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페르노 2 로버트 랭던 시리즈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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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빈치 코드》도 그랬지만, 《인페르노》도 소설 속 시간도 굉장히 짧다.  12시간안에 숨가뿐 추격속에서 나타나는 온갖 상징과 암호. 앰비그램, 알브레히트 뒤러의 마방진, 미국 국새와 피라미드의 비밀 등의 수수께끼들 풀어냈던《다빈치 코드》보다는 두배로 길어졌어도 《인페르노》속 제한 시간은 24시간 이다.  그 만큼 호흡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24시간 동안 머리를 다쳐 단기 기억상실에 걸리고, 그 짧은 시간에도 매력적인데도 천재인 의사, 브룩스 시에나까지 만나는 지적이고 멋진 랭던 교수는 몇년에 한번씩 굵직한 사건 사고를 끌고 다니는 인물이다.  그 덕분에 그의 24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부단히 애를 써야만 한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국경을 넘어 가 있는 랭던을 만나게 되니까 말이다.

 

 

 《인페르노》를 읽으면서 《다빈치 코드》만큼 구글링을 한 것 같다.  넓은 세상을 나가본 적이 없는 내겐 댄 브라운이 글로 써내려간 멋진 세상을 읽으면서도 머리속으로 그려낼 수가 없으니 찾는 수 밖에 없다.  덕분에 여권 만들어 비행기 탈 필요도 없이 랭던이 지하에서 하늘까지 열심히 헤메고 다녔던 곳들을 별 수고 없이 눈으로 보고 있다.  물론 구글링과 눈으로만 본 것이기에 뒤돌아 보면 잊어버리기 일수 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댄 브라운과 랭던이 다녔던 곳에 가게 된다면 《인페르노》가 떠오르게 될 것 이다. 동행이 누구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단테의 <신곡>에 대한 말도 안되는 지식들도 풀어내게 될 것이다.  그거야 나중 일이고, 혼자서 생각했던 반전은 또 다른 반전으로 역시 댄 브라운을 외치게 만들어 버린다.  내 눈에 보이는 '적과의 동침'속 적이 아님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맬더스의 《인구론》은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의 방안으로 질병과 전쟁을 이야기 했었고, 더 나아가서는 노동자의 임금동결을 이야기했었다.  랭던이 만나게 된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과 보티첼리의 <지옥도>와 맬더스가 만나면서 교집합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은 검은 얼굴에 긴 부리를 가지고 있는 마스크였다.  중세시대 흑사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병원균을 멀리하는 방법으로 쓴 마스크가 이 괴기스러운 것이였고, 버트런드 조브리스트는 이 흑사병 마스크를 쓴 채로 모두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  언제까지 흑사병 바이러스가 들어있는 풍선을 제거하라고 말이다.  처음부터 그런 모습으로 보여졌기에 풍선 속 물질을 의심하지도 않았고, 랭던과 시에나를 쫓아다니던 조너단 페리스를 보면서 갸우뚱 거릴 수 밖에 없었다.  24시간 동안 랭던이 만나는 인물들은 왜 이리 복잡하고 비밀에 쌓여 있는 인물들이 많은지, 암호를 풀기도 바뿐데, 사람들도 살펴야만 한다.

 

'오, 건강한 지성을 가진 그대들이여, 이 신비로운 시구들의 베일 아래... 감추어져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시오.   말들의 머리를 자르고 장님의 뼈를 빼낸 베네치아의 변절한 총독을 찾으라.  금박 입힌 거룩한 지혜의 무세이온 안에 무릎을 꿇고 그대의 귀를 바닥에 대어 떨어지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물에 잠긴 궁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라.  이곳의 어둠 속에 별빛조차 비치지 않는 석호의 핏빛 어린 물속에 잠긴 소닉 몬스터가 기다린다.'

