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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돌고 도는 불수레. 그것은 운명의 수레인지도 모른다. 세키네 쇼코는 거기서 내리려고 했다. 그리고 한 번은 내렸었다. 그러나 그녀가 되려고 했던 여인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또 그 불수레에 올라타 버렸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대체 누구란 말인가?' p.128
火車. 일본인들은 나쁜짓을 한 망자는 지옥에 갈때도 불수레를 타고 간다고 생각을 했구나. 참, 일본스럽다는 생각이 처음 스친 생각이었다. 그렇게 읽어 내려간 책을 몇 주가 지났음에도 리뷰를 쓰지 못하고 잡고만 있었다. 초판이 2000년에 나온 책을 2013년에 읽었음에도 거부감이 없이 다가옴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십여년 전 일본과 비슷해지고 있기 때문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것이다. 내 주변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나? 생각해보니 신용불량이나 개인파산을 한 사람이 몇 있기는 하다. 단순하게 그런 사람도 있네 하고 넘어가 버리고 싶은데, 나는? 이라는 의문이 드는것을 막을 수가 없다.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금난이 있을때마다 현금 서비스와 대출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고, 가장 손쉽게 이용을 하는것도 그것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면 실시간으로 가능하니 말이다. 몇일 전에도 내 신용카드에서는 돈이 빠져나와 거래처로 송금이 되었다. 가지고 있던 보험과 통장들은 마이너스 대출이 될수 있는 한도를 다 채워버렸다. 그런데도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난 내가 있는 자리를 눈감고 있다. 처음 대출은 가슴이 메여오고 아프더니,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내미는 남편에게 건네어 지는 내 신용카드와 사라지는 통장들이 이제는 무덤덤해 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화차를 만났다.
왜 난 화차를 읽었을까? 내용을 알았더라면 읽었을까? 그냥, 미야베 미유키의 책이라서가 가장 빠른 답이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미미여사니까. 게다가 출근을 하니 내 자리에 턱하고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읽었다. 영화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는데, 회사 동료가 미미여사의 책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집에 있다면서 가지고 왔단다. 타 출판사의 책 표지를 먼저 접한 탓에 표지가 낯설기도 했지만, 책을 읽은 후엔 이 표지가 책 내용과 더 어울리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아들과 단둘이 사는 휴직 중인 형사 혼마에게 아내의 조카가 찾아온다. 아내의 장내식에도 오지 않았던 조카가 얄밉기는 하지만, 실종된 약혼녀 세키네 쇼코의 이야기가 형사의 촉을 건드린다. 아니, 날이 좋으면 찾아주겠다고 해버린 약속을 지켜야 할것만 같아서 혼마가 세키네 쇼코라는 이름의 약혼녀를 찾아 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선균, 김민희 주연의 국내판은 조카와 조카의 약혼녀가 주연이지만, 책은 완벽에 가깝게 혼마의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 우리나라 실정이 배우위주로 찍으니, 어쩔 수 없지만, 영화를 보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혼마라는 인물을 조성하씨가 어떻게 그려냈을까 하는 궁금증은 남는다.
작가는 혼마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세키네 쇼코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퍼즐 조각을 맞추어 나가 듯 그녀의 과거를 한 조각씩 맞춰나간다. 혼마의 추적에 의해 조금씩 드러나는 실종 사건의 이면에는 세키네 쇼코와 신조 교코를 연결되어 지고, 어떻게 그녀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지를 혼마와 이자카의 대화를 통해서 보여준다. 세키네 쇼코가 미조구치 변호사에게 했던 말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인데...'(p.147)은 자신들도 모르게 화차(火車)에 올라타고 만 두 여인의 이야기를 단 한마디로 표현을 해주고 있다. 개인파산자의 비극은 어떤걸로 이야기를 할수 있을까? 작가는 이야기 한다. "왜 뱀이 껍질을 벗으려는지 알고 계세요?... 그거 생명을 걸고 하는 거래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나요.... 몇 번이고 허물을 벗는 동안 언젠가는 다리가 나올 거라고 믿기 때문이래요. ...다리 같은 게 있든 없는 뱀은 뱀인데....그렇지만 뱀의 생각은 다른가 봐요. 다리가 있는 게 좋다. 다리가 있는 쪽이 행복하다고요.... 그래서 뱀한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울을 팔아먹는 똑똑한 뱀도 있는 거죠. 그리고 빚을 져서라도 그 거울을 갖고 싶어 하는 뱀도 있는 거구요." (p.310~311) 그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라는 두 여인은 행복을 꼭 뱀의 다리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라고 말이다.
개인파산이나 신용카드에 의한 폐해가 본인만의 문제라고 단언할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정책상의 문제라고 할수도 없다. 세상이 점점 흉흉해지고 있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른 이의 행복을 빼앗는 것도 있을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야기 한다. 혼마의 아들 사토루와 이자카의 대화를 통해서 지금까지의 이야기와 다른 것처럼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걸 보면 우선 그걸 부숴 버리고 나서 자기한테 편리한 대로 변명을 한대요. 그러니까 보케를 왜 죽였는지 타자키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그런 걸 들을 필요는 없댔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어떤 생각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했는냐 하는 거래요." (p.374). 보케라는 개의 죽음을 통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미미여사의 말은 지금 시점의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년인가 굉장히 이슈가 되었던 수원살인사건이 있었다. '왜 그랬을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 어쩜 이자카는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자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키네 쇼코가 되어버린 신조쿄코의 속마음을 말이다. 문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그냥 넘길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 넘겨서도 안된다. 그러기에 혼마가 신조 교코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고 쇼코를 시이라고 부르던 타모츠가 그녀에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말을 묻고 그 답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쩜, 작가는 처음부터 그건 중요한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장래가 보장되는 엘리트 은행원과 약혼했다가 자신의 과거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자취를 감춰야만 했던 여인. 충분히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벼랑으로 몰고가는 사회제도. 이 책을 읽으면서 미미여사가 과거에 법률사무소에서 일을 했음을 알았다. 그래서 이야기는 생생하다. 법률적인 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들이 바로 옆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생생하다. 살아있는 인물들과 함께 현대인의 필수 조건이 되고 있는 신용카드, 통신판매, 할부, 그리고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출 등 편의를 제공해주는 것들이 자칫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화차(火車). 혹시, 지금 내가, 당신이 타고 있는 것이 화차는 아닐까?