아이이거나 늦둥이인 경우에는 더하다.  마리는 책을 읽다 코끼리가 멋져보였는지, 이번엔 코끼리를 사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이게 가능할까 싶은데, 마리의 아빠는 결국 마리에게 코끼리를 선물로 주게 된다. 그런데, 마리가 선물로 받은 코끼기는 마리보다도 더 제멋대로인 떼쟁이 코끼리가 아닌가?  코끼리는 마리의 침대를 쓰고, 마리의 장난감도 가져가고, 심지어 마리의 친구들도 모두 차지해버린다. 원하는 걸 들어주지 않으면 엄청나게 큰 소리로 떼를 쓰면서 말이다.

 

 

  마리 생각엔 코끼리가 생기면 코끼리가 등에도 태워주고, 멋진 묘기도 부리고, 장난감도 코로 집어줄 줄 알았는데, 이 코끼리가 "싫어. 나도 너처럼 내 맘대로 할테야."라고 하면서 마리보다 더 큰소리로 떼를 쓰니 이걸 어쩌면 좋을까?  이런 바보 코끼리는 필요가 없으니까 바꿔달라고 떼를 쓰면 될 줄 알았는데, 이번엔 아무리 떼를 써도 들어주질 않는다.  이 떼쟁이 코끼리에 말을 들어줘야만 한다.  이제 마리는 코끼리를 위해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신발을 닦고, 열심히 청소를 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코끼는 또 엄청나게 큰 소리로 떼를 쓰니까 말이다. 

 

 

  떼쟁이 마리랑 떼쟁이 코끼리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고마워"라고 또박또박 떼를 쓰지않는 순간부터 마리와 코끼리는 친구가 된다.  떼쟁이 코끼리는 떼쟁이 아이들에게만 떼쟁이가 되니까 말이다.  재미있다.  어른에 입장에서 재미있는 책이 아니라 아이들 눈에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나도 그럴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의 특징중 하나는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육아서 처럼 뗴쓰는 아이를 대하는 부모들의 올바른 태도와 '떼쓰는 아이에게 이렇게 해 보세요'와 같은 정보들이 마지막 페이지에 나와있다.  애플비에서 나온 <유치원 다닐 때 꼭 알아야 할 65>와 <첫 아기 리더로 키우기>에서 관련 내용을 발췌 정리하였다고 되어있는데, 뗴를 쓰는 아이가 있는 부모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감이 될것 같다.

 

 

  만 2세가 넘어서면서 자율성과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우리 아이들.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는 것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은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 중 하나이다.  하지만, 버릇과 습관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아이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니 말이다. 말로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나이까지 이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부모가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이 책은 자연스럽게 아이와 마리와 코끼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네가 잘못했어'가 아니라 '마리랑 코끼리는 어떻게 될까?'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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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3 : 세계편 - 완결
이우혁 지음 / 엘릭시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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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일을 <퇴마록>에 빠져서 다른책들은 안중에도 없었는데, 또 또 이렇게 리뷰를 질질 끌고 있다. 책을 읽은지가 이주는 된듯 한데, 지금에야 쓰고 있으니 말이다. 책을 읽을때는 그속에만 폭 빠져서 다른 내용들은 기억도 나지 않다가, 몇일만 지나고 나면 다른 책들과 엉켜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특히 비슷한 류에 책을 읽는 경우에는 그런 경우가 훨씬 심하다.  <퇴마록 - 세계편>이 그랬다.  거의 20년만에 다시 읽은 <퇴마록>은 기어코 20년전에 나왔던 책들을 들춰내게 만들더니, 국내편부터 다시 읽게 만들어 버렸다.  이번에 <퇴마록 - 외전>이 나왔다고 하던데, 그것까지 읽으려면 아직 멀었지만, 결국엔 혼세편까지 읽어버리고는 본 책에 대한 리뷰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세게편>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3권에 나와있는 <얼음의 악령>과 <아스타로트의 약속>이라고 작가가 이야기를 했다. 전면 개정을 했다고. 그래서 구간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데, 왜 그 내용이 궁금했을까?  너무 오래전에 읽기도 했었고, 큰 줄거리만 기억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얼음의 악령>이나 <아스타로트의 약속>을 개정판으로 읽으면서도 뭐가 달라졌는지 몰랐었다.  구판에서 퇴마사를 쫓아다니던 윈필드 기자가 아닌 <얼음의 악령>에서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설탐정 더글러스가 이야기를 이끌어 내고 있다.  <아스타로트의 약속>은 훨씬 많이 다듬어진 느낌이 들었다. 사실 작가는 애매하게 마무리된 구판을 굵고 강렬하게 바꾸었다고 말하는데, 세세한 인물묘사는 탁월하지만 굵고 강렬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역시 마지막은 애매하게 끝나버리니 말이다.