 

  'PPPPPPP' ' 페카툼... 페카툼...페카툼...'  "우리는 이제 지옥의 일곱 고리를 통해 지구의 한복판으로 내려와 사탄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p.31). 단테의 데스 마스크의 비밀. 이걸로 뭘 풀어 내라는 말인가?  마스크 뒷면에 쓰여진 '7개의 P'를 가지고 <신곡>에 있는 문구를 찾아낸것도 대단한데, 비밀의 언어 속에 또 다른 암호가 숨겨있단다.  천재와 기호학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아... 범인(凡人)의 처량함이여...  랭던을 따라다니면서 나의 무지함은 어찌 이리도 많이 발견되게 되는지, 그가 이야기 하는 것은 맬더스의 《인구론》외에는 하나도 알아 들을수가 없으니 한없이 작아진다.  그래도 랭던과 시에나를 쫓아간다.  저 알 수 없는 비밀 암호를 어떻게 풀어나가지는 궁금하니 말이다.  본격적인 '적과의 동침'을 댄 브라운 보여주면서 읽는 이 뿐 아니라 랭던과 WHO의 수장인 신스키 박사까지 망연자실하게 만들어 버린다.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겠지만, 대한민국은 <인구론>에 반박해야만 할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태어나는 아기가 너무나 줄어들어서 나라를 지탱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분명 전세계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해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다.  버트런드 조브리스트가 내놓은 해결책은 어느 누구도 생각해본적이 없는 해결책이다.  보통의 이상주의자들은 'Not In My BackYard'처럼 해로운 일에선 자신을 제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기에 1권을 읽으면서 버트런드도 그런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가 어떤일을 꾸몄는지는 이제는 안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된 것인지 분간을 하기가 힘이든다.  현 시점에 인명피해가 없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길냥이들의 기하급수적인 번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이 강구되고 있다.  인간이 길냥이들과 동급으로 취급되어질 수는 없는 문제다.  댄 브라운이 들려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랜만에 읽은 댄 브라운의 책에서 만나게 된 건 빠른 스피드의 랭던 뿐만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대한 문제였다.  누구도 해결해 주지 않는 문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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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 1 로버트 랭던 시리즈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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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신이시여, 세상이 내 이름을 괴물 같은 죄인이 아니라 은혜로운 구세주로 기억해주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사실임을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남기는 선물을 인류가 이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선물은 미래입니다.  나의 선물은 구원입니다.  나의 선물은 인페르노입니다.' (p.16)

 

  '로버트 랭던'이 돌아왔다.  기억의 한 부분이 사라진 단기 기억상실 상태로 미국이 아닌 이탈리아에서 눈을 뜬 랭던의 모습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엉망이 된 상태 였다.  총상을 입은 머리엔 수술자국이 있고, 몸은 제대로 움직일수도 없는데, 고슴도치 머리를 한 검은옷의 여인이 그를 죽이기위해 따라다닌다.  이유도 모르고 랭던은 병원에서 만난 닥터 브룩스 시에나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술사와 기호학을 연구하는 하버드대 교수. 그의 사라진 3일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총명의 저주'의 걸렸다는 지능지수 208의 천재 의사, 브룩스 시에나와 히든 포켓속에 들어있던 원통 바이오튜브.  사라진 3일을 찾아야 그를 죽이려는 자들을 알 수 있을테고, 이제 댄 브라운의 특기인 랭던의 숨막히는 기억의 추적이 시작된다.

 

 

 원통 바이오튜브 안에 든 패러데이 포인터는 랭던과 시에나에게 무시무시한 지옥의 지도를 보여준다.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를 교묘하게 바꿔놓은 지옥도.  그리고 랭던의 머리속을 휘집고 다니는 나이를 알 수 없는 은발의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 '구하세요. 그러면 찾을 겁니다.' , '시간이 없어요'  지옥도의  쓰여진 글씨 CATROVACER, 카트로바테르?  기호학자 아니랄까봐 한순간에 랭던은 지옥도의 위치를 바로잡으면서 케르카트로바(Cercatrova),  "케르카(Cerca)... 트로바(trova)...  "구하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p.177) 라는 라틴어 문장을 풀어낸다.  도대체 못하는게 있기는 한건지, 중후한 매력에 잘생기고 워낙에 추격전을 많이 해서 몸까지 좋은데다 하버드대 교수다. 전 세계에 팬을 거느리고 있는 이 남자는 도대체 정체가 뭘까?  물론 알고 있다.  바티칸이 싫어하는 남자, 로버트 랭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보티첼리의 지옥도 - 출처: 네이버)

