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평점 :
작년에 내맘을 뒤흔들었던 드라마가 《나인》이었다. 이 드라마가 완결되면서 기욤뮈소의 작품 표절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내겐 별 거리낌이 없이 다가와서 그런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와 비슷한가 싶었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11/22/63』을 읽으면서 이 작품이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도 매력적이었지만, 일부러 이렇게 쓴건지, 번역에 문제인지는 알수 없지만 약간씩 이야기의 맥을 끊어버리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은 스토리의 힘이 강하다. 물론, 기욤뮈소의 작품 속에서 과거로의 정해져 있는 횟수는 《나인》과 비슷한 듯 하다. 그래도 왜 이작품이 더 비슷하다고 느껴질까? 그만큼 타임슬립을 이야기하는 것이 많다는 것일것이다. 책이든, 드라마든 이런 소재는 많다. 작년한해동안에도 타임슬립은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나왔었다. 하지만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작가의 역량이 아닐까 싶다. 김대현 작가의『홍도』를 읽었을때는 알지못하는이가 《맨프럼어스》의 복사판이라는 글이라고 하기도 했으니 누가 항변을 하겠는가? 내겐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었지만 누군가에겐 그렇게 생각이 들수도 있으니 말이다.

2002년에 개봉한 영화중에 장동건, 나카무라 토우로 주연에 《2009 로스트메모리즈》가 있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동아시아 일대가 '일본제국'이라는 이름으로 100년이 흘렀다는 설정이었는데, 남자주인공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내용이었다. 현시점에서 본다면 영화 속 배경이 잘 못 된 것이지만, 정말 이 배경이 잘못되었다고 누가 확신을 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혹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누군가에 의해서 바뀐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영화나 책을 읽으면서 해 볼때가 종종 있다. 『1Q84』를 읽을때도 그런생각을 했었었다. 알 수 없는 현실을 제외하더라도 《나비효과》라는 책과 영화가 기억날것이다. 중국에서 나비 몇마리가 날개짓을 하는 것만으로 토네이도가 생긴다는 이야기였다. 아주 단순한 가정이었고, 과거의 작은 변화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과거를 좌지우지하는것이 옳은 일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였는데, 『11/22/63』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밑에 깔아두면서 주인공에 입장에서 있어서는 안될 과거가 바뀐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대입 검정고시 준비반을 가르치는 서른다섯 살의 교사 제이크 에핑. 감정이 메말라서 이혼을 하겠다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생각했던 것은 학교 경비를 맡고 있는 해리 더닝의 리포트였다. 학생들로 부터 '두꺼비 해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50년전에 끔찍한 사건. 어머니, 여동생, 남동생을 아버지가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고 했다는 해리의 리포트는 부모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던 그에게서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에게 연결된 식당 주인 앨 템플턴의 전화. 말도 안되는 가격에 소고기패티를 판매하는 앨은 하루사이에 호호할아버지가 되어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제이크에게 털어놓는 비밀은 과거의 문을 열수 있는 시간의 문, 토끼굴의 존재였다. 그의 가게 창고가 과거, 1958년의 어떤 날로 이동하는 입구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곳에서 많은 시간이 흘러도 현실에서는 정확히 2분의 시간만이 흐른다는것이다. 이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제이크의 발이 토끼굴을 지나 엘로우맨을 만나면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현실이 되어 그에게 다가온다. 무언가를 위해서 하나둘씩 준비를 하고 있는 앨. 그가 제이크에게 이 비밀을 털어놓는 이유는 단 하나. 케네디의 암살을 저지하라.
"제이크, 자네가 역사를 바꿀 수 있어. 알겠나? 존 케네디를 살릴 수 있다고." (p.94)
케네디의 암살을 저지하라니, 보통의 사람에게 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운동실력도 뛰어나지 않은 영어교사가 말이다. 아니, 과거가 변할수 있는지 조차 의심이 가는 제이크는 해리 더닝의 식구들을 그의 아버지로 부터 구하기 위해 다시 한번 토끼굴로 들어간다. 무덥지근한 데리에서 만난 사람들, 모래알 찾는 것처럼 힘든 사람 찾기. 그리고 핼러윈 밤에 그에 앞에 나타난 빌 터코트와 헤머를 든 프랭크 더닝. "과거가 고집이 세다는 게 문제였다. 바뀌길 원치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p.275). 이 고집이 센 과거는 해리 더닝의 바뀐 운명을 그냥 웃므며 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토끼굴을 나왔을때 제이크 앞에 놓여진 현실. 몇달만에 돌아온 현실 세계는 여전히 2분의 시간만이 흐른 뒤였고, 앨의 죽음과 함께 식당 문이 폐쇄되기전에 제이크는 또 다시 1958년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케네디의 암살을 저지 하라는 앨의 유언을 이루어주기 위해서.
해리 더닝처럼 인생은 알 수가 없다. 케네디를 살린다면, 베트남전이나 세상을 혼란스럽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일들이 사라지고 더 나아질 거라고 앨은 믿고 있지만, 그 후의 세상을 누가 알겠는가? 또 다시 토끼굴로 들어간 제이크가 처음 본 것은 엘로우맨의 죽음이었다.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는 앨의 이론. 그의 이론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처음이 어렵지 두번째는 쉽게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토끼굴로 다시 들어가는 순간. 또 다시 리셋이 되어버린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 프랭크 더닝 사건을 다시 해결하고 제이크는 조디에서 조지 앰버슨이라는 이름으로 덴홈 통합 고등학교 대체 교사로 지낸다. 1963년은 앞으로 5년이나 남았으니까. 과거속에서 산다고 자신의 삶이 무채색일 수는 없다. 1963년 오스왈드가 케네디에게 총을 쏘던 그 날 까지 제이크의 삶은 덴홈 통합 고등학교의 선생이었고, 그곳에서 그는 사람을 만나고, 삶을 꾸려나간다. 새디와 미식축구 경기를 보러가기 전까지 말이다.
"과거가 변화에 저항하는 강도는 어떤 행위에 따라 미래가 얼마나 달라지는가에 정비례하는 것 같아요." (p.386)
변화를 싫어하는 과거. 이 과거속에 잡혀있는 한 남자. 이 남자의 행동이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엘로맨이 오렌지맨으로 되었다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블랙맨이 된 과거 속 현실을 마주한 제이크. 미식축구 경기장에서 들려오는 라이온 프라이드의 주전선수, 짐을 외치는 소리는 엘로우맨에게서 스치듯 들었던,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잖아. 당신 뭐야? 여긴 뭐 하러 온거야? 꺼져, 이 짐라야!"라는 외침이었다. "짐라, 짐라, 짐라!" (p.517)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하는 과거. 과거의 어느 틈이 뒤틀렸는지 알수는 없지만, 그가 느끼는 두려움은 자신이 과거의 존재도 미래의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제 어떤이야기가 펼쳐질지는 다음 권을 읽어봐야만 알 수 있다. '만일 과거로 돌아가, 서거한 대통령을 살릴 수 있다면... 세상은 더 나아질까?'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의 인생은 어떻게 변할까? 내 인생과 케네디의 인생, 어떤것이 더 중요할까? 물을 필요도 없겠지만, 알수 없기에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