 

  어찌되었던 <퇴마록 - 세계편>의 마지막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1, 2권을 통해 끝임없이 나오고 있는 '블랙서클'에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 3권이고, 블랙서클의 수장인 마스터와의 결전이 이루어지는 것 역시 3권이다.  모든 베틀에는 수장과에 싸움이 있기전에 하수들과에 싸움이 보여진다. 지금까지 쉬지않고 퇴마사들 주변을 오가면서 간을 보는것처럼 왔다 갔다 했던 카프너가 2권에서 죽으면서 마스터옆에 있던 금발에 미녀를 보여줬었다.  그 금발에 미녀가 2권 끝부분부터 나오더니 이제 3권에서는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1권과 2권을 통해서 보여진 사건들. 이집트 주술사는 한국에 전화를 불러일으키려 했고, 영국에서는 전멸한 켈트족의 영들을 이용하여 수라장으로 만들려고 했고, 카프너는 덜 떨어진 사람들을 이용하여 늑대 인간을 만들었지만 그건 블랙서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퇴마사들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블랙서클에 일원이 죽을때마다 왜 그들에 영은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3권은 퇴마사들과 블랙서클의 삼대 승정들에 대결을 보여주고 있다.  드라큐라성을 배경으로 하는 '왈라키아의 밤'은 윌리엄스 신부를 흡혈귀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금발의 미녀, 증오의 승정인 코제트. 대대적으로 이야기를 고쳤다는 '얼음의 악령'에서는 두려움에 벌벌 떠는 승정같지 않은 공포의 승정인 젠킨스가 등장을 한다.  세번째 승정은 어떤이일까?  세계편이지만 퇴마사들은 참 멀리도 간다. 아프리카의 한 나라인 말리. 말리에서 말도 안되는 반란이 일어났단다.  그곳에 있는 고통의 승정, 히루바바.  이들과의 싸움은 물론 동방에서 온 우리의 퇴마사들이 이긴다. 하지만, 개운치가 않다.  증오와 공포, 고통을 끌어안고 살던 세승정의 모습은 보통의 사람들이 느끼는 가슴앓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엇때문에 증오에 쌓여있고, 공포를 느끼고, 고통을 당하는지 퇴마사들은 그들과의 격전을 통해서 위로해주길 원하지만, 이들에 죽은 영들 역시 다른 블랙서클의 영들처럼 사라져 버린다.

 

  드디어 퇴마사들과 마스터의 대결만이 남았다.  1권부터 끊임없이 나오던 블랙서클의 실체가 들어나기 시작했다.  블랙서클의 악행을 막기 위해 뒤를 쫓아 전 세계를 누비던 퇴마사들 앞에 베일에 싸여 있던 블랙서클의 정체가 밝혀지고, 퇴마사들은 마스터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정말 말도 안되게 강한 인물이 이들 앞에 나타났다.  다 모여도 모자랄 판에 마스터는 한명씩 묶어놓고 박신부와 대전을 펼친다.  그리고 드러나는 이야기들.  어떻게 마스터가 이토록 강해졌는지는 읽어봐야한다.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대략에 감은 올테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퇴마록 - 세계편>은 끝이 났다. 치밀한 구성을 자랑한다고 출판사는 이야기를 하지만, 구편이나 개정판이나 마지막이 허무한것은 어쩔 수가 없다.  퇴마사들을 살려내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고, 우리 인생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내게 새로운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면 대안은 없다.  그래도 허무하고 이게 뭐지하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는 이유는 퇴마록을 심하게 아끼는 독자이기 때문이다.

 