 

14,233행에 달하는 대서사시《신곡》은 지하 세계로 내려갔다가 연옥을 거쳐 결국은 천국에 도달하는 단테의 숨 막히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인페르노(지옥)>, <푸르카토리오(연옥)>, <파라디소(천국)>로 이루어진 3부작 중에서도 이 <인페르노>가 가장 널리 읽히고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p.105)

 

  단테 알리기에리의 대서사시 《신곡》중 <인페르노>가 제목이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얼굴위에 연옥으로 가는 9개의 산을 위미하는 9개의 원이 그려져 있고, 피렌체의 산 로렌초 성당의 전경이 배경으로 책 표지가 되어있다.  새주둥이 처럼 긴 부리를 가지고 있는 마스크가 계속해서 보여지면서, 지옥을 이야기하는 '인페르노'와 언듯 언듯 흑사병을 생각나게 만든다.  랭던은 어떤 일에 끼어들어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시에나와 모르는것 빼고는 다알고 있는 박학다식한 기호학자는 하나씩 그에게 풀어달라고 교묘하게 숨겨둔 암호들을 풀어내면서 사라져버린 기억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저《신곡》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를 찾아가면 조금 더 비밀을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간 곳에서 마르타 알바레즈는 랭던을 반기면서 '단테의 데스마스크'를 이야기를 한다.

 

  데스 마스크라니 몸서리부터 쳐져야 당연할텐데, 중세의 유럽엔 유명인들의 데스 마스크가 유행이었단다.  죽은후 바로 얼굴에 석고 마스크를 만들어 사자의 모습을 기리는 것.  초상화외엔 그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을테니, 이 데스 마스크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물건임에 틀림이 없다.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교차되어 있다.  사라져 버린 단테의 데스마스크. 그리고 CCTV속 일 두오미노라고 불리는 이그나치오 부소니와 랭던의 행각.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 3일의 기억속에서 랭던은 데스마스크를 찾아내야하고, 함께 했던 이그나치오 부소니는 주검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다시 랭던과 시에나를 쫒는 검은 무리들. 도대체 그들은 무엇때문에 랭던을 쫓고 있는 것일까?   

 

"당신이 찾는 것은 안전하게 숨겨놨어요. 당신을 위해 문이 열려 있긴 하지만, 서둘러야 해요. 파라다이스 25.... 부디 성공하기를.."(p.302)

 

  데스 마스크도 찾아야 하고, 무슨일인지 모르지만 자신을 향해 오는 이들도 따돌려야 하고, 중간 중간 암호처럼 숨겨진 문장들도 풀어내야만 하니 랭던은 역시나 전편들 만큼 숨차게 바쁘다..  전세계의 인구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맬더스는 《인구론》에서 전쟁과 질병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에 비해 식량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유에서 였는데, 《인구론》을 읽으면서 목사였던 맬더스의 사고 방식이 지식인의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그 속에서도 맬더스는 죽음에서 자신은 제외시켰었기 때문이었다.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인페르노》에서도 처음엔 그런 생각을 했었다. WHO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신스키와 대립되는 인물로 그려진 버트런드 조브리스트도 자신을 제외한 인류의 정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림자를 이야기하고 있는 버트런드는 정체를 확실하게 드러내 놓고 있지는 않다.

 

  돈으로 비밀을 만들어 내고 지키는 일을 하는 비밀조직의 사무장이 자살을 한 버트런드 조브리스트의 의뢰를 수락하면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책을 몇장만 넘겨도 알수 있는 일이었다.  중간 중간 랭던의 기억상실 이전에 신스키와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아직 랭던은 알지 못하고 그저 암호문을 풀어내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과도한 스테레스로 민머리가 되어버린 시에나와 랭던이 어디까지 갈지는 알수 없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굉장히 빠르다. 피렌체 이곳저곳을 지상과 지하를 막론하고 뛰어다니면서, 독자들에게 피렌체 전경을 머릿속에 심어주고 있다.  댄 브라운의 특기인 스릴넘치면서도 사실적인 묘사는 당장이라도 여권을 챙겨서 이탈리아로 날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고 있다. 1권은 여전히 안개속을 걷고있는 것처럼 두리뭉실하게 펼쳐지고 있니만 어떤 곳이 <인페르노>인지는 조금 더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인페르노>는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올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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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 우정, 공동체, 그리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드문 기쁨에 관하여
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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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3만 8천 권의 책속에 둘러쌓여 두마리의 고양이와 살고 있는 부부.  모든 책벌레들의 꿈인 '나만의 책방'을 나 역시 꿈꾸고 있다.  교회 작은 공간의 도서관을 꿈꾸기도 하고 내가 모아 둔 책들과 책 냄새 싸하게 풍기는 근사한 책들로 쌓여진 책방을 꿈꾸기도 한다.  손을 뻗는 곳마다 책이 있고 커피 한잔 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을 꿈꾼다.  물론 내 꿈속엔 경제적인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책이 있고 그곳에 내가 있는것만 생각해 봤지 책방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해본적은 없다.  언젠가 생활이 풍족해지면 그저 책방을 열고 그곳에 아이들이 오면 동화구연을 해주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것을 꿈꾸고 있으니 현실감각은 극히 낮지만, 오늘도 그런 곳을 꿈꾼다.

 

 

나는 항상 말했다. "언젠가 이 미친 짓을 그만두면 어디 눌러앉아 그럴듯한 책방을 열고 싶어요."  그러면 남편은 맞장구 쳤다. "헌책방을 여는 거야. 지역 산물로 만든 요리를 파는 카페가 딸린."  "눈이 튀어나오게 멋진, 밟을 때마다 근사하게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원목 마루를 깔아요." (p.22)

 

  책방에 대한 꿈을 혼자만 꾸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함께 꾼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함께 책을 읽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일 것이다.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속 잭과 웬디는 그런 부부다.  현실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같은 취미를 갖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 안락한 삶을 보장해주는 근사한 직장과 편리한 도시의 삶을 내려놓고 언젠가 작은 책방을 내는 것이 꿈이었던 애서가 부부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독사 굴’ 같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애팔래치아 산맥이 자리한 작은 산골 마을 빅스톤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거기서 뜻밖의 기회와 맞닥뜨리고, 오랫동안 품어온 꿈을 실현해보기로 결심한다. 이야기만 들으면 참 멋진데 하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는 탄광도시에 1903년에 지은 집에 책방, 그것도 헌책방을 꾸미겠단다.  귀농이 한창 화두에 있긴 하지만, 이들 부부는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사진 출처: 예스24 책 소개)

 

  수중에는 돈 한 품 남지 않고 방 다섯 개에 욕실은 세 개이지만 그중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하나뿐이고, 삐걱거리는 목재 마루에 물 새는 지붕까지 완벽히 갖춘 에드워드풍 저택의 주인이 되어 잔뜩 겁을 집어 먹고 있는 사람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살사소스와 상그리아의 취기에 홀려 반드시 이 집을 헌책방으로 변신시키겠다는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단다. 완전 범죄 다큐에 나올 것 같은 촌 동네에서 말이다.  개인이 장서를 몇 천권이나 소장하고 있다면 적은 양은 아니지만, 책방에 몇 천권은 분명 적은 양이다.  이 적은 책으로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이 시작되었다.  헌책 사냥에 나서고 무분별하게 책 기증을 받아서 집은 순식간에 고물상이 되기도 하고 "책방이라고요? 미쳤군요!"라는 주민들의 반응처럼 책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책방이라니 얼토당토 않은 일이 빅스톤갭에 벌어진 것이다. 