"마스터 같은 사악한 적 따위는 얼마든지 만들어 보내 주겠어. 세상에 위기가 닥쳐야 나선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주겠어.  그러니 싸워. 영원히 살아남아 싸우고, 피 흘리고, 고통받아 줘.  그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거니까." (p.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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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 시대 여성은 재혼을 하지 못했을까? - 함양박씨 vs 성종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27
정성희 지음, 황기홍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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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혼 금지법이라는 것이 있었다는걸 알고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 법이 여자에게만 해당되었던것을 알고 있을까? 여성에게만 해당되었던 '재혼 금지법'은 1894년에 사라졌지만, 여성은 임신여부때문에 6개월동안 재혼을 할수 없게 되었었고, 이 법은 2005년에 여성에 대한 차별적 규정이라고 해서 폐지되었다. 근간의 일이다.  흔히 세상의 반은 남자고, 반은 여자라고 하지만 역사공화국뿐 아니라 모든 것에서 만나게 되는 지나 온 역사를 살펴보면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었던 시기는 별로 없다.  언젠가 부터 여자는 남자에게 무조건 순종해야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현모양처가 최고에 대우인것처럼 말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근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양성평등'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곳곳에 차별적인 문화를 발견하고 있다.  역사공화국 27화에서는 이 차별이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1770년대에 살던 함양박씨가 1470년대를 살았던 성종에게 소장을 제출했단다.  역사공화국이니 가능한 일이지만 성종보다 300년이나 늦게 태어난 함양박씨가 왜 소장을 제출했을까?  우선은 함양박씨부터 알아봐야한다.  함양박씨는 경상남도 안의 출신의 열녀로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 쓴 <열녀함양박씨전>에 주인공이다.  남편이 일찍 죽자 3년 상을 치른 뒤 자결을 한것을 박지원이 조정에 소를 올리기위해 함양박씨를 주인공으로 글을 썼단다.  물론 그녀는 열녀문을 받았지만, 역사공화국 소송에서는 열녀문을 반환하고자 한다.  그런데 왜 성종에게 소장을 낸 것일까?  성종은 1457년에 태어나 1469년부터 1494년까지 25년을 재위한 조선 제9대 왕으로 조선을 유교 국가의 반열에 올린 주인공이다.  가문의 영광이라고 여겨지던 열녀문을 이제에 반환하겠다니, 그것도 자신보다 300년이나 앞선 임금에게 말이다.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선시대 최초의 종합법전, 즉 조선시대의 헌법은 <경국대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국대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관습법이나 중국 법률에만 의존하고 있다가, 1457년 세조 3년에 시작하여 1485년 성종 때 완정된 경국대전은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의 6전 체계로 조선의 유교식 국가 운영 체계를 완성했다.  '경국대전'에는 과부의 재가금지, 서얼 자손의 영구 과거 금지, 노비 매매의 허용등에 내용이 들어가 있는데, 이는 시대적 한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가 있다.  특히 재혼 금지법의 경우 성종은 논의에 참여한 신하 총 46명 중 42명이 재혼 금지법을 반대하고 불과 4명만이 찬성했음에도 소수 의견을 따라 "재혼한 여자의 자손은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는 법조항을 만들었다.  이는 남자 중심의 가계 계승 질서를 지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말들이 들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슬람권 여성들은 얼굴이나 피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부르카를 머리에 써서 전신을 가리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하지만, 현재에도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이슬람권에 생활양식과 다른것이 있을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런 문화는 조선의 유교문화에 영향이 클것이다.  고려는 불교 중심의 국가였고, 조선은 유교 중심의 국가였다.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불교는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했지만, 불교는 혈통을 중요시했고,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이어 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기에 고려는 재산 상속에서도 '균분 상속'이 되었지만, 조선은 유교 풍습이 널리 퍼진 이후에는 큰아들을 위주로 상속되었고, 결혼한 딸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시집을 가면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집살이가 고되고 힘들다는 말인데, 왜 이런 말이 나오고 있을까?  조선시대엔 결혼한 여인에게만 적용되는 '7가지 죄', <칠거지악>이 있었다.  1. 시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여자, 2. 아들을 못 낳은 여자, 3. 행실이 음란한 여자, 4. 질투하는 여자, 5. 나쁜 질병이 있는 여자, 6. 말이 많은 여자, 7. 도벽이 있는 여자. 사람을 기준하는 잣대다.  우시장에서 소를 고르는 기준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에 생각일까?  <칠거지악>은 남자에 입장에서 '이혼'을 용이하게 하는 제도 중 하나였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이어가는 유교 풍습은 여인들에게는 엄하기만한 굴레였던 것이다.

 

 

  젊은 시절에 남편을 잃고 재혼이 금지된 조선에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 중엔 혼자 사는 여성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혼자선 먹고살기 위해서 할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선은 남성중심 사회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열녀문>은 벼슬을 얻을 수 있는 길로 변질되면서 죽음을 강요하는 경우도 상당했다고 한다.  물론 영조의 딸인 화순 옹주처럼 사모의 마음을 남편의 뒤를 따르는 여자들도 있었지만, 조선 새대의 여자들에게 은연중 기대하고 있던 이 도덕전 찬양은 생각해 볼 문제다.  열녀문을 받으면 여자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다른 것으로는 가능할수 없는 것이 자신의 죽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은 열녀문이라는 것이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저 남자들처럼 도덕적 인격체로 대우받고자 하는 열망이 수많은 여성들을 열녀의 길로 내몬것은 아니었을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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