 

책방을 운영하려는 사람이 갖춰야 할 필수 조건은 "책을 좋아하십니까?" 이기보다는 "사람을 좋아합시니까?"일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우리는 엄청난 분량의 읽을거리에 무제한 접근이 가능해졌지만 오히려 전보다 덜 읽게 되었다. (p.245)

 

  책방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잭과 웬디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책이 자영업자를 위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에세이에서 경제학, 자영업자를 위한 창업투자까지 다루지 않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하나의 고비가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부가 간과하고 넘어갔던 일들이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폐광으로 경제가 무너진 작은 마을의 특유의 폐쇄성과 배타성, 그리고 ‘이렇게 별 볼일 없는 곳에 기어들어 오다니 당신들도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다’ 같은 냉소주의는 잠시 잠깐 머물고 떠나버리는 도시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산골 주민들의 자기방어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잭과 웬디는 빅스톤갭이 자신들이 살 곳임을 몸으로 보여주기 시작한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서로의 조재를 확인해 주면서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촉발된 경기 침체와 전자책의 활성화등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 작은 책방을 사람 냄새나는 공간으로, 커피 한잔 마시고싶은 공간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잭과 웬디의 모습은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모습은 아니었다.  스무살 차이가 나는 부부라는 글을 읽었고 책장을 잭이 혼자 만들었다는 글을 읽으면서 잭을 숀코넬리 같은 모습으로 상상 했었는데, 사진을 보고 저 많은 책장을 만들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책 곳곳에서 웬디가 잭을 표현한 부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묘사되어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제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은 빅스톤갭의 사랑받는 명소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단다.  글쓰기 모임, 뜨개질 모임, 살인사건의 밤,  춤과 음악이 있는 케일리와 마음이 외로운 사람들이 들어올 때 마다 차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주인이 있고, 발키티와 뷸라가 점원으로 있는 이곳은 빅스톤갭의 하나뿐인 책방이자 문화회관 같은 곳이다.

 

소규모 책방들은 대형 서점이나 온라인숍과는 다르다.  우리는 그저 팔기 위해 팔지 않는다.  우리는 이야기하는 사람과 이야기가 된 삶, 이야기를 읽는 독자 사이의 관계를 살아 있도록 유지해주기 위해 판다. (p.271)

 

  책 이야기를 할때면 눈이 반짝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눈이 반짝이면서 책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이야기 하는 곳에선 내 이야기를 들어줄것만 같다.  킨들이 혁명을 일으킨다고 하지만, 여전히 종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저렴하기 때문에 인터넷 책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동네 서점과 헌책방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곳엔 그곳만의 향기가 있으니까 말이다.  잭과 웬디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읽었던 책들, 좋아했던 책들이 꽤 많이 나와서 반가웠다.  팻 콘로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아는 이를 만난듯이 씨익 웃게되고,『샬롯의 거미줄』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웬디의 어린시절을 함께 공유한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은 빅스톤갭에서 계속해서 사랑받으며 존재할 것이다.  그곳에 가면 추억을 공유하고 이 세상은 참 살만한 곳이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사람의 향기가 피어나는 웃음과 눈물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곳에서 웬디와 잭을 만나 커피 한잔 하고 뷸라에 안내를 받으며 책 한권 한권을 손끝으로 느껴보고 싶은 그런 기분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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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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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일생을 담은 만화책 한권을 읽었을 뿐인데, 만화책이 아닌 스페인에 관한 역사서를 만난 기분이 든다.  물론 우리 만화 중에도 그런 작품들은 상당히 많다.  얼마전에 읽은 강풀님의 <26년>같은 경우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었고, 허영만 화백의 <각시탈>도 일제시대의 사회상을 만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만화속에는 허구가 끼어들기 마련이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처럼 실화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개인사로 역사를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하 듯 전쟁을 무서워하고 삶이 이끌어 가는 방향으로 가는것 조차 버거워 했던 한 남자의 인생. 그의 인생을 아들이 되살려낸 이야기를 만나 보자.

 

 

 

  저자 안토니오 알타리바는 1952년에 사라고사에서 태어난 문학·시나리오 작가이자 바스크 대학교 불문학과 교수이다. 1980년대부터 만화 시나리오 작업을 계속해 오면서 텍스트의 이미지화와 이미지의 텍스트화를 연구하고 있단다.  출판사에서 제공해주는 책소개글을 찾아보니 저자는 소설가로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그의 작품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이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단다. 그가 아버지를 그리는 데 ‘만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만화와 문학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담뿍 담은 ‘문학-만화’를 낳았고 평단은 찬사로 응답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스페인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읽혀지고 있다. 작가는 스페인 내전에 고통받은 세대의 아픔을 풀어나가고 있는데, 작가의 고뇌 끝에 선택된 만화라는 매체와 ‘융해’된 1인칭 시점의 전개를 통해, 당시 국제 정세와 스페인 내전 및 프랑코 독재 체제의 실상을 알게 해주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 아버지는 2001년 5월 4일에 자살했다.'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살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들은 어떻게 들려주려고 하고 있을까?  살아 생전에 아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했을 아버지. 그러기에 아들은 이야기 한다. '오직 나만이 아버지와 이어진 존재다.  심지어 나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잠재적인 유전자로 그분이 겪은 모든 일을 함께 했다.  그래서 그분이 어떻게 죽었는지 나는 안다. .. 그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나는 그분의 진실한 증언들과 내 혈관들이 흐르는 피로 아버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p.7~8). 이렇게 저자는 자신이 아버지로 분해 1인칭 시점으로 20세기 초의 사회를 바라보면서 소소한 일반인의 삶부터 스페인 내전까지의 상황을 세밀화로 들여다 보듯이 보여주고 있다. 1910년에 태어나 2001년 까지 90년을 살았던 한 남자의 인생을 말이다.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안토니오는 밭 갈고 땅 넓히는 일에만 골몰하는 탐욕스러운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치이면서도 늘 다른 세상을 갈구했다. 시골을 떠나 도시에 와 새 삶을 시작하며 스페인에 제2공화정이 수립되던 1931년에 어릴 적부터 소망하던 운전면허증도 땄지만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공화정 설립과 프랑코군의 쿠데타로 혼란스러운 도시와 내전의 상흔이 깊은 시골. 어느 곳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다.  멋진 차를 타고 마음껏 달리는 것이 꿈이 었던 안토니오는 의용군을 만나면서 어린 시절 구경만 했던 자동차를 몰 수 있는 세상, 가겠다고 마음먹은 곳으로 바로 떠날 수 있는 세상, 전선에 도착한 편지를 나눠주는 ‘평화의 배달부’로 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이제 혁명에 대한 열정만으로 가득 차 있는 순수한 사람들의 시대가 온 것이다. 총알이 날고 수류탄이 터지는 전장에서도, 노동은 고되고 급료는 처참한 프랑스의 시골 농장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간절히 원하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안토니오가 찾던 행복은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일 뿐이었다.

 

 

 

  전쟁 중 '구사일생파', '납탄동맹'이로 이름 붙여진 동지들인 빈센트, 안토니오, 바실리오, 마리아노는 총알로 만든 네개의 반지를 가지면서 삶을 이야기 하지만, 전쟁은 그들을 파괴해 버린다.  전쟁이 끝난 후에 사회는 전쟁에 중심에 있었을 때보다 더 전쟁터 속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파블로형을 따라 다니면서 의식주는 해결이 되지만 형이 판매를 하는 석탄이 어디서 오는지, 형이 어떻게 가난한 이들의 돈을 착취하는 지를 알게되면서 안토니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뿐인가?  비스킷 공장은 전쟁터의 작은 축소판이었다. 살기 위해서 서로 속이고 속이는 전쟁의 축소판. 이제 안토니오도 '납탄동맹'의 반지를 낄 자격이 사라진것만 같았다.  진정한 아나키스트라면 자신의 이익보다는 약자를 돌봐야 할테니까 말이다.   어린시절부터 청장년 시절을 거쳐 노년기까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이렇게 한 사람의 자서전적 성격을 띄고 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세밀하게 묘사를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로그로뇨 근처의 양로원으로 들어간 안토니오.  그곳에서에 생활과 안토니오의 가슴을 끊임없이 파고드는 두더지.  이 노쇠한 아흔의 노인이 어떻게 창을 통해 뛰어내렸는지 작가는 보여주지만, 분명 양로원에 부주의도 함께 하고 있다.  안토니오가 죽은 후 자살과는 별개로 양로원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효가 끝나는 3년이 지나자 마자 월 시설 이용료(아버지가 1일이 아닌 4일에 자살을 택했기 때문에 발생한)에 대한 연체금과 이자를 요구 했단다. 힘없는 자는 당할 수 밖에 없을까?  이제 저자는 그의 무능함을 실감하면서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향해 고백하고 고발하고 있다.  세상을 고발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방관한 양로원을 고발하고 있다.  묵직하다.  게다가 이글은 무섭다.  전쟁의 장면들이 무서운것이 아니라, 세상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소름이 돋는다.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때는 랩핑이 되어 있어서 뭘까 했는데, 역시나 아이들이 읽기엔 야한 장면들이 꽤나 많이 나온다.  바르셀로나 살롱 델 코믹 3관왕, 카탈루냐 만화대상, 각종 비평가상 수상등 2010년 스페인 최고의 만화로 불리는 이글은 그런 상들이 뭔지는 몰라도 받을 만한 작품이다. 만화책 한권으로 역사의 묵직함을 느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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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달고 시고 쓰고 짜다 인생의 맛이 그런거지. 아, 사랑하는 나의 당신 달고 시고 쓰고 짜다.  달고 시고쓰고 짜다 나는야 노래하는 사람 당신의 깊이를 잴 수 없네 햇빛처럼. 영원처럼"

 

  읽는 내내 문득 문득 떠오르는 아버지 생각에 알싸하고 눈물 찔끔거렸는데, 이걸 글로 쓰려하니 막막하다.  어떤 아버지 이야기를 써야 하는 걸까?   누구나 가슴속에 시인을 품고 있어 홀연히 사라져 버린 유령같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야 할까?  아니면 자식에게 모든걸 바치고 염부 1, 염부 2, 염부 3으로 세상어디에나 흩뿌려진 소금처럼 살아가던 그림자같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야 할까?  내가 읽은 것은 어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을까?  아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긴 한걸까?  재미있었다. 역시 박범신이라는 찬사가 흘러나왔다.  한장 한장 넘어갈때마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눈보다 손이 더 빨리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읽으면서는 그럴수도 있지 했는데, 무엇때문에 이토록 가슴이 알싸하고 먹먹해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날 아침 한 염부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p.9)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햇빛 살인. 찬란한 햇빛 속에서 소금 작업을 하던 염부는 몸 속에 소금이 부족해서 죽었다는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했다.  그냥 그랬다는 것이다. 염부의 죽음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다가왔는데, 프롤로그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이야기다. 처음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프롤로그였다. 다른 이야기에 빠져들기 전에 머리속을 흔들어 놓기 위한 작가에 의도였을까?  처음은 그랬다. 책장이 빠른 속도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혼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 강의를 하는 나는 배롱나무가 있는 폐교에서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시우를 만난다. 눈 내리던 스무 살 생일날 사라져 버린 시우의 아버지. 강경에서 젓갈장사를 하는 친구 덥석부리와 함께 주말마다 노래를 하는 옥녀봉 꼭대기 소금집의 청동조각 김을 만나면서 나는 그에 특이한 이력에 끌리기 시작한다.

 

  전신 마비 남자와 다리를 저는 함열댁, 척추 장애인인 큰딸 신애, 실명하는 선천적인 병에 걸린 둘째딸 지애와 함께 살고 있는 청동조각 김은 한대수의 노래를 멋드러지게 부를 줄 아는 사내였다. 그와 만나면서 조금은 특이해 보이는 청동조각 김의 특별한 가족들과 만나게 된 사건을 알게 되고, 사내의 어렸을 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청동조각 김은 염전을 하던 아버지를 도와드리려고 150리나 되는 긴 길을 걸어갔지만, 자신이 염전 일을 도우려고 대파를 잡은 것을 본 순간, 아버지는 그를 바로 돌려보내고, 그는 다시 먼 길을 걸어오다가 쓰러진 이야기, 그곳에서 만난 세희누나 이야기. 글을 쓰는 나에게 청동조각 김, 김승민의 이야기는 신선한 글감으로 다가오면서 자신의 아버지와 시우의 사라진 아버지 선명우를 떠오르게 만든다.

 

청동조각 김을 빼면 정상적인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서로 닮은 구석도 없어 보였다. 조건이 그렇다면 그 집엔 비극적인 어둠이 가득 들어차 있어야 옳을 터였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집안은 아주 정갈하고 환한 느낌을 주었다. (p.117)

 

  묘한 구성이었다.  혈연으로 묶여진 가족도 아니면서, 가족보다 더 애닮픈 관계의 구성이었다. 핏줄의 끌림보다 강한 무엇이 있었다.  선명우라는 이름이 아닌 청동조각 김으로 살고 있는 그에게서 잊혀진 가족에 이야기는 무의미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첫사랑이 아닌 뱃속에 아이로 인해 혜란과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위해서 그림자처럼 살던 남자.  선명우는 그런 남자였다.  그리고 그에겐 그보다 더한 그림자 같은 아버지가 있었다.  자식을 위해 염전일을 보던 아버지.  자식의 손에 대파가 잡히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던 아버지. 주인의 뜻데로 움직일수도 없었던 그림자 같은 아버지.  그 아버지의 마지막을 보았건만 그것이 마지막인지 몰랐었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쏟아지는 소금자루는 아버지, 선기철을 또 다른 아버지, 선명우에게 각인시켜 버렸다. 그의 피를 타고 흐르는 아버지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라고 생각을 했었다. 언젠가 딸아이가 어렸을 때 엄마는 태어날때 부터 엄마인줄 알았다는 말을 한적이 있다.  아버지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자식을 위에선 강하기만 한, 모든 위험을 막아줄 수 있는 그런 존재여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자식을 위해선 굶을 수도 있고, 자식을 위해선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버지를 그리던 아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들은 사랑을 했고, 이별을 했고 그 사랑에 가슴이 아팠다. 아들은 자식이 아닌 사랑에 모든걸 던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저 꿈일 뿐이었다.  자식이 태어나니 아들도 아버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도망쳤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아닌 아들이 되고 싶어서 시인에게 이야기 했는지도 모른다 "되돌아가는 길은 나, 잊었네. 너무 먼 길을 왔어. 핏줄이라고? 아닐세. 내 가족은 옥녀봉에 있어. 내게 다른 가족이 있었다면 아마, 전생의 일이었겠지.!"(p.209) 라고 아들은 시인에게 이야기를 한다. 아들은 아버지이기를 포기했는데 아버지를 찾는 아이는 어떻게 해야할까?

 

  소금의 맛이 이렇게도 많았던가?  짠맛, 신맛, 단맛, 쓴맛을 넘어서 통감을 이야기하는 매운맛까지 작가는 이야기한다.  물론 소금에서 매운맛을 찾을수는 없다.  알고 있으면서도 빨대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매운맛이, 자식이 태어난 순간부터 '빨대'가 되어줄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통감이 찌릿하게 다가온다. 자식이 없기에, 아니 전생에 일이라 치부해 버렸기에 잉여 재산을 쌓아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을 것이고, 그러기에 선명우는 토판염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연그대로의 갯벌에 황토를 섞어 다진 바닥에서 생산된 토판염. 이런것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일. 아버지가 하셨던 일을 하고 있는 아들.  그는 아버지였을까, 아들이었을까?  아니 그냥 사람이었을까?  '치사해'를 외치며 부둣가에서 일하는 아버지, 베트남전에서 다리가 잘린 채 절름절름 걸어오는 아버지, 모래바람 속에서 일하는 아버지. 소금을 안고 엎어지던 아버지. 그저 염부 1, 2, 3 처럼 아버지 1, 2, 3 이 되어 살아가는 아버지.

 

  분명 아리고 먹먹했다.  선명우 때문에...?  아니다. 그의 아버지 때문에 아리고 먹먹했다.  그의 부재로 너무나 힘들게 살수 밖에 없었던 스무살의 시우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이기전에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의 존재를 존엄하게 여기려는 선명우를 탓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나는 그를 탓한다. 그의 어린 자녀들때문에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니까...  아니, 부모니까.  어찌되었건 부모니까. 선명우가 아이들을 원해서 낳은게 아닌것처럼, 아이들 역시 부모를 미리 알고 태어난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아버지들의 이야기에 아버지이기를 거부한 사람에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내 아버지와 내 아이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고, 그러기에 선명우에게 등돌릴 수 밖에 없었다.  내 사랑보다 내 삶보다 아이들이 우선시 되는 나는 엄마 1, 2, 3 이 아니라 내 아이의 엄마이고 부모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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